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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편 [세계명작 가상인터뷰_02]

  • 작성일 2011-07-18
  • 조회수 598

 

[세계명장 가상 인터뷰_02]

 

 

알베르 카뮈〈이방인〉 편

 

 

 

이름은 들어 알지만 읽어 보지는 않는다는 세계 명작 소설. 그 명작 소설의 등장인물들과의 가상 인터뷰를 통해 명작의 숨은 뜻을 되돌아보는 기획시리즈입니다.

초록 등대라는 이름은 문학의 바다에서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가 되었으면 하는 뜻으로 붙인 이름입니다.


 

초록불 : 안녕하세요? 오늘 인터뷰할 사람, 아참, 오늘도 사람은 아니군요. 하지만 이번에도 뭐라 하기가 좀 애매하니까 그냥 사람이라고 해둡시다. 안녕하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영매 : 이름을 밝히기는 좀 그렇고, 어차피 제 이름 같은 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바로 접신해서 유령을 불러보겠습니다. (부르르 몸을 떨며 접신 중임을 알린다.)

 

초록불 : 호, 이제 완전히 넋이 나간 것 같습니다. 그럼 접신에 성공한 것인지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령 분은 자리에 오셨는지요? 영매 분의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유령이 오긴 온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유령 : …….

 

초록불 : 저기, 묵비권을 행사하시면 인터뷰가 진행이 안 됩니다. 저도 이걸로 먹고 사는 사람이니 사정 좀 봐주시죠. 일단 성함부터 말씀해주시고요.

 

유령 : …….

 

초록불 : (아놔, 진짜 돈 벌기 어렵네.) 네, 네, 좋습니다. 유령께선 아랍인이고 또 억울하게 백인에게 살해당한 걸로 아는데 범인 이름은 기억하나요?

 

유령 : (득달같이 소리를 지른다.) 뫼르소! 뫼르소! 뫼르소!

 

초록불 : 아이, 깜짝이야. 네, 말씀이 가능하다는 걸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예 접신을 실패한 줄 알았습니다. 그럼 유령 분은 뫼르소라는 사람에게 살해당하셨군요. 살해 도구는 뭐였나요?

 

유령 : 권총.

 

초록불 : 단답형으로만 대답하실 수 있는 건 아니지요? 한 방에 즉사하셨나요?

 

유령 : 그 뒤에 네 발을 더 쏘았지. 불행의 문을 두드린 짧은 네 마디 소리처럼.

 

초록불 : 흠, 한 발 쏘고 난 뒤에 다시 네 발을 더 쏘았단 이야기군요. 왜 그랬던 걸까요?

 

유령 : 태양 때문이라고 했지. 내 단도에서 비친 빛이 그 자의 눈가에 비쳤어. 그 자는 그걸 마치 칼처럼, 내가 자기를 공격하는 것처럼 여겼지. 그래서 그 자는 나를 쏘았고 잠시 후에 네 발을 더 쏜 거야. ‘가갸’라고 말하면 ‘거겨’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초록불 : 그것 참 대단하군요.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인단 말인가요? 그런 식이라면 인류는 벌써 전멸했겠는데요? 태양은 매일 떠오른다고요. 그 전에는 뫼르소를 만난 적이 없었나요?

 

유령 : 만났지. 우리는 싸우기도 했어.

 

초록불 : 역시 그랬군요. 원한이 있었네요. 무슨 일로 싸운 겁니까?

 

유령 : 레이몽 때문이지. 창고 감독 레이몽, 그 자 때문이야.

 

초록불 : 창고 감독이라고요? 무슨 창고를 감독하는지요?

 

유령 : 여자 창고지. 놈은 여자를 뜯어먹고 살아. 그러니까 창고는 여자인 거지.

 

초록불 : 인간 말종이군요.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유령 :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내 누이동생이 바로 그 놈의 창고였어.

 

초록불 : 창고였다고요?

 

유령 : 레이몽의 정부였다고. 그 참 말귀도 되게 못 알아듣네.

 

초록불 : 죄송합니다. 레이몽은 당신을 죽인 뫼르소와 친구 사이였지요?

 

유령 : 그래. 레이몽은 걸핏하면 내 동생을 때렸지. 따지러 갔다가 나도 두들겨 맞았어. 아주 폭력적인 놈이지. 결국은 경찰이 올 만큼 심하게 때린 거야. 하지만 아무 벌도 받지 않았지.

 

초록불 : 어째서 그랬던 거지요?

 

유령 : 뫼르소 놈이 거짓 증언을 했거든. 그 놈은 내 동생이 먼저 무례한 짓을 했기 때문에 레이몽이 때린 거라고 했어. 여기 알제리는 식민지고 그 놈들은 프랑스인들이니 내가 아무리 항의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초록불 : 가만 있자, 그러니까 결국 뫼르소가 당신을 쏜 것은 기존의 원한 때문이었던 거군요.

 

유령 : (으르렁대듯이) 당연하지. 난 레이몽과 뫼르소가 해변으로 놀러가는 것을 알고 쫓아갔어.

 

초록불 : 상대가 둘이나 되는데 용감했군요.

 

유령 : (머뭇거리며) 그, 그런 건 아니고. 나도 친구를 불러서 같이 갔지.

 

초록불 : 아, 네.

 

유령 : 하, 하지만 상대는 셋이었어! 레이몽의 친구가 하나 더 있었지. 다행히 시비가 붙었을 때 뫼르소는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어. 하긴 나라도 그런 놈은 망이나 보라고 했겠지.

 

초록불 : 그럼 해변에서 2대 2로 싸움이 벌어졌던 건가요?

 

유령 : 당연하지! 내가 칼이라면 좀 쓰거든. 내가 칼을 휘둘렀어. ‘손에서 백색 광채가 뿌려졌다. 여태까지 이렇게 빠른 발도를 한 적은 없었다. 이렇게 빠른 몸놀림을 보이며 적의 검날 아래 파고든 적도, 이렇게 날카롭게 적의 가슴을 가른 적도 없었다. 순식간에 결판이 났다. 현란한 광망은 환상처럼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주위는 고요하고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초록불 : 저기, 잠시만요. 지금 그 말은 좌백 작가의 『대도오』에 나오는 구절 같은데요?

 

유령 : (미안한 기색도 없이) 흠, 들켰나…….

 

초록불 : 이보세요! 지금 그렇게 태연하게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라고요!

 

유령 : 유령한테 너무 따지지 마. 그럴 수도 있지, 뭐. 아무튼 난 멋지게 칼을 휘둘러서 레이몽의 팔을 찌르고 입을 찢어놓았지.

 

초록불 : 그러는 동안 뫼르소는 뭘 했나요?

 

유령 : 아무 것도 안 했어. 그냥 지켜보고 있었지.

 

초록불 : 그런데 레이몽을 찌른 게 당신이 분명한가요? 아니면 혹시 당신 친구가 한 일은 아닌가요?

 

유령 : 그런 자질구레한 일에 너무 신경 쓰지 마. 그건 뫼르소도 잘 모를 테니까.

 

초록불 : 아무튼 뫼르소는 당신을 죽인 일로 사형을 선고받지 않았나요? 그런데 당신은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서 영매를 통해서라도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가요?

 

유령 : (우울한 목소리로) 뫼르소는 나를 죽인 죄로 사형을 받은 게 아니야. 검사가 그렇게 말했지. ‘이 법정은 내일 가장 가증스러운 범죄, 부모를 살해한 범행을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이야.

 

초록불 : 아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인지요? 뫼르소가 자기 부모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었단 이야긴가요?

 

유령 : 아니. 뫼르소는 단지 자기 엄마가 죽은 날 집에 돌아와 애인하고 같이 잤을 뿐이야. 누구도 죽은 엄마를 또 죽일 수는 없지.

 

초록불 : 검사는 대체 왜 그렇게 이야기했을까요?

 

유령 : 검사는 사회 정의를 구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사람을 죽인 뫼르소에게 사형이라는 합당한 벌을 내리기에는 ‘나’라는 존재가 너무 미약했던 거야.

 

초록불 : 미약했다고요?

 

유령 : 그래. 검사는 심지어 뫼르소가 자기 엄마를 죽이진 않았더라도 결국은 죽인 것과 다름없으므로 중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지. 대체 나는 어딨는 거지? 뜨거운 태양 덕분에 총을 맞고 거기에 다시 네 발을 더 받아내야 했던 나는 그 재판정의 어디에 있었던 거냐고? (더 큰 목소리로) 아무도 나를 모르고 아무도 나를 알아봐주지 않아!

 

초록불 좀 진정하시지요. 결국 아무도 당신을 알아봐주지 않아서 화가 난 건가요?

 

유령 : (더욱 더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해서 영매의 목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조금은 잦아든 목소리로) 내가 가장 화가 나는 것은 뫼르소가 인생을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 작자는 누구나 인생이 별로 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단언하고 있어. 자기가 인생에 별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남도 그런 건 아니야. 누구나 서른 살에 죽는 것과 예순 살에 죽는 것을 동일하게 보지는 않는다고.

 

초록불 : 하지만 그건 뫼르소의 자기기만이 아닐까요?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사람은 그런 선택을 했을 겁니다.

 

유령 : 왜 세상은 그 자를 단지 나를 죽인 살인범으로 대하지 않는 거냐고? 함무라비 이래로 사람을 죽인 자는 자신의 목숨으로 그 죗값을 치러야 하는 법. 그 자가 자기 세상의 관습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자기네 사회의 인간관계, 자기네 사회의 종교 의식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세상의 삶으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이냐고!

 

초록불 :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지금 당신은 마치 뫼르소를 변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뫼르소의 재판에서 변호사는 뫼르소가 기존 사회 질서에 위배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증명하고 싶어 했지요. 하지만 어머니의 장례식 날 뫼르소가 오락영화를 보고 애인과 동침한 사실들은 외면해 버려서 변호에 실패하고 말았지요. 차라리 당신이 변호를 했다면 더 나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마치 신들의 나라인 아테네에서 신들을 모욕했다는 죄로 기소된 소크라테스의 재판처럼 보입니다. 소크라테스도 자신이 신들을 모욕하지 않았다는, 즉 기존 아테네 질서를 위배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노력했지요.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뫼르소는 심지어 자신을 변호할 기회도 잡지 못했군요.

 

유령 : 그 딴 건 내가 알 바 아니야! 대체 누가 ‘이방인’이었지? 뫼르소가? 진짜 이방인은 살해당하고도 잊혀버린 내가 아닌가! (영매가 부르르 몸을 떤다. 영매 본래의 목소리로) 아, 끝났어요. 이제 그만 가 주세요.

 

초록불 : 뫼르소는 사후 세계 따위는 믿지 않았습니다. 죽은 유령을 불러내 인터뷰를 한 것을 뫼르소가 안다면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네요. 오늘 인터뷰를 마칩니다.

 

 

카뮈와 〈이방인〉에 대하여

〈이방인〉은 1942년에 발표된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처녀작입니다. 이 소설은 북아프리카 알제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카뮈도 알제리 출신입니다. 알제리는 당시에 프랑스의 식민지였지요. 우리나라 식으로 이해한다면,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인이 조선 사람을 살해한 것과 같은 사건이지요. 재미있는 점은 <이방인>이 발표된 시점은 2차 대전 중이어서 프랑스가 독일 점령 하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카뮈는 레지스탕스에 가담해서 독일군에 저항했지만, 종전 후 알제리가 독립운동을 펼칠 때는 침묵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알제리에 있는 친척들의 안위를 걱정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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