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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기

  • 작성일 2021-11-01
  • 조회수 1,831

[창작 - 희곡]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어떤 경기



배시현





등장인물



이보현, 강승주


두 인물 모두 30대 초반 이상의 연령으로, 구체적인 나이와 성별은 무관하다.



시간은 달이 갓 뜨기 시작해 아직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은 초저녁, 장소는 잡초가 곳곳으로 우거져 사람이 잘 오가지 않는 곳이라는 게 바로 눈에 들어오는 근린공원이다.


어슴푸레한 조명 속에서, 작은 크로스백을 메고 있는 승주 들어와 공원 주변을 둘러본다.
태도는 산책이라도 나온 듯 여유롭고 편안해 보이지만, 눈빛은 수상하리만큼 형형하다.
중간 중간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모습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도 하다.
그러던 중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자 승주, 공원을 나선다.

잠시 뒤 보현이 스마트폰을 보며 공원 안에 들어선다.
이미 여러 번 둘러본 SNS 피드를 또 한 번 새로고침하며 걷던 보현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한다.


보현깜짝아.


보현은 다시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하며 걸음을 옮긴다,


보현뭐 재밌는 일 없나.


보현의 맞은편으로 승주 들어온다.
보현을 발견한 승주는 반가운 얼굴로 다가가 인사한다.


승주안녕하세요!


보현(무심코 흘긋 고개를 들었다가 승주가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있자) ……저요?


승주네, 안녕하세요!


보현네…… 안녕하세요.


보현은 승주를 인사성 좋은 주민 정도로 생각하며 지나친다. 여전히 시선은 스마트폰에 박혀 있다.
보현을 빤히 지켜보던 승주는 보현이 완전히 나가기 전에 보현을 불러 멈춰 세운다.


승주손님.


보현(뒤돌아보며) 저요?


승주네, 손님.


보현(이상한 사람인가 싶어) 저 손님 아닌데요? 무슨 손님을 찾으시는 건지…….


승주아니시긴요, 이보현 손님 맞으시잖아요.


보현네? (경계하며) ……누구세요? 누구신데 절 아세요?


승주저 모르세요? 우리 나름 인연 깊은 사인데.


보현……누구신데요?


승주제 머리스타일이 작년이랑 달라서 그런가? 저 강승주예요.


보현(기억하려 애쓰며) 혹시 저랑 친구……?


승주와, 정말 저 누군지 모르시나 보네. 진짜 섭섭하다. 저는 손님 처음 본 날 머리스타일부터 옷 색까지 다 기억하는데.


보현(경계하며) 누구세요?


승주가 대답하지 않고 자신만 쳐다보자, 보현은 찝찝함에 그냥 지나치려 한다.


승주동북산로 37 에이빌라 203호 이보현 손님.


보현(뒤돌아서며) 뭐야? 누구세요 진짜? 누구신데 제 개인정보를.


승주시골집 강승주요.


보현시골집? 그게 뭐…… (기억이 나) 잠깐, 설마?


보현이 기억을 되짚는 사이 승주는 스마트폰에서 보현이 올린 글을 찾아 읽는다.


승주‘포장 주문하러 간 가게에서 진상 취급당해 기분 더럽네요.
’저희 어머니가 지금 많이 아프십니다.
그래서 한동안 아무것도 제대로 드시질 못하다가 어제 갑자기 닭곰탕이 드시고 싶다고 하시더라구요.
기쁜 마음으로 k동에 있는 전문점에 닭곰탕을 주문했습니다.
새로 담근 깍두기도 밑반찬으로 꺼내 놓고서 음식 나올 시간 맞춰 갔는데 제 닭곰탕이 없었습니다.
주인이 주문 받은 걸 까먹었다고 하네요. 그럼 상식적으로 사과가 먼저 아닌가요? 그런데 가게 주인은 ‘어떡하죠? 다음에 먹으면 안 될까요?’ 이러더라구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차타고 일부러 여기까지 왔는데 사과부터 하셔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하니까 죄송하다고 대충 한 번 말하고선 왔다갔다 든 기름 값 쳐서 환불해 줄 테니까 가라고 하더라구요.
누가 지금 돈 때문에 이래요? 집에서 닭곰탕 기다리는 저희 어머니는요? 화가 나서 따졌더니 주인은 환불해 드린다고 했는데 더 이상 뭘 어쩌라는 거냐며 지금 바쁘니까 할 말 있으면 점심시간 끝나고 와서 하라고 절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k동 닭곰탕 전문점에서는 화도 가게 주인 시간 맞춰서 내야 하는지 몰랐네요.


보현(어이없어서) 저기요, 사장님. 지금 그 글 때문에 온 거예요? 이미 일 년이나 지난 일인데? 그리고 사장님이 글 내려 달라고 해서 이틀인가 지나서 바로 내려드렸잖아요.


승주(추억 이야기를 하듯 즐거워하며) 맞아요! 기억하시는구나! 그때 저한테 자필 사과문 받았다고 인증한 다음에 글 지우셨잖아요.
그 사과문 진짜 열심히 세 장 꽉꽉 채워 썼는데. 사실 맨 첫 장만 올리셔서 좀 서운했어요.


보현아니, 그래서 절 왜 찾아왔냐구요. 사장님 일부러 여기서 저 기다린 거 맞죠? 내가 퇴근할 때마다 이 공원 지나다니는 거 알고?


승주기회를 드리려구요.


보현기회? 무슨 기회요?


승주손님, 혹시 그때 제가 빌면서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요?


보현(일부러 퉁명스레) 아뇨, 안 나는데요.


승주괜찮아요, 지금 또 말하면 되죠. 그때 제가 제발 글 지워 달라고 빌면서 뭐라고 했냐면요.
제가 이 가게를 친동생이랑 같이하고 있는데, 어제 동생이 배달 나갔다가 접촉사고가 크게 나 입원한 상태다.
그래서 밤새 병원에 있다가 혼자 주방 일이며 홀 손님, 배달 손님 감당하다 보니 정신도 없고, 여유도 없어서 실수한 것 같다.
제 딴에는 모두 죄송해서 드린 말씀이었는데 불쾌하셨다니 정말 죄송하다. 이렇게 말했어요.


보현그런데요? 뭐 어쩌라구요.


승주(감탄하며) 와! 손님 진짜 일 년 전이랑 하나도 안 변하셨네요?


보현저기요!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똑바로 하세요. 왜 계속 빙빙 돌리면서.


승주(듣지 않으며) 그때도 이랬어요. 정신이 있건 없건 그건 사장님 사정이라고.
손님이 거기까지 알 필요 있냐고.
그거 다 핑계고 변명으로밖에 안 들리니까 뒤늦게 사연 팔면서 감정적 호소하지 말라고.
그런데요, 그러는 손님은 왜 글에다가 병든 어머니 사연 팔았어요?


보현뭐래 진짜, 저기요. 여기 왜 왔냐구요. 뭐 하자고 온 거냐구요.
본인 말만 하지 말고 물어본 말에 대답부터 하시라구요!
지금 이거 경찰에 신고해도 문제없는 상황인 거 알고는 계시죠?


승주말했잖아요, 기회를 드리러 왔다고.


보현기회요? 내가 내로남불한 게 기분 나쁘니까 이제라도 사과할 기회를 주겠다, 뭐 이런 거예요?
진짜 웃기는 사람 아니야, 내가 사과 안 하면요? 뭐 어쩔 건데요?


승주(웃으며) 손님 뭘 오해하신 모양인데, 저 사과 받으러 찾아온 거 아니에요.
내로남불이라뇨, 손님이 뭐 틀린 말 했나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손님도 감정에 호소하려고 했다는 거예요.


보현진짜 뭐라는 거야, 됐구요. 그냥 신고할게요.


보현이 112에 전화하려는 사이 승주는 여상스러운 얼굴로 크로스백에서 권총을 꺼내 장전한다.
총을 본 보현은 실소가 터져 신고 전화를 하려던 손을 내린다.


보현이 사람 진짜 웃기는 사람이네, 지금 뭐 하려고 총 꺼내신 거예요? 협박하려고?


승주딱히 협박용은 아니고, 손님이 너무 제 이야기에 집중 안 하시는 것 같아서요.


보현사장님이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네.
설마 제가 그걸 진짜 총이라고 믿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죠? 여기 미국 아니에요.


승주안 믿을 것 같긴 했어요. 저라도 그럴 것 같아서.


승주는 하늘 위로 총을 쏜다. 강한 총성음이 들려온다.
보현은 총소리에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한다.


승주손님 말처럼 미국이 아니라 일반 총은 못 구했고, 사제로 구했어요.


승주가 다가가자 보현은 놀라 달아나려 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리는 바람에 걸음이 꼬여 넘어지고야 만다.


승주(보현에게 다가가며) 아이구, 아프게 넘어지셨네.


보현(벌벌 떨며) 저, 저기요, 왜, 왜 이러세요? 저한테 왜, 왜 그러세요…….


승주저희 가게 망했어요 손님.


보현죄송해요, 사장님 제가 잘못했어요.


승주손님이 뭐가 죄송해요, 그때 저한테 말씀하셨잖아요.
손님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썼을 뿐이니 그걸로 피해가 생기면 다 자업자득 아니겠냐고.


보현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그때는 제가 철이 없어서…….


승주갑자기 곤란하게 왜 이러시지, 손님 저 사과 받으러 온 거 아니라니까요.


보현그럼 뭐, 뭘, 도, 돈 필요하세요?


승주(듣지 않으며) 손님. 손님이 인터넷에 저희 가게 글을 올려 둔 게 정확히 사흘하고 7시간이었죠?
그러고 나서 분명히 삭제했는데, 왜 얘는 아직까지 구천을 떠돌아다닐까요?
분명히 지웠는데, 왜 아직도 인터넷에 좀비처럼 등장하는 걸까요?


보현그, 그건, 다른, 다른 사람들이 스크랩해 가서…….
사장님 제, 제가 인터넷 장의사 고용해서 그 글들 다 지워 달라고 할게요! 오늘 당장 말할게요!


승주됐어요, 이미 가게 망했는데. 천 개쯤 더 떠돌아다녀도 아무 상관없어요.
사람들이 글 퍼가는 게 손님 탓도 아니고.


도통 속을 짐작할 수 없는 승주의 반응에 보현은 본인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최대한 숨죽인 채 승주의 눈치를 살핀다.


승주지난 1년 동안 곰곰이 생각을 해봤어요.
정말 그날 내가 가게를 망하게 만들 정도의 잘못을 저질렀나.
단지 말투가 불친절했을 뿐인데 손님 알기를 좆같이 아는 집은 참교육 가야 한다.
여기 어디냐 좌표 찍어라, 이런 댓글들을 보고 있으니 처음엔 억울해 죽겠더라구요.
전 정말 하늘에 맹세코 손님을 진상이라고 생각한 적 없거든요.
그렇다면 우리 가게를 궁극적으로 망하게 한 건 손님일까?


승주의 총부리 보현 쪽을 향한다.


승주한동안은 그런 것 같더라구요. 왜냐면 내가 손님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거든요.


보현……사장님, 제가, 제가 정말.


승주아픈 어머니 얘기는 왜 쓴 거예요? 어머니 멀쩡하게 본가에 잘 계시던데.


보현죄송합니다, 진짜 죄송합니다, 제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승주아니에요, 저 지금은 가게 망한 거 손님 탓이라고 생각 안 해요.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내가 생각한 이유랑 같은가 해서.
말해 봐요, 이유가 뭐예요?


보현……그래야 더, 상황이 자극적으로…… 죄송합니다! 진짜 죄송합니다!


승주손님도 감정에 호소하려고 했던 거죠? 심판관들 마음을 움직여야 하니까.


보현……심판관들이요?


승주네. 우리를 지켜보는 심판관들이요.


보현(심기를 거슬릴까 봐 조심스레) ……그게 누군데요?


승주손님. 어렸을 때 잘못해서 어른들한테 맞아 본 적 있죠?


도통 의도를 짐작할 수 없는 물음에 보현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도망칠 방법이 없을지 궁리한다.
승주의 총부리는 여전히 보현을 향해 있다.


승주전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이었던 윤리 선생님한테 엄청 맞았어요.
지각해서도 맞고, 성적 떨어져서도 맞고, 숙제 안 해 와서도 맞고.
그런데 그분은 꼭 때릴 때마다 몇 대 맞을 거냐고 물어보더라구요.
전 그럼 만날 3대에서 5대 사이를 얘기했는데,
어느 날 우리 반 실장이 그러는 거예요. 몇 대 맞아야 하는지 제가 어떻게 알겠냐고.


보현그래서 선생님은 뭐라셨는데요?


승주맞을 짓을 한 놈이 더 잘 알지 않겠냐구요.
그래서 실장이 한 대라고 했는데, 와 그 한 대를 평소의 다섯 배 정도 풀스윙으로 때리더라구요.
한 대나 다섯 대나 통증 강도로만 보면 비슷비슷할 것 같은 느낌?
저렇게 마음대로 강도 조절해서 때릴 거면 몇 대 맞을지는 왜 물어보는 거야 싶더라구요.


보현그러게요…… 나쁜 선생님이셨네…….


승주더 웃기는 건요, 원래 윤리는 누가 복도에서 뛰든 말든 별로 신경 안 썼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본인이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지 갑자기 복도에서 뛰는 애 한 명을 잡아내서 막 윽박지르는 거예요.
그러면서 몇 대 맞을 거냐고 묻는 걸 보는데…….
아니 씨발 평소에는 0대 맞을 짓이었다가 자기 기분 따라 존나 처맞을 짓 되네 싶은 거예요.


보현진짜 나쁘고 못된 선생님이셨네요.


승주이렇게 생각하면 맞을 짓이라는 게 참 이상하지 않아요?
보편타당한 기준을 어길 때 쓰는 말인 줄 알았는데, 기준 위에 감정이 있어요.
그럼 결국 맞을 짓이라는 건 상대를 때리고 싶은 마음을 잘 포장해 놓은 것 아닌가?
그러면서 꼭 상대를 위해 하는 행동인 것마냥 굴고. 안 그래요?


보현맞아요, 다분히 수직적이죠…….


승주역시 손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셨군요!
그래요, 그러니까 인터넷에 거짓말 사연을 쓴 거겠죠.
사람들 감정을 움직이려고! 그래야 명분이 손님 쪽에 서니까!


보현명분이요?


승주정당하게 감정을 배설할 수 있는 명분이요! 나를 향한 분노를 즐길 수 있는 명분!
그래야 사람들이 신나게 이 스포츠를 즐길 테니까!


보현그게, 다 무슨, 이야기인지 저는, 잘…….


승주손님 아직도 모르겠어요? 우린 콜로세움 안에서 경기를 한 거예요. 아주 재미있는 경기!
누가 더 욕먹을 만한 놈인지, 누가 더 비난받을 만한 놈인지!
그래서 전 손님이 거짓말한 거? 이제 화 안 나요. 손님은 그냥 가진 무기를 강화했을 뿐이니까.
반성문 편집해서 올린 거? 그것도 그럴 수 있죠.
세상 어떤 검투사가 적이 방패를 떨어뜨렸다고 그걸 주워주겠어요.
그런 짓을 했다간 심판관들이 둘 다 죽였을걸?


보현(승주의 감정이 격해지는 게 눈에 보이자 반쯤 울먹이며) 사장님, 아니 선생님, 일단…….
일단 그 총은 옆으로 치워 놓고 이야기하시면 안 될까요? 저한테 화나신 게 아니시라면서요.


승주우리 가게가 망한 이유는 내가 그만큼의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손님한테 졌기 때문이에요. 그렇죠?


보현(다급히) 네, 네, 맞는 말씀이세요.
저도 글 올릴 때 가게가 망할 거라고는 정말 전혀 상상 못 했어요.
진짜로 그 정도의 잘못을 저지르신 것도 아니구요.
그냥 저는 소소하게 같이 욕이나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못난 마음이었을 뿐인데.


승주사람들이 일을 키웠죠?


보현네! 멋대로 막 다른 사이트에 퍼 나르고, 저는 상호명까지는 말 안 했는데 자기들이 마음대로 가게 좌표 찍고, 불매한다고 하고, 또 글 지웠는데도 원본 지킴이 하면서 계속 내용 재생산하고!


승주재밌으니까! 그러니까 경기판을 더 키우는 거지. 그 사람들은 우리한테 관심 없어요.
그냥 우리가 어떻게 싸우는지, 재밌게 보기만 하면 그뿐이거든.


보현맞아요, 사람들이 나빠요, 사람들이.


승주어쨌든 경기 이긴 거 축하해요. 깔끔하게 인정할게요.


승주는 총부리를 보현에게서 거둔다. 보현은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보현네, 네, 정말 감사합…… 아니, 감사할 건 아닌데 (사이) 저, 그럼 기회를 주기 위해 오셨단 말은?


승주아. 새 경기를 시작해 볼까 해서요.


보현……네?


승주는 총을 물끄러미 보더니 자신의 턱밑에 가져다 댄다.


보현사장님! 뭐 하시는 거예요!


승주원래 그냥 혼자 시작할까 했다가, 그러면 너무 재미없는 경기가 될 것 같아서요.
그래서 미리 대비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려 왔어요.


보현무, 무슨 경기, 무슨 대비요?


승주제가 여기 오기 전에 예약 게시글을 하나 걸어 놓고 왔어요.
음, 아마 지금으로부터 한…… 네 시간쯤 뒤에 올라갈 것 같은데. 제 유서예요.


보현유서라니, 그게 지금 무슨, 사장님! 잠깐, 잠깐만요!


승주무슨 내용을 썼을지는 대충 짐작가시죠?
제 얘기에 손님이 거짓말한 증거랑, 약간의 신상 정도.
뭐, 이 정도만 있어도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어때요, 사람들 진짜 재밌어하겠죠?


보현(덜덜 떨며) 선생님,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진짜 다 잘못했어요.


보현은 급하게 무릎을 꿇고 싹싹 빌기 시작한다.


보현거짓말로 상황 부풀려서 죄송합니다, 사과문으로 괜히 갑질한 것도 죄송하고, 또 사장님 사정이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일부러 어그로 끈 것도 죄송하고, 또…….


승주왜 이러세요, 저한테 사과 안 하셔도 된다니까요? 그 경기는 이미 끝난 경기잖아요.


보현죄송합니다! 제가 무조건 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저 내년에 결혼도 해야 하고.


승주(말을 끊으며) 손님. 그건 저 말고 심판관들한테 말하세요.
상대편에 무기를 막 노출시키시면 안 되죠.


승주는 방아쇠를 장전한 뒤 제 턱밑으로 다시 겨눈다.


승주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보현사장님, 사장님!


승주하나.


보현제 전 재산 다 드릴게요! 대출을 받아서라도 필요하신 돈 다 해드릴게요!


승주둘.


보현사장님! 동생분도 생각하셔야죠!


승주셋.


보현으아악!


총성음이 크게 울린다. 보현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린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사이
승주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보현은 고개를 돌려 멀쩡하게 서 있는 승주를 본다.


보현……사장님?


한참 동안 배가 아플 정도로 크게 웃던 승주는 상황파악이 덜 끝나 벙쪄 있는 보현을 보며 총을 흔든다.


승주나더러 여기 미국 아니라면서요. 영화 너무 많이 본 거 아니냐면서요. 안 속는다며?
손님, 저처럼 평범하게 장사하는 사람이 무슨 수로 진짜 총을 구해요?


보현아, 아니, 아까, 아까 그 총소리는…….


승주공포탄.


보현그, 그럼, 그 유서 얘기는.


승주는 가방에서 전단지 몇 장을 꺼내 보현에게 건넨다.


승주손님. 저 곧 신장개업해요.
이 근처니까 와서 그때 못 먹은 닭곰탕 꼭 먹고 가요. 알았죠?
앞으로 인터넷이든 어디든 배설은 작작 하시구요. 당할 짓 계속 하면 또 당하니까.


승주 퇴장한다.
홀로 남은 보현은 잠시 멍하니 정신을 못 차리다가,
전단지를 보고서야 자신이 놀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현은 헛웃음을 연거푸 터트리다가 객석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보현재밌냐? 이게 재밌어? 이게 재밌냐고!


사람들을 향해 씩씩거리던 보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듯 부리나케 공원을 나선다. 암전.


-막-













배시현
작가소개 / 배시현

극작가·연출가. 극단 〈좋은 친구들〉 소속/TBN 광주 교통방송 작가. 2019 국립극단 희곡우체통 선정 낭독 공연 〈별을 위하여〉(극작) 등.


《문장웹진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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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9-01
악어도 새도 못 되지만 여기에선 그래도 괜찮아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악어도 새도 못 되지만 여기에선 그래도 괜찮아 - 독립서점 인터뷰 이유빈 천안역 1번 출구 근처에 있는 독립서점 를 방문했습니다. 는 주로 동화와 시를 다루는 지역 독립서점으로, 책방 주인인 성욱현 작가와 조민주 작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의 경우, 다른 독립서점들과는 조금 다르게 지역 독립서점이자 청년 문학인이 운영하는 독립서점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인터뷰 대상으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해당 지역 출신이 아닌 문학인들이 지역에 정착하여 책방을 운영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성욱현 작가는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후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으로, 2024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으로 등단했습니다. 현재는 책방 운영과 더불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조민주 작가는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후, 현재 동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독립출간물 『친애하는 서로에게』를 썼고 성욱현 작가와 함께 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Interview 책방 악어새 대표 성욱현, 조민주] 분류 독립서점 지역 천안 SNS인스타 @crocodilebird.book 책방 운영진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성욱현 : 동화와 시를 쓰고 있는 제가 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립출간물 『친애하는 서로에게』를 썼던 조민주 작가에게 도움을 받고 있어요. 제가 글쓰기 강연이나 지원 사업 등을 주로 맡는다면, 조민주 작가가 디자인, SNS 관리, 커뮤니티 행사를 주로 담당해요. 특히나 책방 큐레이션의 경우, 동화는 제가, 시와 성인문학은 조민주 작가가 맡아주고 있습니다. 아기자기하게 책방이 꾸며져 있는데, 이것도 조민주 작가님께서 담당하셨을까요? 성욱현 : 네, 책방 안에 있는 그림이나 책 추천 문구 등은 전부 조민주 작가가 담당했습니다. 추천 문구는 보통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책을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서 책 속의 글귀를 많이 가져와요. 책을 소개받는다는 건, 그 사람의 삶의 방식 일부가 나에게 오는 일이자 그가 읽는 책을 나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하잖아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잠깐, 『친애하는 서로에게』는 어떤 프로젝트였는지 궁금해요. 조민주 : 『친애하는 서로에게』는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동기 사이인 황예솔 작가와 조민주 작가가 함께한 독립 출간 프로젝트입니다. 서간체로 서로를 ‘서&rs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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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01
문장의 방 한 칸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문장의 방 한 칸 ― 창작촌 탐방기 〈예버덩문학의집〉 편 이형초 안녕! 문똑이들! 나는 문장웹진의 숨겨진 자식 문장이라고 해. 글월 문(文)에 담 장(墻) 담장마다 나의 글을 새기라는 의미에서 아버지가 지어주셨지만 그래서 강원도 횡성에 있는 문학 창작촌으로 향하고 있어. 문장웹진 독자들의 열띤 삶을 보면서 나도 문학 활동을 활발하게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거든! 삼면이 주천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숲과 들판이 아름답게 펼쳐진 흰 집! 한 시인의 개인 사유지가 창작촌으로 만들어졌다고 해. 어딘지 궁금하지? 날 따라와! 바로 〈예버덩문학의집〉이야! 내가 한 달간 묵을 창작촌을 소개할게. 이곳은 작가들과 작가지망생들이 훌륭한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할 수 있도록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창작 공간을 제공하고 있어. 입주와 관련해서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상단의 QR코드로 접속해서 홈페이지를 살펴봐! 잠깐! 저 익숙한 뒷모습은?! 〈예버덩문학의집〉을 관리하는 대표이자 시인인 조명 작가님이셔! 선생님을 따라 창작촌을 둘러볼까? 입구로 들어오면 잣나무 숲속에 방강로 3개가 쭉 이어져 있고 오른쪽엔 주천강이 훤히 보이는 야외무대가 있어. 이곳에서 문학 특강, 연주, 연극, 낭독회 등 문학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주최한다고 해. 참여 작가들에게는 소정의 활동비가 주어진다고 하니 문장이는 지금부터 낭독 연습을 시작할 거야! 안쪽으로 쭉 가면 주천강이 보이는 둥근 마당이 있는데 이곳을 ‘노을버덩’이라고 부른대. 입주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거나 주천강과 노을을 바라보며 심신을 정화하고 싶을 때 문화쉼터로 활용된다고 해. 강물 소리가 들리는 노을버덩, 예쁘덩! 이곳이 〈예버덩〉 본관 입구야! 안으로 들어가 볼까? 입구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야외 테이블! 날씨가 좋으면 이 테라스에서 다 함께 식사해. 공동 도서관부터 둘러보자!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독서와 창작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이곳에서 작가를 초청해 특강을 하거나 소규모 작가와의 대화, 낭독회, 예버덩 워크숍을 주최하는 등 여러 가지 문학 프로그램을 연대. 문장이의 방을 소개할게! 입주하는 동안 개인 집필실에서 방해받지 않고 창작에 몰두할 수 있어. 문장이가 오기 전에 이불도 깨끗하게 세탁해 주시고 방도 청소해 주셨어. 청소도구, 세면도구(샴푸, 린스, 비누),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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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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