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s의 끝나지 않는 밤

  • 작성일 2018-08-01
  • 조회수 1,397

[글틴스페셜]




≪문장웹진≫ 8월호 '글틴 스페셜'에서는 특집으로 제13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수상자들의 에세이를 여러분께 선보입니다. 사이버문학광장 글틴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 한 번 들어보실래요?
(사이버문학광장 글틴 바로가기 : https://teen.munjang.or.kr)





s의 끝나지 않는 밤



마소현




s는 키보드 위로 고개를 푹 떨구었다. 스무 살이 되고 처음 받은 원고청탁이 에세이일 줄이야. 지금도 믿기지 않았다. 분명 좋은 기회일 텐데,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며칠을 고민했다. 최종적으로 글쓰기에 들어갈 시간보다 무슨 이야기를 쓸지 고민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거라고 s는 확신했다. 에어컨이 없는 s의 방은 후텁지근했다. 아무리 창을 활짝 열어도 매미소리만 무성할 뿐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평소라면 집중이 안 된다며 침대에 드러누웠겠지만 이젠 그런 핑계마저 통하지 않을 시점이었다. 마감일까지는 앞으로 삼일, 뭐라도 써야 할 때다. s는 휴대폰 알림을 무음으로 설정하고 머리맡에 던진다. 겨우 자세를 고쳐 앉고, 키보드 위로 손가락을 옮긴다.



Q. 수상작 틸란드시아는 어떻게 쓰게 된 소설이었나요?


A. '아직 태어나지 않은 또 다른 나'에 대한 상상에서 출발했어요. 그 '나'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면, 숨기고 싶은 존재라면, 사회가 정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존재라면.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쓰다 보니 욱하더라고요. (웃음) 왜 내 인물이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지? 그놈의 사회가 정한 기준은 대체 뭐지? 왜 다름은 틀림으로 받아들여지지? 그래서 곳곳에는 약간 그런 분노가 깃들어 있어요. 사회에 대한 반발심 같은 거요.


Q. 심사평에서 '사회학적 상상력'을 가졌다고 들었다던데, 그건 역시 작가가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아서겠죠? 어떤 계기라도 있었나요?


A. 아무래도 그런가 봐요.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었는데 소설을 써놓고 나면 그런 요소들이 꼭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것에 예민한 편인 것 같기는 해요. 혐오나 차별, 사회 속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해서요. 그리고 아닌 것에 대해 아니라고 말하는 거. 그건 틀린 거라고 지적하는 거. 내가 발언을 할 수 있는 위치일 때 그렇게 하는 건 약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계기라고 하면 기억나는 건, 2016년 겨울의 일이에요. 저는 부산에서 촛불 집회에 참석했는데, 가는 길에 버스에서 세 모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살했다는 뉴스를 봤어요.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부당한 일을 저질러서라도 제 이익을 챙기잖아요. 그날은 그런 일에 대해 비판하러 가는 날이었고요. 정말 아이러니했어요. 이 두 사건이 현재의 한국에 공존한다는 게. 저에게는 그 두 사건이 전혀 개별적이지 않다고 느껴졌어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충분한 지원과 관심이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죠.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의식적으로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은.


Q. 글을 다 쓴 후에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A. …….



s는 잠시 머뭇거린다. 상까지 타고서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없었던 날이 떠오른다. 자신의 모자란 인식 탓에 빚었던 문제였다. s는 주먹을 쥐었다가 다시 펴서 키보드 위에 얹는다. 할 수 있다. 언젠가는 해야만 하는 고백이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가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다. s는 창문을 닫을까 고민하다가 그대로 두었다. 그 소리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자신의 마음일 뿐이다. s는 지금이 부끄러워야 할 때임을 잘 안다. 자신이 그런 일을 오래전 저질렀음을 체감하고 있다.



A. 인물 설정을 하면서 실수를 했어요. 저는 단순히 저를 모델로 삼고 인물의 일부를 구성했기 때문에 그런 게 문제될 거란 생각이 아예 없었는데……. 아니, 이것도 변명인 것 같아요. 그냥 무신경했죠. 정작 가장 세심했어야 하는 부분에 말이에요…….
영준이는 게임을 싫어해요. 운동도 싫어하고, 반면에 여성의 신체나 여성의 옷에 관심을 보이죠. 마치 영준이는 '남성의 것'을 싫어하고, '여성의 것'을 좋아하니 여자 아이다, 라고 하는 것 같지 않나요? 한심하죠. 그런 식의 설명은 게으르고 무례해요. 남성의 것과 여성의 것을 나누어 정의 내리는 것은 멍청하고요. 그래서 사실 이게 대상작이 되었다고 했을 때 조금 난감했어요. 저는 틸란드시아에 가장 많은 애정을 쏟았지만 그만큼 가장 치명적인 아픔이 담긴 작품이기 때문에 지울 수도 다시 볼 수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박제되어 버렸죠. 어쩔 수 없어요. 인정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 수십 번 다짐하고 저를 다듬어 가야죠.



이런 결론은 어쩌면 s에게만 편한 결론일 수도 있다. 하지만 s는 더 나은 결론을 찾지 못했다. 그러니 창밖의 매미소리에 부끄럽지 않을 때까지 견뎌 보자고 s는 다짐한다.



Q. 글을 쓰면서 정말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A. 음,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라기보다는 그냥 틸란드시아 자체가 저에게 굉장히 뜻 깊은 소설이에요. 사실 틸란드시아는 제가 가장 처음 구상한 단편소설이거든요. (웃음) 3년 동안 총 세 번의 대공사를 거쳤는데, 첫 번째 초안을 쓴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죠. 그때는 영준이가 동성 친구를 좋아하는 이야기를 썼어요. 개연성도 없고 다른 인물이 매력도 없고, 자칫 장르 소설이 될 뻔한…… 문제가 많았던 이야기였죠. 몇 달 묵혔다가 2학년 때 다시 보고, 또 몇 달 묵혔다가 3학년 때 최종 공사를 하려고 다시 보고……. 그렇게까지 했던 걸 보면 내내 마음에 걸렸던 게 분명해요. 영준이는 제가 만든 첫 인물이었으니까. 애정을 많이 줬어요.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던 s는 쓰고 있던 문서를 내리고 드라이브를 열었다. 이곳저곳 파일을 오랫동안 뒤지다가 결국 한 문서를 발견한다. 틸란드시아라는 제목을 붙이기 이전의, 가제로만 남았던 초안이다. s는 눈을 찡그렸다가, 손가락을 주무르다가, 사방을 한 번 둘러보곤 문서를 열었다. 3년 전의 s가 썼던 날것의 문장들이 생생하다. 내가 이런 식으로 썼구나. s는 생경한 마음으로 글을 읽었다. 놀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러나 뿌듯하기도 했다. 이렇게 엉망이었던 글을 정리해 낸 과거의 자신이 새삼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영준이. 소설을 쓰면서 성장한 건 s뿐만이 아니었다. 소설 속의 영준이도 s와 함께 자랐고, 함께 성숙해졌다.



Q. 처음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 순간이라든가.


A. 제가 소설을 처음 쓰게 된 건, 이 길을 걷겠다는 확신이 들고 나서였어요. 웃기죠. 소설을 쓰다 보니 마음에 들어서 작가가 되겠다, 고 결심한 게 아니라 작가가 되겠다 결심하고서야 소설을 써본 게. 그런데 그땐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아요. 한 번 글을 쓰고 나면 다신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실제로도 그랬다. s는 이제 글을 쓰기 이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영준이를 모르기 전으로, s가 쓴 수많은 글을 모르기 전으로.



A. 결심한 순간은 진로상담을 하던 때였어요. 내가 글을 써서 잘 될 수 있을지, 등단은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때였는데 상담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셨거든요. 자신은 글에 대해 잘 모르고, 그래서 네 글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그래도 네 글은 분명 가치 있는 것일 거라고. 이상하게 그 말에 안심이 되었어요. 확신을 갖게 되었죠. 일단 해봐야겠다, 하고.


Q. 앞으로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요?



s의 손가락이 한참을 공중에 머무른다. 쉬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뱉어버리는 순간 그 말대로 될 것 같다. 신중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활자를 박아낸다.



A. 어렸을 때 저는 해피엔딩을 싫어했어요. 왕자님과 공주님이 행복하게 잘살았다는 건 너무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 같았거든요. (웃음) 주관이 확고했죠. 차라리 성냥팔이 소녀나 인어공주가 나았어요. 그건 현실성이라도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죽는 이야기만 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그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결말이 어떻게 되든 희망을 놓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삶은 때로 구차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좇으면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작가는 그걸 예민하게 포착해야 하고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어요.



s는 문서를 뿌듯하게 바라보고는 저장을 눌렀다. 이제 퇴고하고 보내는 일만 남았다. 노트북을 끄려던 s는 고민하다 다른 문서를 열어 본다. 그저께 쓰기 시작한 새로운 단편이다. s는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인다. s의 밤은 끝나지 않는다.















작가소개 / 마소현(속도)

혐오와 차별이 없는 세상에서 마침내 우리가 서로를 온전히 마주 볼 수 있을 때까지 지치지 않고 쓰겠습니다. 독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장웹진 2018년 08월호》


추천 콘텐츠

아무 문제 없음

아무 문제 없음 고비읍 오른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입을 틀어막고 참아 보려는 듯하지만, 결국은 끕끕 새어 나오는 소리. 내 바로 왼편에 앉은 아이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기 바빴다. 사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 건 무대 위의 한 남자애가 울기 시작하고서부터였다.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많은 사랑을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그 사랑 다 돌려드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할게요. 저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 그 애는 울먹이느라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누군가가 크게 그 애의 이름을 연호하자 팬들이 한목소리로 그 애의 이름을 외쳤다. “연홍아, 울지 마!” “연홍아, 사랑해! 더 많이 사랑할게!” “최연홍! 행복하자!” 반짝거리는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눈부신 조명을 받는 무대 위의 남자애를, 이미 많이 행복해 보이는 그 애를 팬들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커다란 공연장 안을 둘러보았다. 2만 명이 앉아 있는 이 공연장 어딘가에 송리윤도 있었다. 다른 팬들처럼 송리윤도 그 애를 보고 울었을까. 더 사랑해 주겠다고 외쳤을까. 따로 연락도 한 적 없고, 밥 한 번 같이 먹은 적 없지만 그 애는 송리윤에게 사랑받았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대가 없이. 세븐플래닛은 마지막 무대라면서 팬들에게 함께 부르자고 했다. 팬들은 노래 가사 전체를 다 알고 있는지 막힘없이 따라 불렀다. 3시간쯤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세븐플래닛이 불렀던 노래 대부분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노래들이었다. 애초에 나는 세븐플래닛에 관심이 없었다. 멤버가 몇 명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관심도 없는 세븐플래닛 콘서트 티켓을 산 건 오로지 송리윤 때문이었다. “여러분, 오늘 즐거웠나요?” “네!” “행복했나요?” “네!” “저희도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엔딩 멘트를 던졌다. 아까는 우느라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던 최연홍이 이번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븐플래닛과 가디언이 함께한 지 벌써 5년이 됐어요. 이만하면 한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평생 서로 사랑하고 아껴 줘요. 알았죠?” 팬들은 큰 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어딘가에서 송리윤도 같이 외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뭐야? 할 말 있어?” 송리윤이 근처에서 쭈뼛대는 내게 물었다. “저기…….” “쉬는 시간 다 끝나 간다. 아까운 시간 잡아먹지 말고 빨리 좀 말해 줄래?” “나도 갔었어, 어제. 세븐플래닛 콘서트 말이야.” 혹시나 반가워해 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송리윤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송리윤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여느 때처럼

  • 관리자
  • 2022-10-01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백온유, 『페퍼민트』(창비, 2022) 김젬마 재난이 남긴 것들 백온유의 『페퍼민트』는 준비 없는 재난 앞에 닥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불투명해진 미래를 견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프록시모 바이러스’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돌보는 ‘시안’과, 슈퍼 전파자라는 낙인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 사는 ‘해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안과 해원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지만, 바이러스가 삶에 침투하자 이들의 평범한 일상과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세계가 멈추고 자신의 미래까지 멈춰버린 시안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느라 정작 자신의 세계여야 할 학교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저 자신의 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희망이나 미래를 품을 수 없는 고단한 삶 속에 놓여 있는 시안의 일상은 위태롭고 무력할 뿐이다. 엄마가 깨어날 거라는 희망보다 엄마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를 누구보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돌보지만 결국 모든 정성과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에 지쳐 있다. 한편 슈퍼 전파자라는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불안함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지원’으로 개명하고, 이사와 전학을 선택한 해원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마치 바이러스가 자신의 삶에 없었던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 가족만큼이나 끈끈했던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들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이 공백은 두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과 멀어진 마음의 거리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시안과 해원은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시안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해원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감정의 화살을 해원에게 돌린다. 해원은 유일하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시안의 등장이 당혹스럽기만 하고 지난 시간을 들추는 것 같아 불편하다. 희망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시안과 과거로부터 도망쳐 평범한 삶을 꿈꾸는 해원, 이 두 사람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고여 있는 삶 재난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엄마와 이별을 한 시안은 식물을 돌보듯 엄마를 간병한다. 엄마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엄마가 썩지 않도록 기저귀를 자주 갈아 주는 것뿐이지만, 시안은 엄마의 미각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매일 우려 입에 적셔 준다. 시안은 매일 같이 차를 우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할 뿐 아니라, 절망과 무력함으로 점철된 일상에 작은 희망을 품으며 나름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98쪽) 시안이 오랜 간병 경험으로 얻은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

  • 관리자
  • 2022-10-01
K-할머니의 이름은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

  • 관리자
  • 2022-09-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