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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과의 이별

  • 작성일 2023-10-18
  • 조회수 457

내 책과의 이별 

신재기


   2007년 연말에 발간된 어느 수필 동인지에 「나는 계획한다, 분서(焚書)를」이란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그 이듬해 8월에는 이를 표제로 하여 산문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올해 들어 어느 날 우연히 이 글을 다시 읽게 되었다. 책에 대한 나의 남다른 욕심과 집착이 배어나는 글이었다. 글은 이렇게 끝나고 있었다.


   나의 책들에 대해 책임을 다하기에는 시간과 힘이 부족하다. 내 품 안에 들어온 것도 온전히 품지 못하는데, 또 새로운 인연을 맺는 것은 기존의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과욕이다. 자유를 위해 책을 옆에 두었지만, 두면 둘수록 자유에 목마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더 큰 자유로 가는 길은 붙잡고 있는 줄을 놓는 일이다. 가슴이 아파도 되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물론 품위 있는 이별이 되어야 한다. 홀대받을 것을 뻔히 알면서 알량한 선심을 앞세워 누구에게 건네고 싶지 않다. 내 자식에게 물려준다 해도 크게 환영받지 못할 것이며, 머잖아 쓰레기 더미에 던져지고 말 것이다. 나는 내 책이 공부를 위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하나의 존재로 인정하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는 문갑 위에 단 한 권의 책도 놓이지 않은 그런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새로운 꿈을 꾼다. 그것은 지금까지 쏟아 온 책에 대한 열정과 욕망을 승화시켜 가장 아름다운 한 권의 책에 새기는 일이다. 그 책은 종이로 된 두께 있는 책이 아니라 내 영혼의 책이다. 나는 계획한다, 분서(焚書)를.

― 『나는 계획한다, 분서를』(도서출판 그루, 2008), 147-148쪽. 


   당시 보유한 책이 적잖았다. 연구실 벽면 서가를 가득 채우고도 넘쳐 바닥에까지 쌓아 놓은 상태였다. 그 책들을 바라보면서 언젠가는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허망함이 엄습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아픔과 다르지 않았다. 그냥 떠나보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꼭 이별해야 한다면 남의 손에 가서 천덕꾸러기가 되기보다는 내 품 안에서 불태워버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분서를 계획한다’는 말을 한 것 같다. 그런데 15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책에 대한 집착은 변함이 없다. 지금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서점이나 온라인에서 적잖은 책을 산다. 아마 달 평균 10권은 넘을 것이다. 여전히 책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과 욕망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2021년 2월에 재직하던 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다. 퇴임하기 전 마지막 학기( 2020년 9월에서 2월까지)는 수업 없이 안식하도록 학교에서 배려해 주었다. 수업도 하지 않는데도 월급은 다 주었다. 6개월 동안은 그간 고생했으니 쉬어도 된다는 학교의 배려가 고마웠다. 그 보답으로 나는 내가 사용하던 연구실을 일찍이  비워주기로 했다. 퇴임 6개월 전, 2020년 8월에 연구실을 다른 교수가 사용할 수 있도록 개인 집기와 책을 옮겼다. 연구실을 메웠던 책의 반 이상을 버렸다. 교수로서 현직 생활이 끝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보니 책에 대한 그간의 병적인 애착도 줄어든 것 같았다. 그래도 버릴 수 없는 책은 마련해 두었던 개인 사무실로 옮겼다. 자료집은 대부분 전공이 같은 후배 교수에게 넘겨주었다. 퇴직을 기회로 책을 정리하고 나니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했으나 한결 마음이 홀가분했다.

   내가 책을 사는 동기는 두 가지다. 첫째는 신간 소개를 보고 관심이 끌리면 메모해두었다가 서점에 가 직접 구입하거나 인터넷 주문을 통해 손에 넣는다. 각종 신문의 책 소개란을 빠지지 않고 살핀다. 구입하는 책은 주로 인문학과 사회학 분야 국내 신간이다. 번역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몇 년 전부터 출판사 일을 하다 보니 출판이나 편집에 관한 저술도 눈여겨보는 편이다. 이제는 전과 달리 참고 참았다가 신중하게 책을 선택한다. 그런데 지인이 소개한 책이나 저널의 신간 소개란에서 접한 책을 인터넷으로 구입하고 보면 만족도가 반타작도 안 된다. 인터넷으로 책을 사서 처음 책장을 넘기는 순간 밀려오는 실망감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일에 이골이 난 터라 그러려니 한다. 이런 까닭에 가능하면 서점에 가서 눈으로 책의 전모를 확인하고 구입한다. 둘째로 글을 쓰다가 급하게 자료가 필요할 때는 서점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곧바로 달려가거나 전자책이 있으면 곧바로  구입한다. 근래에 들어와 내 개인 전자책 서고의 식구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내가 주로 쓰는 글이 문학비평문이다. 학문연구에 종사하면서 밴 습관으로 글을 쓰면서 참고자료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비평문 한 편을 집필하면서도 참고하는 문헌(저서, 논문, 저널 기사)이 꽤 많다. 집필 과정에서 참고문헌 검색과 읽기에 상당한 시간을 쓴다. 이때는 당장 필요하기에 서둘러 자료를 입수한다. 이렇다 보니 내 서재에는 책이 넘쳐난다.

   15년 전 ‘나는 계획한다, 분서를’이란 글을 쓸 때, 분서하겠다는 내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 보니 책에 대한 집착과 욕망의 또 다른 표출이었다. 역설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내 책과 이별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전에 논문을 검색하다가 대학교 한참 후배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사유와 문장력이 뛰어났다. 수소문하여 직접 통화했다. 그렇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이 바로 학문을 연구하고 글 쓰는 후배들한테 필요하다면 아낌없이 주고 싶다. 만약 한국수필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내 책을 주는 기쁨은 배가 될 것 같다. 지인이 인터넷 중고 서점에 내어놓으면 필요한 사람이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돈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내 책을 넘기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최후 방법은 손수레로 폐지를 수집하는 동네 노인에게 작은 횡재를 안겨주는 것이다. 시간과 노력과 정신과 감정으로 얽힌 내 책들, 곧 이들과 이별해야 할 시간이 올 것이다. 15년 전에는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불태우겠다고 어깃장을 놓았다. 하지만 이제는 불태우지 않고 마음 편하게 이별하는 길이 있으리라 믿는다.

   노년의 삶은 하나씩 내려놓고 비워가는 것임을 내 자신에게 되새기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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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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