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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에게 거꾸로가

  • 작성일 2018-08-01
  • 조회수 1,238

[글틴스페셜]




≪문장웹진≫ 8월호 '글틴 스페셜'에서는 특집으로 제13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수상자들의 에세이를 여러분께 선보입니다. 사이버문학광장 글틴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 한 번 들어보실래요?
(사이버문학광장 글틴 바로가기 : https://teen.munjang.or.kr)





조율에게 거꾸로가



윤예원




좁은 부스 안에 세 명의 몸을 나란히 정렬하고 마이크를 쥐었다. 생과일주스가 담긴 플라스틱 컵을 기계 위에 올려 두었다. 천 원짜리 지폐를 투입구에 넣었다. 저렴한 반주가 스피커를 때렸다. 코인노래방에서 부를 노래들은 들떠도 가라앉아도 편안한 우리의 관계를 닮아 있었다. 두 목소리가 겹쳐졌다. 나는 잠깐 노래를 멈췄다. 이탈한 음이 재빨리 사라졌다. 결국 한쪽 귀를 막았다. 본래의 음으로 돌려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한낮의 아스팔트가 흡수한 열 때문에 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노란색 중앙선이 선명한 도로 위엔 비슷한 키의 그림자들이 졌다. 코인노래방과 우체국, 아이스크림 가게와 치킨집이 한 건물 건너 위치한 멀지도 않은 길을 우리는 자주 오갔다. 그날 낮엔 주말 오후 자습을 위해 어김없이 학교로 돌아가야 했고, 우리는 목을 자주 사용하지 않으니 자꾸만 음이 통제에서 벗어난다, 따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언제부턴가 내 목소리는 반음이 높거나 낮았다. 플랫을 붙여서는 안 될 음표에 플랫을 붙이고, 아직 제자리로 돌아와서는 안 될 순간에 음을 멈췄다. 한창 키가 자랄 때는 키가 흔들려 음정이 불안정해졌으니 멈추는 순간부터 다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위안했다. 그러나 여전히 올바른 음을 내는 것은 어렵고, 키는 더 이상 크지 않는다. 사실 믿지도 않았다. 내 키가 가장 빠르게 자라던 시절에 나는 합창부에서 노래를 불렀으니까.


아직 두꺼운 외투를 하나씩 챙겨 입고 푹신한 시청각실 의자에 앉을 계절에 선생님은 모두를 일으켜 세웠다. 계단식으로 된 자리의 끄트머리에서 본 선생님은 아주 작았다. 우리는 피아노에서 흘러나온 가온 다 음을 흉내 냈다. 한 음정씩 높아지는 음에 단원들은 하나둘 앉기 시작했다. 5옥타브 솔을 끝으로 두었다. 마지막까지 몸을 지탱하는 다리는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음을 기준으로 우리는 세 파트로 나뉘었다.
합창 연습 도중 우리는 이름보다 파트로 불리는 일이 잦았다. 마치 이름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익숙해지는 건 금방이었다. 음을 헷갈리지 않기 위해 파트별로 나누어 앉았다. 한 파트가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동안 다른 파트는 입을 다물었다. 지휘의 손끝에서 우리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았다.
이따금 화음이 어그러지거나 알토가 소프라노를 뒤따라올 때면 피아노 소리가 멎었다. 표면적으로 실수는 너그럽게 용서되었으나 기저에는 각자 당긴 짜증의 화살이 한 명을 내내 겨냥했다. 개인을 향한 감정은 번져서 파트 전체를 조준했다. 틀린 부분은 쉽게 고쳐지는 법이 없었다. 긴장은 우리가 다시 입을 열고 같은 부분을 무사히 넘어갈 때에서야 종식되었다.
나는 늘 가장 높은 음을 안정적으로 불렀고, 일방적인 야유에 몰릴 꼬투리를 지니지도 않았다. 음을 짚지 못한다는 말의 이해 범주는 문자가 한계였다. 노래가 어렵다는 말도 어렴풋이 와 닿을 뿐이었다.


처음으로 이탈한 음을 마주한 것은 악보에서였다. 악보를 완성하고 가상악기 재생 버튼을 누르면 어김없이 한두 음이 의도에서 벗어나 다른 공간을 구성했다. 어긋남은 밀물처럼 밀려와 전부를 적시고 사라진다. 온전히 거두어지지도 않고 남지도 않은 미지근한 증류수처럼. 육안으로 보이면 숙주가 전부 망가진 곰팡이처럼.
악보에서 노래로, 노래에서 필기로, 필기에서 글로, 글에서 전부로. 마치 신경망을 타고 이동하듯 차례차례 무너지는 모습을 관조한다. 이미 부서져 겨우 남은 지표들에 다시 파도가 친다. 물러선 수면에는 이미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백사장에 무릎을 꿇고 두 손 가득 바닥을 긁어모으면 흰 모래가 덧없이 흘러내린다. 궤도를 이탈한 도망자들은 쉽게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활자들이 뭉쳐 노래를 부르던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완성이라고 부르곤 했다. 잔음을 남기던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미련이라고 부르곤 했다. 불협화음은 잔음으로 발탁되지 못했다. 손을 넣었다가 빼도 묻지 않을 정도의 미련이 적당했다. 하지만 점차 곡은 해체되고 화음은 뒤섞인다. 내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낱말들이 요동친다.


키는 멈췄다. 숨의 반음이 높아질 때면 내 발자국이 여기저기 찍혔다. 반대로 숨의 반음이 낮아질 때면 어디에도 찍히지 못했다. 생의 반음은 설계도의 각도와 닮아 있었다. 사소한 충격을 바로잡지 않고 넘기면 얼마 가지 않아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것.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 필사적으로 흔들리지 않아도 흔들리는 것.
원천을 없앴다. 음이 변칙적으로 변화할 환경을 지웠다. 작곡 프로그램을 삭제했고, 진행하던 프로젝트의 인수인계를 진행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손을 놓았다. 글을 쓰기보다는 접하기에만 몰두했다. 정교하게 직조된 글들만 골라 읽었다. 스스로 타자화를 택했다. 그럴 때마다 언제나 객체가 되었다. 버려질 때마다 유기되는 비닐봉지 정도의 감각으로 무뎌졌다.
골조는 도망칠 틈을 주지 않았다. 시작의 차단이 무색할 정도로 시간은 빨랐고, 새로운 일들은 눈앞에 쌓여 갔다. 무수한 사람들 사이에 영악하게 숨는 선지도 있었지만 나머지와 호흡을 맞춰 은신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새로운 과제들과 평가들이 몰아쳤다. 하필이면 음악과에는 뮤지컬 평가가 새로 할당되었다. 극본부터 시작해 작곡, 연주, 연기, 상연까지 학급이 책임지고 뮤지컬을 창작하는 방식이었다. 결국 작곡 프로그램을 다시 설치했다. 다시 노트북에는 저장 공간이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떴다.


작곡을 맡은 곡은 학급 뮤지컬의 마지막 넘버였다. 모두가 부르는 합창이었고, 음이 풍성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소프라노와 알토를 나누었다. 반주를 위해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음악실의 대형 화면에 악보를 띄웠다. 손가락이 천천히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번을 연습해도 가장 높은 음정에 안정적으로 도달할 수 없었다.
전문 뮤지컬 극단이 아니라는 것을 간과했다. 5옥타브 솔까지 음정을 정확하게 짚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을 터였다. 나는 연습실로 돌아갔다. 음악실에서는 다른 노래 연습이 시작되고 있었다. 노트북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음표가 여러 방식으로 조합되었다가 흩어졌다. 해결법은 시간이 무색하게 싱거웠다. 노래에 사람이 맞출 수 없다면 노래를 사람에게 맞추면 된다.
자의적인 침몰은 일종의 방파제이다. 다음 파도가 몰려오기 전에 혹은 모든 것을 쓸어가기 전에 먼저 완성할 방법을 찾는 일. 굴러가도 부서지지 않는 테트라포드처럼. 사장조였던 조성을 라장조로 바꾸었다. 가장 높은 음정이 5옥타브 레로 낮아졌다. 소프라노는 무리 없이 음을 올렸다. 앉은 자리에서 막히는 화음을 고쳤다. 한결 쉬워졌다. 한번 손을 뻗어 주물을 조형하고 나면 다음 작업부터는 순조롭다. 한번 조립해 본 테트라포드를 조립하는 것처럼.


이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누군가 틀렸다고 말한다면 그것을 본래 내가 자리하던 공간으로 만든다. 반음이 내려갔다면 맞춰 화음을 쌓는다. 서두르지 않는다. 아주 작은 흠이 곡의 전체를 망친다면 흠을 곡의 내부로 끌고 들어온다. 결국 사방으로 튀어 잘못된 나마저도 나의 일부. 인정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왕 조율되지 못한 악기가 되려고 마음먹었다면 독보적인 이상함이 더 즐거운 법이다.
끈적거리고 냉담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대강 보면 흔히들 겉멋이라고 부르는 오브제들이다. 반음 내려간 음정에서 반음을 더 내리면 한 음정이 내려간다. 유기적이고 복잡한 기호를 사용한다. 단어와 단어 사이가 허물어지는 순간들을 포착해 박제한다. 비가역적인 플랫이라면 차라리 내가 원하는 대로 무너뜨리기로 한다. 원래의 몰드로 돌아갈 수 없다면 차라리 새로운 조각이 되기로 한다.
손끝에서는 실패의 방식들이 이리저리 유영하다가 밀집한다. 실패가 익숙해지면 다른 실패에 도전한다. 무너짐 사이의 간격에 대하여 쓴다. 사분의 일 음에 대하여 쓴다. 곧 정착한 감각에서 탈피해 다른 감각으로 이주할 예정임을 안다. 내가 쓰는 끝들은 무너짐이 되었다가 다시 저마다의 모양으로 굳는다. 반음이 어긋난 채로.


조율을 포기하고 등을 돌렸다. 신장계 위로 몸을 올린다. 삼 센티가 컸다. 다음에는 더 작아질지도 모른다. 불안하고 불온하게.
















작가소개 / 윤예원(윤별)

2000년생. 상산고등학교 재학 중. 시를 씁니다.


《문장웹진 2018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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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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