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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제작감독, 변숙희 님을 만나다

  • 작성일 2011-07-29
  • 조회수 2,316

[글틴 인터뷰 탐험 3]

 

 

뮤지컬 제작 감독, 변숙희 님을 만나다

 

 

● 일시 : 2011. 7. 23(토) 오후 2시

장소 : 여의도 국회의사당 부근 사무실

참여 : 매일밤, 육십이점, 사쿠리이(이상 필명)

 

 

 

 

 

7월 여름방학 ‘문장 글틴 인터뷰 탐험대’의 주인공은 변숙희 뮤지컬 제작 감독이다. 제작 감독은 사전 기획부터 제작, 마케팅까지 전 과정에 관여하는 뮤지컬 종합살림꾼이다. 뮤지컬을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직업이라, 뮤지컬 계통에서 일하고자 하는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속 깊은 조언자가 될 만하다.

 

변숙희 제작 감독은 재학 시절 음악 작곡을 전공했고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온 뒤 '라보엠', '라 트라비아타', '여보 고마워', '위대한 캐츠비' 등을 만들었다. 뮤지컬 '루나틱 2 페이스 오프'에서는 의상 감독도 겸했으며,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안네프랑크' 등에서는 비주얼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프랑스 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에 참여하고 있다.

 

뮤지컬, 클래식, 그림, 요리 등 다방면의 문화를 공부했고 현장에서 활발히 일하고 있는 실력파 뮤지컬 감독이다.

 

이번 인터뷰는 신청 사연을 가장 먼저 올린 매일밤(김근영)과 뮤지컬 연출을 꿈꾸는 사쿠라이(박채연), 뮤지컬 계통 전공을 눈 앞에 둔 육십이점(박미송) 등 세 명의 10대들이 참여했다.

 

이번 글틴 지원자들은 ‘뮤지컬홀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뮤지컬을 아끼는 문학소녀들이었다. 절실하게 열정적으로 뮤지컬 꿈에 다가서고 있다.


 

 


 


### 글틴 인터뷰 참가자들의 사연

 

매일밤(김근영) : 예전부터 무대 연출에 대해 호기심이 많아서 뮤지컬이나 콘서트도 자주 가봤어요. 특히 뮤지컬은 연극과 음악이 무대에서 같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말 매력적인 장르인 것 같아요. 제작감독님을 직접 뵐 수 있는 기회라고 하니 정말 뵙고 싶네요!

 

육십이점(박미송) :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는 3학년 여고생입니다. 지금껏 부모님의 꿈을 대신 꾸어드리느라 공부를 하면서도 의미도, 확신도 없이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음악 수행평가의 뮤지컬 제작을 통해 저의 열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현재 부모님과 가족, 학교 선생님에게 저의 꿈을 어필하고 설득하며 목표를 다지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꿈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으나, 가끔 주변의 목소리에 힘들기도 합니다. 저의 꿈을 튼튼히 세우고 다른 사람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고 싶어 감독님과의 만남을 신청합니다.

 

사쿠라이(박채연) : 변숙희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처음에는 희곡작품들을 많이 읽다가 작년부터 뮤지컬에 매력을 느껴서 대학교 때는 꼭 연출을 전공하려고 합니다. 뮤지컬을 자주 보러 다니는데 모든 공연의 커튼콜 때마다 가슴이 벅차 오르고 눈물이 납니다. 이런 훌륭한 공연을 볼 수 있다니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방면에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변숙희 선생님과 대화로 제 마음을 다잡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틴 인터뷰어들은 ‘빌리 엘리어트’나 ‘모차르트’, ‘위대한 캐츠비’ 등 최신 뮤지컬을 챙겨보는 것은 물론, 학교에서 뮤지컬을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다. 뮤지컬에 대한 사랑이 한창인 글틴 3인이 변숙희 제작감독을 만나 이런 저런 궁금증을 해소했다.

 

연출로 작가로 비평가로 제각각 뮤지컬을 꿈꾸는 글틴 3인방, 개인적 고민부터 뮤지컬 제작 뒷얘기까지 다양한 질문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두 시간 가량이 훌쩍 지났고, 중간에 단 1분조차 쉬지 않았다. 글틴 학생들의 놀라운 집중력에 변숙희 감독은 깜짝 놀랐고, 다음 작품에 글틴 친구들을 초대하기로 약속했다.

 

멘토와 멘티가 만나 자연스럽게 꿈에 관한 조언을 나눈 자리였다. 7월 23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 여의도 한 사무실에서 진행된 ‘글틴 인터뷰 탐험대─변숙희 뮤지컬감독 편’ 대화 전문을 공개한다.

 


 

 


▶ 변숙희 감독(이하 변숙희) : 만나서 반가워요. 다들 어떻게 지내요?

 

박미송(이하 미송) : 간밤에 수시 원서 준비하고 서류 쓰고 왔어요. 전 나중에 뮤지컬 역사가 오래되고 탄탄한 곳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요. 유학 갔다 돌아와서 뮤지컬을 하고 싶어요.

 

변숙희 : 진짜 좋아하나봐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난 이탈리아에서 11년 공부했는데 처음에는 알파벳도 모르고 갔어요. 가서 적응했더니 확실히 도움되는 게 많았죠. 3년 정도 유학생활 하는 게 좋은 같아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다 보면 생각의 폭이 넓어지죠. 이탈리아에서는 졸업이 하늘의 별 따기예요. 외국인들은 그 나라 역사를 알아야 시험을 봐요. 진짜 현지인보다 20배 30배 더 노력해야 졸업이 되거든요. 고생도 많이 하지만 그런 고생도 모두 도움이 됩니다. 여기서 많이 알아보고 자신이 갈 학교 정보는 꼭 챙겨서 가세요.

 

미송 : 어렸을 때부터 책은 꾸준히 읽었고 외교관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집에서 심어준 꿈이에요. 그런데 학교에서 수행평가로 뮤지컬을 해보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진지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뮤지컬이라고 깨달았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음악반을 선택했는데 거기서 뮤지컬로 수행평가를 한다는 거예요.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1학년 때도 연극반 가고 싶었는데 집에서 반대해서 못 갔거든요. 창작뮤지컬 만들면서 스토리 짜고 극본 쓰고 그랬어요. 작곡은 할 수 없어서 원래 있던 곡들 가져와서 개사하고 안무 짜서 10분~ 20분 정도 만들어서 올렸어요.

 

변숙희 : 대단해요!

 

미송 : 잘했다고 칭찬받았어요. ‘진짜 내 꿈이다’ 생각했죠. ‘진짜 하고 싶어요. 진짜 하고 싶어요.’ 그러고 있어요.

 

박채연(이하 채연) : 저는 예고 문창과를 다니고 있어요. 살면서 좌절하는 순간이 많았는데, ‘아. 맞다!’ 뮤지컬 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 ‘태어나길 잘했다’란 생각이 들어요. 뮤지컬 볼 때면 ‘나 행복하라고 배우님들이 저렇게 해주는구나!’ 하고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뮤지컬 볼 때마다 ‘내가 태어나길 참 잘했다’ 생각하면서 뿌듯해져요. 다른 관객들도 함께 느끼는 것 같아요. 커튼콜 때 기립 박수 나오면 감동해요. 초등학교 때 ‘그리스’ 보고 좋아서 지금도 일주일에 한 편씩 보고 있어요. 대학은 연극영화과로 가고 싶어요.

 

변숙희 : 배우는 누굴 좋아해요?

 

채연 : 최재웅 배우를 좋아해요.

 

변숙희 : 멋있죠.

 

김근영(이하 근영) : 저는 뮤지컬을 비롯해서 모든 공연을 좋아해요. 문화 쪽은 다요. 그런 걸 보면서 제가 느낀 것을 표현하고 싶어요. 만드는 것도 좋아하지만, 저는 관객이 되어, 보면서 평론가로 일하고 싶어요.

 

변숙희 : 가장 어려운 걸 하려고 하네요. (웃음)

 




 

### 클래식 유학생에서 뮤지컬 제작감독까지 변숙희 감독 경험담

 

변숙희 : 저는 원래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어요. 푸치니를 좋아했구요. 이탈리아 유학 가서 합창 지휘, 예술 기획, 작곡을 공부했죠. 오래 있었기 때문에 복수 전공이 가능했거든요. 그런데 유럽과 우리 나라 시스템이 너무 달라서 한국에 돌아왔더니 학사 인정이 안 되는 거예요. 학교 가서 애들 가르치려고 학위 딴 게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클래식 기획사에서 일했어요. 이탈리아 있을 때 오페라 몇 편 올리고 거기서 반주도 하고 공연도 많이 보러 다녔기 때문에 ‘클래식에 뼈를 묻겠다’고 다짐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클래식 상황에서는 나만 열정이 있다고 되는 게 아니었어요. ‘이렇게 하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 걸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어요.

이래저래 고생하던 와중에 우연히 옛날 인연을 만났어요. 아주 어릴 때 교회 다니면서 CCM(교회음악) 찬양 테이프 만드는 선배를 도와준 적이 있거든요. 반주를 해줬어요. 이탈리아 다녀온 바람에 15년 동안 연락이 두절된 사이였는데, 그 선배가 수소문해서 절 찾아온 거예요. 인터파크에서 공연하는 사람이 돼 있었어요. 그 분이 제게 ‘클래식보다는 뮤지컬 공연이 어울리는데 왜 이러고 있느냐?’고 조언을 해줬어요. ‘생각이 있으면 뮤지컬 쪽에서 함께 일해보고 싶다’고 하신 거죠.

그 당시에는 뮤지컬에 대해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오페라만 주구장창 하다가 두 가지가 비슷한 게 있을 거야 믿고 뛰어들게 됐어요. 그때 했던 작품이 뮤지컬 ‘루나틱 2 페이스오프’예요. 소극장 일이라 진짜 재미있는 거예요. 오페라랑 다른 세계에서 배우는 거잖아요.

클래식과 대중문화 하는 분들이 각기 성향이 달라요. 클래식은 고상해요. 앗, 나쁘다는 뜻은 아니에요. 뮤지컬 쪽은 반대로 너무 자유분방한 거예요. 이쪽이 제게는 적성에 맞았어요. 뮤지컬이 이렇게 재미있는 거구나 알았어요. 운이 좀 좋았죠. 처음부터 감독을 시작했는데, 나한테 이게 적성에 맞다 깨달았어요.

뮤지컬 쪽은 의상 맡는 인원이 많지 않아서 의상 일도 했어요. 분장실에 꾸부리고 앉아서 단추 달고 재단하면서 지냈죠. 한 사람이 여러 역을 할 때가 관건이에요. 리허설이나 연기 연습할 때 저는 배우들이 ‘몇 분 안에 옷을 갈아입나’ 시간 재고 있어요. 시간이 뜨면 안 되니까 ‘옷을 2분 안에 갈아입힐 수 있나’ 체크해요. 2분 안에 무대에서 다른 배우가 연기를 해야 되니까요. 공연 2주 전에는 진짜처럼 리허설을 해보는데, 무대 뒤에서 저는 초만 쟀어요. ‘너는 왼팔 맡아. 나는 오른팔 맡을게’ 그런 식이죠. 1번 스태프가 윗도리 벗길 때 3번 스태프는 바지 벗기고 그래요.

백스테이지가 정말 재미있어요. 배우들이 옷 갈아입을 때 처음에는 되게 부끄러워해요. 가려놓을 천을 따로 벽에 쳐놓기도 하죠. 그런데 3일쯤 지나면 천이고 뭐고 없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거든요. 남자들은 속옷을 신경 쓰고 오기도 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이 발생하죠.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할 때였는데 지저스가 피를 묻히고 나가는 신이 있었어요. 진짜 피처럼 만든 걸 온 몸에 묻히고 나갔다가 그 다음에는 피를 씻고 나가야 했어요. 무대 뒤에서는 ‘피를 묻히는 손’ 3명, ‘닦아주는 손’ 3명이 준비하고 있었죠.

경험해보면, 라이브 재미란 게 따로 있어요. 사실은 저도 얼마 전에 한 오디션에 통과해서 직접 노래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처음 배우들의 심정을 알았어요. 오디션 심사만 하다가 오디션 대상이 되니까 너무 떨렸거든요. ‘배우들 오디션 할 때 편하게 해줘야겠다’ 생각했죠. 배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어요. 무대에 올라갔을 때 끼를 다 보여줘야 하고, 그 배역에 맞게끔 진행해야 하고, 제 정신 갖고는 못 할 것 같았어요. 나는 못 하겠더라구요. 4분 동안인데,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고 다른 사람들 눈이 보이는 거예요. 아무래도 스태프 쪽이라 지금까지 스태프 쪽으로만 생각했는데, 배우들도 고충이 있고 아무나 배우 할 수 없구나 인정하게 됐어요. 제작 감독으로서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됐죠.

 




 

### 글틴 질문 & 변감독

 

근영 : 직업으로서, 우리 청소년들한테 뮤지컬 제작 감독을 추천해줄 만한가요?

 

변숙희 : 멋진 직업이에요. 아직은 여자들이 많이 없어요. 자기 노력으로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여기예요. 능력을 실력으로 인정받는 곳이죠.

제작 감독은 배우 개런티를 조절하고 공연 계약서 쓰고 이런저런 일을 모두 도맡아 해요. 뮤지컬 하나 올라갈 때 2억에서 30억 예산으로 살림을 하는데요. 조명, 음향, 무대 의상, 작곡, 배우, 기획, 홍보, 마케팅, 전반적인 걸 알아야 해요. 끊임없이 공부해야 되는 직업이죠. 조명 언제 나가고, 몇 퍼센트 예산으로 나가야 하고, 기계를 빌릴 때 어떤 것들을 빌려야 하는지 다 알고 있어야죠.

저는 처음에 조명을 몰라서 ‘파’도 ‘무빙’도 뭔지 몰랐어요. 조명 크루를 쫓아다니면서. 무대 올라가서 하나하나 공부했어요. 내가 핀을 잡을 수 있을 만큼 잘하는 게 아니지만 어떤 효과가 있고 어떻게 쓰는지 이젠 알아요. 그러니까 살림 규모를 조절하게 됐어요. 조명에서 ‘5개 필요해요’ 요구하면 ‘3개 필요할 것 같은데 조정해보자’고 제안할 수도 있지요.

제작감독이라는 타이틀이 생긴 지 우리나라에서는 10여 년 정도밖에 안 됐어요. 피디가 총괄해서 다 했는데 우리나라도 브로드웨이 시스템 받아들이고 스태프를 세분화하면서 제작감독 포지션이 생긴 거예요. 한국에서 활동하는 분이 많지는 않아요. 백 퍼센트 인지를 못 하는 것 같아요.

게다가 뮤지컬 쪽에서는 의상과 분장 외에는 여자 스태프들이 별로 없거든요. 제가 이전에 참여한 뮤지컬 ‘위대한 캐츠비’ 조연출이 여자였어요. 너무 고마워서 그 친구랑 단짝이 됐거든요. 8년 동안 일하면서 스태프를 데리고 다닌 적이 없는데, 이 친구한테는 같이 일하자고 제안을 했어요. 얼마 전 삼성에서 하는 이벤트 함께 만들었고, 지난 주 토요일에는 슈퍼스타케이 멤버들 콘서트를 했어요. 호흡이 잘 맞아서 일하기 편했죠.

어떤 파트너를 만나느냐에 따라 내가 재능이 100이 있다고 하면 시너지가 생겨서 120 이상을 발휘하지만, 파트너를 잘못 만나면 50으로 줄어드는 예가 많아요. 저는 행운인지 굉장히 좋은 파트너를 만났어요. 지금은 아까 말씀 드린 교회 선배랑 저랑 회사를 차렸어요. 제가 이사가 되고, 그 분이 대표가 되고 스태프들을 챙기죠.

절대 저는 제 직업에 후회 안 해요. 박칼린 감독이 인기를 얻고 그랬는데, 방송에 나가지 않은 분들 중에도 뮤지컬 쪽에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세요. 그런 분들이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인터뷰한다거나 방송 쪽 섭외 왔을 때 힘들다고 안 하고 그랬어요.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어요. 여자들이 공연에서 이렇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고 있다고, 방송 기회 되면 적극적으로 나가야겠다 싶었어요.

뮤지컬 직업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고, 배우고 싶다고 오는 분들은 모든 노하우를 다 가르쳐줄 거예요. 신당동 떡볶이 비법은 며느리에게도 안 가르쳐준다고 하잖아요. 왜 안 가르쳐줘? 전 항상 이상했어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내가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인맥들이 유용하다면 전 다 알려줘요. 어떻게든 자리 소개시켜 주고, 배우들이 누구 만나고 싶다고 하면 ‘선생님 얘 누구예요. 어떻게 좀 해줘요.’ 소개해요. 그렇게 해서 또 잘 되면 얼마나 좋아요? 모든 사람들이 그랬으면 좋겠어요. 자연스레 서로 알려주고 도움 받고 그래야죠.

아직은 여자들이 더 도전할 수 있는 게 많은 바닥이에요. 여자분들이 많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가정 생활 유지하고 일도 잘하고 그게 불가능하니, 가족의 동의와 절충이 필요해요.

 

채연 : 뮤지컬을 보다 보면 실력 없는 연예인들이 나오는 예가 많았어요. 그래서 연예인이 참여하는 것에 대해 편견이 있었는데, ‘위대한 캐츠비’ 데니안을 보면서 깨졌어요. 같이 일해본 연예인들은 어땠나요?

 

변숙희 : 데니안은 ‘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표현이 딱 맞아요. 연습실에서 밤 10시 일정이 끝나면 새벽 2~3시까지 혼자 연습을 했어요. 그리고 나가서 2시간 운동하죠. 본인이 원래 래퍼였잖아요. 노래를 안 해봤으니 뮤지컬 처음 하면서 자기 자신을 깨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 데니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주고 싶어요. 데니는 저를 ‘엄마’라고 불러요. 저한테 전화하면 “아들을 너무 버려놓는 거 아니야?” 농담하죠. 요새 라디오 진행하고 바빠서 연락을 잘 못 하는데 기억에 남는 배우예요. 연예인은 김선경, 임태경, 유태웅, 조승우, 박건형, 김종서. 이현경 씨 등과 일했어요. 데니안은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예요. 나중에 캐스팅할 기회 있으면 제일 먼저 캐스팅하고 싶어요.

어릴 때는 연예인과 일하면 너무 신기한 거예요. 조승우 씨가 연습 끝내고 “감독님! 감독님!” 불러주면 그런 게 감동인 거죠. 시간이 지나다 보니 서로 진솔한 면을 보게 되고 인간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어요. 연예인 색깔 때문에 경계를 하고 봤는데, 인간적 면을 통해 안쓰러운 것 알게 되니까, 그러면서 많이 친해지는 것 같아요.

 

근영 : 연예인들이 무대 서는 걸 긍정적으로 보시는 건가요?

 

변숙희 : 현재는 과도기예요. 마케팅을 위해 데려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 막 시작인 것 같아요. 나쁘다 얘기할 수 없고 좋다고도 얘기할 수 없는 편이죠.

 

채연 : 주말마다 공연을 보러 가는데, 티켓 값이 장난이 아닌 거예요. 부모님 부담도 너무 많이 되고요. 인터파크 티켓 통장이 따로 있는데, 한 달에 40~50만 원이 나가요. 학생 할인을 받아도 비싸요. 왜 이렇게 뮤지컬 표가 비싼 거죠?

 

변숙희 : 현재는 연예인 개런티가 높은 것도 이유가 되죠. 제작 비용을 100%로 보자면 제작 스태프, 음향 기기 쪽에 30%, 홍보 마케팅 20%, 배우 개런티가 50%이에요. 배우 50% 중 30%가 연예인, 20%가 나머지 배우에게 돌아가요. 연예인 개런티 거품이 빠져야 돼요. 요새는 다행히 교섭을 해서 내려가고 있는 추세예요.

 




미송
: 현재 하시는 작품은 어떤 거예요?

 

변숙희 : 프랑스 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이에요. 조승우 씨가 뮤지컬 ‘조로’ 들어갔잖아요. 막판까지 캐스팅 갈등을 많이 했는데 스케줄 때문에 상황이 안 됐어요. 참 아쉬웠죠. 메인 캐스팅은 못 했어요. 살리에르 역은 캐스팅이 됐는데 모차르트는 안 됐어요. 누가 될 지는 모르겠어요. 계속 찾는 중이에요. 한국에서 동명의 다른 모차르트를 했잖아요. 처음에는 ‘왜 똑 같은 것을 데리고 와? 해야 되나?’ 그랬는데 프랑스 라이센스 DVD 보고선 ‘꼭 해야겠다’ 싶었죠.

‘모차르트, 오페라 락’에서는 마케팅프로듀서를 맡고 있어요. 전체 피디나 제작감독은 대구방송에서 진행하고, 저는 마케팅프로듀서만 하지만 전반적인 걸 도와주고 있어요. 조승우 씨 섭외하다 안 됐고 윤도현 씨 하고 싶었는데 안 됐고, 다른 가수와 계속 얘기하고 있어요. 아직은 누가 될지는 몰라요.

 

미송 : 첫 공연은 언제 해요?

 

변숙희 : 첫 공연은 1월 말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해요. 지방에서 처음으로 오픈하는 거죠. 대구가 ‘대구뮤지컬페스티벌’도 열리는 도시여서, 뮤지컬계에 획을 긋는 상징성을 부여하려고 해요. 공연 전에 3D로 CGV에서 방영도 돼요.

 

미송 : 전 수능 끝날 때니 꼭 갈래요.

 

변숙희 : 제가 하는 공연은 초대할게요. 지금은 콘서트 하나 하고 있는데 놀러 와요. 음악을 전공해서 그런지 모든 문화가 일맥상통한다는 걸 느껴요. 공연을 해도 그렇고 어떻게 보면 꼭지점은 다 똑 같아요. 미술도 좋아하거든요.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음악, 그림과 관련된 책을 내셨어요. 그 책을 사서 제가 페이지마다 반론이나 제 느낌을 다 적었어요. 제가 보기 위해 일일이 메모를 한 건데, 같이 책으로 내면 좋겠다고 제안 받았어요. 글 솜씨가 좋은 게 아닌데 수정해서 드리긴 했죠. 음악이나 미술, 의류 모두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선을 긋다 보면 한 곳에서 만나요.

 

근영 : 먼저 음악을 오래 공부하셨는데, 음악을 시작한 계기는 따로 있었나요?

 

변숙희 : 엄마 때문이었죠. 저희 세대 때는 여자들이 사회에 나가서 생활을 많이 하지 않을 때인데, 피아노 배워놓으면 무조건 먹고는 산다고 엄마가 시켜서 했어요. 네 살이나 다섯 살 때는 피아노 배우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 지금 되게 감사해요. 억지로 피아노 배우다가 어느 순간, 중학교 때였나? 그 즈음 내가 음악을 되게 좋아하는구나 깨달았어요. 길에서 피아노만 봐도 쳐보고 싶고, 더 듣게 되고, 악보를 찾아서 듣게 됐어요. 가요 같은 것도 내가 쳐보고 신기해하고 좋아했죠. 이탈리아 가서 음악을 했는데, 음악은 끝이 없는 공부였어요. 새로운 장르의 음악들이 나오니까 지금도 공부를 해요. 배우면 배울수록 어려운 게 음악인 것 같아요.

 

근영 : 공부는 음악 쪽으로 하셨어도 이것 저것 다양한 것을 하시잖아요.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으시나요?

 

변숙희 : 유학 생활 마지막에 예술기획을 공부했어요. 그런데 유럽 시스템은 한국에 안 맞아서 처음에 고생을 되게 많이 했죠. 실제로 자주 대형, 소형 공연을 올리다 보면 보이는 게 있어요. 제작할 때면 홍보와 이렇게 섞자, 어떤 기업과 우리가 묶어서 가야 기업이미지도 상승하고 우리도 돈을 벌 수 있을까, 그런 마케팅을 하게 되니까 뮤지컬 전반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알고 일하게 됐어요.

제가 10대 아들에게 하는 얘기가 있는데, ‘어디에서든 선을 긋지 말라’고 해요. 가령 드럼을 배운다고 하면, 드럼만 주구장창 치는 것도 좋지만 ‘드럼 치는 게 좋으면 기타도 해보는 게 어때?’, ‘그림도 그려봐’, ‘찰흙으로 뭐도 좀 만들어봐’ 그런 식으로 애들한테 권하고 가르쳤어요. 지금 함께 일하는 배우들한테도 한 가지 캐릭터만 고집하지 말라고 조언해요.

 

미송 : 뮤지컬에 반해서 뮤지컬, 연극을 준비하는 친구가 있어요. 걔가 예전에 속상해하면서 ‘왜 우리는 뮤지컬 하고 싶은데 학원에서는 틀에 박힌 연기만 시킬까?’ 고민하던 때가 있었는데요.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변숙희 : 정형화된 입시 때문에 그렇죠. 일단은 입시에 맞춰 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현장에서 ‘학교 붙고 와’ 그러잖아요. 그래서 대학에 붙고 나서도 학원 가서 배우는 친구들도 많아요. 그때는 다른 걸 배울 수도 있고, 실전에서 뛸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죠.

 

채연 : 저희 학교도 축제하면 저마다 성향이 너무 달라서 학생들이 이해 못 받는 경우가 많이 생겨요. 제가 문창과인데 학교에서는 입시 글을 바라니까 그것 때문에 혼란스럽기도 해요.

 

변숙희 :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교육 시스템이 안 되다 보니깐, 그런 게 안타깝죠. 클래식 하는 사람들을 소위 ‘곤조’가 있다고 그러고, 대중문화 하는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낮게 보는 일도 많았어요. 처음에는 저도 이해 못 하고 웃긴다 그랬죠. 클래식과 대중문화를 둘 다 해본 입장에서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둘이 좀 섞였으면 좋겠어요. 다행히 요즘은 점점 한 단계씩 높아져가고 있어요.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라든지 ‘로미오와 줄리엣’이 클래식하고 대중문화를 잘 섞은 예죠. 우리나라도 슬슬 그런 분위기가 될 거예요.

제가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으로 본 뮤지컬이 ‘노트르담 드 파리’예요. 그 작품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이런 뮤지컬이 있구나’ 하고 놀랐죠. 노래, 연기, 춤이 분리돼 있잖아요. 굉장히 여러 번 봤어요. 안무적인 부분도 마음에 들었어요.

의상이나 무대가 화려했던 ‘피노키오’(이탈리아 뮤지컬)도 좋아했어요. 온통 원색이었는데 이탈리아답다 싶으면서 신선했어요. 지금 하고 있는 ‘모차르트, 오페라 락’도 시각적인 면으로 볼 게 많아요. 조명도 특별하고 의상도 화려하죠. 저도 작품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돼요.

 

채연 : 뮤지컬을 전공한다면 어떤 준비를 하는 게 좋을까요?

 

변숙희 : 공연을 무조건 많이 보세요. 산 교육이 필요해요. 공연 많이 봐야, 보는 눈이 생겨요. 그러다 전공으로 택한다면, ‘저 배우가 왜 오른쪽으로 나가지?’, ’조명은?’ 이런 질문을 하면서 보세요. 그리고 자기 선택을 믿고 준비하면 되죠. 저는 엄마로서도 교육에 있어서는 ‘책임’을 중요시해요. 소신을 지녔으면 좋겠어요.

부모님과 상의하거나 누가 이렇게 저렇게 말해준다거나 할 때도 진짜로 ‘나’를 보고 자신이 뭘 좋아하지 생각해보세요. 만에 하나 안 될지라도, 여러 번 대면을 하고 적극적으로 살아야죠. 그렇지 않으면 대학 가도 시간 낭비예요. 노력했는데 세상이 안 받아줬다 그러면 책임을 지는 거지. 내가 선택한 건 책임지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돼요.

이제 제가 일을 시작했던 초기에 비해 뮤지컬은 많이 발전했어요. 관객 수준도 높아졌어요. 예전에는 관객들이 박수를 안 치기도 하고, 전화도 막 하고, 코 고는 사람까지 있었거든요.

게다가 관객들은 성향이란 게 있어요. 스토리를 보는 관객이 있고, 음악과 비주얼을 보는 관객이 있죠. 아직 한국 관객은 대체로 스토리보다는 음악과 비주얼을 더 보는 경향이 세요. 스토리가 붙어주면 더 완벽하겠죠.

‘맘마미아’ 같은 경우도 우리나라 스타일 식으로 보완된 거예요. 우리나라 정서를 고려했어요. ‘캐츠’ 같은 작품은 우리나라 온 지 되게 오래됐잖아요. 원래는 보완 수정이 안 된다고 그랬는데, 6년 지나면서 조금씩 수정됐죠. 처음에는 계약서를 이행하는 게 되게 중요하고 예민한 문제예요.

창작 뮤지컬의 경우에는, 스토리가 들어가고 대사가 있고 음악이 있고 그런 게 함께 진행 되고 있으니까 굉장히 좋은 현상이라고 봐요. 규모가 큰 뮤지컬은 아직 우리나라 색깔을 찾지 못했어요. 지금은 상황이 많이 좋아지고 있으니, 제 바람은 열정적인 분들이 계속 와서 끌어올려주는 거예요.

 

채연 : 뮤지컬 ‘코러스 라인’ 망치 사건(지난 해, 뮤지컬 배우가 밀린 임금을 요구하다 폭행 당한 사건)처럼 부정적인 부분도 사람들한테 알려졌는데, 실제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요?

 

변숙희 : 아직도 많이 해결해야 할 부분들이 있죠. 물론 저도 몇 천 만 원씩 돈 떼이고 그랬어요. 사람들이 저한테 돈 못 받고 그렇게 고생한다고 ‘미쳤다’고 그래요. 집에 못 들어가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밤 새고 그러는데, 내가 노력한 만큼 페이를 못 받으면 절망이죠. ‘요리 가르치거나 피아노 가르치면 한 달에 몇 백 벌 텐데’ 그런 소리 너무 많이 들어요. 그런데도 공연에 중독돼요. 헤어나올 수 없는 게 있어요. 너무 재미있거든요. 돈을 못 받아도 하고 싶어요. 처음에는 저도 페이도 못 받고 그런 사람들 보면서 ‘미쳤다’ 그랬는데, 막상 그 상황이 오니깐 패닉에 빠지긴 하지만 ‘공연은 꼭 해야 돼’라는 마음은 있어요.

좋은 스태프들이 많지만 지금 뮤지컬이 100% 시장성이 좋다 그런 게 아니거든요. 문제도 많죠. 윗선들의 강압적인 것도 아직 안 사라졌고, 돈을 못 받기도 해요. 예쁘게 포장해주는 게 뮤지컬이지만, 곪은 게 되게 많거든요. 저는 최대한 그런 것에 대해서 깨보자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어요.

신세대들이 올라오면서 개선되고 있어요. 지금 제가 뮤지컬을 하면서 대학로 천 석짜리 뮤지컬 전용극장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대학로에 천 석 극장 생긴다는 게 고무적인 일이죠. 대형은 강남이나 혹은 세종문화회관밖에 없었어요. 대학로가 원래 공연의 메카잖아요? 저도 즐겁게 극장 업무를 보고 있어요. 점점 발전해가고, 좋은 시설의 극장이 생기고 있거든요. 시스템, 환경이 되게 좋아지고 있으니, 앞으로 우리나라가 더 좋은 환경에서 공연할 수 있겠구나 싶어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대중적 인기를 끈 창작 뮤지컬이 ‘김종욱 찾기’였죠. 그것도 다섯 번 정도 고친 작품이에요. 저도 처음에 그 작품 볼 때는 졸기도 했어요. 멀티맨(1인 다역)도 없고 무슨 말인지 공감도 안 되고 그랬는데, 세 번 째 공연에서 멀티맨이 투입되면서 정말 재미있어졌어요. 소위 ‘대박’이 난 거죠.

그래서 지금 업계의 모든 로망이 제2의 ‘김종욱 찾기’를 만드는 거예요. 뮤지컬 ‘빨래’라든지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싱글즈’도 창작 뮤지컬의 좋은 예죠. 조금씩 자리매김해가며 꾸준히 뮤지컬이 인기를 얻고 있어요. 우리나라 창작은 대형 뮤지컬은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소극장 창작 뮤지컬의 수준은 올라갔어요. 일본에서 ‘겨울연가’. ‘미녀는 괴로워’도 공연했고, 우리나라가 아시아권 뮤지컬 쪽에서는 선두가 아닌가 싶어요. 스태프 한 명으로서 되게 기분이 좋아요.

 

미송 : 부모님께서 뮤지컬 쪽 직업 반대는 안 하셨어요?

 

변숙희 : 부모님도 이럴 줄 몰라서(웃음) 반대 안 했죠. ‘아름다운 공연이구나’ 그러셨죠. 딸이 한다고 하니 ‘표도 많이 얻어오네’ 처음에 정말 좋아하시다가 점점 피골이 상접해서 힘들어하고 돈도 잘 못 버는 것 같고, 그런 걸 아시면서 되게 뭐라고 그러셨어요. 왜 그러고 사느냐 집에 들어가서 차라리 살림이나 하고 살아라. 너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 그러셨거든요.

그런데 과도기를 딱 넘으니까, 제가 열심히 하는 것 보여드리고 제가 언제까지 한 번 해보고 싶고, ‘내가 책임질게. 내 인생이잖아’ 그러면서 티켓도 드리고 그랬더니 이제는 좋아하시죠.

제가 태진아 콘서트 참여할 때 그때 제일 좋아하셨어요. 어른들한테는 나훈아, 설운도, 태진아 이런 분들이 최고구나 알았어요.

 

미송 : 리더로서 일하고 계신데, 사람들과 조율하는 방법이 따로 있나요?

 

변숙희 : 스태프와 배우는 사이가 안 좋은 경우가 많이 발생해요. ‘이래서 공연 못 하겠다’, ‘저 배우는 말을 안 듣는다’ 그런 말들이 생기죠. 일단 저는 ‘네 얘기 다 해봐’ 그래요.

우리 일은 끝까지 ‘너는 굉장히 소중한 사람이야. 없어선 안 될 사람이야.’ 얘기해줘야 해요. 칭찬을 많이 합니다. 일 진행할 때 호흡을 중요하게 여기니까요. 처음에 만나면 나이가 많든 적든 저는 그들한테 제가 엄마라고 생각하라고 말하죠. ‘할 것 있으면 와서 말해. 네가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서 해결해줄게’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끝까지 책임을 지려고 해요.

 

미송 : 현재 방송국 피디는 학벌을 심하게 본다고 들었는데요. 뮤지컬 감독도 그런가요?

 

변숙희 : 뮤지컬은 다행히 그런 건 없어요. 예전에는 계원예고, 안양예고, 서울예전 출신이 활발했고 그 다음 신생으로는 단국대, 세종대, 동아방송대 등이 들어왔죠. 그런데 뮤지컬 쪽에서는 학력을 내미는 경우는 한 번도 제가 못 봤어요. 서열은 있어요. 배우인데 선배다 그러면 깍듯이 대하고 그래요.

 

채연 : 배우들은 일본의 극단 사계에 가서 배우고 오는 경우가 있는데, 연출 스태프들도 그런 경우가 있나요?

 

변숙희 : 기술력은 일본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수준이 일본보다 높다고 생각해서 배우들처럼 왕래가 잦진 않아요. 배우들 중에서도 ‘굳이 왜 사계를 가’ 그런 분들도 생겼어요. 사계 스타일이란 게 있는데, 요즘 새로 영입되는 배우들은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해요. 사계에서는 본인이 분장 다 하고 자기 의상 챙기고 넘버링 매기고, 옷도 본인이 알아서 다 갈아입어요. 힘든 건 도움 받는데 거의 혼자 다 하죠.

 

채연 : 요리도 공부하셨다고 들었어요. 얘기 좀 부탁해요.

 

변숙희 :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요리를 가르친 적이 있어요. 공연만큼 되게 재미있어요. 요리도 하나의 문화 콘텐트라고 보거든요. 이것도 예술이니까요. 그런데 요리를 해서 누구한테 대접하고 가르치는 것은 좋아하지만, 가격을 매겨 파는 건 정말 적성에 안 맞았어요. 방송에 나가서 소위 떠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하대해요. 요리에 딴죽 거는 사람들은 설득이 안 되는 거예요. 요리는 자기 입맛에 안 맞는다고 하면 할 말이 없거든요. 이탈리아에서는 외국 여자가 자기나라 요리를 가르치니까 특이하다 그러면서 쫑긋하고 들어줬는데 한국에 왔더니 모든 게 저랑 안 맞았어요.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전통 안 돼요. 까르보나라는 야채 많이 넣어야 돼요.’ 그렇게 딴죽을 걸죠. 나는 오리지널 하고 싶어도, 퓨전으로 해야 한다고 그러고 그렇게 요리로 부대끼면서 공연을 2년 정도 쉬었어요. 요리와 공연 중 뭐가 더 좋은가 고민할 때 결국은 공연을 선택했죠. 공연 쪽에서 끊임없이 연락이 왔거든요. 찾아도 오고 전화도 오고 이게 공연하라는 운명인가보다 하고 받아들였죠. 생각해보니 공연 안 할 땐 도리어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공연이 저와 딱 맞아요. 현재는 되게 만족해요. 자부심을 느끼고 일하고 있어요.

 




 

정리_ 변인숙 baram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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