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할머니의 이름은
- 작성일 20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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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청소년소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들 간의 부조화와 불균형이 자아내는 극적인 상황들을 제시함으로써 유머와 풍자를 녹여낸다. 서사보다 캐릭터에 더 많이 의존하는 시트콤에서 진상 캐릭터가 빠질 수 없듯 『순례 주택』의 백미는 순례 주택의 바운더리를 침입한 수림과 진상 가족들의 출현으로부터 시작된다.
진상 세입자들의 순례 주택 입성기
수림이 자신의 진상 가족들과 순례 주택에 들어오게 된 건 집이 망해 경매에 넘어가고 거주할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입주하기 까다로운 순례 주택에 단번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순례 씨의 선의가 작용했기에 가능했다. 행정상 주소는 거북동 원더 그랜디움이라는 아파트이지만 뿌리는 순례 주택에서 자라난 수림은 혈연 가족인 엄마, 아빠, 언니를 1군으로, 자신을 2군으로 배치하며 거리를 둔다. 수림에게 1군들은 속물근성과 안하무인 두 단어로 요약되는데 이들과 살아가기 위해 무기력증으로 무장하여 자신을 보호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1군들의 눈에는 수림이 그저 무기력한 인간에 지나지 않지만 사실 수림은 그 누구보다 생활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다. 당연히 이 감각은 순례 주택에서 배운 것이다.
1군들에게 원더 그랜디움은 하나의 성(城)이었다. 성 밖의 사람들을 깔보며, 성 밖의 삶을 멋대로 재단했다. 나는 성의 쪽문으로 드나들며 성 밖에서 삶을 배웠다.(80-81쪽)
평생을 누군가의 피부양자로 살아온 1군들이 자금줄이 끊겨 집이 망한 그 순간에도 자기연민에 빠져 있을 때 수림은 구원 투수로 변신하여 위기의 순간을 타개해 간다. 또한 수림은 자신의 집이 망한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는데 그동안 허공을 부유하던 1군들이 비로소 땅에 닿게 되었고, 이는 곧 이들이 현실을 딛고 설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이자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림의 기대와 달리 1군들은 현실에 뿌리내릴 여력과 의지가 전혀 없다. 오갈 데 없는 1군들과 순례 주택에 입주하게 된 수림은 1군들의 절망과 무지함을 비웃고 고소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들이 순례 주택에 끼칠 무례함과 민폐를 걱정한다.
자신들을 스스로 부양하며 살아온 경험이 전무한 수림의 부모는 고학력자라는 비대한 자의식 하나로 인생을 버텨 왔다. 수림의 부모가 교양 있는 지성인을 표방하고 흉내 낼수록 이들의 몰상식함과 상스러움이 낱낱이 폭로되고 이로써 이들은 타인에게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된다. 시트콤처럼 캐릭터의 특성을 이용해 유머와 풍자를 유발하는 이 수사 전략은 1군들이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일 수 없음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된다.
“301호 어느 학교 나왔대요?”
“사립대 나왔대요. 그래서 부모님이 등록금 대느라고 고생하셨다고.”
“다른 얘긴 안 하고요?”
“네.”
“후진 대학인가 보네요. 그러니까 말 안 하겠죠?”
“나도 딱 그 감이 오더라고요.”
“어쩐지. 막일하고 살더라.”
“우리 조심합시다. 우리 같은 명문대 출신한테 열등감 있을 거예요.”(139-140쪽)
수림의 부모는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 존댓말을 사용하고 금실 좋은 부부처럼 보이려 애쓰지만 이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과연 ‘존중’의 사전적 의미를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수림의 엄마는 자기 마음대로 정상과 비정상을 그어대며 타인을 평가하는데 ‘솔직히 말해서’라는 입버릇을 무기로 그 안에 차별 가득한 발언들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빌라촌’ 아이들이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자신의 아이들과 어울리기 부적합하다는 편견, 빌라촌이 자신의 아파트 집값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 등을 입 밖으로 고스란히 내뱉는 그에게 교양과 지성, 타인에 대한 존중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필터를 거치지 않은 발언들로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수림의 엄마는 순례 주택 입주민들에게 응징과 복수의 대상이 된다.
수림의 아빠 역시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인지하지 못한 채 15년째 전임교수를 꿈꾸지만 평생을 자신의 부모와 누나들, 장인어른에게 기생하며 살아올 만큼 무능하다. 그의 유일한 자부심인 학력은 순례 주택에서 하등 쓸모없음에도 ‘학번 묻기 금지’ 수칙을 무참히 깨버리는 수림의 아빠는 땀 흘려 노동하는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누구나 이름과 나이가 있는 것처럼 학번이 있을 거라 믿는 이 순진한 무지함은 꿈을 포기하고 부모의 부양을 떠맡으며 학비와 생활비를 대준 누나들의 희생을 대가로 얻은 ‘고학력자 남성’이 쥔 권력에서 파생한다.
수림의 부모는 순례 주택의 시세가 17억 이상이며 400만 원 정도의 월세가 보장된다는 ‘순례 주택 수익성’에 현혹되고, 이 건물이 순례 씨의 최측근이자 자신들의 딸인 수림에게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에 잠시 다른 존재가 되기도 한다. 평생 일을 해본 적 없는 수림의 엄마를 분식집에서 일하게 만들고, 책상물림으로 살아온 수림 아빠를 물류창고에서 일하게 만든 바로 그 순례 주택의 수익성 앞에서 이들의 몰염치는 더욱 극에 달한다. 자신들의 현실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가 아닌 그저 눈앞의 이익 때문에 순례 씨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동자 코스프레’를 하며 순례 씨에게 아첨을 떠는 모습은 인간이 물신주의 앞에서 어디까지 추락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순례 씨의 유산이 모두 ‘국경없는의사회’에 환원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이들의 무지와 허영심, 교만함 등은 순례 주택 입주민들의 현실 감각과 생활 지능, 성실함 등과 대비되어 이들을 그저 현실의 부유물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시킨다. 이렇게 양극단의 인물들 간의 부조화 속에서 『순례 주택』은 진정한 교양과 품위는 정직하게 땀 흘려 밥벌이를 하고 공동체와의 약속과 경계를 지키고, 무엇보다 현실이라는 거친 바닥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태도에서 나오는 것임을 상기시킨다.
이에 반해 1군들은 마치 “누가 누가 더 어린가 내기”(54쪽)라도 하듯 자신들의 무능함과 무지함을 전시하고 과시하면서 스스로를 반지성주의자로 내몰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내 어떠한 상황에서도 존댓말을 써가며 나름의 교양을 지켜 온 수림의 부모가 점점 밑바닥을 다 드러내며 현실 앞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자 수림은 그 누구보다 반가워한다.
“신선했다. 타인이 아닌 서로를 공격할 수 있는 엄마 아빠가. 우리 집의 낯선 불화가. 십육 년을 찾아 헤매다 찾은 줄자 끄트머리처럼, 나는 눈물 나게 반가웠다.”(243쪽)
수림은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타인을 비난하고 무시해 온 그들의 부모가 고성이 오가며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위안을 얻는다. 이제야 이들이 현실이라는 바닥으로 내려왔고 서로를 향한 분노는 이제 이 바닥을 딛고 일어나야 할 도화선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정상 가족이라는 아이러니
수림의 엄마는 순례 주택 입주민들을 ‘정상 가족’ 범위 밖에 있는 이들로 치부한다. 수림 엄마가 생각하는 소위 정상 가족의 기준은 이성애·혈연 중심의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을 의미하며 여기에 자가를 보유하면 더할 나위 없다. 이는 가부장적 가족주의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를 내포할 뿐만 아니라 이를 이탈한 가족 형태를 모두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차별적 태도를 함의하고 있다. 가족의 개별성과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수림 엄마의 기준으로 본다면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모두 정상에서 이탈한 ‘이상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순례 주택 입주민들의 가족 형태를 잠시 살펴보자. 먼저 401호에 사는 건물주 순례 씨(이혼한 1인 가구), 1층에 미용실을 운영하고 202호에 두 남매와 사는 조은영 씨(한부모 가정), 순례 씨의 전 직장동료인 이군자 씨와 그의 남편이 사는 302호(노년 부부), 나이와 직업은 미상인 401호 영선 씨(1인 가구), 시간 강사이면서 각종 알바를 마다않는 301호 허성우 씨(1인 가구), 그리고 201호에 사는 수림과 1군들, 이렇게 여섯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결혼제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302호의 군자 씨 부부와 201호의 수림과 1군들뿐이다.
“이 동네 오니까 왜 이렇게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 솔직히 말해서, 순례 주택에서 정상 가족은 302호랑 우리 집밖에 없잖아.”
엄마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엄마가 함부로 그어대는 ‘정상’이 나는 정말 싫다.(167쪽)
수림 엄마는 순례 주택에서 정상 가족은 이렇게 두 가구뿐이라 여기며 다른 사람들을 결함이 있는 존재로 여긴다. 그에게 순례 씨는 독거노인에 지나지 않으며, 조은영 씨는 미용사가 꿈인 아들을 내버려둘 뿐만 아니라 키가 작은 아들의 성장판을 관리하지 않는 무식한 엄마쯤으로, 영선 씨는 개인정보를 전혀 알 수 없는 이상한 사람으로, 학교 밖에서 노동을 배우는 시간 강사 허성우 씨는 막일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며 이들을 정상 밖으로 밀어낸다.
‘정상’의 사전적 의미와 멀어도 한참 먼 1군들이 순례 주택에서 정상 가족을 운운한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아이러니하다. 한편 수림 엄마가 공고히 세운 정상성은 크게 휘청거릴 위기에 처한다. 원더 그랜디움에 거주할 때 건물 청소를 하던 아주머니를 거북 마을에서 만나게 된 엄마는 그가 빌라를 자가로 보유하고 있으며 자녀들이 모두 독립하여 어엿한 직업을 가졌다는 것, 심지어 교사인 둘째 딸이 수림의 언니 미림의 학교에 발령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림 엄마가 그토록 무시해 왔던 존재가 자신이 생각하는 정상 가족에 완벽히 부합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본인이 진상 입주자에서 가난한 세입자가 되었다는 현실에 맞닥뜨린다. 결국 스스로 세운 정상성 궤도에서 이탈하여 낙오되는 순간에 이르면 ‘정상’ 가족이 되고 싶었던 ‘진상’ 가족의 좌절과 낭패가 드러나고, 이들을 보는 내내 스트레스는 나의 몫이었던 독자들은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이라는 클리셰 앞에서 어쩔 수 없이 통쾌함을 느낀다.
인생은 순례자처럼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의 가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라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이 당연한 이치가 점점 퇴색되는 시대이다. 땀 흘려 번 돈은 주식이나 코인 앞에서 부지불식간에 황금알 혹은 휴지조각이 되기도 하며, 행운과 불운은 동전의 양면처럼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축적된 노력보다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믿음 앞에서 매일의 단련은 무의미해지고 힘을 잃는다.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한 다양한 기술들로 인간이 점점 도구화되어 가는 현시점에서 건강한 노동을 이야기한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순례 주택』을 읽는 동안 특히나 1군들의 언행을 보면서 이런 부류들이 현실에 존재 가능한가라는 의심을 잠시 품었지만, 오히려 이들이 이 시대 어른들의 가장 현실적인 고증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미숙함을 부끄러움 없이 ‘-린이’로 포장하며 ‘노키즈’라는 방패로 아이들을 배제하고 혐오하는 어른들의 이기심과 몰염치를 보자면 현실의 어른들과 소설의 1군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행히도 『순례 주택』에는 자상하고 유연한 어른들이 있다. 미성숙한 부모에게 자란 수림의 온전한 독립을 도와주는 든든한 조력자들 덕분에 수림은 순례 주택에서 지성과 교양을 배운다. 이들은 수림이 건강하고 정직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내면의 힘을 길러 주는 든든한 지원군이자 진정한 의미의 양육자이기도 하다.
“수림아, 나는 독립적인 인간이잖아.”
“그치.”
“그래서 독립언을 많이 쓸 거야. 감탄을 많이 하는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어.”(95쪽)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99쪽)
그리고 인생을 관광객이 아닌 순례자의 마음으로 감사히 살아가는 순례 씨에게 수림과 그의 가족을 떠넘기며 당연한 듯 모성을 강요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어마무시한 기계치라 넷플릭스 사용법을 매번 잊어버리면서도 <빨간 머리 앤>과 <김씨네 편의점>을 정주행하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조사와 어미가 빠진 ‘순례어’를 사용하면서도 언제나 대화가 끊이지 않는 순례 씨 곁에 언제나 최측근 수림이 있다는 것도.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의 행복을 빌어 주는 순례 씨와 수림이 돌봄과 모성으로 맺어진 규범적 관계가 아닌 10대와 70대의 끈끈하고도 쿨한 우정으로 맺어진 사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값지다.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삶을 즐기고 살아가는 K-할머니들이 더 많아졌으면.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자상하고 든든한 조력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가치들이 당연하지 않다고 여겨질 때, 그래서 혼란스럽고 배신감이 들 때가 있다면 가끔은 클리셰에서 답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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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2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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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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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4-11-01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입자와 파동이 공존하는 세상 > : 제13회 서울국제작가축제 개막식 문장서포터즈 이형초 입자 : 국내 독자들이 문학을 누릴 기회를 제공하고, 한국 문학과 세계문학이 서울을 중심으로 쌍방향 교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자 2006년부터 개최했던 글로벌 문학축제지! 파동이 : 2023년까지 총 61개국 361명의 국내외 작가를 초청했군. 입자 : 맞아. 내가 아주 재밌는 곳에 데려왔지? 파동이 : 빛은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거 알고 있니? 입자 : 알아. 이 두 가지 성질은 서로 모순되지만,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 각자 고유의 형태로 공존하고 있는 거야. 파동이 : 맞아. 인간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관점으로만 설명할 수 없어. 세상은 모순적인 모습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이야기를 포착하는 것이 바로 ‘문학’의 일이지. 입자 : 응! 문학은 인종, 젠더, 세대 등 다양한 층위에서 발발하는 모순적인 대립 문제를 아우르고, 그 관계성을 사유하게 하면서 어두운 곳을 비추어 줘. 이번 서울국제작가축제도 문학의 입자성과 파동성을 함께 체험하는 장으로 준비하였으니 같이 즐겨 보자! 파동이 : 귀찮게 하는군. 입자 : 두 작가는 고전 물리학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던 ‘빛은 입자인가 파동인가’에 대한 학설을 되짚으면서 발제를 발표했어. 그들은 ‘어떤 실험 기기를 사용하는지’, ‘관찰자의 관점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빛은 입자가 될 수도 있고 파동이 될 수 있다는 학설을 설명하면서 ‘인간의 세계도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라는 강연 주제를 밝혔지. 이 발제문에 대해 파동이는 어떻게 생각해? 파동이 :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 좌파와 우파, 찬성과 반대 등 사회는 온통 이분법적인 사고로 이루어져 있고, 이러한 가치 판단 때문에 우리는 늘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 갇혀 사는 것 같아. 입자 : 맞아. 나의 상황이나 입장에 따라서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지니까. 세상의 모든 논의는 주관적인 영역에 놓여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 파동이 : 정보라 작가가 말하기를, 인간이 서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이야
- 관리자
- 2024-11-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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