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아직은 가벼운 것 같아, 버틸 만해

  • 작성일 2021-10-01
  • 조회수 914

[창작 - 희곡]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아직은 가벼운 것 같아,
버틸 만해



이민규





등장인물
돼지 부랄
숭어 떼
캥거루 근육




Prologue


불이 들어오지 않은 무대.
그곳에서 여럿의 가쁜 숨소리가 들린다.


숨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고, 두 개의 숨소리만 들린다.
조금은 밝아졌으나 어두운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그곳에서 서로 다른 가방을 멘 돼지 부랄과 숭어 떼 돌아다닌다.
이 길, 저 길 어딘지 모를 곳을 일단 뛰어다닌다.


저 편에 환한 빛이 얇게 들어온다.
돼지 부랄, 작지만 밝은 빛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간다.
불의 반대편에서 등장한 숭어 떼, 빛을 향해 마지막 힘을 쏟듯 좁은 보폭으로 뛰어간다.


암전



1.

환한 무대,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숭어 떼, 그곳에 먼저 들어온다.
손을 무릎에 올리고는 고개 숙여 헐떡거린다.
고개를 들지만 부신 빛 때문에 눈을 찡그린다.


저 멀리서 돼지 부랄이 소리친다.


돼지 부랄   먼저 발견한 건 나란 말이야!

숭어 떼 먼저 온 건 나란 말이지!

돼지 부랄   알겠으니까, 나 좀…… 도와줘!


돼지 부랄, 입구 뒤에서 출입문을 잡는다.
그 모습을 본 숭어 떼가 돼지 부랄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돼지 부랄   너 진짜 치사하게 이러기야!

숭어 떼 미안하지만 이 게임에 2등은 없지, 너도 알잖아!

돼지 부랄   그러면 먼저 들어가든가, 왜 결승선 앞에서 주춤거리는데!


숭어 떼, 돼지 부랄을 막던 손에 힘을 뺀다.
안간힘을 다하던 돼지 부랄, 구르듯 안으로 들어온다.


돼지 부랄, 바닥에 손을 짚고는 숨을 몰아쉰 뒤 앞을 본다.
눈이 부신지 손으로 그늘을 만든다.


숭어 떼 갈 수 있겠어?

돼지 부랄   진짜 크다.

숭어 떼 갈 수 있겠냐고.

돼지 부랄   여기까지 온 보람은 있네.

숭어 떼 빨리 결정하시지. 안 그러면…….

돼지 부랄   조금만, 아직 시간 있잖아.

숭어 떼 그래 봐야 3일.

돼지 부랄   충분해.

숭어 떼 말이 3일이지, 70시간밖에 안 남았단 말이지.

돼지 부랄   그렇게 급하면 네가 가든가.

숭어 떼 이곳에 1등으로 왔으니, 너한테 기회를 주는 거지.

돼지 부랄   1등은, 여길 지나야 1등이지. 지금 등수 가려서 뭐 해. 사라질 게 두려우면 네가 가.


숭어 떼, 가방 끈을 단단히 조인 뒤 첫발을 내딛는다.
돼지 부랄, 숭어 떼의 발을 잡으려 발을 뻗는다.
숭어 떼, 뒤를 돌아본다.


숭어 떼    뭐 하지?

돼지 부랄   어…… 잘 가. 인사.

숭어 떼    먼저 온 건 나지만, 발견한 건 너지. 이곳에 오기까지 최선을 다했잖아. 그러니까 하는 말인데…….

돼지 부랄   겁나는구나?

숭어 떼    아니거든! 그런 거 아니지. 나는 단지…….

돼지 부랄   (자세를 고쳐 앉으며) 하려던 얘기나 해봐.

숭어 떼    엄청난 경쟁을 뚫고 온 너에게, 결투를 신청하지.

돼지 부랄   또? 싫어, 그냥 네가 가.

숭어 떼    어, 갈 거야. 그전에, 내가 진짜 수많은 우리들 중 최고라는 걸…… 저 바깥에 증명해 내고 싶지.

돼지 부랄   너는 이미 여기까지 왔잖아. 그것만으로도 이미 최고 아니야?

숭어 떼    생각해 보니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달려온 건지, 죽기 싫어 달린 건지, 도망치니까 여기인 건지 모르겠지. 앞에 서보니까 이 부분이 떨려. 이게 두려움인지 용기인지 설렘인지 구분이 안 가는 거지.

돼지 부랄   그러니까 네 말은, 진정 네가 최선을 다했다면 어떻게 해서든 나를 이길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여기서…….


돼지 부랄, 지그시 앞을 응시한다.


숭어 떼    알았으면 손 털고 일어나시지.

돼지 부랄   (손 털고 일어나며) 달리기가 자격을 취하기 위함이었다면, 이 결투야말로 첫 번째 경쟁이 되겠네. 자, 자세 취해.

숭어 떼    남은 시간은 기껏 해봐야 70시간. 그때까지 가장 많이 이겨야만 갈 수 있는 거지, 알았지?

돼지 부랄   자, 그럼…… 하나 둘 셋!


숭어 떼와 돼지 부랄,
가위 바위 보(혹은 다른 유치한 게임)를 외친다.
몇 번이고 반복한다.


시간이 흐르고,
둘 다 지친다.


돼지 부랄   이거 끝이 없겠어.

숭어 떼    누가 몇 번을 이기고 졌는지 잊어버릴 거지.

돼지 부랄   무승부 어때?

숭어 떼    어, 내 이름 어떻게 알았지?

돼지 부랄   무승부가?

숭어 떼    아니. 어, 떼.

돼지 부랄   어때?

숭어 떼    그렇지. 그럼 너는 뭐지.

돼지 부랄   ……말 못해.

숭어 떼    말 못해? 그게 네 태명…….

돼지 부랄   아니, 얘기해 줄 수 없다고!

숭어 떼    뭐 어때. 내 이름도 어 떼인데. 나는 숭어 떼지.

돼지 부랄   누가 지어 준 거야?

숭어 떼    할머니가 꿈에서 나를 본 뒤 지어 주시고는 돌아가셨지. 어때, 괜찮지? 나는 숭어 떼지.

돼지 부랄   좋겠다. 나는…… 지부야.

숭어 떼    지부? 그건 뭐 하는 동물이지.

돼지 부랄   꽤, 깨끗한 동물.

숭어 떼    날아다니는 새, 아니면 물이나 땅속에 사는 동물?

돼지 부랄   ……땅 위에 사는 동물.

숭어 떼    지부…… 전혀 생각나는 게 없지. 너 벌써부터 거짓말하고 그러면!!

돼지 부랄   거짓말 아니야! 그저…… 조금 길어서 줄인 것뿐이야.

숭어 떼    숭어 떼는 뭐 얼마나 좋다고. 차라리 연어. 이런 거면 얼마나 좋지. 보라, 저 거센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거친 연어의 자태지!

돼지 부랄   나도 차라리 소나 말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숭어 떼    뭔데 그래.

돼지 부랄   놀리지 않기로 해. 놀리면, 내가 너를 저기로 밀어 넣어 버릴 거야.

숭어 떼    세상 어디에도 별 볼일 없는 동물은 없어!

돼지 부랄   돼지!! 나는 돼지야…….

숭어 떼    좋기만 하지! 돼지, 얼마나 귀엽지. 근데 지부라고 하지 않았나?

돼지 부랄   맞아. 돼지 좋지. 근데 돼지가 다가 아니야…….

숭어 떼    뭘 망설여. 돼지가 다가 아니면 다른 동물도 포함된 거지?

돼지 부랄   (입 모양으로) 돼지 부랄.

숭어 떼    지?

돼지 부랄   (가는 숨소리만으로) 돼지 부랄.

숭어 떼    야, 관둬. 우리가 꿈 때문에 생긴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꿈이 바깥에는 희망이자 웃음, 축제의 근원!

돼지 부랄   부랄! 돼지 부랄!!


숭어 떼,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다못해 웃는다.
웃다가 그 웃음소리만큼의 소리를 지른다.


돼지 부랄   웃지 마! 안 웃기로 약속했…… 너 저기로 밀어버린다!

숭어 떼    나는 너랑 여기에 있다는 게 너무 좋아. 네가 내 경쟁 상대라는 게 다행이지.

돼지 부랄   나한테 한 거짓말에 네가 속으려 들지 마!

숭어 떼    너, 엄청 특별한 애구나?

돼지 부랄   너 계속 거짓말만 해.

숭어 떼    궁금해졌지.

돼지 부랄   뭐가.

숭어 떼    네가 어떻게 성장하고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돼지 부랄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우리가 결투를 하는 거고.

숭어 떼    좋았지. 이 부분, 아까랑은 다른 것 같아. 지금은, 엄청 설레.

돼지 부랄   두 번째는…….


돼지 부랄, 가방을 앞으로 가져와 땅에 내리려 한다.
숭어 떼, 돼지 부랄을 막는다.


숭어 떼    야, 야! 그거 엄청 중요한 거잖아!

돼지 부랄   무거운데.

숭어 떼    무겁다고?

돼지 부랄   어, 다 그런 거 아니었어?


숭어 떼, 자신의 가방을 위로 던지고 받는다.


돼지 부랄   너…… 힘이 엄청 세구나!

숭어 떼    힘이 센 건가? 잘 모르겠네.

돼지 부랄   내 가방은…….


돼지 부랄, 숭어 떼가 한 것처럼 높이 띄우려 한다.
낮게 올랐다가 내려오는 가방.


숭어 떼    내 가방이 가벼운 건지, 네가 약한 건지 모르겠는데.

돼지 부랄   바꿔서 들어 볼래?

숭어 떼    안 돼! 이건 소중한 거란 말이지.

돼지 부랄   한 번이야. 어차피 힘은 네가 더 세잖아.

숭어 떼    내 가방이 가벼운 걸 수도 있잖아!

돼지 부랄   그건 들어 봐야 아는 거지!

숭어 떼    참, 별걸 다 궁금해 하지. 나는 하지 않아.

돼지 부랄   그러면 뭐가 들었는지, 그것만 알려줘.

숭어 떼    싫지. 이곳을 나가면, 내가 알아 갈 거야.

돼지 부랄   내 것도 보여줄게!


돼지 부랄, 천천히 가방을 연다.


숭어 떼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했지.

돼지 부랄   이거…… 조금은 겁나는걸.

숭어 떼    그러니까 하지 마시지. 지금 봤다가 후회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돼지 부랄, 가방에서 뽑기 공을 꺼낸 뒤 응시한다.
숭어 떼, 보지 않으려 눈을 가린다.


돼지 부랄   신기해…… 이것 좀 봐봐. 이런 게 여러 개가 있어!

숭어 떼    나는 안 봤고, 이후로도 안 볼 거지.

돼지 부랄   뭘까. 이건 어떤 걸까. 어디에 쓰는 걸까.

숭어 떼    그만두시지!

돼지 부랄   두 번째 경쟁이야.

숭어 떼    싫지, 차라리 기권하지. 두 번째 게임은 돼지 네가…….


돼지 부랄, 숭어 떼의 가방을 가져가려 한다.
숭어 떼, 도망 다닌다.


숭어 떼    집착하지 마시지!

돼지 부랄   빼앗아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필사적이야.

숭어 떼    여기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는데, 너한테 보여줄 수 없지!

돼지 부랄   네가 먼저 보고 나한테 보여주면 안 되는 거야?

숭어 떼    아까도 얘기했어.

돼지 부랄   어차피 여기서 알아봐야 밖에 나가면 다 까먹는데?

숭어 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만약 나 혼자였다면 잠깐 보고, 이곳을 통과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그것에 개수로 너와 비교하게 되지.

돼지 부랄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많은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아무리 많다 해도 그게 안 좋은 것일 수 있고, 그러니까…….


돼지 부랄, 숭어 떼의 가방을 낚아챈다.
숭어 떼, 빼앗기지 않으려 부여잡는다.


돼지 부랄   너, 힘이 세구나!

숭어 떼    너도 만만치 않지!

돼지 부랄   이렇게 들고 있어도, 꽤나 무거워.

숭어 떼    알았으면 어서 놓으시지!

돼지 부랄   구경하고 싶단 말이야, 어때 너한테는 무얼 선물로 줬는지!

숭어 떼    알면 안 된다니까 그러네!


실랑이를 벌이던 숭어 떼와 돼지 부랄.
이윽고 가방의 지퍼가 터진다.
뽑기 공이 쏟아진다.


숭어 떼, 넘어지면서 돼지 부랄의 가방을 엎는다.
둘의 공이 뒤섞인다.


잠시 사이


돼지 부랄   미, 미안해…….


숭어 떼, 뽑기 공을 무심히 보고만 있다.


돼지 부랄   내가…… 내가 정리하는 것 도와…….

숭어 떼    공 건드리지 마. 내 건 내가 알아서 하지.


숭어 떼, 뽑기 공을 무작위로 가방에 넣는다.


돼지 부랄   뭐 하는 거야!

숭어 떼    부랄, 너도 말했지.

돼지 부랄   지부야, 지부!

숭어 떼    내 게 더 무겁지.


돼지 부랄, 숭어 떼를 밀친 뒤 숭어 떼가 담은 공을 빼낸다.


돼지 부랄   아니, 아니야. 어때 네가 모르나 본데, 이것의 개수가 무게를 결정하지 않아!

숭어 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돼지 부랄   감당하기 나름이라는 거 몰라? 버거웠던 거야, 내가 들고 있기에는. 그래서 무거웠던 거고, 그런 게 많았던 거고!

숭어 떼    참나, 그럼 네가 나보다 많이 챙겨야 한다는 거야?

돼지 부랄   맞아. 나는 가진 게 많았고, 너는 네가 견딜 수 있는 소박한 무언가가 있던 거야!


돼지 부랄, 뽑기 공을 하나씩 들어 보고는 가방에 주섬주섬 넣는다.


숭어 떼    뭐 하는 짓이지.

돼지 부랄   설명했을 텐데. 나는 가진 게 많았고…….

숭어 떼    그렇다고 그렇게 막 주워 담아도 되는 거지?

돼지 부랄   내 거였으니까.

숭어 떼    모르는 거지. 같이 결정해. 혼자 모든 걸 판단하지 마.

돼지 부랄   좋은 방법 있어?

숭어 떼    열어 보자.

돼지 부랄   무얼?

숭어 떼    이렇게 된 거, 하나씩 열어 보는 거지.

돼지 부랄   이걸…… 다?

숭어 떼    어쩔 수 없지. 빨리 해야 돼, 우리한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어.

돼지 부랄   그럼, 서로 하나씩 번갈아가면서 열어 보는 거야. 약속해.

숭어 떼    약속해.

돼지 부랄   약속했어.

숭어 떼    약속했지.

돼지 부랄   내가 먼저 할까, 네가 먼저 할래?

숭어 떼    나는 너 믿지?

돼지 부랄   나도 너 믿어. 너는?

숭어 떼    너도 나 믿어. 그러니까…….


숭어 떼, 하나를 연다.


돼지 부랄   어때 이 자식, 야속하다 야속해!

숭어 떼    참을성 별 세 개.

돼지 부랄   별이 세 개?

숭어 떼    응. 그게 다야. 너도 하나 열어 봐.


돼지 부랄, 신중히 고르고 골라 하나를 집어 연다.


돼지 부랄   인내심 별 네 개.

숭어 떼    내 거야.

돼지 부랄   그런 게 어디 있지!

숭어 떼    참을성이랑 인내심은 같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 몰라?

돼지 부랄   참을성이 있으면 인내심은 없어도 되지! 비슷한 거라고.

숭어 떼    그러면 너는 참을성을 가져, 그건 내 거야.


돼지 부랄,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인내심을 뽑기 공에 넣고 내려놓는다.


돼지 부랄   너도 공에 넣고 내려놔. 그리고 나는 그쪽으로, 너는 이쪽으로 와서 들어 보는 거야. 어때.

숭어 떼    좋지. 무거우면 무겁다고 얘기하기야.

돼지 부랄   당연하지. 괜히 아닌 척 들었다가는 살아생전 후회만 가득하지.


돼지 부랄과 숭어 떼,
서로를 의식하며 천천히 자리를 이동한다.


숭어 떼, 돼지 부랄이 드는지 안 드는지 곁눈질한다.
숭어 떼, 공을 톡톡 건드리자 움직인다는 것에 안도하고는 든다.


숭어 떼    내 거다!

돼지 부랄   아니, 이것도 내…….


돼지 부랄, 막상 잘 들어지질 않는다.


숭어 떼    봤어, 다 봤어. 인내심도 참을성도 다 내 거 맞잖아.

돼지 부랄   아니, 그게 아니라…… 이게, 왜…… 들었다, 들었다!


숭어 떼, 자신의 가방에 뽑기 공을 넣는다.


숭어 떼    그만 하고, 나한테 넘겨.

돼지 부랄   ……그러면 나는, 참을성도…… 인내심도 없는, 거지?

숭어 떼    대신 다른 좋은 게 있겠지.


숭어 떼, 가방에 뽑기 공을 넣으려 하는데
돼지 부랄, 울먹인다.


돼지 부랄   나 안 해! 참을성도 인내심도 없는 내가 어떻게 살아가.


돼지 부랄, 자신의 가방을 툭 발로 찬다.
멀리 나가지 않는다.


돼지 부랄   어때 다 가져가시지. 그리고 빨리 여기서 나가버려.

숭어 떼    이렇게 하기로 약속했잖아, 왜 승질이야.

돼지 부랄   뭐 어때, 나는 참을성도 없고 뭐, 뭐, 다 없어. 성급해서 그러겠지. 성급함 별 다섯 개는 어디 있을까, 어디에 있을까.

숭어 떼    너답지 않아!

돼지 부랄   그게 뭔데! 아직 너도 나도 자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지.

숭어 떼    너는 진짜 참을성이 없구나.

돼지 부랄   어, 없어. (쿵쿵 뛰며) 나한테는 주기 싫었나 보지. 흥이야. 안 해. 너 혼자 다 하시지.


숭어 떼, 자신의 가방에서 인내심 공을 꺼낸다.


숭어 떼    너 가져.

돼지 부랄   흥이거든, 싫거든.

숭어 떼    나는 별 세 개짜리 참을성 하나로도 충분해. 여기에 별 네 개짜리 인내심까지 생겼다가는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기만 할 것 같아.

돼지 부랄   어, 그래 기다려. 기다려.

숭어 떼    네가 싫다고 해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거든! 바깥사람을 생각해, 바보야.

돼지 부랄   치…….

숭어 떼    빨리 받아. 우리는 아직 해야 할 건 많고, 시간은 없어.

돼지 부랄   ……마지못해 받지.

숭어 떼    내키지 않지만, 네가 나갔을 때를 생각해서야.

돼지 부랄   그러니까 숭어 네가…….


숭어 떼, 돼지 부랄의 손에 인내심 공을 올려 준다.


숭어 떼    가볍지?

돼지 부랄   (끄덕끄덕)

숭어 떼    네 거 맞지?

돼지 부랄   그럴까?

숭어 떼    어때 너한테 주고 나니까 한결 가벼워졌어.

돼지 부랄 거짓말이지.

숭어 떼    의심하지 않는 공이 있다면, 그걸 네가 못 들어도 내가 들어서 네 가방에 넣어 줄게. 무겁더라도 참아.

돼지 부랄   남을 포용하는 공이 있다면, 그걸 내가 못 들어도 너한테 부탁해서 내 가방에 넣어야겠어.

숭어 떼    그럴게.

돼지 부랄   어때 짜증나지.


반짝반짝,
어두워졌다가 밝아지는 조명.


숭어 떼    뭐지?

돼지 부랄   시간이 얼마 안 남았나 봐.


또 한 번,
반짝이는 조명.


숭어 떼    우리, 밸런스를 찾아보는 건 어때?

돼지 부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숭어 떼    맞아, 저기를 통과할 수 있다 해도 어려움은 많을 거야. 지금은 3일 동안 살아 있는 것도 벅찬데, 저기에 들어가면 며칠을 더 견디고, 이겨내야 하잖아.

돼지 부랄   맞는 말이야. 비록 주어졌던 게 이렇게 섞여 있지만,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어.

숭어 떼    혼자였으면 (공을 보며) 이게 어떤 것인지도 모르게, 그냥 태어났을 거지.


잠시 사이


숭어 떼    시작할까?

돼지 부랄   …….

숭어 떼    시작할까?

돼지 부랄   …….

숭어 떼    뭐야.

돼지 부랄   궁금한 게 있는데…….

숭어 떼    빨리 얘기해. 시간 없지.


어두워졌다가 밝아지는 조명.


돼지 부랄   어떤 걸 가져가야 좋아할까.

숭어 떼    어?


조명, 서서히 가라앉는다.


돼지 부랄   우리 생각에는, 이 공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숭어 떼    닮지 않았으면 하는 공도…… 있겠지?

돼지 부랄   바깥사람들은 무얼 바랄까.

숭어 떼    그러게, 무얼 떨쳐내고 싶을까.

돼지 부랄   무얼 가지고 싶을까.

숭어 떼    어떤 공 때문에 행복해하고,

돼지 부랄   또 어떤 공 때문에 걱정하고,

숭어 떼    이기적이게 되는 걸까.

돼지 부랄   3일, 남은 시간은 67시간이야.

숭어 떼    인생에 단 한 번뿐인 시간.

돼지 부랄   짧다, 짧아.

숭어 떼    이러니…… 신은 가방을 열지 말라고 했나 봐.


잠시 사이


어두워지는 조명.
처음 그러했듯 어디선가 들려오는 가쁜 숨소리들.
그리고 진동.


암전.



2.


조명, 서서히 들어온다.


낮은 자세로 공을 보호하고 있는 돼지 부랄과 숭어 떼.
뒤에 서 있다가 몸을 수그려 머리를 땅에 맞대는 캥거루 근육.


돼지 부랄   어때, 괜찮아?

숭어 떼    어, 괜찮은 거 같아, 너는?

돼지 부랄   어, 나쁘지 않아. 깨진 공 없지?

캥거루 근육  네, 없어요!


돼지 부랄, 캥거루 근육의 목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캥거루 근육을 발견하고는 나자빠진다.


숭어 떼, 소리 나는 쪽을 힐끔 본다.
공 하나를 집어 던지려는 시늉을 한다


돼지 부랄   안 돼, 그건 무기가 아니야!

숭어 떼    (공을 열며) 미안, 무기인지 아닌지 확인 좀…….

캥거루 근육  이건, 이곳에 도착하면 주는 선물인가요?

돼지 부랄   공 건드리지 마! 뭐야? 뭐가 적혀 있어?

숭어 떼    …….

돼지 부랄   뭔데?

숭어 떼    ……어?

돼지 부랄   별은!

숭어 떼    없어.

돼지 부랄   됐어, 뭔지 모르겠지만 좋은 무기다. 던져!

숭어 떼    이 좋은 걸 왜 던져!

캥거루 근육  저 주시는 거예요?

돼지 부랄   아니야! 뭐냐니까!

캥거루 근육  뭐예요!

돼지 부랄   궁금해 하지 마!


숭어 떼, 종이를 공에 넣고는 가방에 넣는다.


캥거루 근육  나도 껴주시면 안 돼요?

돼지 부랄   안 돼, 이건 바깥사람이 우리한테 물려준 거야.

캥거루 근육  제 거는요? 이런 거 어디에서 받을 수 있어요?

숭어 떼    등 뒤에 있는 가방. 그 안에 있어.

캥거루 근육  아, 맞다. 이거 열면 혼난다고 했는데.

돼지 부랄   그래서 쟤랑 내가 벌 받는 중이었지.

캥거루 근육  그거 많이 아파요?

숭어 떼    후회, 정도?

캥거루 근육  그게 다예요?


캥거루 근육, 가방을 흔들어 본다.
공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캥거루 근육  그럼 나도 벌 받을래요.

돼지 부랄   이상한데.

숭어 떼    다시 흔들어 봐.


캥거루 근육, 가방을 더 세게 흔든다.


캥거루 근육  엄청 가득 찼나 봐요!

숭어 떼    무겁진 않고?

캥거루 근육  이래도 하나 무겁지 않아요.

돼지 부랄   잠깐…… 들어 봐도 돼?

캥거루 근육  네!


캥거루 근육, 돼지 부랄에게로 가방을 던진다.


숭어 떼    발밑에 공 조심해!

돼지 부랄   야, 야, 야, 야, 야!


돼지 부랄, 받는 데 성공한다.


숭어 떼    (받은 걸 확인하고는) 야! 너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돼지 부랄, 버티고 버티다가 가방에 깔린다.


숭어 떼    뭐 하지?

돼지 부랄   나 지금 뭐 들고 있는 거냐.

숭어 떼    깔려 있는 거 같은데.

캥거루 근육  에이, 놀리지 마세요!

숭어 떼    어휴, 너는 밖에 나가서 고생 좀 하겠…….


숭어 떼, 캥거루 근육의 가방을 들어 보려다가 다시 놓는다.
돼지 부랄, 컥컥거린다.


숭어 떼    야, 너 뭐 하고 있어! 이거 안 들어 주고!


캥거루 근육, 자신의 가방을 가뿐히 들어 올린다.


캥거루 근육  죄송해요…… 저 놀아 주시는 줄 알았어요.


돼지 부랄, 일어나 콜록거리며 뒷걸음친다.


돼지 부랄   조, 조심해. 쟤…… 아니 저 가방, 뭔가 이상해. 야! 그거…… 열어 봐.

숭어 떼    야! 열고 나서 어떻게 될지 뻔히 알면서…….

캥거루 근육  이미 열었어요. 죄송합니다.


캥거루 근육, 시선은 가방 안에 고정돼 있다.


캥거루 근육  제 공은…… (바닥의 공이랑 비교한다) 저…… 벌 받고 있어요.

돼지 부랄   무슨 소리야.

캥거루 근육  후회하나 봐요…….


캥거루 근육, 가방을 바닥에 놓고는 무릎을 접고 끌어안은 채 훌쩍거린다.


숭어 떼    우리도, 봐도 되냐!


캥거루 근육, 끄덕인다.
숭어 떼, 조심조심 캥거루 근육의 가방으로 간다.
돼지 부랄, 숭어 떼의 등 뒤에서 고개만 내밀고는 따라간다.


숭어 떼, 가방을 본다, 가방에 얼굴을 파묻는다.


돼지 부랄   어때?


숭어 떼, 돼지 부랄을 한 번 보고는 가방 안을 눈으로 훑는다.


돼지 부랄   어때?

숭어 떼    왜 불러!

돼지 부랄   아니, 어떠냐고!

숭어 떼    몰라, 모르겠지. 부랄 네가 봐봐.


숭어 떼, 물러나서 캥거루 근육을 본다.
돼지 부랄, 고개는 가방에서 멀어지게 한 뒤 가방에 손만 넣는다.


캥거루 근육  이상하죠!

돼지 부랄   놀랬잖아!

캥거루 근육  저는 왜, 왜…… 두 분들 공처럼…….

돼지 부랄   야, 이거 빼봐.

캥거루 근육  네?

돼지 부랄   네 공. 우리는 못 드니까 네가 꺼내 보라고.

캥거루 근육  왜요? 비교하면서 저 놀리시려고요?

숭어 떼    그런 거 아니야. 네가 물려받은 게 부러워서 그래.


캥거루 근육, 둘을 힐끗거린 뒤 뽑기 공을 꺼낸다.
종이로 가득 채워진 뽑기 공.


캥거루 근육  제 공만 엄청 커요, 게다가 이거 하나밖에 없어…….

숭어 떼    뭐지.

돼지 부랄   이런 건 처음 보는데.

숭어 떼    당연히 처음이지. 두 번째가 더 이상한…….

캥거루 근육  저 이상한 거예요?

돼지 부랄   아니야, 아니야. 절대 이상한 거 아니야. 그, 그냥 조금…….

숭어 떼    특별한 거야.

캥거루 근육  특별하다, 제가 특별해요?

숭어 떼    자 봐라, 우리는 하나의 공에 단 한 장의 종이만 들어 있잖아? 근데 너한테는 이렇게 많은 종이가…….

돼지 부랄   야, 어때?

숭어 떼    어?


돼지 부랄, 투명한 공 너머에 있는 종이를 살핀다.


돼지 부랄   없어.

캥거루 근육  뭐가요? 저 또 특별한 거예요?

돼지 부랄   아니, 아니야. 너! 우리 공 궁금하다고 했지? 봐, 마음껏 봐. 깨뜨리지만 않는다면…….

숭어 떼    무슨 소리야!

돼지 부랄   들 수 있으면 들어도 좋고! 굴리고 싶으면 굴려도 좋아!

캥거루 근육  진짜요? 그래도 되는 거예요? 구경해도 돼요?

숭어 떼    돼지 부랄, 너 정신나갔…….


돼지 부랄, 숭어 떼에게 귓속말을 한다.


숭어 떼    귀 간지러워, 뭔데 그래.


돼지 부랄, 캥거루 근육의 눈치를 살핀 뒤 숭어 떼를 데리고 멀찍이 이동한다.
속삭이는 돼지 부랄.


돼지 부랄   없어.

숭어 떼    또 뭐가.

캥거루 근육  이거, 이거…… 이, 이거…….

돼지 부랄   종이에…….

캥거루 근육  엄청 되게 진짜 많이 무거워요!


캥거루 근육, 숭어 떼의 가방을 억지로 들려 하다 자신도 모르게 뽑기 공 하나를 밟는다.
뽑기 공이 조각난다.


돼지 부랄과 숭어 떼, 캥거루 근육을 보고는 깨진 뽑기 공을 본다.


숭어 떼    야, 야, 너…….


숭어 떼, 깨진 뽑기 공의 잔해만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캥거루 근육  저도, 저도 무거운 거, 이거 들어 보려고 하다가…… 깨려고 한 건 아닌데……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캥거루 근육, 종이를 건드리지는 않으나 쳐다본다.


캥거루 근육  우와, 저한테는 이런 게 저기 한가득 있다는…….

숭어 떼    그러게 쟤한테 왜…….


돼지 부랄, 종이를 낚아챈다.


돼지 부랄   봤을까? 봤어?

숭어 떼    아니 뭔데 그러는데!

돼지 부랄   봤냐고 묻잖아!


캥거루 근육, 자신의 뽑기 공으로 가서 유심히 쳐다본다.


캥거루 근육  어라?

숭어 떼    너는 왜 그러고, 얘는 또 왜 이래.


캥거루 근육, 자신의 공과 다른 공을 비교한다.


캥거루 근육  어라라?


캥거루 근육, 자신의 공과 다른 공을 다시 비교하려 한다.
돼지 부랄, 캥거루 근육에게서 자신과 숭어 떼의 공들을 치운다.


숭어 떼    야, 부랄…… 너 뭐야, 아까부터 왜…….

캥거루 근육  왜…… 저, 저도…… 아니, 저는…… 제 종이에는 왜……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거죠?


숭어 떼, 캥거루 근육의 뽑기 공에 눈을 맞댄다.
캥거루 근육, 흐느적거리다가 운다.


숭어 떼    종이에 글이 없어. 아무 글도 적혀 있지 않아.


잠시 사이


돼지 부랄, 캥거루 근육에게서 빼앗은 종이를 본다.
조용하게 웃다가 소리 내어 웃는다.


숭어 떼    미쳤지? 야, 부랄 너 지금이 웃을 때야!

돼지 부랄   웃기잖아. 이게, 이게 뭐라고 이러고 있는 거지.

숭어 떼    야, 세 번째. 지금 돼지 녀석이 잠깐…….

돼지 부랄   아니야, 아니야. 이게 맞아. 네가 맞아, 세 번째. 숭어야, 아까 우리 얘기하지 않았어?

숭어 떼    무슨 얘기.

돼지 부랄   바깥사람들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공을 택할까. 그때부터 생각해 봤는데…… 경쟁이니 뭐니 소용없는 것 같아, 아니 아니야. 부질없어.

숭어 떼    뭐가 되든 상관없다는 얘기야? 얘기했잖아, 그 기회…… 우리한테는 이렇게 널려 있다고!

돼지 부랄   다 열었어. 뭐가 있는지 알았어. 그러면 적힌 대로 살 거야? 가능성이라는 건 그런 게 아니야. 여기에 없는 무언가가 있을지 모르잖아.

캥거루 근육  괜히 저 때문에…….

돼지 부랄   몰라, 모르겠어. 이거 그냥, 지금 이 순간이 꿈인 것 같아. 잠깐 있으면 훌쩍 자라나서는 아무것도 기억 못 할, 그런 꿈. 근데 이건…… 나와는 맞지 않는 꿈인 게 확실해.

캥거루 근육  저는 어떡하면 되는 거예요?

돼지 부랄   삼번아, 나랑 가방 바꿀래?

숭어 떼    하다하다 이제는 가방을 바꾼다고?

돼지 부랄   딱히. 이게 신의 장난이고 놀음이라면…… 놀아 주지 뭐, 놀아 보지 뭐. 어쩌면 이 공들, 내 가방, 너를 만나고, 섞이고, 삼번이 오고 이런 모든 것들이…… 나한테 적힌 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적어도 이 정도는 내가 적을 수 있는, 적어도 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조명이 깜빡거린다.


잠시 사이


숭어 떼, 잡히는 대로 가방에 공을 넣는다.
돼지 부랄, 가방에 있던 공을 꺼낸다.


돼지 부랄   이것도 가져갈래? 가지고 싶어 했잖아.

숭어 떼    그런 게 아니야. 나도 너랑 마찬가지야.

캥거루 근육  다른 말을 하신 거 같은데.

숭어 떼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애초에 몇 개의, 어떤 공이, 어느 정도의 무게로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나. 대충 이렇게 담고 밖에 나가면 알지 않을까. 담아야 했을 공이 뭐였는지, 불필요한 공은 뭔지.

돼지 부랄   어때, 내 가방에도 채워서 나가는 건.

숭어 떼    네 가방을 나한테 준다고?

돼지 부랄   정답 뭐 있겠어! 밖에 나가 봐야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을 건데!

숭어 떼    좋아, 까짓것 해보자 이거야!


숭어 떼, 돼지 부랄의 가방을 건네받아 공을 채운다.


조명, 방금보다는 길게 깜빡인다.


캥거루 근육  저!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


숭어 떼, 캥거루 근육의 가방으로 캥거루 근육의 뽑기 공을 뒤집어씌운다.


돼지 부랄   야! 너는 이름이 뭐야!

캥거루 근육  캥거루 근육이요!

숭어 떼    아니! 무슨 태명이 숭어 떼, 캥거루 근육…….

돼지 부랄   돼지 부랄이냐고! 나가면 내 이름도 내가 정할 거야. 들어, 캥근육.

캥거루 근육  뭐예요?

돼지 부랄   비록 나는 아무것도 택하지 않았고,

숭어 떼    나는 아, 무거워.

돼지 부랄   너는 다르잖아. 이게 특이한 건지, 특별한 건지 너는 궁금하지 않냐.

숭어 떼    그래, 너는 들 수 있잖아. 부럽다, 루근육.


캥거루 근육, 가방을 번쩍 들어 어깨에 멘다.


캥거루 근육  저 혼자 왔으면 멍청히 있다가 사라졌을 텐데, 형님들이랑 같이 있을 수 있어서…….

돼지 부랄   형이라 부르지 마. 나는, 부랄 떼고 태어날 거야.


조명, 어두워짐과 동시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온다.
빛이 조금씩, 작은 차이로 옅어진다.


돼지 부랄   갈까.

숭어 떼    무거워, 빨리 가자.

캥거루 근육  저는 뒤에서 가겠…….

돼지 부랄   무슨 소리야. 같이 가야지.

숭어 떼    자!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 일단 걷자, 걸어!

캥거루 근육  제 동생으로 태어나시면 제가 잘 챙겨 드릴게요!

돼지 부랄   그러면 네가 오빠야, 언니야?


암전.


아가 우는 소리,
처음에는 하나였다가 겹겹이 세 명의 우는 소리로 뭉친다.


끝.
















이민규
작가소개 / 이민규

2015_ 세종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_ 〈The Serpent-아! 대한민국〉 배우
2017_ 옥천문하예술회관_ 〈울 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배우
2018_ 여행자극장_ 〈두 번째 목욕〉 조연출
2019_ 대학로 눈빛극장_ 〈illusion〉 조연출
2019_ 한국문학예술 희곡 부문 신인상_ 〈보이지 않는 눈〉 작가
2020_ 국립극단 희곡우체통 낭독회_ 〈평범한 가족〉 작가
2020_ 2019 희곡우체통 낭독회 희곡집_ 작가

돼지 부랄 꿈은 아버지, 숭어 떼는 할머니가 꾸셨습니다.
이름은 어머니가 지어 주셨고, 위 글은 제가 썼습니다.
저는 캥거루를 좋아하는 뭐든 지망생입니다.



《문장웹진 2021년10월호》


추천 콘텐츠

궁금한 건 @너말고 '너’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궁금한 건 @너말고 '너’ 배연주 대화하다가 들으면 좋은 말 중 하나는 이거다. “요즘 읽은 책 중에 좋았던 거 뭐야?” 그 말을 들으면 30분은 떠들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질문 받기를 기약 없이 기다리기보다 먼저 보여주고 싶다. 내가 최근 읽은 책 중에 가장 좋았던 것은 청소년 장편소설 과 단편소설집 다. ‘가장 좋다’라고 무언가를 꼽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좋은 것에 순위를 매기고 기준을 정하는 건 힘들다. 그럼에도 두 책이 바로 떠오른 건 다시 읽고 싶어져서였다. 직장 동료들과 2~3주에 한 번 모여서 점심 독서모임을 하는데 같이 읽을 책을 내가 정할 차례였다. 나는 을 골랐다. 나도 다시 읽고 싶었고, 다른 분들의 생각도 궁금했다. 도 같이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그러면서 올해 읽은 책들 중 그 책들이 가장 좋았다는 걸 깨달았다. 좋은 걸 주변에 나누고 싶은 마음과 다시 읽으며 되새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까. 두 소설에는 공통점이 있다. 소재로 sns가 등장한다. 의 등장인물들은 sns에 게시물을 올리고 댓글과 DM으로 소통한다. 의 ‘나주’는 블로그,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를 운영한다. 나도 주인공들처럼 두 소설의 리뷰를 sns 이미지 속에 담아 보았다. 먼저 인스타그램. 의 친구들이 쓰는 sns는 인스타그램으로 추정된다. 독서모임을 한 후에 생각했던 것을 썼다. 가상의 DM이지만 몇몇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만들었다. 내가 만약 실제로 저 게시물을 올린다면 oo이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하면서. 평소에도 내가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이나 스토리를 올리면 그 주제로 대화를 거는 친구들이 있고, 고등학교 시절과 친구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있다.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에는 늘 다정함이 배어 있다고 느낀다. 인스타그램은 친구들과 소통하는 곳이니까 발랄한 느낌이 담겨 있다면 페이스북에서는 좀 더 사적이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잘 쓰이지 않는 sns. 내가 가끔 비공개로 일기를 쓰러 가는 곳. ‘나는 사실, 내가 참 싫다.’라는 소설 속 문장을 좋아하면서도 어쩐지 친구들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을 때가 있는데, 페이스북 비공개 게시물로는 무람없이 올릴 수 있다. 아이디와 프로필 사진 이미지는 가상으로 만들었지만 내

  • 관리자
  • 2024-10-01
중국에서 퍼지는 한국 문학의 ‘전파(電波)’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중국에서 퍼지는 한국 문학의 ‘전파(電波)’ 팅팅 중국에서의 한국 문학은 관련 연구자들에게 연구 대상이 되는 것을 제외하면 오랫동안 비주류 문학으로 여겨졌으며,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다. 그러나 최근몇 년 동안 이러한 침체 상태가 서서히 활기를 띠기 시작하면서, 이제 한국 문학은 중국 내에서 작은 붐을 일으키고 있다. 조남주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 이창동의 소설집 『녹천에는 똥이 많다』와 『소지』, 공지영의 장편소설 『도가니』, 한강의 장편소설 『채식주의자』, 김애란의 소설집 『너의 여름은 어떠니』 등, 중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작품들은 중국 인터넷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지난해 소설가 김초엽은 제34회 중국은하상(1985년에 제정된 중국 공상과학소설계의 최고영예상) 시상식에서 ‘최고인기외국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를 시작으로 한국 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졌고, 중국에서 초청받아 북토크나 문학대회와 같은 문학행사에 참석하는 한국 작가들도 많아지고 있다. 아울러 한국 문학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찾을 수 있으며,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하는 목소리도 중국 독자들 사이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 출판된 한국 문학 작품들은 한 가지 주제만을 다루지 않는다. 사회 속 약자의 인권, 청년들의 생활 곤경, 그리고 여성과 같은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은 중국 독자들의 큰 이목을 끌고 있다. 한국 문학이 자주 언급되는 요즘, 중국에서도 한국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블로그, 동영상, 팟캐스트 등 새롭고 젊은 방식으로 한국 문학 작품을 소개하고 전파하고 있다. 그중 팟캐스트는 최근 몇 년 사이 중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로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주로 2030 고학력 도시 청년들의 지식 공유,, 사회적 이슈 토론, 그리고 다원화된 시각의 탐구를 위한 플랫폼으로서 자리 잡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중국의 팟캐스트 사용자 수는 2억 3500만 명을 넘어섰으며, 그 수는 여전히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늘날 중국 팟캐스트 플랫폼의 문학 콘텐츠들은 많은 독자들에게 소통의 장이 되는 새로운 아지트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 중, ‘운중전파’는 멀리 중국에 있는 청취자들과 국경을 넘어 함께 한국을 읽는 경험을 공유한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한국 문학을 소개해 드리는 팟캐스트 &lsquo

  • 관리자
  • 2024-10-01
요즘 SNS에서는 시가 유행이라고?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요즘 SNS에서는 시가 유행이라고? - 문학예술 융합 인터뷰 : 포엠맥 편 채미나 좋아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잃을 게 없어요. 너무 겁먹지 마세요. 요즘 핫한 SNS인 인스타그램에서는 시가 유행이자 젊은 세대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시를 계속해서 읽던 마니아층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시를 즐기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한 하나의 흐름 속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소규모 문학 매거진 포엠맥(@poemmag)과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안녕하세요! 우선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기소개 먼저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포엠매거진이고, 인스타그램에서 한국 현대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외에 소개할 것은 없습니다. 포엠맥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스무 살 때부터 시를 엄청 좋아했어요. 꾸준히 읽고, 혼자 쓰다가 독립 출판도 하고요. 시라는 장르에 매력을 느꼈던 것과는 별개로 전공은 패션 디자인을 선택했는데, 졸업하고 회사도 다녔지만 미련이 남더라고요. 시를 주제로 해서 콘텐츠화하고 싶다, 시의 매력을 더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퇴사하자마자 바로 포엠맥 계정(@poemmag)을 만들었어요.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저는 전에도 유튜버처럼 콘텐츠 만드는 작업을 했어요. 그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혼자서도 디자인, 브랜드 마케팅, 카피라이팅, 큐레이션 등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원래부터 콘텐츠 제작 쪽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아니면 글을 쓰시다가 자연스럽게 넘어오신 걸까요? 처음에는 100% 쓰는 쪽에 더 가까웠어요. 스물부터 스물여덟까지 세 권의 시집을 독립 출판했어요. 처음의 꿈은 시인이었어요. 다른 직업을 가지면서, 시인을 병행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전업 시인은 힘드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저는 쓰는 쪽보다 사람들을 혹하게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더 적합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글 쓰는 것만큼 디자인과 마케팅을 좋아하거든요.(하하) 시에 전념하면 두 가지를 놓치게 되는 것이 아쉬웠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것을 총합해 본 것이 바로 포엠맥이에요. 저만 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져서 더 애착을 갖게 되어요. 포엠맥을 운영하면서 좋았던 점이나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포엠맥을 운영하는 매일매일이 기뻐요.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도 즐겁고, 업로드 하였을 때 사람들이 반응을 남겨 주는 걸 보는 일도 즐거워요. 매 순간 행복하지만, 최근에는 열흘 정도 행

  • 관리자
  • 2024-10-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