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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여, 안녕

  • 작성일 2011-06-08
  • 조회수 774

 

[청소년 테마소설]

1. 관계와 소통_여섯번째

 

 

사춘기여, 안녕

 

듀나

 

 

 




 

올해 들어 네 번째였다. 내가 교장실에 끌려간 것은.

이번에도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교실 계단을 내려가던 나는 실수로 옆에서 올라오던 여자아이를 툭 건드렸다. 아이는 중심을 잡기 위해 팔을 들었고 그러다 들고 있던 가방이 난간 너머로 날아갔다. 내 잘못이었다.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여자아이는 괜찮다고 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내가 정상적인 애였다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하지만 나는 정상이 아니었고, 계단 주변에서 그 작은 충돌을 바라보던 아이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순간부터 나는 내가 동물원의 원숭이라도 된 것 같았다. 나는 고함을 지르고, 욕을 했고, 계단 주변을 돌아다니며 집어던지거나 걷어찰 수 있는 작은 물건을 찾았다.

소동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더 이상 무언가를 할 시간도 없었다. 지나가던 상급생 세 명이 나를 저지했고 5분 뒤 나는 교장실 나무문을 보고 있었다.

“왜 그랬니.”

교장이 물었다.

“화가 났어요.”

다른 어떤 대답이 가능했을까.

 “그린이에게 사과할 거니?”

“네.”

“별일 아니었으니 받아줄 거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곤란해. 방과후 분노 관리 훈련은 계속 받니?”

“네, 일주일에 두 번 나가요.”

“도움이 되는 거 같아?”

“아뇨.”

“왜?”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계속 듣는 것 같아요. 나가자마자 화를 낼 핑계만 찾아요.”

교장은 웃었다. 내 서툰 비유가 마음에 들어서였는지, 훈련의 무용성이 입증되어 흐뭇해서였는지, 난 모른다.

“언제까지 이렇게 화만 내며 살 수는 없어. 이 시기는 굉장히 중요한 때야. 다른 방법을 알아볼 생각은 없니?”

“왜 아니겠어요.”

“아버지께서 계속 반대하셔?”

“네.”

“언제 학부모 면담을 한 번 갖자. 내가 다시 한 번 설득해 볼게. 이제 가도 좋아. 그린이랑 친구들에게 사과하는 거 잊지 말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문을 열다 말고 교장에게 물었다.

“교장 선생님 때는 어떠셨나요? 이 시기요. 사춘기 때요.”

“난장판이었지. 옛날 학교 영화 같았어.”

“재미있었나요?”

“글쎄,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지.”

“요새 아이들이 손해보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교장은 얼굴을 찡그렸다.

“미쳤니?”

 

아빠는 화를 내지 않으려 했다. 훈련을 나보다 더 성실하게 받았던 아빠는 쥐어짜거나 집어던질 물건 없이도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러지 못했다면 실망했을 거다. 이 모든 소동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데.

“왜 조금만 더 참지 않았니. 너도 훈련을 받았잖아. 바로 내 옆에서.”

“그냥 터지는 걸 어떻게 해.”

“그래도 참아야지. 사춘기 핑계를 대지마. 나도 다 겪어봤어.”

“하지만 아빠 때랑 다르잖아! 우리 학교에서 그딴 걸 겪는 건 나뿐이라고!”

“왜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질 않는 거냐? 넌 아무런 시술도 없이 그 학교에 들어갔어. 지금까지 잘하고 있고.”

“아냐, 난 잘하고 있지 않아! 잘하고 있다면 왜 교장실에 끌려가는 건데!”

나는 고함을 지르며 내 방으로 들어가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세게 닫았다. 침대에 엎어져 주먹으로 매트리스를 때리는 동안, 나는 문득 아빠가 이 모든 소동에 흐뭇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먹질을 멈추었다. 이딴 걸로 아빠를 만족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집을 나서기 전, 교장과 상대하기 위해 거울 앞에서 열심히 연습을 했다. 자유의지, 존엄성, 선험적 권리와 같은 굵직굵직한 용어들이 등장하는 길고 비장한 연설이었다.

순진하게도 아빠는 교장이 학부모를 상대하는 데에 이력이 난 전문가라는 사실을 계산에 넣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교장실에 들어간 뒤부터, 교장은 아빠가 연설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않았다. 교장이 이틀 전 소동을 가볍게 넘기고 내 학습 태도를 칭찬하자 아빠는 당황했다. 학교의 파시즘적인 억압을 공격하는 연설 초반 부분이 날아간 것이다. 그 틈을 노려 교장은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시술 이야기를 슬쩍 꺼냈다. 아빠는 이 틈을 노려 버럭 고함을 질렀는데, 내 생각에 그건 교장이 던진 떡밥을 문 것에 불과했다.

“아까 내 아들이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하지만 그 정도로 만족하실 수 있으세요? 연우도 그 정도로 만족할까요? 지금의 핸디캡을 안고도 이 정도까지 왔다면, 연우는 지금보다 훨씬 잘할 수 있어요.”

“핸디캡이라고요? 어떻게 정상인 게 핸디캡입니까? 우리도 어렸을 때는 다 연우 같지 않았습니까! 그 때 우리가 비정상이었나요? 장애인이었나요?”

“시대가 바뀌면 기준도 달라집니다. 연우는 지금 정상이 아니에요. 우리학교에서 시술을 받지 않은 유일한 학생이니까요. 이게 연우의 교우관계와 학습성취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아시잖아요.”

“세상이 비정상인 겁니다. 어떻게 부모들이 아이들 뇌를 갈라 공부하는 기계로 만드는 세상이 정상입니까?”

“그래요? 생각해보죠. 삼십 년 전만 해도 여자들은 한 달에 며칠 동안 생리에 시달리는 게 정상이었죠. 지금은 매달 먹는 에메네롤 한 알로 모든 고생이 끝납니다. 그럼 밖으로 나가서 길가는 여자들에게 더 이상 에메네롤에 의지하지 말고 정상인이 되라고 외쳐보시죠.”

나는 속으로 웃었다. 에메네롤과 월경 이야기를 꺼내면 남자들은 할 말이 없다. 아빠라고 예외는 아니다.

“시술은 아이들을 좀비로 만들지 않아요.”

교장은 그 틈을 노려 잽싸게 공격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연우의 꿈과 가능성을 막는 온갖 방해물을 제거해주는 거죠. 시술은 지능을 높여주지 않아요. 단지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돕는 거죠. 시술이 개발되기 이전엔 학교 수업에 집중하고 서너 시간 동안 숙제를 하는 아이는 의지력이 강한 소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술받은 아이들 모두에게 그건 당연한 일이죠. 아이들의 환경은 어떤가요? 시술이 보편화된 이후, 폭력사건은 76퍼센트, 성폭행은 81퍼센트가 줄었습니다. 비속어와 욕설의 사용이 65퍼센트로 감소하는 대신 평균 사용 어휘는 176퍼센트가 늘었고요. 아이들은 더 빨리 배우고 더 능력 있는 직업인이 됩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나요? 요새 단순 노무직이 어디에 있습니까?”

“연우는 그런 것 없이도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런 거 없다고 연우가 폭력학생이거나 욕쟁이인 건 아니잖습니까. 저번 일도 사고였고요. 사과도 했다면서요.”

“물론 연우는 불량학생이 아닙니다. 하지만 왜 아닐까요? 그건 그동안 청소년 문화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연우가 불량학생이 되고 싶어도 따를 문화가 없죠. 요새는 아무도 그런 걸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청소년기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아무리 그게 불편하고 거북하다고 해서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을 조작하는 것 따위로 그 귀중한 시기를 잃는다는 건 …… .”

“네, 여드름, 혼전임신, 학교 폭력, 집단 따돌림 같은 것들도 다 어른이 되기 위해 겪어야 하는 귀중한 것들이겠죠.”

 

아빠는 설득되지 않았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교장도 아빠를 설득할 생각 따위는 없었을 거다. 아빠의 공격을 막고 자신의 정당성을 세우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 다음엔 다른 계획이 있을 거다. 그런데 그게 뭘까.

아빠는 차를 모는 동안 툴툴거리면서 욕을 씹었다. 아빠가 어린 시절 썼던 욕과는 다른 것이었다. 아빠의 소설이나 시나리오에 나오는 욕도 당시 아이들이 했던 욕이 아니었다. 아빠는 지금의 독자들과 관객들의 감수성과 어휘 수준에 맞추어 욕을 발명하고 개량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빠의 주인공들은 틱 장애를 앓는 환자들처럼 보일 거다. 아빠가 그리는 시술 이전의 세계는 톨킨의 중간계처럼 판타지의 영역이었다.

혹시 아빠는 정말로 그 시절이 그랬다고 믿는 게 아닐까. 그런 이야기를 쓰다 보니 자기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믿는 게 아닐까. 내가 시술을 받지 않고 버티면 아빠가 쓴 이야기의 터프한 주인공들처럼 될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옛날 교회 건물에 도착했다. 탑 위의 십자가를 떼어내고 전국 자유인 연합회의 본부로 쓰이고 있는 곳이었다. 이 교회의 마지막 목사였던 김준 아저씨와 아빠는 모임의 공동 우두머리였다. 몇 십 년 전이면 두 사람은 상종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빠는 타협을 모르는 무신론자였고, 김준 아저씨 역시 자신의 신앙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와 사회가 사람들에게 시술을 강요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그들을 하나로 묶었다.

우리가 여기서 하는 일들은 교회였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준 아저씨는 신 대신 자유와 자유의지에 대한 연설을 했고, 자칭 자유인들의 간증도 있었다. 협회를 지속시키기 위해 모금도 했다. 가끔 아직도 남아 있는 교회의 분위기에 넘어가 666이나 기타 묵시록의 모호한 문장들을 시술과 연결시키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행위는 권장되지 않았다. 김준 아저씨는 목사를 그만둔 뒤에도 여전히 독실한 신자였지만 종교적 편향이 얼마나 쉽게 이 모임을 망가뜨릴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전자연(전국 자유인 연합회)이 시술 개발 이후 급속도로 위축된 종교의 영향력을 되찾기 위해 만든 트로이의 목마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김준 아저씨가 아빠를 끌어들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빠는 그날 저녁 김준 아저씨를 대신해서 연설을 했다. 아빠는 그날 교장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고, 교장의 말과 태도에 넘어가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반박을 여기서 터트렸다. 아빠는 자유인에 대한 정부의 억압이 점점 심해지고 있으며 곧 시술은 의무화가 되어 전 세계의 자유인들은 말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쯤 되면 열광적인 환호가 뒤따랐을 것 같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빠는 그리 좋은 연사가 아니었다. 아빠의 목소리는 생기가 없었고 연설은 종종 방향을 잃었다. 그리고 아빠의 연설을 듣는 사람은 기껏해야 스무 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들은 모두 생업 때문에 피곤해 보였고 아빠의 연설에 집중할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시술이라도 받았다면 아빠 연설을 훨씬 잘 들어주었을 텐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근처 쇼핑몰에서 그린이를 만났다. 전에는 몰랐지만 저번 사고 이후 나는 그 애의 이름과 얼굴은 안다. 먼저 아는 척을 한 건 그린이였다. 민망했지만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내가 어색하게 손을 흔들자, 그 애는 나에게 다가왔다.

“여사님과 학부모 면담 있었다며. 어땠어?”

그린이가 물었다. 그 애는 어제 일에 어떤 감정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아마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있었다고 해도 불필요하거나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지워버렸을 것이다.

“그럭저럭.”

내가 대답했다.

“시술 안 시켜주신대?”

“응.”

“그래도 잘할 수 있을 거야. 넌 지금까지 잘해왔잖아.”

“힘들어.”

“그건 어떤 기분이야? 하고 싶은 게 하기 싫은 거 말이야. 그러니까 넌 수학을 좋아하고 잘하고 싶잖아. 하지만 종종 공부하기 싫어 미칠 지경이라며. 그게 어떻게 가능해? 어떻게 좋은 게 싫은 거야?”

“나도 몰라. 그냥 가끔 집중이 안 돼. 자전거로 비포장길을 달리는 거 같아. 앞으로 가고 싶어도 길이 울퉁불퉁해서 가끔 멈추어야 하고, 가끔 장애물이 길을 막아서 치워야 하고. 그러다보면 자전거 같은 건 포기하고 다른 거 하고 싶고.”

“그게 좋을 때도 있어?”

“왜 그걸 나에게 물어? 옛날 소설이나 읽어.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거. 책에 더 잘 나와 있는데.”

“도스토예프스키는 대답을 안 해주잖아.”

그린이는 말을 끊었다. 더 이상 이야기를 끌다간 다시 내 신경을 건드릴 게 빤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건 옳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 기형아로 사는 것이 어떤지 알려주는 가이드 노릇을 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쇼핑몰에서 나와 계속 걸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내 생각이 방향 없이 흐르도록 내버려두었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라스콜리니코프에 대해서 생각했고 시술의 시조였던 범죄자 행동 교정 치료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애완동물에서부터 전과자들에 이르기까지 시술의 도움을 받는 모든 생명체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직업 범죄자들의 70퍼센트 이상이 기독교 신자라는 아이러니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나는 아빠의 논리에 대해 생각했고, 교장의 논리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에게는 무슨 논리가 있는지 생각했다.

나는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밤 8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거의 다섯 시간을 걸었던 것이다. 나는 셀을 켜고 교장의 셀에 접속했다. 교장이 응답을 하자 나는 인사도 하지 않고 잽싸게 말했다. “선생님, 도와주세요.”

 

내가 그 뒤에 저지른 일은 내가 아빠에게 가할 수 있는 최악의 폭력이었다. 나는 청소년 보호법을 내세워 아빠를 고소했다. 나는 아빠가 자신의 종교적 믿음 때문에 나에게서 제대로 교육받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박탈했다고 주장했다. 나는 내가 늦기 전에 시술을 받아 잠재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은 뉴스거리였다. 이것은 더 이상 아빠와 나 둘만의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시술의무화로 가는 길을 막는 마지막 장애물을 제거하는 과정이었다.

아빠와 김준 아저씨는 최선을 다했지만 성과는 하찮았다. 아빠는 자신이 무신론자라고 선언했지만 우리 측 변호사는 자유의지에 대한 아빠의 맹목적인 믿음이 종교와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증명했다. 우리는 소위 정상인으로 남아 있는 것 때문에 나와 같은 입장의 아이들이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도 증명했다. 나에게 스스로의 정신과 육체를 지킬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더 쉬웠다. 내가 이긴 건 당연한 결과였다. 하긴 시술받지 않은 자유인 변호사를 고용해 여기까지 끈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것인지도 모르지.

 

시술을 받는 날 아침, 나는 아빠와 만났다. 재판 기간 동안 나는 교장이 마련해준 청소년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었다. 감시 카메라와 기계 보초가 곳곳에 서 있는 면회 장소는 은근히 감옥처럼 보였다.

“끝나면 집에 돌아올 거니?”

아빠가 물었다.

“응. 그러려고 하는데.”

“잘 됐네.”

“아빠는 잘 지내?”

“잘 못 지내지. 네가 김준 아저씨랑 나를 어떻게 망쳐놨는지 아니? 전자연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 이 가롯 유다 같은 녀석아.”

“웬 성서 인용? 그리고 아빠도 그게 얼마 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잖아. 일 때문에 피곤한 사람들을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에 잡아두고 뭐하는 짓이야? 전자연이 없어졌으니 그 사람들도 저녁엔 좀 쉬겠지. 이제 눈치 안 보고 시술을 받을 수도 있고.”

“그 잘난 시술을 받으면 인생이 다 풀릴 것 같으냐? 넌 지금 네가 무얼 놓치고 있는지 몰라.”

“아빠도 내가 무엇을 얻는 건지 모르는 건 마찬가지잖아.”

아빠는 얼굴을 찌푸렸다.

“넌 벌써부터 그 망할 시술을 받은 것처럼 말하는구나.”

 

시술은 간단했다. 예전에는 두개골에 구멍을 내야만 했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지금은 척추에 주사 다섯 대를 맞는 것으로 충분했다. 단지 주사액과 함께 들어간 나노봇들이 내 뇌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 머리 속에 들어간 나노봇은 최신식이었고 나는 그 시술을 받은 환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꼼꼼한 관리를 받았다. 나는 하루에 두 번 정신검사를 받았는데, 그 중 일부는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미친 짓처럼 보였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가공의 동물 사진을 보여주며 그 동물의 웃음소리를 흉내 내라는 요구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물론 나는 지금 그 테스트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지만.

그러는 동안 나는 내 뇌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인식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사고의 명료화였다. 이건 마치 옛날 흑백 필름 영화가 고해상도 디지털 이미지로 옮겨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생각은 훨씬 빨리 정리가 되었고 언어 이해력도 빨라졌다. 그리고 그를 통해 얻은 여분의 시간 동안 나는 다른 생각들을 만들어냈다.

더 놀라운 건 나에게 새로 부여된 의지였다. 내적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를 훨씬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나는 여전히 ‘오늘 같은 화창한 날에는 놀러갔으면 정말 좋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이 생각을 달콤한 환상으로 밀어 넣은 뒤 숙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건 내 주변 아이들에게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나를 동물원 원숭이처럼 본 것도 이해가 됐다.

 

한 달 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여전히 새 영화 시나리오 작업 중이었다. 이번 재판 이후, 자칭 자유인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지만 아빠의 일감이 떨어질 걱정은 없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시술 이전의 이야기를 즐겼다. 그들은 아빠의 작품을 동물 다큐멘터리나 서커스처럼 소비했다. 그들이 직접 겪을 필요 없는 야만의 스펙터클.

나는 짐을 내려놓고 저녁을 준비했다. 부엌을 보아하니 그 동안 아빠가 무엇을 먹었는지 알 만했다. 나는 사방에 버려져 있는 패스트푸드 포장과 깡통을 치우고 시장에서 사 가져온 야채와 단백질 큐브로 간단한 저녁 요리를 만들었다.

아빠는 투덜거리면서 내가 만든 음식을 먹었다. 아빠는 이 요리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고 척 봐도 병원 냄새가 나는 건강식이라고 쏘아붙였다. 아빠는 먹는 동안 거의 고함을 질러대며 새로 쓰는 시나리오 이야기를 했는데, 거기에 나오는 악당 둘이 교장과 나를 모델로 했고 그걸로 나를 자극하려 한다는 게 너무 빤해서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내가 반응하지 않자 아빠는 심술이 나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아빠와 같이 사는 동안, 나는 앞으로도 이런 일을 계속 참고 버텨야 할 것이다. 이해해주어야지. 이 집에 살고 있는 남자들 중 한 명은 인류 최후의 사춘기를 겪고 있으니까.

 

 

 

 

작가소개 / 듀나(소설가)

 

 

1994년 사이버 SF작가로 창작 활동을 시작. 1996년 잡지 〈이매진〉에 판타지, 미스터리, 호러 등 단편들을 발표. 1997년~1998년 〈씨네21〉에 칼럼 「듀나의 채팅실」을 연재. 지은 책으로 『사이버펑크』(공저, 1995), 『나비전쟁』(1997), 『면세구역』(2000), 『태평양 횡단특급』(2002), 『스크린 앞에서 투덜대기』(2001), 『상상』(공저, 2005), 『필름 셰익스피어』(공저, 2005), 『대리전』(2006), 『용의 이』(2007) 등이 있다.

 

홈페이지 : 듀나의 영화낙서판(http://djuna.cine21.com/mov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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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27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_ 제4회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이성아 소녀는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물방울이 맺힌 소녀의 머리카락에서는 샴푸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고, 고양이도 막 목욕을 마친 듯 털이 보송보송했다. 보송보송한 털의 유혹이 너무나 강렬해 나도 모르게 쓰다듬을 뻔했다. 소녀는 나와 또래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의 사람들처럼 어색했다. 아파트 하수구 관이 막혔는데, 지금은 밤중이라 공사를 할 수 없으니 아침에 공사할 때까지 물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지구 반대편의 언어라도 되는 듯 나를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소녀는 나보다는 고양이와 더 잘 통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는 영물이야. 공연히 곁을 주면 나중에 해꼬지나 당한다니까.” 아줌마가 내게 하던 말이다. 고양이는 소녀의 품에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고양이에게조차 수모를 당한 듯 명치끝이 짜르르 아려왔다. 나에게도 고양이가 있었다. 높은 담을 사뿐히 뛰어올라 얼음사니처럼 우아하게 걸어 다니던 고양이에게 나는 다미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두었다가 다미에게 주면 아줌마는 소리를 꽥 질렀다. “고양이 밥 주지 말란께. 야가 뭔 똥고집이래.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까이.” 식당 알바는 힘들었다. 처음엔 청소하고 설거지나 하면 된다고 하더니 술손님들이 많으면 서빙에서부터 고기 잘라 주는 일까지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었다. 취한 남자들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아래위를 훑어보거나 손이며 엉덩이를 쓰다듬으려고 할 땐 온 몸의 솜털이 다 곤두서고 구역질이 나오려고 했다.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것 같은 아줌마의 목청이었다. 내 평생 목소리가 그렇게 큰 사람은 처음이었다. 고작 17년밖에 안 산 내가 평생이란 말을 쓰긴 좀 그렇지만, 아마 평생을 곱절로 살아도 그렇게 목청이 큰 사람은 만날 것 같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러댔다. 간혹 뭔가 날아가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깨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양은냄비나 플라스틱 바가지, 물통이나 양푼, 철판 뒤집개나 슬리퍼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살얼음판 위를 걸어 다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일했다. 수돗물을 세게 틀면 안 되고, 설거지할 때 개수대 밖으로 물이 튀면 미끄러지므로 안 되고, 식탁은 젖은 행주로 닦은 다음 반드시 마른 행주로 닦아야 하고, 기름 묻은 그릇은 오래 두면 안 되고, 안 되는 것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걸을 때 엉덩이를 흔들어도, 무표정해도, 큰 소리로 웃어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렀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화낼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많이 나온 전기세와 갑자기 오른 임대료, 갑자기 쏟아지는 비, 햇빛이 들이치는 창, 똥 마려운 것처럼 끙끙거리는 개새끼, 시끄러운 오토바이소리, 그리고 뭘 해도 마음에 안 드는 생선 구잇집 아줌마. 소정은 아줌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 웹관리자
  • 2012-10-16
단 한 번의 기회

청소년 테마소설 성취와 좌절_제4회 단 한 번의 기회 이명랑 자식을 바꿀 수 있을까? 나라면…… 절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아빠, 엄마라면? 나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본다. 운동장을 둥글게 에워싼 광장식 계단을 꽉 메운 사람들. 대부분 오늘 테스트에 임하는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다. 열심히 자녀들을 응원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나는 아빠, 엄마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 차가운 은빛으로 빛나는 안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빠다. 아빠 옆으로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도 앉아 계신다. 컥, 숨이 막힌다. 우리 가족이 앉아 있는 곳을 확인하자마자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혀온다. 흰 현수막 위에 금빛으로 화려하게 새겨진 글자들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VIP. 금빛으로 빛나는 VIP라는 글자들 옆으로 봉황 두 마리가 이제 곧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듯이 날개를 펼치고 있다. 그 활짝 편 날개 옆에 우리 가족은 앉아 있다. 비좁은 자리에 앉아 서로 어깨를 부대끼며 자식들을 응원하다 말고 어른들은 가끔씩 VIP석을 곁눈질한다.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하지만 이따금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훔쳐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야 VIP석에 앉을 수 있는 거야? 아들아! 봤지? 네 눈에도 저기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너만이라도 제발 저 자리에 앉아다오! 사람들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표들과 느낌표들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하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옆에서 아빠, 엄마보다 더 태연하게 발밑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바로 내 가족이다. 어른이 되면 나도 저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앞으로도 나는 우리 가족의 일원일 수 있을까? “자! 전원 출발선 앞으로!” 사회자가 붉은 깃발을 번쩍 들어올린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수많은 아이들이 출발선 앞으로 달려간다. 나도 질세라 뛰어간다. 시작이 절반이다, 라고 아빠는 늘 말한다. 맞는 말이다. 시작에서부터 뒤처지면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나는 내 앞을 가로막고 달리는 아이들 두, 세 명을 어깨로 밀치며 앞으로 뛰어간다. 누군가 내가 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 어깨를 밀치고는 빠르게 내 앞을 스치고 달려 나간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키가 큰 녀석이다. 누가 너 따위에게 질 줄 알고! 나는 어금니를 악문다. 간신히 내 어깨를 치고 달려간 녀석보다 한 발 앞서 출발선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 정중앙이다. “모두 집중! 첫 번째 미션이다! 참가 인원은 모두 100명, 카트는 50개! 먼저 뛰어가 카트를 잡는 사람만이 장을 볼 수 있다!” 순식간에 사회자의 설명이 끝났다. 사회자는 번쩍 들어 올렸던 붉은 깃발을 밑으로 내리고 출발선 앞에 서 있는 아

  • 웹관리자
  • 201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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