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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해인 대표, 이양구 연출가를 만나다

  • 작성일 2012-09-02
  • 조회수 1,701

 

   네 꿈을 펼쳐라 시즌 2

 

 

[인터뷰] 극단 해인 대표, 이양구 연출가를 만나다

 

 

 

일시 : 2012. 8. 4(토)

장소 : 대학로 동숭교회 내 카페 '에쯔' 

 

 


   이번 글틴 ‘내 꿈을 펼쳐라 시즌 2’(이양구 연출가 편)에는 유난히 적극적인 글틴들이 많이 참여했다. 직접 연극제에 참가해 작품을 올리거나 행사를 기획하고, 지역 라디오 방송을 만드는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청소년 연극 대본을 써서 연기를 하거나 제작 진행을 맡는 등, 훗날 자신이 지니고 싶은 직업과 관련해 조금씩 경험을 쌓아가는 단계였다.

   인터뷰이인 이양구 연출 또한 글틴들을 위해 대학로 연극 ‘인디아블로그’를 미리 예약해줬고, 글틴들이 인터뷰 후에도 대학로를 경험하도록 인터뷰 외적으로도 많은 혜택을 줬다.

   원래 춘천 남이섬에서 만나기로 했던 약속 장소가 인터뷰 전날, 서울 대학로로 변경되면서 이동 시간을 좀 더 줄일 수 있었고, 이양구 연출의 배려로 중앙대 학생들의 연극 ‘장군슈퍼’ 연습장면까지 감상했다. 마침 대학로가 마로니에 여름 축제 기간인지라 인터뷰 장소 주변 골목골목이 야외 공연과 관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 8월 4일 토요일 오후 여름 축제 열기가 가득했던 대학로, 이양구 연출을 만났던 글틴들의 인터뷰를 공개한다.

 


   [인터뷰이 소개]

 

   이양구 연출은?

   극단 해인 대표, 중앙대 연극학과/신흥대 미디어문예창작과 강사

 

   극단 해인(海印)은?

   “잔잔한 밤바다에 밤하늘의 별이 도장처럼 찍힌다는 뜻”으로 “현대 사회와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맑고 깨끗하게 잘 드러날 수 있는 연극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인 극단

 

   [해인 연혁]

   2009. 창단공연, 예술전용공간 지원 사업 〈별방〉, 봄작가 가을독회 〈첫눈〉

   2010. 2인극 페스티벌 〈지상최고의 만찬〉

   2011 〈책, 갈피〉, 혜화동 5기동인 봄페스티벌 〈유년의 뜰〉,

   혜화동 5기동인 가을페스티벌 〈마음이 가난한 사람〉 등 공연

 

 

   [인터뷰어 소개]

 

   * 조인영?

   “저는 방송작가가 꿈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극 분야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지방에 살아서 문화생활을 즐기기에 여건이 부족한데, 대학생이 되면 꼭 연극 동아리에 가입을 해야겠다고 항상 생각을 했고요. 제 버킷리스트 안에 극단에서 극작가로든, 배우로든, 연출이든, 언제라도 함께 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짧지만 연극 속에 콩트로 선생님의 도움 없이 직접 써서 무대에 오른 적이 있는데, 그때 정말 뿌듯하고 신났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1학년 때도 학교 축제 때 UCC 춤추는 걸 했었는데, UCC 연출이랑 시놉시스, 연기를 친구들과 함께 만들면서 너무 즐거웠고요. 글틴 캠프 때, 촌극에서 제가 주인공으로 연기를 했었는데 무대 위에서의 희열감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방송작가라는 꿈을 갖게 되고 연극무대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갖게 된 것 같아요.”

 

   * 김가영?

   “안녕하세요. 김가영이라고 합니다. 저는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글을 구상하고 창작하는 걸 연습해보고 싶어서 남들과 다르게 동아리로 문예부가 아니라 연극부를 했었는데요. 그때 참 운 좋게도 전국청소년연극제에 나가게 됐어요. 이런 여름날에 연극제를 준비하면서 많은 궁금증이 생겼지만 전문적으로 아는 사람이 없어 물어보지도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걸 이렇게 기회가 되어 연출가님께 여쭤봅니다.”

 

   * 심다은?

   “안녕하세요, 이양구 연출가님! 서울국제고등학교 2학년 심다은이라고 합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뮤지컬과 연극을 알게 되어서, 이제는 연극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아는 것도 많이 적고, 최근에는 연극부 동아리 활동 중에 힘든 일을 많이 겪어서 진로에 대해 다시 고민해봐야 하는 생각도 들어요. 연출가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식도 경험도 조금 넓혀서, 조금 더 깊은 생각으로 연극과 제 진로를 대할 수 있었으면 해요.”

 

 

   [인터뷰 문답]


제 개인적으로는 인생에서 낭비되는 시간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곳으로 가든 도움이 될 거예요.

 

 

   ○ 이양구 연출,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들

 

   글틴 : 이양구 연출님은 언제부터 글을 쓰셨나요?

    이양구 : 원래 법학을 전공했어요. 제가 어릴 땐 공부 잘하면 자연스럽게 판사 되고 변호사 되고 그랬는데, 그래서 법대 가는 것만 생각하고 공부했어요. 아들만 오형제인데, 제가 어릴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형편이 안 좋아서 사립대는 생각 못 했고, 국립대 중에 가야 했고, 그래서 충남대 법과대학 사법학과를 가게 됐어요. 법학과 가서 공부만 하고, 글 쓰는 것에 관심은 있었는데 생각 못 했죠. 고 3때는 연출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연극 영화과가 가고 싶긴 했어요.

   그런데 제가 22살부터 27살이 방황하는 시기였는데 학교는 중퇴를 하고 28살 때 중앙대에 다시 들어갔어요. 운이 좋았던 게, 1학년 1학기 때 정지아 소설가가 하시던 교양과목 수업을 듣게 됐어요. 리포트로 뭘 내줬냐 하면, A4 한 장에 자신의 인생에 대해 써오라고 했어요. 저보고 문장이 좋다고 소설 한 번 써보라고 권하셨죠. 소설을 썼는데 잘 안 되고 나중에 연극을 공부해야 되니깐 희곡을 혼자 공부했어요. 희곡 써서 무대에 올려보고 창작을 해보고 연출을 해보면서, 이런 것들이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글틴 : 극단에서는 극작가를 뽑나요?

    이양구 : 극작가는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고, 소속이 될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공모전에 희곡을 내서 당선되면 공모 단체에서 극단은 당연히 붙여줘요. 소문이 나면 다른 단체에서도 서로 작품을 받으려고 해요.

   연극과 출신들은 주변에 연출가들이랑 작가들이 많으니까 극장 잡아놓고 연출 정해지고 충분히 시간을 갖고 대본을 써요. 연극학과 출신으로 연극을 만들기 때문에 무대 공간적으로 어떻게 갈지 진행하는 작업 환경이 유리한 편이죠. 본인이 극단에 들어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작품을 쓰는 게 중요해요.

   일단 조연출 경험을 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글틴 : 희곡을 쓰기에 문예창작과가 좋은가요? 연극과가 좋은가요?

    이양구 : 문예창작과에서 희곡을 배운 사람과 연극과에서 희곡 배운 사람은 차이가 있는데요. 문창과 희곡을 배운 사람은 언어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연극과에서 연출하며 희곡 쓴 사람은 언어가 시간, 빛, 소리, 오브제 등과 평등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문창과를 가서 희곡을 배우면 삶을 해석하는 폭이 넓어지는 것 같은 반면에, 극장 공간을 연출적으로 활용하는 글쓰기는 좀 약한 건 사실이에요. 그럼 공연을 많이 보면 돼요. 학생들에게 많이 얘기하는 게 공연을 안 보는 건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를 안 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죠. 공연을 많이 보라고 해요. 저는 일주일에 일곱 편씩 볼 때도 있고, 일주일 한두 편 볼 때도 있어요. 세어보지는 않았는데, 심지어 극장에 들어가서 자다가 깨다가 그러기도 하면서 계속 봐요. 근처에 사니깐 공연 5분 전에 들어가 보고 그러죠.


   ○ 극작가이자 연출가로서의 연극 작업 노하우

 

   글틴 : 연극을 하고 싶다고 하면 학교 선생님은 연극은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깐, 연극과 상관없는 대학을 가라고 하세요. 고민이에요.

    이양구 : 여러 생각을 해봤을 때, 사람과 사람 관계는 극장 바깥에서도 중요한 것 같아요. 훌륭한 분들이 연극과 출신이 아닌 경우도 있으니 크게 걱정하진 마세요. 연출이든 극작이든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연극과에 오면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데, 거칠게 비교하면 연극과 출신들은 기술자 느낌이 나요. 폭넓은 철학을 가진 친구는 적어요. 글을 쓰는 친구들도 구성은 잘 짜지만 기술적인 느낌이 강하죠. 그런데 정말 주목 받는 작가들을 보면 철학과라든가 다른 과인 경우도 많거든요. 제 개인적으로는 인생에서 낭비되는 시간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곳으로 가든 도움이 될 거예요.

   저는 처음에 연극과 와서 ‘스무 살에 왔으면 잘 됐을 텐데, 왜 인생을 낭비했을까?’ 그런 생각 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농담으로 그래요. ‘법정극을 나보다 잘 쓸 사람이 누구랴?’ 법정극을 써본 적은 없지만요. 시간이 흘러가면 낭비된 시간은 없는 것 같아요.

   연극과에 들어와서 연극을 공부하는 사람은 휴학을 하든 뭘 하든 다른 곳에서 인생을 배워 와야 해요. ‘혜화동 1번지’의 다섯 명 중에도 경영학과 출신이 있죠. 어떤 분은 경영학과 출신인데 무대 디자이너인 분도 계세요. 그런 분들은 스케줄 관리를 정말로 잘하세요. 경영학과 출신이니까 그게 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끝나는 게 많은데, 그 분은 상당히 체계적인 작업을 하시죠.

   만일 철학과를 선택해서 가면 사유의 폭이 넓어질 가능성이 높고, 문예창작과를 가면 많은 분야를 배울 것이고 연극학과를 가면 무대 미술 수업도 받게 될 거고, 극작과를 가게 되면 인접 과들과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겠죠. 극작과 중에는 서울예술대학이나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가면 연극과 인접한 과와 교류할 폭이 많아요. 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나오면 문장이 아름답고, 인문학과를 나오면 사유 폭이 넓겠죠.

 

   글틴 : 연극을 공부하고 다른 일을 하기도 하나요?

    이양구 : 연극과 나와서 고시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합격한 사례는 못 봤지만요.(웃음) 대학 전공이 중요하긴 한데 그게 다가 아니니깐 잘 생각해보세요. 추세로 보면 연극영화과 가 많아지고 있고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지고 있어요.

 

   글틴 : 연출가에게 필요한 자질이란 어떤 건가요?

    이양구 : 연극 쪽은 시장이 붕괴됐어요. 전혀 존재하지 않아요. 정부에서 공연제작지원금 나오는 걸로 제작을 하고요. 연출 작업 하시는 분들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어요.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연출로 생계를 유지하는 분은 손에 꼽을 몇 명밖에 없어요. 시장이 없으니까요. 뮤지컬 소수의 작가들만이 개런티만으로 대기업 과장들 연봉을 받는다는 소문이 있긴 한데, 현실적으로 극작가가 전업을 하기란 힘들어요. 실제로 연극 사정이 그 정도까지 왔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들어와요. 농담으로 하는 얘기가 연극 DNA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한다고 하죠. 이유는 모르겠는데 연습실과 극장에 있을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해요. 원한다면 돈이 되는 걸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마음이 편하지가 않아요. 연극을 할 때 제가 알기로는 그나마 사람이 숨쉬기 나쁘지 않은 공간인 것 같아요. 2년 전 아는 디자이너도 그러더라고요. ‘우리나라가 점점 무섭다. 연극권이 그나마 나아서 숨을 쉴 수 있다’고 말이죠. 연극이 너무 좋아요. 연극하는 동안에 사람들끼리 같이 만나 토론하고 웃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런 게 살아 있는 느낌이죠.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면 굉장히 각박해져요. 직장은 돈 주고 일시키는 곳이니깐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아요. 내가 부속품으로 쓰이는 것 같은 기분이죠.

   지난 2월 대본 쓸 때 제주도에 가서 쓰고 왔어요. 극작가는 그게 되는 거예요.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돈이 넉넉해서 그런 건 아닌데요. 다른 직업이 가지지 않은 장점이 있죠. 프리랜서도 비슷하겠지만요.


   글틴 :
연출은 리더 격인데요. 제가 청소년 연극에 참여하면서 다른 아이에게 맡기는 게 부담돼서 내가 다 하니 힘들어지는 거예요. 연출이 어느 정도까지 책임져야 하나요?

   이양구 : 프로덕션에서는 연출가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하고 싶은 것을 펼쳐놓으면 무대 감독이 기술적으로 실행하죠. 예전에 담양에서 대나무 300그루 잘라서 대극장 무대를 만든 적이 있어요. 2003년 박동우 선생님이 ‘문제적 인간 연산'이란 무대를 디자인하셨는데요. 그게 그때는 충격이었어요.

   그런데 연극은 자기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함께 만드는 거라 그게 가능해요. 연출가는 각 파트 예술가를 통해 각 조각 그림을 꿰맞추는 거예요. 각 파트별로 좋은 그림을 연출가가 조직하는 거죠. 연습실에서 배우들과 작업하고 밖에서는 디자이너와 작업하면서 최대한 조율을 해요. 최종 결정은 연출이 하지만 같이 만드는 거예요.

   연극은 배우예술이란 말을 많이 써요. 배우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은 살아 있는 배우를 대면하는 거니까요. 배우의 연기력이 뛰어나면 음향이나 뭐가 부족해도 다른 것들을 받쳐줄 때가 있어요. 그런데 배우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연출가가 별로면 잘 안 돼요. 똑같은 배우인데 탁월한 연출가가 아니면 어마어마한 연기력이라도 못하는 경우가 있고, 연출이 디렉션을 줬는데 그게 배우의 연기를 방해할 수도 있어요.

   연출가는 배우의 연기력을 극대화시켜 뽑아내는 거예요. 그게 연출가의 역할이죠. 몇몇 탁월한 연출가를 보면 ‘저 배우를 어떻게 저만큼 뽑아냈지?’ 그래요. 반면 ‘아니 저 배우를 저렇게 죽일 수 있지?’ 그런 연출도 있어요.

 

   글틴 : 같이 공부하신 분 중에 스타 배우가 있는지 궁금해요.

    이양구 : ‘미안하다 사랑한다’ 에 출연한 정경호가 있네요. 한 학번 위에 현빈이 있었고, 하정우, 김래원, 장나라, 장신영 등이 있었을 거예요.(웃음)

 

   글틴 : 선생님과 작업한 배우 중에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있나요?

    이양구 : 다들 조금씩 영화 작업도 하고 남들이 스크린에서 못 알아보지만 저는 알아보는 배우들이 많아요. (웃음) 사실 연기전공과 학생들은 소속사를 많이 찾아가기도 해요. 그런데 정말 잘난 외모는 소수인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은 이미 고등학생 때 기획사에서 채갔어요. 외모가 평범한 사람들은 연기력으로 쌓아갈 수 있겠죠.

   그런데 20대 초반, 20대 중반, 30대 초반에는 드라마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많이 없어요. 현실적으로 20대 초반까지에서 예쁜 여자배우들과 30대 중반 이후 연기력 좋은 남자를 원하는 게 뚜렷하죠.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까지는 아무리 경험을 많이 했어도 깊이를 논할 나이가 아니라서 40대까지 가야 연기력을 인정받고 쭉 가는 거죠. 그 시간을 견뎌야 해요.

   스타가 되기 위해서 연기과 오려면 오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잘 생기고 예쁜 애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가령 톱 탤런트 L이 들어오면 그 한 명 빼고 모두 다 외모가 평민 돼요. (웃음) 진짜로 스타를 꿈꾸는 맘으로 연극영화과를 오면 안 돼요. 연극이 좋아서 무대에 서고 싶고 그래야죠. 꾸준히 노력해서 유명해지거나 그럴 기회가 오면 감사하는 거고요.


   ○ 어떻게 하면 글을 더 잘 쓸 수 있을까요?

 

   글틴 : 요새 글 쓰는데 사람들이 저보고 식상하대요. 내용이 너무 뻔해져서 의기소침해졌는데요. 용기를 주세요.

    이양구 : 내가 대본 써서 최근에 누구에게 보냈는데 똑같은 대답을 받았어요. (웃음) 제가 학교에서 연극과 공연 제작 수업을 하는데, 학생에게 ‘이렇게 바꾸는 게 좋지 않아?’라고 하면서 ‘모든 인물을 다 너 같은 애로 만들어놨어?’ 그런 적이 있어요.

   예를 들면 제가 시골 출신이거든요. 강남 아이들이 갖고 있는 감성은 절대 못 쫓아가죠. 그래도 전부 나 같은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하거든요. 성격의 차이는 세계관의 차이일 수도 있는데, 다 나 같은 사람을 만들어버리면 갈등을 만들기 힘들어요.

   제가 농담으로 이렇게 얘기하는데요. ‘밥 먹었니?’ 물어보면 ‘아직’, ‘먹었어’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그렇게 말라보여?’ 이렇게 답하는 사람도 있죠. 캐릭터란 게 삶에서 계속 깨달아가면서 쌓이는 수밖에 없어요. 캐릭터를 획일화해서 내 말투대로 하는 게 아니라, 다중인격은 아니더라도 사람은 여러 면이 있으니깐 이쪽 면, 저쪽 면을 끄집어내서 써보세요. 혹독한 평을 듣다보면 10년 지나 좋아질 거예요.

 

   글틴 : 글쓰기 대회를 나갈 때요. 제가 볼 땐 붙는 애들의 공통점은 제목부터 다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힘들어요.

    이양구 : 저도 제목이 드럽게(웃음) 재미없어요. 비슷한 고민을 학교 다닐 때 했는데 ‘우리가 감각은 신선한 사람은 아니잖니? 진실 되게 쓰자’고 정지아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젊으니까 노력을 하면 신선해질 수 있을 것 같고, 그렇지 않더라도 시간 흘러가면 깊이가 생기면서 잘 쓸 거예요.

   문장이 좋은 사람은 자칫 잘못하면 근사하게 포장할 수 있어요. 문장으로 펼칠 수 있으니까요. 자기 나이 또래들은 속일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봤을 땐 숨길 수 없어요.

 

   글틴 : 그럼 작가에게 필요한 감성은 무엇인가요?

    이양구 :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꼽고 싶어요. 제가 볼 때 우리 사회는 사람에게 너무 가혹해요. 게다가 구제역 파동 때 소, 돼지를 엄청나게 죽였잖아요? 단지 먹을 수 없다는 이유로. 그런데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넘어갔어요. 이건 심각한 정신적 외상으로 남을 겁니다. 이게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현재 인간들에게 영향을 끼칠 거예요. 가혹한 무관심이었던 거죠.

   진지하게 작업하려면 고통의 감수성을 일깨워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제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꼭 시키는 게 감정관찰 노트예요. 나와 남의 대화를 짧게 쓰고 내 마음이 어땠고, 하루에 한 장 씩 일주일에 다섯 개씩 한 학기 쓰게 해요. 내 감정을 관찰해서 나를 깨닫는 거죠. 내 감정을 관찰한다는 건 내 옆에 있는 사람을 관찰하는 거예요. 어떤 학생은 축구를 하다가 공이 나무에 맞았는데 처음으로 나무가 되게 아프겠다는 생각을 해 봤대요. 자기감정을 관찰하다보니깐 나의 아픔, 감수성이 다른 데로 감정이입을 한 거겠죠.

   감수성도 훈련되는 것 같아요. 그냥 훅 지나가면 몰라요. 저는 이 대학로 카페를 2년째 오는데 주의 깊게 보기 전에는 다 똑같은 풍경이에요.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의자 배치도 조금씩 바뀌었고 이 자리에서 만났던 사람도 다 달라요. 그냥 바라보는 것과 주의 깊은 관찰력으로 바라보는 건 다르죠.


   글틴 :
희곡을 책으로 많이 읽고 싶은데요.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소설이나 시들은 서점에서 살 수 있는데, 희곡은 어려워요.

    이양구 : 희곡은 구하는 것도 힘들고 희곡을 혼자 읽을 수 있는 사람도 많이 없어요. 저도 대학에 와서 희곡을 보는데 이름이 적혀 있고 대사가 있는데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안 들어와요. 공책을 펼쳐놓고 적어가면서 했어요. 혼자는 너무 힘들어요. 연극과 학생들도 힘들어요. 희곡은 여럿이 둘러앉아 읽으면 너무 재미있어요. 희곡은 혼자 읽는 게 아니에요. 여럿이 읽는 거예요. 그러면 좋아요. 요즘에는 작가한테 전화하면 이메일로 보내줘요. 저도 보내달라면 보내줄 수 있는데 창피해서요. (웃음)

 

   글틴 : 그럼 공연으로 돈을 버는 것은 힘들까요?

    이양구 : 요샌 돈을 벌려면 뮤지컬을 하라는 말도 들어요. 정부가 한류 때문에 뮤지컬 쪽으로 몇 억 대로 지원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연극과 뮤지컬이 시장도 거의 분리되어 있어요. 뮤지컬도 많은 부분 거품과 적자가 있지만요.

   뮤지컬은 음악, 노래가 주예요. 연극 '이'는 연극이었는데 영화 뜨고 뮤지컬로 갔죠. 뮤지컬 쪽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뮤지컬 문법이 따로 있다고 해요. 용어도 당연히 다르고 풀어가는 방법이 희곡과 달라요. 뮤지컬은 음악이 주인데 연극은, 제 경우 인간의 세밀한 감정을 표현할 때 음악을 잘 안 써요. 소리가 갖고 있는 속성 중에 이 소리만 들려도 잡다한 것을 다 못 듣게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다른 소리를 다 없애버려요. 살아 있는 사람 소리, 움직이는 발자국 소리들이요.

   내가 알기로는 뮤지컬은 굉장히 많은 로맨틱 코미디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탓하는 게 아니라 작품을 논하고 그렇지는 않잖아요. 몇몇 작품은 작품성을 논하기도 하지만요.

   뮤지컬은 연극보다는 상대적으로 사람과 돈이 많이 모이는 곳이죠.

   연극은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기 때문에 잘 안 엎어지고 그냥 갑니다. (웃음) 만일 엎어지는 경우란 진짜 심하게 싸워서랄까요? 사실 연출의 최고 미덕은 사람들을 믿어주는 거예요. 안철수도 조언하길 실수했을 때 자기에게 기회를 주라고 했잖아요.

 

   글틴 : 어떻게 자기혐오감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갖고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이양구 : 자기혐오는 글을 계속 쓰면 돼요. 글쓰기가 치유 기능을 갖고 있잖아요. 끊임없이 계속 쓰다보면 아마 자기혐오를 갖고서 ‘나는 자기 혐오하는 인간이다’라고 쓰는 작가가 될 거예요. 콤플렉스가 뭔지 뚜렷하게 알면 괜찮아요. 자기를 믿어줘요. 계속 쓰세요.

 

 


   인터뷰를 마친 후 인터뷰 일행은 대학로의 즉석 떡볶이, 만두 등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중앙대 연습실에서 대학생들의 공연 연습 장면을 접했다. 작품은 김한길 연출의 ‘장군슈퍼’로, 한창 배우들이 연습에 매진 중이었다. 작은 슈퍼로 꾸며진 연습실 안에서 글틴들은 짧게나마 연기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극장에 가서 오픈런 중인 인기 연극을 감상했다. 인도의 여행 얘기를 영상과 극으로 구성한 ‘인디아 블로그’였다. 두 남자가 인도 여행길에서 만나 각자의 사연을 꺼내놓고 상처를 어루만지며 여행을 추억하는 내용이다. 연극 내용 덕분에 하루 동안의 인터뷰가 여행으로 마무리된 느낌이었다. 이양구 연출은 오는 9월 9일까지 공연되는 ‘일곱집매’에도 학생들을 초대했다. 아마도 인터뷰에 참가한 글틴들 중에는 분명코 연극 DNA가 박힌, 혹은 이후에 박힐 친구들이 있을 것만 같다.

 

● 정리 : 변인숙 baram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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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5회 나는 광대다 장정희 땡~ 산조 가락이 자진모리의 클라이맥스 지점을 향해 막 솟구쳐 오르던 순간이었다. 힘차게 튀어 올랐던 태섭의 손가락이 땡, 소리와 함께 대금 위에서 조용히 잦아들었다. 숨죽일 듯한 적막이 찾아왔다. 적막은 짧았지만 숨결은 뜨거웠다. 태섭은 입술에 대고 있던 대금을 내려놓고 심사관들을 향해 앉은 채로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방석 옆에 놓여 있던 정악대금을 함께 챙겨든 후 뒷걸음질 치듯 천천히 수험실을 빠져나왔다. 문을 열자 진행요원이 문틈에 귀를 대고 있다가 화들짝 뒤로 물러났다. 다음 순번의 수험생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들어갔다. 태섭은 대기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창백한 얼굴들을 힐끗거리며 복도로 나왔다. 복도는 바닥에 주저앉아 삑삑삑 불어대고 있는 대기자들의 연주 소리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자 벌겋게 달아올라 있던 태섭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듯 바람이 달려들었다. 태섭은 곧바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목 언저리가 뻐근했다. 대금 연주자들에게 목 디스크는 숙명이라지 않는가. 태섭이 고개를 좌우로 젖히자 뼈마디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태섭은 담배를 힘껏 빨아들였다. 비로소 딱딱하게 굳어있던 입술의 감각이 살아남을 느꼈다. 태섭은 습관처럼 입술의 아랫부분을 문질렀다. 취구가 닿는 아랫입술 언저리는 피딱지가 떨어질 날이 없어 거무스름하게 변색되어 버렸다. 누구든 그 부위에 거무죽죽한 흔적을 갖고 있다면 그는 대금 연주자일 것이다. 태섭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끝났어! 해가 기울면서 날은 더욱 쌀쌀해졌지만 아직 눈이 내릴 기색은 없었다. 이제 겨울은 곧 시작될 것이다. 수시 모집은 대학 입시의 첫머리일 뿐 영광과 회한의 경계를 가를 때까지 입시생들의 겨울은 계속될 것이다. 태섭은 가방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꺼냈다. 전원을 켜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문자와 콜이 쏟아졌다. ‘물론 시험은 잘 봤겠지? 네가 떨어지면 붙을 놈 누가 있냐?’ ‘빨랑 내려오기나 해. 얼굴 잊어버리겠다.’ ‘오늘 수시 봤던 놈들까지 다 올 거야.’ ‘끝나면 곧장 전화해. 안 하면 죽어!’ 태섭은 휴대폰을 그대로 가방에 던져 넣고는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걷기조차 힘이 들었다.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동안, 남녀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태섭의 곁을 스쳐갔다. 이곳은 2년 전 캠퍼스 투어로 와 본 이후 두 번째다. 캠퍼스 투어는 태섭의 열망에 더욱 불을 지펴 놓았다. 와 봐야 새로울 것도 없다는 듯 나른한 표정으로 걷고 있는 대학생들이 부러웠다. 목표물을 손안에 얻은 사람만의 여유랄까. 나도 저들처럼 심상한 표정으로 이 캠퍼스를 활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연이어 두 번이나 전화가 왔다. 엄마다. 일이 손에 잡히지

  • 웹관리자
  • 2012-10-27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_ 제4회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이성아 소녀는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물방울이 맺힌 소녀의 머리카락에서는 샴푸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고, 고양이도 막 목욕을 마친 듯 털이 보송보송했다. 보송보송한 털의 유혹이 너무나 강렬해 나도 모르게 쓰다듬을 뻔했다. 소녀는 나와 또래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의 사람들처럼 어색했다. 아파트 하수구 관이 막혔는데, 지금은 밤중이라 공사를 할 수 없으니 아침에 공사할 때까지 물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지구 반대편의 언어라도 되는 듯 나를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소녀는 나보다는 고양이와 더 잘 통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는 영물이야. 공연히 곁을 주면 나중에 해꼬지나 당한다니까.” 아줌마가 내게 하던 말이다. 고양이는 소녀의 품에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고양이에게조차 수모를 당한 듯 명치끝이 짜르르 아려왔다. 나에게도 고양이가 있었다. 높은 담을 사뿐히 뛰어올라 얼음사니처럼 우아하게 걸어 다니던 고양이에게 나는 다미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두었다가 다미에게 주면 아줌마는 소리를 꽥 질렀다. “고양이 밥 주지 말란께. 야가 뭔 똥고집이래.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까이.” 식당 알바는 힘들었다. 처음엔 청소하고 설거지나 하면 된다고 하더니 술손님들이 많으면 서빙에서부터 고기 잘라 주는 일까지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었다. 취한 남자들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아래위를 훑어보거나 손이며 엉덩이를 쓰다듬으려고 할 땐 온 몸의 솜털이 다 곤두서고 구역질이 나오려고 했다.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것 같은 아줌마의 목청이었다. 내 평생 목소리가 그렇게 큰 사람은 처음이었다. 고작 17년밖에 안 산 내가 평생이란 말을 쓰긴 좀 그렇지만, 아마 평생을 곱절로 살아도 그렇게 목청이 큰 사람은 만날 것 같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러댔다. 간혹 뭔가 날아가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깨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양은냄비나 플라스틱 바가지, 물통이나 양푼, 철판 뒤집개나 슬리퍼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살얼음판 위를 걸어 다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일했다. 수돗물을 세게 틀면 안 되고, 설거지할 때 개수대 밖으로 물이 튀면 미끄러지므로 안 되고, 식탁은 젖은 행주로 닦은 다음 반드시 마른 행주로 닦아야 하고, 기름 묻은 그릇은 오래 두면 안 되고, 안 되는 것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걸을 때 엉덩이를 흔들어도, 무표정해도, 큰 소리로 웃어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렀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화낼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많이 나온 전기세와 갑자기 오른 임대료, 갑자기 쏟아지는 비, 햇빛이 들이치는 창, 똥 마려운 것처럼 끙끙거리는 개새끼, 시끄러운 오토바이소리, 그리고 뭘 해도 마음에 안 드는 생선 구잇집 아줌마. 소정은 아줌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 웹관리자
  • 2012-10-16
단 한 번의 기회

청소년 테마소설 성취와 좌절_제4회 단 한 번의 기회 이명랑 자식을 바꿀 수 있을까? 나라면…… 절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아빠, 엄마라면? 나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본다. 운동장을 둥글게 에워싼 광장식 계단을 꽉 메운 사람들. 대부분 오늘 테스트에 임하는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다. 열심히 자녀들을 응원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나는 아빠, 엄마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 차가운 은빛으로 빛나는 안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빠다. 아빠 옆으로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도 앉아 계신다. 컥, 숨이 막힌다. 우리 가족이 앉아 있는 곳을 확인하자마자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혀온다. 흰 현수막 위에 금빛으로 화려하게 새겨진 글자들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VIP. 금빛으로 빛나는 VIP라는 글자들 옆으로 봉황 두 마리가 이제 곧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듯이 날개를 펼치고 있다. 그 활짝 편 날개 옆에 우리 가족은 앉아 있다. 비좁은 자리에 앉아 서로 어깨를 부대끼며 자식들을 응원하다 말고 어른들은 가끔씩 VIP석을 곁눈질한다.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하지만 이따금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훔쳐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야 VIP석에 앉을 수 있는 거야? 아들아! 봤지? 네 눈에도 저기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너만이라도 제발 저 자리에 앉아다오! 사람들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표들과 느낌표들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하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옆에서 아빠, 엄마보다 더 태연하게 발밑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바로 내 가족이다. 어른이 되면 나도 저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앞으로도 나는 우리 가족의 일원일 수 있을까? “자! 전원 출발선 앞으로!” 사회자가 붉은 깃발을 번쩍 들어올린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수많은 아이들이 출발선 앞으로 달려간다. 나도 질세라 뛰어간다. 시작이 절반이다, 라고 아빠는 늘 말한다. 맞는 말이다. 시작에서부터 뒤처지면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나는 내 앞을 가로막고 달리는 아이들 두, 세 명을 어깨로 밀치며 앞으로 뛰어간다. 누군가 내가 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 어깨를 밀치고는 빠르게 내 앞을 스치고 달려 나간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키가 큰 녀석이다. 누가 너 따위에게 질 줄 알고! 나는 어금니를 악문다. 간신히 내 어깨를 치고 달려간 녀석보다 한 발 앞서 출발선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 정중앙이다. “모두 집중! 첫 번째 미션이다! 참가 인원은 모두 100명, 카트는 50개! 먼저 뛰어가 카트를 잡는 사람만이 장을 볼 수 있다!” 순식간에 사회자의 설명이 끝났다. 사회자는 번쩍 들어 올렸던 붉은 깃발을 밑으로 내리고 출발선 앞에 서 있는 아

  • 웹관리자
  • 201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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