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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방학특강 참가후기] 나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언어 조각들, 詩

  • 작성일 2013-08-15
  • 조회수 616




나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언어 조각들, 詩


이민선(필명 : 하이리)




안녕하세요. 후기라는 것이 생소하긴 하지만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저의 느낌을 기록으로 남겨 볼까 합니다.
우선 저는 광주광역시에 사는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에요. 그러다보니 서울에서 하는 작가와의 만남이나 특강은 번번이 포기해야만 했는데요. 만나게 되는 경우는 기껏해야 학교에 공문이 발송되는 대회 같은 곳에 다른 대회에서 받은 상금 모아서 다녀오는 식이었죠.
그래서 이번에 간 것이 되게 큰 결심이었는데 시를 가지고 ‘논다’는 말에 우선 흥미가 생겼어요. 심보선 시인과 김소연 시인의 시집 표제작을 패러디한 제목도 재밌었고요.
서울 길을 잘 몰라서 한 번 와봤던 혜화를 또 헤맸는데요. 날씨가 심란해서 더 혼란스러웠어요. 서울 사는 친구 집에서 하룻밤 자고(그 전날 홍대에서 놀기도 하고!) 온 덕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어요.
딱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와 되게 조용하다’였어요. 그리고 보이는 심보선 시인님과 김소연 시인님! 『슬픔이 없는 십오 초』에 그려진 얼굴과 달라서 못 알아봤어요, 처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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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 시작하기 전에 왜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계기와 의도를 설명하시는 모습! 몰래 찍어봤는데요. 잘 안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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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해서 찍어 봤어요. 화질이 좀 안 좋지만 그래도 확대하니 훨씬 잘 보이죠.ㅎㅎ
심보선 시인님은 시를 잘 몰랐을 때 우연히 접하고 그때의 느낌이 되게 좋게 남아 있었어요. 김소연 시인님은 친구가 ‘눈물이라는 뼈’를 정말 강추해서 읽었다가 완전 팬이 됐고요. 시를 쓰는 제게는 글로만 교감하던 시인님과의 만남이 참 설레는 일이랍니다. 특히 저번에 백일장에서 심사 때 뵈었던 김소연 시인님은 뭐랄까 강렬한 포스가 있으셔서 딱딱하고 무서운 분이 아닐까 싶었는데 세 시간 정도 특강을 들으니 그런 인상이 깨졌어요. 차도녀 스타일이시긴 한데 끝나고 한 명 한 명 특징을 기억해 주시고 부탁도 들어 주시고 시를 쓰는 청소년들의 열정을 되게 기특하게 보시고 기억하려 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간적이고 따뜻한 분이구나 싶었어요. 또 심보선 시인님은 되게 잘생기셨더라고요!! 사진이랑 달랐어요. 남자다운 인상이셨고 목소리가 굉장히 매력적이고 말투에서 중후한 멋이 깃들어 있어, 듣는 내내 편안한 느낌을 주시더라고요. 시 낭송 하기에 좋은 목소리구나 하고 혼자 속으로 생각했어요.


이제 특강 이야기를 해볼게요!
저는 오늘 시인의 진솔한 이야기나 강의를 들을 줄 알고 펜 같은 건 안 가지고 갖는데 오자마자 종이를 주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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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 1〉은 평소 하던 대로 시제를 골라서 개인적으로 써보는 건데 상금이 걸린 백일장도 아닌지라 가볍게 써봤어요. 시제 제시할 때 〈싫어〉라는 시제를 제시한 친구가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터부의 벽’이라는 필명은 하도 글틴에서 많이 봤고 자기소개 시간에 엄청 놀랬어요. 마치 시인님들을 보는 느낌으로 인터넷에서 많이 보던 사람을 보니까 신기하잖아요.(저만 그런가요?) 저는 〈양말〉을 제시했고 제가 제시한 시제라는 의무감에 ‘양말’로 시를 썼어요. 시와 거리가 먼 친구들을 데려오라는 말에 정말 시 근처에도 안 가는, 책 몇 장 읽으면 잠드는 친구를 데려갔는데 외모에 관심 많은 친구여서 〈크림〉이라는 시제에 대해서도 역시 화장품으로 썼어요. 가벼운 소재와 가벼운 감정이었지만 ‘시는 꼭 이렇다’ 하는 편견 속에서 진지하게만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면모라서 신선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어지는 〈시 쓰기 2〉! 이게 아마 특강의 하이라이트겠죠?
이건 모둠으로 하는 거였어요. 같이 주신 포스트잇을 이용해서 가져온 책 속 시어들을 쭉 적고 그걸 섞어서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을 엮어서 시를 완성하는 거예요. 과연 이게 시가 될까? 하는 반신반의 속에서 시작했는데 모둠 애들이랑 어색해서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그래도 고2 동생들이라는 마음으로 누나답게(?) 먼저 다가갔어요. 모두 착한 애들이었어요. 역시 글틴 친구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
저희 모둠은 시나 소설뿐만 아니라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자기개발서도 몇 권 껴 있어서 시어가 다채로웠던 것 같아요. 그만큼 조합하는 데에 힘이 들었지만 최대한 변형 없이 가고 싶었어요. 그게 언어를 가지고 논다는 취지에 맞을 거 같았거든요. 제가 주도는 했는데 어떻게 엮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왠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문장을 몇 개 만들어서 되는대로 이어보았어요. 그리고 같이 온 친구가 문장 순서를 세 줄 정도 배열해주자 그 후는 수월하게 풀렸답니다. 고2 동생들이 문장 배열하는 모습도 귀여웠어요. ‘쿠데타’를 쓰고 싶었던 거 같은데 ‘저항’이라는 낱말이 있으니까 망설이기도 하고. 재밌었어요. 그리고 드디어 완성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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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이 어지럽네요. 이어 붙이고 남은 아까운 포스트잇 조각들. 아니 언어 조각들.(ㅠ.ㅠ) 다 쓰고 싶었는데 그건 실패했어요. 아마 명사 중심으로 써서 그런 것 같아요. 다음에는 부사나 형용사, 서술어를 풍성하게 써서 해보고 싶네요.
이렇게 기차처럼 이어 붙여 놓으니 되게 뿌듯했어요. 걱정하던 친구도 막상 하고 보니까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시를 발표했을 때 김소연 시인님이랑 심보선 시인님이 최대한 단어 변형을 안 하고자 했던 의도를 알아주셔서 개인적으로 되게 기뻤고 제가 말을 조리 있게 못하는 편인데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해야 해서 조금 부끄러웠어요. 마지막 열일곱의 성장과정과 방황의 산물로 시를 엮어서 완성도를 주고 의미를 부여한 것이 좋으면서도 제 한계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래도 그게 제 스타일 문체여서 포기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다른 모둠들의 작품도 들으면서 되게 감탄했어요. ‘와, 이게 시가 되구나.’, ‘아 저 문장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렇게요. 오히려 깊이 있는 문장이 탄생했다고 해야 할까요. 멜로디를 넣어서 행 처리 한 것도 되게 상큼하게 다가왔고 고독이라는 거대한 주제에 깊이를 담은 모둠의 작품은 정말로 제가 좋아하는 시의 분위기를 자아내더라고요. 필사하고 싶었어요.
시인님들과 사진도 찍고 싶었는데 제가 낯을 많이 가리는 탓에 용기내서 말하지 못했어요. 강의하고 사인하고 바빠 보이기도 하시고. 다음번에 볼 때는 사진 같이 찍자고 꼭 말하고 싶어요. 제게도 그런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글틴 캠프도 가고 싶어졌어요. 클틴 캠프 갔다 와서 친해진 친구들을 보니까 부럽더라고요. 저도 문학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친구들과 마음껏 제 문학적 판타지를 논해보고 싶어요!! 아, 재범이라는 애가 제일 기억에 남는데 여러 백일장 예선통과자 명단에서도 본 적 있지만 사인 받을 때 자신의 습작 노트에 받는데 진짜 열정이 대단하더라고요. 그런 친구들과 만날 수 있었다는 게 정말 가슴이 벅찹니다. 문학에 왕도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새삼 해봤어요.
저는 지금껏 상당히 이타적인 시를 써왔던 것 같아요. 시를 쓴다는 게 처음엔 개인적 이유였지만, 누군가 나를 알아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상대에게 자꾸 설명을 하려 하고 감성에만 취해서 글을 쓰기도 하고, 기법이나 표현에 신경 쓰려다가 중심 대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개인의 감상을 잃기도 하고. 그게 백일장의 딜레마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상금을 타야 다음 대회에도 갈 수 있었던 저는 정말로 상을 받기 위한 시, 시를 위한 시를 쓰는 함정에 많이 빠져 있었어요.) 잘 안 써질 땐 무지막지하게 스트레스 받고 인상 쓰고, 잘 썼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썼고요. 본인에게 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시는 즐기는 동시에 공부라고 생각해요.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각이 얼마나 협소한지 혹은 창의적인지, 내가 겪은 고통과 절망이 이 우주에서 얼마나 티끌보다 못한 것인지도 알려주면서, 동시에 일상에서 스치는 감상을 몇 배는 증폭시켜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거든요. 인생이 풍부해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쓰면 쓸수록.
이번 경험을 계기로 쓰고 싶은 것을 쓰기로 했어요. 시제를 정해서 딱딱하게 쓰지 말고 제가 ‘시’라는 장르에 흥미를 느끼고 그 매력에 빠졌던 요소를 떠올리면서 즐겁게 써보고 싶어요. 저는 많이 불완전한 인간이므로 허접하다는 소리를 들을 일이 많겠지만 무슨 일을 하든 어디에 있든 저는 시를 쓸 것이기 때문에 기왕이면 즐겁고 싶어요.
좋은 경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연극 관람과 서평, 월장원 그리고 특강까지. 글틴이 주는 선물이 정말 많습니다. 그럼 여기서 후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더 많은 사진을 찍지 못해서 아쉬워요ㅠㅠ.
마지막으로, 글틴 파이팅^^!!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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