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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하이웨이

  • 작성일 2022-09-30
  • 조회수 1,261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소설(중단편)]



죽은 시인의 하이웨이




박규민






아주 오래된 별장에서 선생님을 만나기로 했다. 강원도에 있는 통나무집으로, 선생님이 글이 안 써질 때 머무는 곳이었다. 늦은 오후쯤 서울에서 출발하면 약속 시간에 대충 맞을 듯했다. 나는 집에서 차를 끌고 나와 후배를 데리러 갔다. 작업실에 틀어박혔을 때는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는데, 막상 후배랑 단둘이 장거리 운전할 생각을 하니 숨이 턱턱 막혔다. 동료 사이가 으레 그렇듯 내가 후배에 대해 아는 건 의외로 많지 않았다. 행동거지로 보면 나보다 열 살은 어린 것 같은데 사실 두 살 어린 것, 옷이 얼마나 많은지 날마다 패션이 새로운 것, 그럼에도 역대 신입 중 가장 오래 버티고 있는 것뿐. 신문 기사, 잡지, 트렌드 분석. 우리가 일주일에 읽는 자료만 인쇄해 쌓아놔도 웬만한 회사 파티션 높이는 될 것 같았다. 선생님은 우리더러 아침 사과를 먹듯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했다. 대중의 마음을 읽어야 좋은 작품을 쓰고, 그래야 작가로서 존재가 증명된다는 거였다.
우리는 아침에 사과 따위를 챙겨 먹을 만큼 한가롭지도 못했고, 존재를 증명하니 어쩌니 하는 말을 들으면 하품을 참느라 턱 근육에 무리가 올 지경이었다. 후배와 나는 직장인처럼 아침 9시까지 작업실로 출근했지만, 직장인과 달리 퇴근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채 자료를 조사하고 대본을 썼다. 물론 작업보다 힘든 건 그동안 선생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거였다. 사회생활이란 결국 윗사람의 콤플렉스를 보고도 모른 척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회의 시간은 늘 자유로운 토론을 가장한 정답 맞추기 놀이였다. 다른 드라마 ― 물론 잘나가는 드라마 ― 의 흥행 요소를 분석하다 끝나곤 했다. 선생님은 평론가들의 글을 육포처럼 씹으며 우리는 엘리트가 아닌 대중을 위해 글을 쓰는 거라고 거듭 말했다. 실은 그냥 돈이 좋은 게 아닐까 싶다가도, 흥행 포인트와 매력적인 캐릭터, 얼마간 무시해도 좋은 개연성에 관해 설명을 듣다 보면 왜 선생님이 성공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저 커피가 아직 안 나와서요.”
후배가 기다리는 어느 도넛 가게 앞에 도착하자, 후배는 내 차창에 머리통을 들이밀고 그렇게 말했다. 주문한 커피 기다리느라 차에 탈 수 없다는 거였다. 붐비는 도로변이었다. 내 뒤 차량들은 내가 일 초라도 정차해 있는 걸 견디지 못해 경적을 울렸다. 나는 결국 후배의 커피가 준비될 때까지 인근 도로를 뱅뱅 돌고 있어야 했다. 족히 십 분은 더 지나고 나서야 후배는 보조석에 올랐다.
“미리 좀 사 두시지.”
“아, 그럼 식잖아요.”
후배는 벌써 도넛을 하나 입에 물고 옆에서 뒤척였다. 완연한 겨울이었다. 빼빼 마른 후배는 빵처럼 부풀어 오른 패딩에 파묻혀 있었다. 몇 개인지 셀 수도 없는 패딩 주머니에서 각종 과자와 도넛, 빵을 주섬주섬 꺼내 좌석 옆에 내려놓았다. 나는 운전하는 틈틈이 후배가 사 온 내 몫의 커피를 힐끔거렸다.
“이게 내 겁니까?”
“그쵸.”
“이거는 아이스인데.”
“그쵸?”
“….”
나는 더 말하지 않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커피 속 얼음들은 침묵 속에서 캐럴이라도 부르듯 달그락거렸다. 후배는 뭐가 불만인지 모르는 눈치로 이쪽을 곁눈질했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에 찍힌 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지난 며칠의 혼란한 상황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별장에 가 선생님을 만나면 뭐든 해결이 되겠지. 언제나 그랬다. 선생님은 계획이 있었고, 나는 그 계획을 따라 이 자리까지 왔다. 우리는 금세 한강 다리를 건너 강남으로 접어들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장난감처럼 보일 고가도로와 교통표지판들. 운전할 때면 가끔 이 모든 신호와 차선이 프로그램처럼 단번에 지워지는 상상을 했다. 선생님이 왜 그토록 사람을 피하고 칩거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물끄러미 보면 사회적 약속은 하나같이 장난감 같아 보이니까. 우리의 안전장치는 언제든 힘없이 끊어질 수 있다. 나는 아이스커피를 빨아 마시며 괜히 눈앞의 빨간불을 노려보았다.


*


후배가 깊은 한숨을 쉰 것은 우리가 서울을 빠져나왔을 때였다. 고속도로에 오르자 높은 건물들은 점점 멀어졌고, 시퍼런 하늘이 그만큼 시야를 가득 메웠다. 왠지 더 추워진 것 같아 히터를 높였다. 내비게이션은 앞으로 쭉 직진이라는 말을 이따금 반복했다. 밤이 깊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아주 늦은 시각 같은 건 도로에 다른 차들이 적어서일까. 이대로라면 약속 시간보다 삼십 분 전에 도착할 듯했다. 나는 커피 빨대를 껌처럼 씹으며 운전하고 있었다.
“선배.”
창밖을 보던 후배가 입을 열었다. 고개를 돌리고 있어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혼자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도넛까지 두어 개 끝장낸 마당에 우울할 리는 없을 듯했다.
“왜요.”
“선배는 선생님 밑에서 일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밑에서가 아니고….”
“아, 그렇죠. 공동창작이시죠.”
“….”
후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 것 같았다. 지금 같은 일이 자주 있었냐고 묻고 싶겠지. 시민단체 출신의 스타 드라마 작가, 쉬운 이야기를 쓰는 대중 친화형 이야기꾼, 그럼에도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 은둔형 유명인…. 언론이 말하는 선생님의 면모는 대체로 사실이었으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난처할 때가 많은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윤동주 시인의 삶을 담아낸 전기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었다. 윤동주가 남긴 시들이 어떤 사연으로 창작되었을지를 추적하여 역사적으로 고증된 사극을 만드는 것. 내로라하는 국문과 교수들 자문을 받아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윤동주를 그려 낸다는 데서 기대를 모은다, 는 게 보도자료에 나온 설명인데,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드라마를 게재하기로 한 국내 플랫폼이 직원들을 퇴직금도 안 주고 해고했으며, 육아하는 여성 직원들을 잘라낸 이슈가 불거진 거였다. 사람들은 인터넷에 분노를 쏟아 냈고, 선생님도 그 플랫폼을 보이콧하겠다며 집필 중단을 선언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모두와 연락을 끊었다. 우리가 전화를 해도 안 받았는데, 그럼에도 후배와 나는 날마다 작업실에 나와 자료 조사를 이어갔다. 일은 당연히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백수가 되었음을 인정할 수는 없었으니까. 며칠 뒤, 선생님 소식을 제작사를 통해 전해 들었을 때는 좀 섭섭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제작사 말단 직원이 작업실을 박차고 들어와 ― 전화나 이메일로 연락하지 않고 직접 찾아왔다는 말이다 ― 이번 주말에 우리더러 선생님을 만나러 가라고 했다. 선생님이 강원도 별장에 있고 우리랑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했으니, 일단 가서 어떻게든 설득해 내라는 거였다. 자기들 말은 절대로 듣지 않을 테지만 후배 작가들 말은 듣지 않겠느냐면서. 제작사는 이미 선생님을 설득할 방안까지 자료로 만들어 두었다. 플랫폼 노사교섭 현황, 대중의 관심 추이, 타 플랫폼과의 계약 가능성 등을 문서로 만들어 내 손에 쥐여 주기까지 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선생님이 정말 우리를 보고 싶어 할지 어떨지도 모른 채로 도로를 달리는 거였다.
“저런 게 도움이 될까요?”
후배는 내가 대시보드에 대충 놓아둔 제작사 자료를 턱짓했다.
“뭐, 빈손으로 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선배, 원래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하세요?”
“….”
“좀 이상하잖아요. 플랫폼이 나쁜 짓을 했다, 그러면 그냥 문제를 해결하면 되잖아요? 굳이 연락까지 두절하고 별장으로 가 버릴 건 또 뭐예요.”
나는 거의 다 녹은 얼음을 입에 털어 넣고 사탕처럼 혀로 굴렸다. 일일이 대답해 줄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후배가 이상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사실 얼마 전에 선생님이 저한테 좀 이상한 소리를 하셨거든요.”
“얼마 전에?”
“플랫폼 보이콧하기 직전에요. 선생님이 강원도로 가신 이유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후배는 잠시 눈치를 보다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드라마 기획 초창기에 어떤 사람이 선생님을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윤동주 드라마 만든다고 언론에 뿌렸잖아요? 그러고 얼마 안 돼서 누가 밤중에 작업실로 왔다는 거예요.”
“누가?”
“말하자면 제보자인데, 아주 모르는 사람은 아니고요. 며칠 전부터 이메일을 엄청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윤동주 시인에 대해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다면서요. 드라마 만들 거면 꼭 알아야 할 게 있다고.”
“어차피 그런 미친놈들 한둘이 아니잖아.”
나는 앞선 차 한 대를 추월한 뒤 후배를 보았다. 후배는 목이 뻣뻣이 굳은 듯 정면만 주시하고 있었다. 무시하는 말투로 들렸을까.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드라마 제작실에 자기 아이디어 반영하라며 이메일 보내는 자들은 수두룩했다. 자기 말대로 쓰면 상 받는 건 일도 아니라고 전화로 호언장담하는 이도 종종 있었다. 후배는 헛기침을 하더니 마치 새로운 개념을 가르쳐 주는 수학 선생님처럼, 약간 답답하다는 듯이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윤동주 시집이 사후에 출간된 거잖아요. 시집 내려고 펜으로 써서 정리해 둔 원고가 있었는데 끝내 생전에 출판을 못 했죠. 주변 분들이 그 육필 원고랑 노트에 남아 있는 시들을 모아서 나중에 시집을 냈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그 육필 원고 스캔본 보면서 토론하고 그랬잖아요. 최대한 윤동주 시인 눈으로 보려고.”
원고지에 세로로 쓰인 글자들을 뚫어져라 보던 나날이 눈앞을 스쳤다. 후배도 나와 비슷한 기억을 떠올리는지 다시 한번 말이 없었다. 얼핏 보기에 후배는 진중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같이 일한 지 일 년도 안 됐는데 헤어스타일은 벌써 두 번 바뀌었고 ― 막 기른 단발에서 평범한 남자 머리로, 그다음엔 스크래치 넣은 반삭으로 ― 말투를 보면 그냥 나이만 먹은 고등학생 같았다. 그런데도 글을 읽거나 쓸 때, 특히 스토리 회의를 할 때는 완전히 다른 영혼이 빙의된 것처럼 차가운 눈빛을 보이곤 했다. 후배는 점점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었다.
“그런데 윤동주 시인의 노트를 보면 썼다가 지운 문장도 있잖아요. 마음에 안 들어서 죽죽 그은 것도 있고, 시집 엮을 때 뺀 문장들도 있고요.”
“「곡간」 같은 시 얘기하는 거 아닙니까? 이 땅에 드물던 섬나라 사람이 길을 묻고 지나간다, 그런 구절이었던 거 같은데.”
“네, 맞아요.”
마치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처럼, 우리는 달달 외운 시구절들에 대해 생각했다. 후배가 말한 대로였다. 우리가 아는 윤동주 시 중에는 그가 생전에 노트에 써 둔 걸 복원해 출판한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원본이라 할 만한 육필 원고에는 윤동주가 쓰며 고민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당시 조선에 온 일본인에 대한 묘사도 노트에 기록되어 있었으나, 훗날 시집에 실을 원고에는 그 문장이 잘려 나가 있었다.
“우리는 다 컴퓨터에 글을 쓰잖아요. 그런데 윤동주는 노트에다가 펜으로 글을 썼단 말이죠. 아까 말한 것처럼, 썼다가 지우면 보기 싫게 흔적이 남겠죠. 그 흔적을 보면 자기 검열하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을 거예요.”
“윤동주라면 그랬겠지.”
“더군다나 엄청 깔끔한 성격이었잖아요. 노트도 깔끔하게 쓰고 싶었겠죠.”
“그것도 그랬겠지.”
“그래서 시에다가 담지 못할 사적인 생각들을 써 둔 노트가 따로 있었다는 거예요.”
그때 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안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한데 전화까지 받을 여력은 없었다. 나는 후배가 방금 한 말에 대해 생각했다. 전화가 끊어진 뒤에는 고개를 돌려 후배를 쳐다보았다. 후배는 왠지 초조한 낯빛으로 내 시선을 피했다. 나는 후배가 할 말을 대신 해 주는 느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윤동주의 비밀 일기 같은 게 있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까?”
“….”
“그런데 그 노트에 대해 아는 사람이 선생님을 찾아와서 윤동주는 사실 이런 사람이다, 라고 얘기를 했다는 거죠. 선생님이 잠적한 것도 다 그거 때문이라는 거고.”
“그렇죠.”
후배는 자꾸 내 쪽을 힐끔거리다가 아예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듯 중요한 이야기를 선생님이 나에게 안 하고 자신에게만 한 게 난감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윤동주 일기가 만일 정말 있다면, 그게 여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국민 시인이 아닌가. 미발표 원고가 있다면 진즉에 공개되었겠지. 그러니 그 일기라는 게 애초에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후배의 상태가 점점 이상해졌다. 꼭 등짝이 가려운 사람처럼 패딩을 입은 채 부스럭대더니,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들였다. 나까지 찬물에 세수한 듯 정신이 말짱해졌다. 이어지는 후배의 말은 더욱 기묘하게 들렸다. 우리가 꿈속에 있는 게 아님을 알려 주는 겨울바람, 섬뜩한 속도로 곁을 지나쳐 가는 덤프트럭, 조명도 켜지 않은 차 안에서 점점 낯설어지는 후배 목소리…. 우리는 어느새 칠흑처럼 어두워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


앞으로 오래 머물 장소에 처음으로 발을 들일 때, 우리는 누구나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후배가 작업실에 합류했을 때도 딱 그런 모습이었다. 전해 듣기로 몇 년간 독립영화를 만들어 왔다기에 은근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을까 싶었으나, 후배는 직업 탐방을 나온 견학생마냥 입을 벌린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우리 작업실은 꼭 신대륙을 찾아 밤바다를 항해하는 선실처럼 곳곳에 지도가 붙어 있었다. 윤동주의 삶을 드라마로 쓰기로 막 결정한 무렵이었다. 작업실 한쪽 벽면에는 윤동주 생전의 고향 지도를 커다랗게 붙였고, 당시 학교의 교실 풍경을 담은 그림과 연희전문학교의 정경도 여기저기 정리해 두었다. 후배가 들어오기 전, 나는 선생님과 함께 밤이 깊을 때까지 윤동주의 생애를 추적하며 토론하곤 했다. 실종된 사람의 자취를 찾아가는 것처럼. 작업실에 후배가 진심으로 감탄하는 듯해 내심 우쭐하던 기억도 난다. 과로에 시달리고 돈은 적게 벌어도, 우리가 꿈꾸는 곳에 닿을 수 있으면 다 괜찮다는 생각.
그처럼 낭만적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지만, 속으로는 다들 비슷한 마음가짐일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바닥이었다. 드라마는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이야기 예술이고, 그만큼 많은 이가 한두 마디씩 품평을 얹는다. 그럴 자격은 모두에게 있다. 어떤 드라마가 대중의 심기를 거스르는 순간, 그 드라마를 직접 본 적 없는 사람조차도 아무 거리낌 없이 비난에 동참한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말 한마디 섞어 보지 않은 아이를 따돌리는 것처럼. 그러므로 선생님은 문제의 그 이메일을 정독하며 우선 겁을 먹었을 것이다. 직접 본 적이 없는데도 그 표정을 훤히 상상할 수 있었다. 이메일에는 윤동주 일기의 몇 장이 사진으로 첨부되어 있었다고 한다. 한자가 섞인 글자들과 낡아 빠진 종이. 모를 수 없는 필체였다. 사진은 세 장이었다. 그중 하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한탄하는 글이 쓰여 있었다. 1935년, 고종사촌 송몽규가 신춘문예에 당선된 무렵 같았다.
후배는 그 문장을 정확히 기억하진 못했지만, 친구를 축하해 줘야 한다는 다짐을 꾹 눌러 쓴 일기였다고 한다. 선생님이 그 다짐을 읽으며 그것이 윤동주 일기가 맞음을 확신했다고 후배는 말했다. 혼자 보려고 쓴 일기일 텐데도 부럽다거나 질투 난다는 말이 없었으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을 흉한 충동인 양 감추는 태도, 늘 책상 앞에 앉은 모범생처럼 자기 자신을 절제하는 모습. 그건 우리가 수개월 동안 시, 산문, 각종 논문과 서적은 물론, 당시 지인들의 증언과 몇 없는 사진들 속 표정을 통해서도 수없이 그려온 윤동주 그 자체였다. 선생님은 그제야 그간 온 이메일을 꼼꼼히 읽어 보았다고 한다. 신원미상의 그 사람은 할머니에게서 유품으로 윤동주 일기를 물려받았다고 했다. 원래는 할아버지가 젊을 때부터 수많은 책과 자료를 모아 두었는데,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며 그 유품을 할머니에게 넘겼고, 결국 자신이 물려받았다는 거였다.
“그 사람 몇 살이라 했죠?”
후배가 잠시 말을 멈춘 틈에 내가 물었다.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알아야 할 것 같았다. 후배는 이야기를 쏟아 낸 끝에 입이 말라 마른침을 삼켰다. 나는 반쯤 마시고 남은 생수를 후배에게 건네주었다.
“정확히는 모르겠는데요.”
“대충 말입니다. 선생님은 그 사람 실제로 만났다면서요.”
우리는 아까 경기도를 벗어나 강원도로 진입한 참이었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별장에 도착할 터였다.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후배의 이야기가 어디로 향할지 알고 싶었다. 후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줌마라던데요.”
“아줌마?”
“네, 그냥 아줌마래요. 되게 평범한.”
그냥 아줌마라니. 너무 구시대적인 표현 아닌가 싶었지만, 그 사람이 어떤 느낌일지 바로 알 것 같아서 더 말을 얹지는 않았다. 그 사람은 국문학을 전공하기는커녕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다고, 오랜 기간 청소 노동을 해 왔다고 했다. 어렸을 적에는 책을 끼고 살았지만 가세가 기울어 오빠보다 먼저 생계 전선에 뛰어든 사연이 있었다. 윤동주 일기도 불과 몇 년 전까지 집구석에 두고 살아왔다. 딸은 독립해 집을 나갔고 남편은 몇 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탓에, 혼자 살 집을 알아보며 짐을 정리하게 되었다. 원래는 할아버지 것이었다가 할머니의 유품이 된, 이제는 자신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몇 꾸러미의 고서적들. 유품이라 하니 거창해 보이지만 실상은 옷장 맨 아래 칸 서랍에 넉넉히 들어갈 만큼 부피도 작았다.
“그래서 그걸 갑자기 읽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읽으려던 건 아니었겠죠. 짐 정리하다 보면 이건 왜 여기 있나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냥 오래전부터 당연히 거기 있던 물건들, 그런 걸 보면 문득 이렇게 낯선 물건을 가만히 두고 살아왔구나 싶으니까요. 그래서 훑어보다가 빠져든 거 아닐까요.”
나는 피곤한 눈을 부릅뜬 채 운전대를 고쳐 쥐었다. 고속도로 운전은 단조로운 일이다. 전조등에 비치는 창백한 차선들을 보고 있으면 꼭 쳇바퀴에 갇혀 있는 느낌도 들었다. 우리 말고 다른 차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후배는 윤동주 일기가 그 사람에게 얼마나 사적인 물건이 되었는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처음 일기를 읽을 때부터 그게 윤동주가 쓴 거라고 알아볼 수는 없었다. 할아버지 유품이니 할아버지 일기일 거라 짐작했고, 그 사람은 마치 부모의 졸업앨범을 훔쳐보듯 조금은 장난스럽게 읽어 나갔다. 한자가 많아 읽기엔 불편했지만 금세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거의 백 년 전 학생이 쓴 일기인데, 사람의 솔직한 마음이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좋아하는 여학생과 복도에서 엇갈리는데 인사를 못 건넨 자괴감, 하굣길에 넋 놓고 강물을 보느라 늦게 귀가했다는 이야기, 온 세상이 자신의 시 쓰기를 방해하는 것 같다는 자의식마저도.
“일기를 꽤 열심히 읽었대요. 딸은 결혼해서 나가고 남은 가족은 없고, 일도 퇴직하고 지내던 중이라고 하니까.”
“그래서 계속 본인 할아버지 일기인 줄 알았던 겁니까?”
“그게, 그랬으면 차라리 좋을 수도 있었는데.”
후배는 척 봐도 일부러 하는 기침으로 시간을 끌었다. 이제 보니 후배는 이 이야기를 내심 즐기는 듯했다.
“그분이 이상하다고 느낀 지점이 뭐였냐면, 종교였대요. 그분 할아버지도 전쟁 전에는 꽤나 잘사는 집 도련님이었다 보니, 일기에서 학생 때 시인을 지망한 건 그러려니 했다고 해요. 그런데 그 일기에 기독교적인 신앙고백이 거의 식전 기도처럼 반복적으로 나오더라는 거죠.”
“할아버지는 종교가 없으셨군.”
“그냥 없는 정도가 아니라 남들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윤동주 스타일은 아니시네. 그래서 그게 윤동주 일기인 걸 알았다는 거죠?”
“엄청 울었대요.”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후배는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자꾸 반복되는 구절이 있어 검색해 봤고, 그래서 윤동주 시인 일기라는 걸 알았다고 해요. 사실 윤동주라는 이름을 보고도 누군지 바로 기억난 건 아니래요. 시나 소설 같은 건 손에서 놓은 지 너무 오래됐고, 어렸을 적에 학교에서 배운 게 바로 떠오르지도 않았으니까요.”
“청소 일 하는 분이라고 했죠?”
“네, 윤동주 시를 인터넷에서 읽고 엉엉 울었대요. 너무 많은 걸 잊고 산 거 같아서.”
이어지는 후배 이야기를 나는 점차 넋을 잃고 듣게 되었다. 그 사람은 윤동주 일기 실물을 줄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전체 사본도 제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래서 선생님이 이메일로 질문하면 관련 부분만 사진으로 찍어 보여 주며 대화를 나누는 식이었다고 한다. 선생님이 궁금한 건 윤동주의 시 전반에 깔린 부끄러움, 자기비판이 어디서 시작되었지에 대해서였다. 교과서는 그게 일제강점기 지식인의 고뇌라고 이야기한다. 조국을 잃어 서럽고 불의에 맞서지 못해 스스로 부끄러운 거라고. 하지만 그가 일제강점기 현실에 대해서만 쓴 것도 아닌데, 그 뿌리 깊은 자기 성찰을 오로지 시대 상황에 연결 짓는 건 무리한 해석 같았다. 내가 작업실에서 토론하며 느낀 한계도 거기 있었다. 우리가 아는 윤동주는 별로 입체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도 존댓말을 쓰고 가진 걸 항상 친구들에게 나눠 줬다는데, 일제에 항의하여 요주의 인물이 되기도 했는데, 왜 끝없이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시를 썼는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선생님은 윤동주의 시 세계가 잘 드러난 대표작 몇 편을 골라 그 시가 창작될 당시로 추정되는 시기의 일기를 살펴보기로 했다. 일기를 가진 그 사람과는 이메일로 소통하던 끝에 긴 통화를 하게 되었고, 이윽고 그 사람이 밤중에 우리 작업실로 찾아와 격렬히 토론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후배 이야기를 들으며 자꾸 표정이 뒤틀렸다. 그 사람은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우리의 창작에 관여하는 걸까. 윤동주 일기가 설사 진짜라고 하더라도, 그걸 갖고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지 않나. 윤동주의 삶에 대해 권위자처럼 행세할 수는 없지 않나…. 윤동주 일기가 그 사람에게 얼마나 소중한 물건인지는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 어차피 물려받았을 뿐이고, 한 시인의 삶을 자신이 독점할 수는 없는 거였다.
“선생님은 그때부터 글을 엄청 즐겁게 쓰셨대요.”
“그럼 왜 도망가신 겁니까.”
“너무 좋은 작품이 나와서, 그래서 일기를 무시하고 쓸 수가 없으셨대요.”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곳에 있는 것처럼, 후배는 자기 말을 천천히 이어 가고 있었다. 이야기를 처음 꺼낼 때 그랬듯이 지금도 한껏 초조하고 들뜬 기색이었다. 나는 후배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비로소 윤동주가 입체적인, 살아 있는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대중성은 모르겠지만, 작품성은 탁월한 작품을 쓰는 기분이었대요. 자는 시간도 아까웠대요. 꿈속에서도 윤동주의 고향 땅을 거닐었대요. 그런데 그냥 꿈 같지도 않았다는 거예요. 이상한 말인데, 선생님은 자기가 백 년 전의 사람들이 일러 주는 대로 글을 쓰는 것 같다고 했어요.”
“비유겠지. 그 정도로 몰입했다는.”
“아뇨, 말 그대로요. 선생님은 정말 과거의 사람들에 이끌려서 글이 저절로 써지는 것 같았다고 하셨어요. 감히 그만 쓸 수가 없어서 계속 썼다고 하셨어요.”
“….”
“그런데 윤동주가 짝사랑했던 사람 이야기가 나온 거예요. 일기에서요.”
그 대목에 이르러 후배는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오래 주저하지는 않고 곧바로 이야기를 이었다. 중학생 때 윤동주가 좋아했다는 선배에 대해서. 인사조차 제대로 건넨 적 없지만, 꿈속에서는 며칠이고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람에 대해서. 그리하여 어쩌다 학교에서 마주치면 혼자 부끄러워서 고개를 푹 숙였다고 했다. 주변 누구에게도,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터놓기 어려웠던 감정 때문에 종종 울었다고 했다. 윤동주가 그토록 좋아했던 사람에 대해, 후배는 꼭 자기가 겪은 일처럼 찬찬히 설명했다.
“여자가 아니었다는 거죠.”
그렇게 말한 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자동차 엔진 소리가 무심하게 후배와 나 사이를 가득 메웠다. 후배는 아주 먼 곳에서 내 말을 수신하는 사람처럼 시차를 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말했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다시 한번 후배에게서 확인을 받고 싶었다.
“윤동주가 어릴 때 좋아한 사람이.”
익숙한 악몽을 다시 꾸는 것처럼, 내 귀에 온갖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윤동주를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라 하는 대형교회 목사, 동성애를 포용하는 일은 신사참배와 같다고 떠들어 대는 광신도, 동성애자라는 말 자체를 욕으로 쓰며 살아가는 머저리들…. 시청자들이 분노하며, 동시에 신이 난 채 양산할 논란과 그 논란을 받아 쓴 싸구려 기사들이 벌써 눈에 보이는 듯했다. 드라마에 자신을 불쾌하게 하는 건 한순간도 나오면 안 된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 어쩌면 명예를 훼손했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지. 심지어 법정에 서고 처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떠들 것이다. 모든 이슈에 한마디씩 말을 얹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이 몇 트럭은 있으니까. 물론 환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 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후배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고, 그가 조금은 기대에 차 있음을 나는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


숲, 이파리, 나무들. 나무라는 생명체는 가만히 보면 이상한 구석이 있다. 낮이랑 밤에 완전히 다른 생물처럼 보이는 것이다. 색깔이 모두 같아지기 때문일까. 낮의 나무들은 꼭 초등학생 그림처럼 짙푸르고 색깔도 다채로운데, 밤이 오면 시커멓게 하나로 뒤엉켜 공룡의 등줄기처럼 보인다. 후배와 나는 도로변 졸음쉼터에 차를 세운 참이었다. 나는 차 밖으로 나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무의미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나무의 시점으로 우리를 봐도 그럴까. 우리도 낮과 밤에 완전히 다른, 이상한 생물처럼 보이지 않을까. 때로는 세상 모든 사람이 나보다는 똑똑하다는 생각도 든다. 다들 추악한 충동을 느낄 텐데도 교묘하게 잘 숨긴다. 마치 쓰레기통이 없으면 휴지를 주머니에 넣어두는 시민처럼 질서정연하지 않나. 유명인의 사생활이 드러날 때, 우리는 어쩌면 그의 미숙함을 경멸하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게 숨기고 다녀야 할 치부를 대낮에 드러냈으니 비난받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밤은 찾아오고, 우리는 가까운 이에게도 말 못 할 비밀을 안고 잠에 든다. 사실 윤동주 일기에 관한 소식은 선생님이 한 달쯤 전에 나에게 먼저 털어놓은 바 있었다. 윤동주가 동성 학생에게 감정을 느꼈다는 설정은 물론 쓰지 않기로 했다. 이 바닥에서 몇 년 구른 사람이라면 그렇게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일기가 정말 진짜인지 검증을 맡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그게 진짜임이 분명해질까 무섭기까지 했다. 선생님과 나는 후배를 먼저 집에 보낸 뒤 밤이 늦을 때까지 작업실에 남아 이야기를 나눴다. 말은 내가 먼저 꺼냈다. 윤동주가 동성애 성향이 있었다는 설정은 소모적인 논란만 낳을 거라고. 그 설정을 무작정 싫어하는 쪽과 무턱대고 옹호하는 쪽이 서로 헐뜯을 것이며, 작품 자체에는 아무도 관심 없을 거라고. 끝없는 싸움이 벌어지고 언론과 인터넷은 기름을 부을 거라고. 그러니 만에 하나 이 일기가 진짜라 해도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고 나는 주장했다.
선생님은 짐짓 내 말에 못 이기는 척했지만, 애초에 내가 그 말을 해 주길 바랐다는 것은 훤히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그때부터 일기에 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작업은 지지부진했고, 선생님은 곧 플랫폼 보이콧을 선언하며 자취를 감추었다. 보이콧이라니. 터무니없는 핑계였다. 나는 선생님이 강원도에서 앞으로의 작업 방향을 정리하고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후배가 고속도로에서 선생님 이야기를 꺼내니 내심 당황했다. 후배에게도 윤동주 일기에 관해 털어놓았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예 없는 일처럼 넘어가려던 게 아니었나? 그런데 왜 후배에게 더 자세히 상황을 공유한 걸까. 후배는 윤동주 시인의 변호사라도 되는 것처럼 스스로 이야기에 몰두하는 것 같았다. 윤동주 일기를 있는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듯했다. 우리가 강원도에 도착하면 나서서 선생님을 설득하겠다고, 그게 작가의 양심이 아니겠냐고 특유의 단정 짓는 말투로 열변을 토했다.
나는 찬바람 속에서 눈을 감고 그간 있었던 일을 되짚어 보았다. 관자놀이에 자갈 하나가 박혀 있는 듯 아까부터 편두통이 욱신거렸다. 테이블에 전등을 켜고 선생님과 함께 몇 번이고 들여다보던 일기 스캔본이 눈앞에 떠올랐다. 문제가 되는 윤동주의 중학생 시절, 다시 말해 동성의 학교 선배에게 연정을 품었다는 기록은 아주 짤막했다. 하지만 펜으로 또박또박 쓴 글씨를 보면 매 문장 사이 기나긴 고민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윤동주는 자신이 길가에서 꺾은 풀꽃을 너무 오랫동안 주머니에 넣어 다녔다고 썼다. 그게 무슨 뜻인지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주변인이 증언하길, 윤동주는 특이하고 예쁜 꽃이 있으면 그걸 꺾어 외투 단춧구멍에 브로치처럼 끼우고 다녔다고 한다. 어느 오후에 윤동주는 파랗게 핀 들꽃을 꺾어, 그 형에게 같은 꽃을 달아 주고 싶었다고 썼다. 그러나 결국 용기를 낼 수 없었고, 꽃잎은 주머니 속에서 곤충처럼 바스러졌다고 일기에 적혀 있었다.
“그게 전부라는 거지.”
후배는 어느새 나를 따라 밖으로 나와 있었다. 나는 차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나무들을 올려다보았다. 후배는 패딩 주머니에서 전자담배를 꺼냈다. 누가 보면 절친한 친구라고 오해할 법한 모습이었다. 나는 후배가 대답하기 전에 말을 덧붙였다.
“게다가 그 시대에는 남자가 남자에 대해서 그런 글을 쓰는 게 아주 특이한 일도 아니었을걸. 남자 선배를 좀 동경할 수도 있지.”
그렇게 말하고 보니 내 목소리는 너무도 급박한 것 같았다. 사실 알고 있었다. 나도 일기를 읽었으니까. 그 형에 대해 윤동주가 쓴 문장들은 분명 동경 이상의 것이었다. 후배는 아무 말 없이 발끝을 내려다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빨대에 대고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 같은, 전자담배 특유의 소리가 우리 사이에 맴돌 뿐이었다. 후배는 몇 번의 연기를 더 뿜어내고 나서 헛기침을 했다.
“선배는 그런 생각 안 해 보셨어요? 윤동주는 뭐랄까, 너무 정답 같잖아요.”
“그래서 온 국민이 좋아하는 거잖습니까.”
“네, 그렇죠.”
후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마지막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까슬까슬한 머리를 손으로 문지르며 전자담배를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나랑 똑같은 자세로, 차에 비스듬히 기대고 서서 커다란 나무들을 올려다보았다. 우리 뒤편으로 작은 트럭 하나가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그거 아세요? 윤동주 시를 다 읽어 봐도 안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요. 다른 사람과 몸이 맞닿는 장면이 안 나와요. 악수도 안 하고, 포옹도 안 해요. 친구랑 투닥거리거나 심지어 동물을 쓰다듬지도 않아요. 자기 자신과 악수나 하는 정도죠. 딱 한 번, 어린 동생 손을 잡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도 금방 놓아 버리거든요. 심지어 순이라는 대상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순이에 대한 시에서도 몸이 닿는다는 언급은 없어요.”
“그거야 옛날 사람이니까.”
“아뇨, 윤동주 시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거의 항상 멀리 떨어져 있어요. 화자는 혼자 상상 속에 있거나,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을 그리워해요. 어떨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데, 그쪽에서 대답이 없기도 해요.”
“….”
“엄청 외로운 사람이었을 거예요. 하숙집에 친구들이 항상 붐볐다고 하지만, 친구들에게 완전히 속을 터놓을 수는 없었을 거예요. 그런 사람은 남들 눈에 정답처럼 보이죠. 모범생처럼 보이고요.”
나는 거기까지만 듣고 후배에게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렇듯 잠깐 차를 세우고 대화한다고 해서 후배 생각이 바뀔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후배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도 훨씬 완고히 일기에 있는 대로 써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후배는 추운 바깥에 남아 발끝을 내려다봤고, 나는 차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도 없는 차에서 느끼는 적당량의 고립감. 그대로 시동을 걸지 않고 오래도록 앉아 있고 싶었다. 드라마는 문제없이 방영될 것이다. 진작에 알고 있었다. 무난한 방향으로 만들어져 많은 이에게 사랑받을 것이다. 드라마는 결코 작가만의 것이 될 수 없다. 적지 않은 투자금이 걸리고, 투자자들은 작가의 창작 윤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력한 의지로 이익을 가져가고자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궁금한 점은 있었다. 선생님은 왜 후배에게 이 모든 걸 알려 주었을까. 설마 후배가 말한 대로 훌륭한 작품을 쓰는 것이 좋아서, 그 때문에 윤동주 일기에 미련이 남았던 걸까.
“이제 가죠.”
후배가 보조석에 들어와 앉으며 말했다. 나를 전용 기사로 아는 것 같은 말투에 헛웃음이 나오면서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데 그다지 밉상이 아니라는 건 참 그것대로 대단한 재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윤동주 일기에 관해 벌써 알고 있었다고 후배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드라마에 일기 내용 넣으면 안 된다고 선생님을 설득한 얘기까지 해야 하는데, 어쩐지 부끄러운 일이었다. 나는 시동을 켜고, 자동차가 꼭 피가 도는 것처럼 서서히 따뜻해지며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어깨와 목을 주무르며 밍기적대는데 후배가 옆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
“선배.”
“왜요.”
슬슬 운전할 마음가짐을 하자, 내 입에서는 지극히 사무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비게이션을 보니 조금만 더 가면 고속도로를 빠져나갈 예정이었다.
“우리나라 위인 중에 동성애자가 있어요?”
“글쎄, 없지 않습니까?”
후배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조금 시간이 흐른 후 알 수 있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거였다. 그 별처럼 많은 이 중에 과연 한 명도 없었겠느냐고. 그냥 드러낼 수 없었으니 우리가 기억 못 하는 거 아니냐고. 나는 가속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의 기계음을 들으며 대답할 말을 찬찬히 골랐다.
“후배, 윤동주는 이제 단순한 위인이 아니잖습니까.”
“….”
“무슨 말인지 아시죠? 하나의 상징이잖아요. 독립운동이라든지 민족이라든지.”
“누가 그렇게 정한 건데요.”
“모두가요. 다들 합의한 거예요. 사람들은 그런 상징적인 이미지가 훼손되는 걸 극도로 싫어해요.”
“훼손? 이게 왜 훼손이에요?”
후배의 매서운 눈길이 느껴졌다. 슬슬 짜증이 났다. 단어 꼬투리를 잡아 논점을 흐리는 것이 후배의 습관이었다. 나는 결국 이렇게 대답했다. 복잡한 생각이 싫은 사람들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고. 그게 우리 일이다. 드라마 시청자는 모두 사느라 바쁘고, 날마다 높은 사람 눈치를 보며, 알 수 없는 말을 견디며 살아간다. 그들에게 이해하기 쉬운 세상을 하나쯤 만들어 주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닌가. 후배는 한참이나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거칠어진 호흡을 숨기느라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후배의 목소리도 점차 격앙되어 갔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죠.”
“누구?”
“세상이 달라지잖아요.”
“퀴어물 많아진 거? 퀴어 로맨스, 드라마 같은 거?”
“….”
“후배, 그런 게 많아지면 진짜 세상이 바뀌는 것 같습니까? 솔직히 그거 태반은 이성애자 보라고 만드는 거잖아. 그냥 돈 되니까 집어넣는 거 아니야.”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별로 관심도 없으면서.”
그 말에 나는 몇 마디 쏘아붙이려 했지만, 후배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다시 정면을 보고 있었는데, 울분에 차 있기보다는 그냥 지긋지긋한 기색이었다. 우리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좁은 산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길은 구불구불하고 가로등이 드물어 추락사하기 딱 좋을 것 같았다. 후배는 차창 위 손잡이를 쥐었다.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가속페달에 발 붙이고 조심히 언덕을 오르려니 저절로 목소리가 낮아졌다.
“후배, 내가 요즘에는 이런 이야기를 웬만하면 안 하려고 하는데.”
“네.”
“내가 하나만 물어볼게요. 후배는 윤동주 일기를 보고 기분이 좋았죠?”
“네?”
자동차는 힘겹게 길을 올랐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갈수록 우리 목소리도 먹먹해지는 듯했다. 후배는 한쪽 팔로 팔짱을 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치 품속에 아주 소중한 생명체라도 감춘 듯 몸을 꼼짝하지 않았다.
“후배는 지금 윤동주가 동성애 성향이 있었다는 정체불명의 문서 하나 보고 지금 신난 것 같거든. 그거 말고는 벌써 관심이 없지 않습니까.”
“….”
“그렇게 우리 마음대로 정해도 되는 겁니까?”
“뭘요.”
“윤동주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 마음대로가 아니죠. 일기에 분명히….”
“아니지. 마음대로지. 그 기록 하나, 그 순간만 딱 하나 보고 우리 마음대로 어떤 사람인지 규정하는 거 아닙니까.”
정확히는 네 마음대로, 네가 꿈꾸는 그 잘난 정의의 이름으로 써먹는 것 아닌가. 물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런 말은 입 밖에 꺼내는 순간 부끄러워질 게 뻔했다. 너무 많은 생각을 드러내 버린 기분이었다. 어느새 언덕을 지나 평지를 달리는 중이었다. 우리는 한참 말이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시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거렁뱅이 아이 세 명이 나오는 시, 기억나요?”
내가 조금은 차분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투르게네프의 언덕」. 기억이 안 날 리가 없을 것이다. 윤동주는 그 시에서 어떤 언덕 풍경을 묘사한다. 언덕에서 화자는 거렁뱅이 아이 셋을 만난다. 아이들에게 줄 것이 있을까 싶어 주머니를 뒤진다. 두툼한 지갑과 좋은 옷, 있을 것은 다 있으나 차마 나눠 줄 수는 없다. 그리하여 화자는 다정한 말이라도 건네려 아이들을 부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저들끼리 속닥거리며 언덕을 넘어간다.”
후배가 기억나는 대로 시를 읊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배, 나는요, 우리가 윤동주 시인을 그렇게 세워 두고 가는 것 같거든요. 그분은 계속 타인에게 닿으려고 하지만 그럴 수 없던 분 아닙니까. 그래서 부끄러워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 마음에 드는 윤동주의 이미지만 만들어 세워 두려는 것 같거든요. 이게 맞는 거예요?”
내 목소리는 이상할 만치 침착했다. 문득 스스로가 낯설었다. 분명 질문을 하는 건데도 정말 대답이 궁금하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답을 미리 정해 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우리가 이미 아는 것을 되새기는 오랜 친구가 할 만한 말이었다. 서로의 말에 기어코 반박하려던 우리는 그 순간 관절에 힘이 풀린 듯 무너졌다. 아주 이상한 생각이지만, 우리 모두의 생각을 그러모은 것보다 훨씬 지혜로운 누군가가 내 입을 빌어 말한 기분이었다. 아주 허황된 상상은 아닐 듯했다. 오래전 사람들이 쓴 책을 읽고 생각하다 보면 그 목소리가 가끔 우리 입에서 나올 테니까. 하지만 달라질 건 없었다. 드라마는 관심을 많이 받는 쪽으로, 시청자가 열광하는 쪽으로, 돈이 되는 쪽으로 만들어져 어느 플랫폼에든 방영될 것이다. 그리고 후배는 모든 과정에 실망하여 점점 더 고집 센 사람이 돼 버릴 것이다. 차가운 물속에 머리를 들이미는 기분. 벨 소리가 들렸을 때는 어쩐지 구원을 받은 듯했다.


다시 한번,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였다.


*


죽은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 숙연한 마음이 든다. 망자가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을 들여다보는 기분, 혹은 비참한 결말의 책을 뒤에서부터 읽는 기분. 윤동주 시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의외로 일상적인 내용의 초기 작품들이었다. 생애 중후반 작품은 여러 번 읽어 익숙한데, 초창기 시에는 당시 소년의 감정이 싱싱하게 드러나 있었다. 누나가 주워 온 조개껍데기, 어미 품에 안기는 병아리들, 기왓장을 자식 그리워하는 부모로 의인화한 장면들. 제목만 봐도 내용이 떠오를 만큼 모든 시를 반복해 읽었는데도, 문학 소년의 연습장 같은 그 문장들만큼은 결코 질리지 않았다. 그가 불과 몇 년 뒤 형무소에서 젊은 나이에 죽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마치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처럼 윤동주는 법정에서 모든 혐의를 인정한다. 조선의 독립과 자주적인 민족성 고취를 위해 행동했다고. 고통스럽고 슬픈 얼굴이 아닌, 푸른 창공을 보는 말간 얼굴로 기억되기에 윤동주의 삶은 더욱 비극적이었다.
어쩌면 먼 훗날 사람들도 우리를 그렇게 보지 않을까. 끔찍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전염병 같은 희망을 떨쳐 내지 못하는 우리. 모르는 전화를 받자 익숙한 음성이 블루투스를 통해 차 안으로 번졌다. 선생님이었다. 제작사에서 연락이 너무 많이 와 핸드폰을 아예 꺼 뒀다고 했다. 지금 별장의 유선전화로 통화하는 거라고, 할 말이 있으니 간략히 하겠다고 했다. 윤동주 일기는 애초에 가짜였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믿을 만한 감정인 다수에게 의뢰해 검증받았다고 했다. 일기의 종이며 잉크, 펜촉의 궤적 등이 그 시절 것일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거였다. 시기상으로는 윤동주가 이미 죽은 뒤 쓰인 걸로 추정되며, 누가 왜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소설 구상 따위가 아니었을까 싶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지 않냐고 선생님은 물었다. 그만큼 중요한 문서라면 여태 방치되었을 수 있겠냐고. 이제 우리는 원래 쓰려던 대로 드라마를 쓰면 된다고. 제보자를 볼 일은 더 이상 없을 거라고.
그러니 별장까지 올 필요는 없다, 라는 게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침묵 속에 후배와 단둘이 남겨졌다. 거짓말이다. 이상하게 그 확신이 온몸을 휘감았다. 갓길에 차를 멈추고 마른침을 삼켰다. 후배는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나는 숨바꼭질을 하듯 숨을 죽였다. 무엇에 더 화가 났을까. 내가 윤동주 일기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게 꼴 보기 싫을까. 아니면 선생님과 일기를 덮자고 얘기한 게 가장 혐오스러울까. 그것도 아니면 이제 누구도 믿을 수 없어서 화가 난 걸까. 그 마음은 알 길이 없었지만, 그래도 확실한 점이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것. 이제 세상에 새로운 반전은 남지 않았다는 것. 작업이 수월해질 듯해 안도감이 드는 한편, 한순간 노인이 된 듯 피로감이 밀려들었다. 사람들의 갖가지 믿음과 욕망에 대해 더는 알고 싶지 않았다. 후배와 함께 돌아갈 길이 너무 멀었다. 잠깐의 휴식, 그리고 나는 어두운 도로를 향해 차를 돌려 익숙한 세상으로 나아갔다.











박규민
작가소개 / 박규민

소설가.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 시작.


《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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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

없는 사람 이혜오 휴대폰 알람은 새벽마다 나를 밀쳤다. 나는 미지근해진 자리끼처럼 엎질러졌다. 바닥에 쏟아진 나를 겨우겨우 주워 모아 연습실로 출근해서 스트레칭을 하면, 그제야 팔다리가 달린 사람의 몸을 감각할 수 있었다. 확실히, 그 시절의 나는 이미 엎질러진 나를 어떻게든 수습하는 기분으로 살았던 것 같다. * 댄스 학원에 다닌 것은 열네 살 때부터였다. 길거리 캐스팅이 될 만큼 뛰어나게 예쁘지 않은 나 같은 애들은 대개 그때부터, 혹은 그전부터 학원을 다니며 오디션을 준비했다. 대형 기획사의 공채 오디션에서는 번번이 떨어졌고, 열여섯, 중3 때 중소형 기획사 하나에서 내 영상을 보고 대면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제안을 했다. 엄마와 함께 서울에 가서 대면 오디션을 봤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가득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당시 사옥이 위치해 있던 청담동은 내가 살던 동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보였다. 동네 전체가 백화점 같았다고 할까. 깨끗하고, 반들거리고, 비싼 것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가득한. 그 세계의 일부가 된 것이, 나는 기뻤다. 그다음부터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 연습을 하고, 학교에 갔다가 하교 후에는 연습실에 가서 레슨을 받고, 레슨이 끝나면 밤까지 연습을 하다가 숙소에 가서 잠을 청하고 다시 학교에 가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연습생 숙소에는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온 연습생들이 때에 따라 열 명에서 열네 명까지 모여 살았다. 어깨선을 넘는 긴 머리를 한 여자애 열네 명이 한 공간에 모여 살면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진다. 끝없이 쌓이는 머리카락을 줍고, 줍고, 또 줍다 보면 문득 인간의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계속 자란다는 사실이 지긋지긋해지곤 했다. 그곳에선 언제나, 모든 자원이, 부족했다. 동진에서 부모님과 살 때는 부족할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것들까지. 화장실과 콘센트의 개수나 냉장고와 옷장과 침대의 넓이, 그리고 프라이버시 같은 것들. 내가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이불 속밖에 없었다. 나는 좁다란 이층 침대에서 늘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어폰을 꽂은 채 잠들었다. 그 어둡고 텁텁한 공간만을 편안하다고 느꼈다. 나는 천천히, 깨끗하고, 반들거리고, 비싼 것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가득한 세계에는 내 자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갔다. 회사가 작아서인지 제대로 된 트레이닝 시스템이랄 게 없어서, 데뷔 조가 아닌 연습생들은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했다. 어린애들이 우르르 들어왔다가 또 우르르 나갔다. 들짐승처럼 방치된 우리는 서로를 경계하고 미워했다가 또 끌어안았다가 하며 그 시간을 견뎠다. 물론 견디지 못하는 애들이 더 많았다. 고참들은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텃세로 풀었고, 신입들은 눈치만 보다가 나가떨어졌다. 매일 갈등이 있었고 매일 누군가 울었다. 누가 언제 집으로 돌아가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기란 어렵다는 것. 그 정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남을 미워하지 않고 버티기는 힘들다는 것. 이제는

  • 관리자
  • 2023-11-15
멜들다

멜들다 양혜영 멜*이 들어왔다. 강 선주가 포구 안으로 들어온 멜 떼를 발견했다. 강선주는 포구에 매어 둔 배를 살피러 나왔다가 방파제 아래 바닷물이 은색으로 팔딱이는 것을 보고 멜 떼가 들어온 걸 알았다. 강 선주는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양동이와 족대를 챙겨 나오며 멜이 들어왔다고 마을 안쪽을 향해 외쳤다. 그 소리를 들은 소도리 포구 사람들이 뛰어나왔다. 급히 나오느라 베개에 눌린 머리와 엉덩이께 대충 걸친 바지 차림을 하고도 양손 가득 뜰채와 양동이를 들고 나오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랑이가 젖는 것도 아랑곳 않고 바닷물 속으로 텀벙텀벙 들어가 뜰채로 멜을 건지기 시작했다. 사방에 은빛 물보라가 튀어 올랐다. “아이구, 이제랑 좀 앉아 쉬어 보카” 일찍 멜을 발견한 덕에 양껏 멜을 건진 강 선주가 슬그머니 방파제 한쪽에 술자리를 벌였다. 그 모습을 본 남자 서넛이 뜰채를 넘기고 방파제로 올라와 강 선주 옆에 앉았다. “아이고, 맛나다.” 검지 끝으로 멜의 꼬리지느러미를 잡아 입 속에 털어 넣으며 장 씨가 웃었다. “그냥 녹암쪄, 녹아.” “입 속에서 꿈틀꿈틀 헤엄쳠서.” “아이고, 맛 좋다. 맛 좋아.” 누가 채여 가기라도 할 것처럼 남자들은 쉴 새 없이 멜을 집어 먹었다. 멜이 수북이 쌓였던 접시가 어느새 허연 속살을 드러냈다. “아이고, 다 떨어지기 전에 여기들 왕 한잔씩 합써.” 강선주가 선심 쓰듯 바다에서 멜을 건지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좀 조용헙써! 바당 전세 냈수과!” 갑자기 강 선주를 향해 볼멘소리가 날아왔다. 대성호를 모는 박 선주였다. 민망해진 강선주가 두 눈을 부릅뜨고 박 선주를 쏘아보았다. 박선주도 강선주의 눈을 피하지 않고 한판 붙을 기세로 노려보았다. 옆에 있던 박 선주의 아내가 황급히 박 선주의 팔꿈치를 낚아챘다. “그냥 멜이나 건집써. 시간 아깝수다.” 아내의 말에 박 선주가 고개를 돌리고 다시 멜을 건지기 시작했지만, 잔뜩 굳은 어깨가 못마땅한 심사를 그대로 드러냈다. 강 선주는 그런 박 선주의 뒤통수를 계속 노려보다 바지통을 잡아끄는 일행의 손끝에 못 이긴 척 앉았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보통 멜 떼가 머무는 시간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웬만한 소도리 포구 사람들은 죄다 포구에 나와 있었다. 이미 강 선주와 박 선주 사이가 껄끄럽다는 소문을 아는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둘을 힐끗거렸다. 강 선주는 그런 사람들의 눈 때문에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아 눌렀다. 포구 사람들 사이에 끼어 멜을 건지던 정순도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둘 만큼이나 정순도 그들과 껄끄러웠다. 몇 년 전 화재 보상 문제로 생긴 앙금이 다 풀리지 않은 탓이었다. 한숨을 쉬며 시선을 내리자 바닷물 속에서 희끗거리는 멜 떼가 보였다. 정순은 손을

  • 관리자
  • 2023-11-15
물을 잡으면

물을 잡으면 호인 티브이 화면 가득 연한 푸른색의 거인이 누워 있다. 거인의 배가 천천히 오르내리며 숨을 쉬는 동안 배꼽에서 꿈틀꿈틀 연두색 싹이 올라온다. 카메라가 뒤로 빠지듯 시야가 확 멀어지며 줄기가 솟구쳐 오른 끝에 등불처럼 맑고 밝은 꽃봉오리가 피어나고, 봉오리가 활짝 연꽃으로 벌어지자 그 안에서 한 남자가 나타난다. 화면이 빙글 돌며 보여 주는 남자는 사방마다 하나씩 네 개의 얼굴을 가졌다. 남자가 눈을 뜨자 주변의 어둠이, 캄캄한 태초의 우주가, 섬세하게 일렁이며 여명이 밝아 온다. -멋있다. 저거 뭐니? 말을 걸 기회를 노리던 입에서 나도 모르게 탄성이 튀어나온다. -멋지구리하면, 게임 광고일 걸요? 한솔이는 티브이 쪽을 보지도 않고 중얼댄다. 그래도 그 정도면 근래 보기 드물게 긴 대답이다. 나는 용기를 얻어 질문을 계속해 본다. -게임? 무슨 게임인지 아니? 한솔이는 티브이를 흘끔 보더니 곧 다시 고개를 숙인다. 대답은 짧고 무성의해진다. -인도 신화예요. 지난해 동남아 여행에서 본 기억이 난다. 저 거인들은 비슈누나 브라마 같은 힌두교의 신들이겠구나. 티브이 화면이 휙휙 바뀌더니 중세 유럽풍 갑옷을 입은 힌두 신들의 영상이 번쩍거리면서 브라흐마가 눈을 뜨면 새로운 칼파가 시작된다아, 낮고 웅장한 소리가 울린다. 나를 사로잡은 건 멋지구리한 신들의 모습보다는 칼파라는 단어다. 칼파, 겁파, 겁(劫). 내가 아는 하나의 겁은, 세상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하나의 주기, 천지가 한 번 개벽한 뒤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시간이다. 그 무한한 시간이 게임이 서툰 아이에게는 한순간에 끝나겠구나. 그리고 곧이어 하나의 겁이 새로 시작해서 금방 끝나고, 또다시 새로운 겁이 시작하겠지. -저거, 네가 하는 게임이니? 내 질문은 어딘가 건성이 되어 버린다. -아니요. -요즘 컴퓨터 게임은 여럿이 함께 한다며? 너도 그러니? 한솔이는 수저를 탁 내려놓고 자기 방으로 가 버린다. 티브이에서는 신들과 악마들이 단 몇 초 화려한 전쟁을 벌이다 엄청난 폭발을 일으킨다. 하나의 칼파가 끝나 세상이 캄캄해지고 티브이 화면 가득 게임의 이름이 반짝거린다. 광고가 끝나고 드라마가 시작하지만, 텅 빈 거실에서 티브이나 보고 있을 생각은 없다. 남편은 집을 나간 후 생활비를 보내지 않고,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 비즈 팔찌를 만들려고 작업실로 가는데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든다. 무의식적인 곁눈질이 무언가 이상한 걸 감지한다. 고개를 돌리자 어항이 보이고, 역시나, 금붕어 한 마리가 불길한 수류를 따라 떠돌고 있다. 지난 보름 사이 네 번째. 금붕어가 죽었다. 이 년 전, 남편이 한솔이를 위해 사 왔던 금붕어가. 이 년 전 지나가 버린 그 시절 책임감 있던 가장이 착했던 아들을 위해 사 왔던 그 금붕어가. -*- 시조카 아이가 우리 집에 온 건 이 년 전, 그러니까 재작년 가을이었다. 툭하면 사람을 패고 다니는 시동생이 또 사고를 치고, 동서가 죽는다고 소동을 벌인 때문이었다. 부부가

  • 관리자
  • 202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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