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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로 읽는 그리움」 외 6편

  • 작성일 2023-08-09
  • 조회수 624

수어로 읽는 그리움

이희정


곁에 없으면 없는 것, 없을 막(寞)을 읽는다

디지털 화면 너머 소리 접은 노모의 얼굴

손으로 목을 조르듯 목마르다고 하는데


그립다는 그 말은 목마르다와 같은 말


사막은 물이 그립고 

저녁은 해가 그리운


수어(手語)로 목마르다는 말

보고 싶다는 다른 말


오가는 사람 없어 고독만 부려 놓은

손이 쓰고 눈이 읽는‘없다’라는 말


눈물이 액정에도 스밀까

젖지 않는 무음의 말






미라를 위하여



깡마른 가지에 석류 한 알 걸렸습니다

황리단길 고분 사이 새카만 먼 나라 여인

신전에 들지 못한 몸은

태양이 방부하고


허공 어디에도 죄가 된 기억 없습니다

산란기 영글었던 수용성 혈관 따라

모래알 고비를 넘어

낙타가 걸어옵니다


사막성 예후는 몸이 그림자입니다

한 사람 터지게 들었다가 나간 자리

겨울이 소묘합니다

소멸의 흔적만큼






초설



첫눈은 길 위에 쌓이지 않는다는데

첫눈이 사라져 첫사랑도 스러지나

첫눈은 실패입니다, 백지에 밑줄 긋고


가다가 얼어 버린 감정이라 읽는데

오다가 녹아 버린 표정이라 쓰는데

해마다 첫눈 오는 날이면

밑줄 아래 스민다고


어찌 그러느냐고 묻지도 않았는데

이 세상 모든 처음은 죄다 그렇다고 

응달에 울다 가버린, 초설이라 그렇다고






키핑해 주세요



방지 턱을 넘을 때마다 달이 출렁거려요

한낮에 유리병을 뚫고 나온 당신은


그 밤에 만든 이야기를

햇빛에 태워 버리고


남은 게 슬픔만은 아니라고 말해요

하늘빛에 숨어 있는 오로라 핑크처럼


꽃으로 달리는 마음

아껴 두는 거라고


키핑 키핑, 유통기한이 없는 위스키로

멈춰 버린 오늘을 손목에 차고서


달빛에 기다릴게요

당신 안에 젖어서






스캔들



경로를 이탈했다, 비탈진 어조로

급히 방향 틀어 핸들을 감아 보는데

꽉 물고 놔 주지 않아

살갗이 비명을 질렀어


사냥이 시작되었지, 촉수를 내리깔고

황당한 어원은 뾰족한 돌부리였어

언제나 넘어뜨리는 건 

안 보이는 하찮은 것


긁힌 게 범퍼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

툭하면 무릎에서 진물이 나곤 해

강하게 키워야 할까

그저 생활 기스라고








세상 깊은 것들은 죄다 어두운 걸까

오래된 문고리에 꽂혀 있는 눈초리


옻칠로 탈색된 구들에

그을린 침묵까지


덜 마른 불내가 진동하는 밤의 고택

캄캄이 고여 안은 촉각을 더듬는데


윗목에서 아랫목까지

깊이는 멀지 않다


딥커피 한 모금을

딥키스로 삼키며

습관성 그리움은 도발을 시도한다


살 오른 로맨스를 찢고

얼음 소리

파고든다






문장을 찾아서



장문의 유적을 좇아 답사 길 나선다

준마를 추월해 웹 사이트로 내달린

관람은 영상으로만

발 없는 보행이다


화면 속에 갇힌 채 굳어 버린 유품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박제된 메시지

감각이 통째로 매복된

불구의 게릴라전이다


명장은 제목을 이기는 장수라 했다*

적병에게 제 그림자 밟히지 않는다

장검은 느리게 뽑아

단숨에 닿는 길이다


무한 재생 모조품 유품과 유품 사이

얼굴 없는 추천 경로 밀폐 구간 되감아

사이버 전장을 클릭,

명검을 찾고 있다



*연암 박지원의 글쓰기 병법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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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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