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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의 내간체」외 6편

  • 작성일 2023-04-14
  • 조회수 1,125

백 년의 내간체

이정모


   집 지을 때 흙 한 삽도 퍼내지 않았다는 곳. 이런 말에는 고래가 있어

   온돌의 구들장처럼 오래 드나든 불길이 보인다. 사람에 초석을 둔 역사

   는 고작 문자로 남아 있겠지만 자연이 비워 놓은 자리는 시간이 지나도

   쓸모가 들어 있는 게라고, 낙향한 몸은 정치보다 정자에 마음을 두기로 했

   겠지. 그보다 고향은 늙은 에미의 품이다 그 빈 자리를 채우고 싶었겠지.

   아마 정자는 여기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한양에서 금했던 것들을 모두

   풀어놓고 길 초입부터 청죽 댓바람 소리로 묵객의 발소리에 운을 띄웠으나

   계곡 물소리 외 무엇 하나 제대로 운율을 맞추지 못하는데 시절도 모르는

   매화야 너는 무엇으로 그리 당당하여 속 깊은 향기를 공중의 붓에 묻혀

   백 년의 사연을 내간체로 쓰고 있느냐? 내 몸이 뒷목까지 서늘한 걸 보니

   대숲에 부는 바람의 비질에 내 가슴이 관통되었나 보다. 정자는 붓을 놓는

   데 하, 글썽임의 보폭으로 착지하는 댓잎 하나. 저것은 바람을 빌려 가슴의

   붕대를 풀고 나는 새다. 갈 데라곤 바닥뿐인 댓잎을 태연히 받아 주는 공중의

   자세를 보니 저것은 바람의 일이 아니다. 나는 것들을 모두 떨어뜨리는 시간의

   일이다. 그러므로 댓잎은 세월에 걸쳐 있는 백 년 전의 그 나비다. 그러니까 시

   간에는 틈새가 있어 몰래 다녀갔다는 것이겠지 최선을 다한 나비의 춤사위처럼

   대숲의 우듬지가 공중의 치마폭에서 꼬리치고 내 눈은 옛날의 사관(史觀)에서

   한 치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 하며 공중에 길을 내는 바람과 어쩌다 들른 내

   눈이 하늘 아래 같은 영역에 있지만 범접할 수 없구나 아, 이것은 고사(故事)를

   영접하는 일이고 어떤 형태도 보여 주지 않고 끊임없이 저항하는 이미지들의 행렬,

   저 굴뚝의 연기는 오래된 선비정신이다. 여기 그 정신이 그리던 묵화는 오늘이

   볼 수 없고 대숲을 몰고 다니는 바람의 손은 내가 볼 수 없지만, 마음대로 하십

   시오. 툭, 한 마디 던지는 대숲이 머리 풀고 평범한 민초에게도 사죄하는 집.

   그러나 그 옛날의 개혁이 어치처럼 울고 있는 집, 이곳에 두고도 몰랐던 내 마음

   이 발견한 소쇄원은 울화가 치밀어도 매화향 한 잔으로 세월을 마시고 내간체로 쓴

   세상사 아픈 기억을 달래어 왔었던 것일까. 어쩌나, 야사(野史)가 된 음풍농월은 또

   어디서 하룻밤을 지새우셨는지 임 계신 먼 곳에 눈을 두고 있는데,



구름 공간


   그는 신(神)이 돌리는 시간의 물레질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또한 세상의 모든 소리,

   그러니까 고치가 풀어내는 실낱같은 소리부터 하늘이 잣는 천둥소리까지 다 이곳에

   있다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여백이 있는 것을 낯설어하지 않았고, 수백 년을

   버티다 넘어지는 고목의 안식과 천일을 견뎌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의 날갯소리에

   대해 명상 외에는 더 보탤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번엔 스스로 소리를 얘기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바람의 파동을 거느리고 도착한 그가, 나무가 잎의 칼날로

   공간에 새기는 이 무늬에는 헛소리, 흰소리란 문양은 없다고, 다만, 무표정하게 선고

   와 집행을 행하는 법처럼 매의 눈으로 말한다고 했던가. 아니면, 꼭 해야 할 말들이

   머뭇거리던, 자꾸만 놓치던 무언가에게 물으려던 소리까지, 어쩌면, 모두가 허기져

   돌아선 영혼이 부르던 소리라는 생각을 한 것은 혹시 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

   시 들으니, 그는 소리를 담는 매체다 소리는 사라지나 음파로 남아서 구름에 기록

   된다. 하늘은 늘 은유로 말하니 공중의 시학일 수도 있겠지. 구름과 바람이 멈추지

   않는 것이 그 증거다. 또한 소리란 그의 몸을 통해 입술을 얻는다 그리고 각자 제

   꼴대로 문체가 된 바람의 힘줄, 그 탱탱한 붓으로 한 무리의 새 떼가 공중에 쓰는

   예서체라고 생각했을지도, 오! 우리가 구름처럼, 또 파도처럼 뿔뿔이 흩어진다 해도

   그가 등 뒤에 기다리고 있는 이상, 저기, 고요에 깎이고 있는 메아리처럼 돌아와야

   한다. 그가 친 그물은 우주의 몸이 현현한 것. 다시 말해 어여 가라며 등 떠미는

   아버지의 손이 내가 몰랐던 사랑의 소우주라는, 아니 137억 년 동안 돌리던 물레질

   의 손이 결국은 질서를 지킨 뼈였다는, 그런 말을 통해 신이 영역을 넓히는 곳이라는

   생각의 틀을 본다. 그리하여 오늘, 그 무변의 품이 지상을 박차는 비행기 안에서 늦

   은 자각의 은빛으로 내 몸에 전율을 부화하는 이런 날엔, 나는 바람처럼 들리어져 공

   중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래봤자 그 품의 깊이는 알 수 없는 것이어서 두리번거

   리며 공중의 공연에 슬며시 끼어드는 것이지만, 내 어리석음의 길이 같은 관심줄에

   매달려 오롯이, 빈속으로나 가 닿을 깊이로 두레박 하나 내리면, 저 공중의 심연에서

   투명한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을는지, 나는 구름처럼 둥둥 떠가며 어림하고 있을 뿐

   인데, 그 사이 공중은 다 흘렀더라.



숲의 비밀


숲속에 나무 의자 하나 버려져 있다

새 한 마리 날아와 지저귀니

부러진 다리가 쑥쑥 자라나고 잎이 나고 꽃도 피운다


알겠다, 의자가 사라지고 숲의 일가로 남은 후 

얼마나 자주 햇살의 마음이 다녀갔는지, 또 

숲이라는 의사가 어떻게 의자의 급소를 찾았는지를,


마침내, 생경이라고는 한 잎도 없는, 

꽃 떨어진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푸른 목숨들과 

서먹함을 싫어하는 햇볕이 생명과 타협을 한 것까지


말하자면, 아침의 긴 햇살을 끌어오는 숲의 근육이

버려져 있던 의자에 해의 비늘을 심기 위해

햇살 한 가지를 꺾어 생명에 접붙인 것이다


숲은 부활한 생명을 필사하는 유전자의 집, 

햇볕의 세례를 주는 선지자의 집


그러므로 햇살은 태초의 말씀

숲에 닿는 것만으로 생명이 수정되는 곳 


생명의 머리에 붓는 저 빛을 따라가면 

나무 의자 하나 숨통 열었던 곳이 있을 것이다


나는 너에게 갈래


숲이 다가와 태고의 말을 트자 

숲의 이름으로 의자가 내게로 왔다



바람은 묻지 않는다


   바람이 길을 업고 간다. 길은 무게를 버리고 풀잎처럼 가볍다

   새벽의 환경미화원을 업고서도 씽씽 달리겠다 저녁은 잃어버

   린 소를 봉분 근처에서 돌려주는데, 어디로 갔을까 그리운 내

   젊은 날의 길은, 생을 발품 팔다 생긴 울음은 상처를 지나서

   떨림으로 오고 눈물은 온몸을 물로 녹여서 뺨으로 오고 있다

 

   아뜩해라, 청춘의 상처가 몽땅 꽃으로 온다 해도 내 길은 자유

   롭지 않다 강박은 내 몸에다 무슨 짓을 하였나 팔을 이따맣게

   벌리고 세상을 들이고픈 적 많았고 이제 아픔은 연민의 딱지가

   되었으니 상흔은 여기가 아니고 그때라는 것을, 공중이 소리를

   받아 들 듯 모셔야 하는데,

 

   자세히 보면 보일까? 마음은 제 아픔을 숨기는 집이지만 정말

   로 자기를 보여 주고 싶으면 몸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이 말에는

   춥고 황량한 인생길에서 삶을 알고 싶으면 아픔과 동행해 보라는

   비의가 있다. 갯벌에 빠진 사람은 어디든지 있다. 아무렴, 슬픔은

   잠시 있다 가는 것이라 한들 생의 어떤 길에서든 우리는 서로의

   상처, 그 아픔으로 내가 낫는 소중한 삶의 배려인 것이니, 단지

   침묵으로 행동하라, 마음이 말하는 이 나라를 나는 무엇이라 불

   러야 하나? 삶을 벗겨 보면, 생의 꼭 어느 대목에서는 약한 것이

   강했으며 훈장 같은 흉터는 스스로를 강하게 진화한 증거이고

   상처를 묻은 봉분임을 내가 아는데,


   부모님은 나라는 나라 하나를 물려주려고 거친 바다를 데려오고

   음력 보름사리도 모셔다가 생이라는 갯벌에 닿게 하고, 그러나

   어차피 뻘이 주인인 세상 아니냐 그러니까 살다 보면 뻘 좀 묻는

   다고 생을 탓하지 마, 사람의 평생이란 그럴싸한 뻘짓일 뿐이니

   하루쯤 죽도록 사랑과 뒹군들 뻘을 탓할 수는 없다는 것임을, 길

   을 모르면 길을 잃을 일이 없다 해도 길은 기껏 몸을 내어 줄 뿐

   언제나 삶의 출항을 기다리고 있다. 오! 어떤 이유로도 바람은 길

   의 행방을 묻지 않는다, 길은 바람의 인연일 뿐, 같이 가야 할 항

   로가 아닌 걸 아는 까닭이다



모닥불 곁에서


도시에서의 믿음, 자본에서 밥이 나온다는 신앙 같은,

또 그것이 만들어 낸 허한 노동은 안녕과 등을 달리해서

문은 열려 있는데 문이 닫힌 새벽 인력시장을 업고 산다 


뿌리 내리고픈 것들의 하릴없는 믿음보다 

거친 손들을 쬐여 주는 모닥불의 허깨비 몸짓, 

그 불꽃으로도 오늘의 온도는 싸늘하기만 하고


늦은 저녁상을 마주하고 앉을 때마다 

밥은 원래 눈물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면

하루 끼니도 안 되는 일당이 목숨값인 걸 알았다


이 땅의 모든 노역이 이렇게 독이 서려 있는데 

마음만으로 어떻게 인간이 잘려 나가지 않을 것인가


네 뒤에 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어깨뿐인 법과 정치는 세상이 낭만적 지옥임을 감추려고 하니 


나무도 풀도 아니지만 올곧은 대나무 같은 

노동, 그것을 당간지주 삼아 

아우성이 기숙하는 괘불탱화로나 훨훨 나부꼈으면


늘 마음 한구석 엄니 생각처럼 희망 없이, 

그러나 절망도 없는 바람이 되어


나 오로지 믿음으로 불 곁에서

곧 사라질 모닥불이라도 환하게, 밝혔으면


바람 타고 내 눈썹에서 일생을 마치는 

저, 하얀 투신들의 소신공양처럼, 



소리의 힘


소리는 돌아오지 않는 새 

공중을 타고 노는 지느러미다

  

악기도 없이 연주되는 선율, 그 가운데 꼬리치고픈 것은 물 위에,

순간을 살고픈 것은 목련꽃 봉오리로 드러날 것이다


어떤 파장의 드라마가 내 눈을 유혹한 것일까


날개도 없이 날아다니는 저 수 많은 손(手)들, 

공중을 쥐락펴락하며 춤추는데

나는 뿌리처럼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출렁거릴 뿐이다


나의 한때는 아무리 외쳐도 사람들이 듣지 않는다고 

남을 원망했으며 방향도 모르면서 소리만 문제 삼았다


작은 소리로 말해도 감동은 진심이 안다는 것을 몰랐던 내 삶은 

그렇게 일렁이며 다른 세계를 견뎌 왔으나 이것은 내 안의 감나무에 

또 다른 소리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을 모른다는 말이다


오!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러나 어쩌나 나는 아직 나눌 가슴이 없고 

적빈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도 모르지만


여기, 이것이 생인가 끈질기게 존재를 묻는 힘이 있다

 

국도변 아스팔트에 말라붙어 반은 길이 된 기러기의 주검

악착같이 기다렸다가 몸이 없는 비행으로 환생했으니 

이를 햇살의 힘으로 날아가려는 바람이라고 해야 하나


새소리 자자한 봄날, 어쩌자고 내리누르는 생명의 힘에 아픈 나는, 

여전히 목련의 낙화에 지극할 뿐

  

사후(死後)가 없는 시(詩)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 산다



그림자


허공에는 누울 자리가 없어

가만히 내려와 언덕에 몸을 두는 

기억 같은 잔상 


꿈의 등에 닿도록 따라가 보면

날개 맛을 아는 나비 햇볕에 다녀오듯


나무는 땅에 기대어 살고 

아침은 어둠을 버리고 그림자를 얻는다


그림자로 잘, 사, 셨, 는, 가?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처럼 조용한 세상은 

사라진 것들을 부르지만


하늘에는 없다 

땅속에도 없다 


다만, 내 발은 바닥에서부터 안내하는 것이라

텅 빈 마음은 보여 줄 수가 없고


그러니까 들켜도 좋은 용기를 사랑해서 

벌건 대낮에도 낮달처럼 옷 벗으라 하는데


문을 여는 곳에 소리가 있듯이

마음을 여는데 어찌 시작과 끝이 없겠느냐고,


우편함은 속이 비어야 소식을 받으니

나의 깊이를 경계로 의심을 나눠 가지라 했네


사랑은 그림자처럼 붙어 있어야 하거늘

너는 너를 너무 일찍 포기했다고 나무라기도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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