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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인터뷰

  • 작성일 2017-06-01
  • 조회수 1,037

[글틴 스페셜_인터뷰]



나비 인터뷰

- 이 글은 ‘나비’를 읽은 나비(가명)씨의 이야기입니다.



출연 : 나비(인터뷰어), 작가(김재희), 길고양이(나비)





화창한 초여름이었다.
나비는 코끝을 적시는 풀내음이 꽤 좋다고 생각했다.
야외 인터뷰라, 꽤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약속 시간이 다 되었다.
누군가 멀리서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나비 : (밝게 웃으며 일어나)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인터뷰를 맡게 된 나비라고 합니다.


작가 : (어색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나비 : 긴장할거 없어요. 정말 간단한 질문 밖에 없어요.


작가 : 그래도 제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건 처음이라... (머리를 긁적이며) 준비 한게 없는데 괜찮을 까요?


나비 : 그럼요! 자, 그럼 이제 시작할까요?


작가 : (고개를 끄덕인다.)


나비 : 첫 번째 질문입니다. 재희씨가 이번에 받은 상이 글틴에서 주최한다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어떤 계기로 글틴을 알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작가 :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수줍게 입을 연다.) 작년 12월쯤 이었던 것 같아요. 글틴에서 주최하는 문학 캠프를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제 또래아이들과 함께 문학에 대해 소통하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캠프에 참가했어요. 그리고 저는 캠프에서 즐거운 추억을 남겼고, 동시에 글틴에 대해 호감이 생겼죠. 캠프가 끝나고 그 길로 집에가 글틴을 찾아봤어요. 저와 글틴의 인연은 거기서부터 시작된 거죠.


나비 : 그렇군요. ‘나비’라는 작품은 소설인거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재희씨는 주로 소설을 쓰시는 건가요? 주로 어떤 글을 쓰는지 알 수 있을까요?


작가 :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딱 잘라서 어떤 글을 쓴다! 라고 할 순 없을 거 같아요. 저는 아직 아마추어이고 최대한 많은 문학을 접하고 도전해 보는 과정이거든요. 시를 쓸 때도 있고 소설을 쓸 때도 있고 수필을 쓸 때도 있어요. 때론 시나리오나 대본을 쓰기도 해요.


나비 : 대본이요? 세상에, 정말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시는 군요. 도전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네요. 그럼 이쯤에서 조금 화기애애한 질문 하나를 해 보도록 할게요. 이번 제12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수상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작가 : 사실 처음 연락을 받고 많이 놀랐어요. 정말 받을 줄 몰랐거든요. (살짝 웃으며) 저보다 실력 좋은 친구들도 많았고, 게다가 ‘나비’라는 소설은 제가 처음 글틴에 올린 소설이었거든요. 많이 미숙했던 글이었지만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나비 : 그렇다면 혹시 상을 받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작가 : 소설을 쓰는데 자신감이 붙었어요. 살면서 제가 쓴 소설을 칭찬 받은 적이 거의 없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상까지 주시다니! (작가는 고조된 목소리를 가다듬곤 다시 차분히 말을 이어간다.) 더욱더 열심히 쓰려고 노력하고 있죠.


나비 : 그러시구나. 아!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정말 궁금했던 건데요. 본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어요. 수상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작가 : 제 작품이 처음 쓰여 진 것은 아마 3년 전 쯤 이었을 거예요. 그때는 아파트에 살았어요. 당시 빌라와 아파트가 빽빽한 도시에 살 때, 길고양이들의 울음소리를 자주 들었어요. 처량하게 우는 고양이들의 소리를 듣다보니 소설 속 이야기가 구상이 되더라고요. 사실 초고를 썼을 때는 소설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미숙했어요. 그런데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첨삭하면서 글을 완성시켜 나갔죠. (아련하다는 듯 소설을 껴안으며) 3년이라는 시간동안 만져왔던 글인 만큼 정이 많이 들어있던 소설입니다.


나비 : ‘나비’라는 작품에 많은 애정을 쏟으셨던 게 보이네요. 그렇다면 수상작 이외에 가장 아끼는 작품이 있나요?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작가 : 살짝 자화자찬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저의 글을 모두 사랑해요. 제가 잘 썼다는 게 아니라, 솔직히 제가 아니면 누가 제 글을 사랑해주겠어요? 일종의 자기위로와 같은 거죠.


나비 : 재미있네요. 자기위로라니! 하하 (호탕하게 웃던 나비는 펜을 고쳐 잡으며 말을 이어간다) 그렇다면 글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작가 : (당황해 하며) 의미라고 하니까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네요. 그동안 어떤 의미를 두고 글을 쓴 적은 없어요. 그런데 질문을 받으니까 한번 의미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네요.


나비 : 의미가 없으시다면 글을 쓰게 된 동기 같은 거라도...


작가 : 제가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아주 어릴 적 쓰던 충효 일기에서부터 시작 되요. 그냥 그때부터 글 쓰고 책 읽는 게 좋았어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죠.


나비 : 충효 일기라니! 정말 오래되었군요. 책 읽는 다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좋아하는 작품이 있나요?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작가 : (곤란하다는 듯 한숨을 지으며) 어려운 질문이네요. 제가 앞서 답한 질문을 보셨다 싶이 취향이 확고한 편이 아니에요. 지금 좋아하는 작품을 말해도 돌아서면 또 달라지거든요. 제가 읽었던 모든 책은 다 제겐 최고의 작품이었어요.


나비 : 하긴 저도 그래요. 성격이 워낙 유순한지라 딱 잘라 말하는 걸 잘 못하거든요. 그렇다면 글 쓰는 것 외에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작가 : 지금은 없어요. 제가 고3이라....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감수성이 꽤 메말라 있거든요... 이해해 주시길 바라요. 그냥 현재의 삶에 대해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죠. 예를 들면 입시라던가....


나비 : 저런, 파이팅하세요. 꼭 하고 싶은 것을 찾게 되길 빌게요. 그럼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나 못다 한 이야기가 있나요?


작가 : 음.... 딱히 없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무릎을 치며) 아! 많은 사람들이 ‘나비’의 결말에 대해 의문을 갖더라고요. 그래서 그 뒤에 소녀와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더라고요. 소녀와 고양이가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상상할 수 있어요. 열린 결말이거든요. 저 같은 경우에는 소녀와 고양이가 함께 잘 살아서 결국 소녀가 행복해지는 결말을 상상했어요.


나비 : 열린 결말이라니, 그거 참 좋네요. 아 아쉽네요. 벌써 재희씨와 헤어지다니.


작가 : (웃으며) 저도 아쉽네요. 제 작품에 대해 읽어주고 들어주셔서 감사했어요.



나비와 작가는 아쉬운 인사를 뒤로하고 대화를 마쳤다.
그러나 나비는 어딘지 모르게 찝찝한 감정을 떨칠 수 없었다.
나비는 다시 수첩과 연필을 챙겨 일어섰다.
또 다른 인터뷰 대상을 찾은 건지 나비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나비가 찾은 곳은 한 뒷골목이었다.
보닛위로 늘어져있는 길고양이를 만나자 나비는 반갑게 달려가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나비 : (반갑다는 듯이 웃으며)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나비’ 속 주인공 나비씨 아니십니까!


길고양이 : 냐아앙 (= 처음엔 제가 주인공인줄 몰랐어요. 그냥 웬 추레하게 생긴 여자 한 명이 몇 달 씩이나 저를 따라다니며 소시지를 주며 “나비야”하며 부르길래 미친 건가 싶었죠. 그런데 그게 다 소설을 쓰기 위한 거였다니. 진작 말했으며 협조 좀 했죠.)


나비 : 아, 그러시구나 그럼 나비씨의 출연료는 소시지인거나 다름없네요. 앞으로도 소설에 종종 출연할 마음이 있으신지?


길고양이 : 냐앙 (= 물론이죠! 치즈 맛 소시지와 고양이용 참치 캔만 있다면 저는 어디든 갑니다!)


나비 : (소시지를 꺼내 건네며) 인터뷰 감사했습니다. 나비씨, 그럼 길냥이의 가호를 빕니다!


길고양이 : 냥! (= 나비씨도요!)



나비는 고양이 나비와의 인터뷰를 끝내자 뿌듯함을 느꼈다.
그제야 모든 궁금증이 풀린 것 같았다.
나비는 인터뷰를 기록한 수첩을 품에 꼭 안고 발걸음을 옮겼다.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김재희
작가소개 / 김재희

1999년생. 2016년도 제12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우수상 소설 부문 수상자
경남 밀양여자고등학교 3학년


《문장웹진 2017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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