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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드 수

  • 작성일 2010-11-06
  • 조회수 758


블랙 아이드 수


김   연

미국 교육을 직접 몸으로 겪은 사람은 나와 범식인데도, 한국 사람들만 만나고 우리말만 쓰고 한국 음식밖에 먹지 않았는데도 식인종과 현 여사는 찰떡궁합이 되어 1년간의 경험을 온갖 양념으로 버무려 볶고, 데치고, 튀기고, 무칠 것이다. 그들은 알 리가 없다. 날마다 학교에서 내가 속으로 울고 있었다는 것을.

내 이름은 문수정. 나이는 열일곱. 키 158cm, 몸무게 55Kg. 직업은 학생. 가족은 부모와  남동생. 최근 실연당함. 
아빠 문오금은 식인종이다.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다름 아닌 가족. 담배와 술에 절어 평소엔 입맛이 없다가도 가족들을 잡수실 땐 그리도 구미가 동하는지 책상 위에서 눈빛이 활활 타오른다. 직업은 신문 기자지만 칼럼을 여기저기에 쓰고 있다. 원고 마감이 돌아오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칼질해 뼈를 발라내고 살을 저며 킁킁 거리며 맛을 본다. 별짓을 다해도 소용이 없을 땐 깊은 한숨으로 우리 곁을 배회한다. 그러다 우리와 눈이 딱 마주치는 순간 입맛을 쩝 다신다. 우린 또 그만 걸려든 것이다. 그리하여 초등학생 시절 학교 앞에서 파는 노란 병아리를 사 달라고 삼일간 울었다 이틀 만에 관리 소홀로 죽이고 만 내 이야기나, 턱이 거뭇거뭇 해지기 시작하던 어느 이른 아침 태어나 처음으로 쭈그려 앉아 제 속옷 빨래를 하다 엄마한테 들킨 남동생의 사연은 식인종 아버지가 맛있게 뜯어먹은 우리의 살들이다. 
“너, 아직도 그 짓이니?”
누가, 무슨 짓을 여태 하고 있는가 싶어 고개를 휘휘 둘러본다.
“너 말야, 너! 여기 너 말고 또 누구 있니?”
“엄마.”
“그 눈두덩이 시커멓게 하는 화장도 오늘로 끝인 줄 알아!”
엄마 현모란은 이름 그대로 전형적인 현모양처다. 삶의 낙을 오직 남편과 자식들 관리에 두고 사는 이 시대엔 찾아보기 힘든 귀한 존재이다. 오죽하면 스모크 화장이란 것도 모를까.
“왜 또 못 잡아먹어서 난리야?” 
아빠뿐만이 아니라 실은 온 집안이 식인종이다. 바닥에 떨어진 아이라이너를 집어 들어 눈으로 가져간다. 숨을 씩씩거리며 몇 번 힘을 주었더니 거울 속의 나는 영락없는 팬더다. 만족스럽다.
화장을 끝냈으니 다음은 의상. 어젯밤 마지막으로 짐을 꾸리면서 해결이 다 된 줄 알았는데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옷들을 보니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린다. 회색 트레이닝 바지에 민무늬 면 티셔츠. 장시간 비행기 여행에는 최고의 차림이지만 영 개운치가 않다. 시카고 공항에서는 비행기도 갈아타야 하는데…… 비행기 승무원들처럼 타이트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공항 로비를 걷지는 못할망정 무릎이 비어져 나오는 헐렁한 트레이닝 바지라니.
구석에 동그마니 서 있는 짐 가방을 열어젖힌다. 총 천연색이다. 엠앤엠 초콜릿상자처럼. 오렌지 패딩 점퍼와 핑크 후드티 사이로 보랏빛이 눈을 찌른다. 두터운 겨울옷 틈새에 얇은 여름옷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했다지만 실은 숨겨 놓은 거다. 내 눈에 다시는 띄지 않도록. 가방을 탁 덮고 돌아선다. 뒤통수가 뜨겁다. 보라색 탱크 탑이 날 노려보고 있다. 네 자신을 그만 속이고 어서 날 여기서 꺼내 달라며.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아주 오랜만에.    
“너, 여태 뭐하고 있는 거야? 얼른 해라, 얼른!”
“알았어, 알았다고.”
대답은 시원스럽게 했지만 다리는 움직이질 않는다. 창밖의 푸른 잔디밭에서 시선을 방으로 돌린다. 지난 1년간 문수정의 방이라 불렸던 곳. 중고 가구점에서 사 왔던 책상과 침대는 다시 그곳으로 보내졌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가방만이 날 지켜보고 있다. 담배 연기를 들여 마시듯 심호흡을 하고 가방을 연다. 눈을 감고도 그 옷은 찾을 수 있다. 
“그 옷 아직도 안 버린 거야? 버리고 가라, 아니면 어디 재활용 매장에 기증하든지…… 너, 이제 다시는 그런 옷 못 입어.”
보라색 탱크 탑을 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 현 여사가 어김없이 끼어든다.
“마지막으로 입고 버리지 뭐.”
가슴의 깊은 골짜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과도하게 풍만해 짜증스러웠던 내 가슴은 여기서는 ‘빈약’한 축에 속했다. 이제 다시 머리쓰개를 써야만 외출이 가능했던 조선시대 여자들처럼 난 가슴을 여미고 다녀야 한다. 생각해보니 짜증스러웠던 건 내 가슴 사이즈가 아니라 사람들, 콕 집어 말한다면, 남자들의 시선이었다. 60분의 1초 동안 훑고 판단하고 기분 더럽게 하는 재주라니.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 애는 잘못이 없는데…… 담배 생각이 다시 한 번 간절해진다. 그 애의 잘못이 아닌데…… 내 가슴 위로 그 애의 럭비공 같은 머리가 보인다. 꿈틀거리던 그 애의 검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그리고 그 검은 머리카락보다도 더 어둡게 변하던 그 애의 표정이.
 
내 공식 이름은 문수정이지만 나는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내가 많은 가면을 가지고 다니며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다른 사람으로 변하듯이. 그 중 하나가 제아다. 문제아. 문제아들이 다 그렇듯이 나도 학교에 가기 싫었다. 학교가 다 싫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싫은 건 아침마다 교문 앞에서 이뤄지는 용의검사. 치마 좀 짧게 입었다고, 머리에 약간 물을 들였다고, 그 바쁜 와중에 얼굴에 살짝 공을 들였다고 그렇게 벌을 서고 맞아야 되는 건지 내 머리론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때리는 부위도, 누구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지만, 손바닥이라면 또 모를까, 중년의 남자 선생들이 딸 같은 우리들을 매질하는 부위가 엉덩이다. 어떤 사람은 손톱만 때리기도 한다. 난 그를 Mr. 변이라고 불렀다.
중학교는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바로 그 Mr.변이 중3 때 담임이었고 그를 비롯한 몇몇 변 선생들이 주위에 포진하긴 했지만 내 숨통을 끊어놓지는 않았다. 공부야 늘 하라는 거지만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인 거다.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로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려주면 되는 거다.
고등학교 입학식 날 난 운명을 예감했다. 이 강당에서 이 괴상망측한 교복을 입고 졸업식은 하지 못하리란 걸. 그 훨씬 전에 난 이 곳에서 벗어나 있으리란 걸. 예감은 언제나 빗나가는 법이 없다. 그리고 예상보다도 빨리 그날은 왔다.
4월이었다. 몸이 근질근질하던 내가 한 달은 어떻게 견뎠는지 신기하지만 앞 다투어 꽃들이 피어나던 봄날이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애들이랑 벚꽃축제에 놀러갔다. 신나게 놀고 다음날 학교에 갔는데 담임이 나만 부르지 않았다. 교복치마를 풀썩거리며 엉덩이를 맞은 것보다, 손톱이 아릿한 통증에 시달리는 것보다 더 기분이 나쁘고 아팠다. 내 머리론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사항이었지만 이해를 해보려고 애를 써보았다. 담임한테 호출당해 매타작을 당한 애들과 나의 차이점에 대해. 내 성적이 그다지 나쁘진 않다는 것. 하지만 나보다 훨씬 공부를 잘하는 애도 불려가 호되게 당하고 돌아왔다. 그 애와 나의 차이가 있다면 그 애의 부모님은 학교 앞에서 분식집을 하고 나의 아빠는 신문 기자란 사실뿐이었다. 아빠 문오금은 불의와는 타협을 모르는 사람이다. 칼럼 마감이 돌아오면 호시탐탐 내 학교생활을 탐문 수사해 학교 폭력 문제를 즐겨 다뤄온 사람이다. 아버지 직업이 처벌의 차이를 가져온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지만 물증이 없었다. 그래서 난 더 비뚤어져야 했다. 우정을 지키기 위해.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
내가 과학 수사에 온몸을 바쳐 헌신하느라 치마 길이가 점점 짧아져 가고 있을 때 내 동생 문범식은 이름만큼이나 범생스럽게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침마다 교문 앞에 학생 주임과 나란히 서 누나 같은 애들을 걸러내는 선도부 요원으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로의 학교는 달랐다. 일반적 가정들이 딸들은 착하고 아들들은 속을 썩이기 마련인데 우리 집은 어떻게 된 게 딱 정반대라고 현 여사는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곤 했다. 
내 살신성인 정신은 점점 더 그 수위가 올라갔다. 담배를 피웠다. 아니 담배를 배웠다. 애들이 자신의 이런저런 비밀을 털어놓는데 중학교 때 담배는 다 마스터했단다. 난 어느 쪽이냐 하면 담배라면 영 질색인 쪽이었다. 담배도 없이 기자 노릇을 하는 천연기념물이란 놀림이 동료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로 우리 집은 아빠조차도 담배를 피질 않는다. 하지만 의리와 우정을 위해선 할 수 없었다. 애들이랑 담배를 피우다 들켰다. 이번엔 제대로 사고를 친 거다. 최소 근신이나 정학은 될 사항이었다. 그런데 현장을 포착한 미술 선생이 이 사건을 학생 주임한테로 넘기질 않고 담임한테로 넘겼다. 한꺼번에 걸렸으니 담임도 이번엔 할 수 없었다. 반성문을 쓰라고 했다. 매질도 하질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담실을 빠져 나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한마디 했다. “아버지 얼굴을 생각해라.”
입이 쌍시옷을 만들어냈지만 소리는 밖으로 새나오지 않았다. 이건 Mr. 변 통치시절보다  훨씬 치욕적이었다. 또 다른 Mr. 변이었다. 이번엔 변태가 아니라 배설물. 부모의 성분으로 자식을 판단하다니…… 시대 구분이 헷갈리는 국사 선생이라면 모를까 민주시민 교육의 일익을 담당해야 할 사회 선생이.
Mr. 변의 조언대로 아버지 얼굴을 생각하기로 했다. 더 이상 그의 얼굴을 욕되게 하지 말자 굳게 결심했다. 학교를 떠나기로 했다. 남들은 나를 문제아라고 하지만 문제아가 되려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닌 건 아니었다. 강요와 통제가 싫었을 뿐이고 자유와 개성을 사랑했을 뿐이다.  
식인종에게 도움을 청했다. 학교를 자퇴하겠다고. 현 여사는 물어보나마나였다. 매번 적중하던 예감이 이번엔 완전히 어긋났다. 식인종은 내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학교는 학문만 배우는 곳이 아니고 사회생활의 기초를 배우는 곳이라며, 사회에 나오면 훨씬 힘든 데 그때는 어쩌려고 그러냐고. 너의 고민도 이해하지만 일단 더 지켜보자고. 한마디로 회유책이었다. 식인종을 향한 내 기대가 와장창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식인종은 고등학교를 군사독재시대에 다녀 지금보다 훨씬 폭력적이고 주입식 교육을 받았지만 그 아찔했던 경험으로 이렇게 평화를 사랑하는 민주시민이 외려 되질 않았냐며 그답지 않게 이상한 논리를 펼치기까지 했다. 간단히 요약하면 그는 학부모 자퇴동의서에 도장을 찍어 줄 수 없다는 소리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식인종만은 내 편이리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그는 내 편이 아니고 어른 편이었다.
그 뒤로 나는 막 나가는 잘 나가는 애가 되었다. 식인종은 칼럼 마감이 돌아와도 더 이상 내게 현미경을 들이대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눈에 훤했으므로. 교복치마는 무릎 위로 한참 올라갔고 방학 때는 노란 머리가 개학하면 까만 머리가 되었고 옷에서는 담배 냄새가 훅 끼쳤으므로. 그러나 야단은 치지 않았다. 설교도 하지 않았다. 체벌은 우리 집 사전엔 존재하지 않으므로 사랑의 매 따위도 없었다. 다만 식인종의 한숨처럼 들리는 심호흡 횟수가 늘어갔을 뿐이다. 그건 현 여사도 마찬가지. 하루라도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 현부인이 순한 양이 되었다. 대신 내 옷을 자주 빨아 깔끔하게 다림질을 해 놓았고  방에는 레몬향이 나는 방향제를 심어 놓았다. 언제부턴가 식탁 위와 식인종의 차에는 목에 좋다는 허브캔디가 떨어지질 않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려 했다. 우리들은 너의 적군이 아니라 아군이라는 걸. 그리고 그들은 나를 위한 다른 준비를 은밀히 진행 중이었다.   
‘인 서울’이냐 아니냐를 결정한다는 고1 겨울 방학을 적당히 놀면서 보내고 난 뒤 고2가 되었다.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난 점점 유령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번 담임은 중년 여자. 재수 없기가 두 Mr. 변을 합한 것보다 더했다. 교사는 취미 생활이었다. 진품 루이비통 가방을 마련하기 위한. 남편이 의사인가 변호사인가 하는 사자 직업에 집은 무슨 캐슬인지 팰리스인지에서 산다고 은근히 자랑하고 다녔다. 학교에 몰고 다니는 차는 소나타지만 학교 밖에선 비엠더블유를 몰고 다닌다는 소문이었다. 본인이 워낙 명품만을 즐겨 하는지라 학생들도 일목요연하게 명품과 비명품으로 구분하는 재주를 지녔다. 애들이 쓰는 필기구 하나, 가방이나 신발만 힐끗 보고서 입 꼬리가 올라가거나 내려가고 눈이 게슴츠레 해지거나 휘둥그레지곤 했다. 나는 그녀를 Ms. 무라고 불렀다. 대궐에 사시는 걸 워낙 좋아하시는 분인지라 무수리를 줄여서.   
내가 식탁 앞에서 이 Ms. 무를 침 튀겨가며 갈아대고 있을 때였다. 식인종과 현 여사가 서투르게 눈빛 신호를 교환하더니 중대 발표를 했다. 신문사를 잠시 쉬고 연수를 떠나기로 했다고. 여름에 떠날 거니깐 학교는 그 전에 그만 두든지 네 알아서 하라고. 은근히 겁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자 신청을 위한 면접에 학교 성적도 참고 서류로 구비해야 하므로 성적이 아주 나쁘면 너만 여기 두고 우리만 떠날지도 모른다고. 떠난다는 게 너무 신났으므로, 1년 후에는 돌아와야 한다지만, 난 정말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공부란 걸 열심히 해봤다. 결국 학교는 내 소원대로 자퇴가 되었다. 미국으로 전학이란 건 없으므로. 그렇게 해서 우리는 여기 미국, 아이오와 주 아이오와시티에 오게 되었다. 꼭 1년 전 이맘 때.   
 
조용한 가족이다. 앞좌석의 아빠나 뒷좌석의 나를 포함한 세 사람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있다. 택시를 부르겠다는데도 섭섭하다며 기어이 달려와 준 정 교수 아저씨도 묵묵히 운전대만 붙잡고 있다. 식인종은 노트북 컴퓨터를, 엄마는 본인이 만든 퀼트 손가방을, 범식이는 전자사전을 난 엠피쓰리를 보물단지마냥 끌어안고서 창밖만을 응시하고 있다. 차에 오르기 전까지 원고와 씨름하던 식인종,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마지막으로 더블체크를 하던 현 여사, 땀을 흘리며 농구를 하던 범식이까지 모두 지금은 정지 화면이 되어 있다. 왔던 곳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식인종은 이제 그의 글에 미국 사회와 미국 교육에 대해 현란하게 아는 척을 해댈 것이고, 부부 동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자랑하는 친구들에게 기가 죽어 있던 현 여사는 “우리가 미국에 살 때……”로 모든 문장의 처음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범식이는 영어로 답글이 달린 자신의 페이스 북을 은근슬쩍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으쓱해 할 것이고 나는 영어를 말할 때 혀를 아플 정도로 굴릴 것이다. 자못 경건해 보이는 이 가족은 오만한 가족의 대명사로 변신하게 될 것이다.    
미국 교육을 직접 몸으로 겪은 사람은 나와 범식인데도, 한국 사람들만 만나고 우리말만 쓰고 한국 음식밖에 먹지 않았는데도 식인종과 현 여사는 찰떡궁합이 되어 1년간의 경험을 온갖 양념으로 버무려 볶고, 데치고, 튀기고, 무칠 것이다. 그들은 알 리가 없다. 날마다 학교에서 내가 속으로 울고 있었다는 것을. 여기는 고등학교가 고등학교가 아니었다. 반이란 게 없고 시간마다 강의실을 찾아 들어가야 하는 대학이었다. 쉬는 시간 5분 만에 로커로 달려가 백과사전만 한 교과서를 가볍게 들고 나타나는 애들은 경이의 대상이었다. 비번을 아무리 돌려도 열려지지 않는 로커 앞에서, 헷갈리는 강의실 사이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 두 손으로도 힘든 무거운 책을 패션 잡지처럼 옆구리에 끼고 껌을 질겅거리며 내 옆을 스쳐가는 애들을 사팔뜨기가 되어 노려보곤 했다. 그 애들은 화려한 보폭을 지닌 황새, 나는 다리가 짧아 슬픈 짐승인 뱁새.
황새들은 뱁새가 알아들을 수 없도록 그들만의 언어를 구사했다. 수업시간이고 학교 식당에서고, 선생이고 애들이고, 표준말이고 유행어이고 간에 내겐 모두 그리스어였다. 애들이 웃음을 터뜨릴 때 어색한 미소를 짓다 눈 꼬리에 눈물이 흘렀다. 그렇다고 펑펑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고. 이 문수정은 자존심 빼면 시체니깐. 내일은 무슨 옷에 어떤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갈까 고민하는 것도 지겨웠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입고 갈 수도 없었다. 이 수 문은, 황새들은 ‘정’ 발음이 어렵다고 나를 수라고 불렀다, 스타일 빼면 시체니깐. 무릎 아래여도, 괴상망측해도 상관없으니 교복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귀고리를 못 하고 다녀도, 머리에 물을 못 들여도 우리말로 신나게 수다를 떨 수 있는 그리운 친구들이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친구 없는 세상보다는 두드려 맞는 세상을 택하겠노라고  수업 시간 노트에 휘갈기던 작년 이맘 때…….
차는 고속도로로 접어들면서 속도가 붙는다. 옥수수 밭이 휙휙 스쳐 지나간다. 가도 가도 끝없는 푸른 옥수수, 옥수수 밭…… 미 중서부 아이오와. 이 80번 고속도로의 중앙선은 차가운 철제 가드레일이 아니라 프레리, 푸른 초원이다. 먼 옛날 이 대륙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이 말 타고 활 쏘며 달리던 대초원이 공룡의 화석처럼 흔적으로만 남아 질주하는 차들을 경계 짓고 있다. 차는 이제 아이오와 시티를 완전히 벗어났다.   
푸른 잔디 사이로 초원의 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보랏빛 콘 플라워(Cone flower) 황금빛깔 골든 크라운비어드(Golden crown beard)라는 이름이 정말 딱 들어맞는 퀸 앤즈 레이스(Queen Anne's Lace), 그리고 노랑데이지, 블랙 아이드 수잔(Black eyed Susan).
 
그 애가 처음 내게 말을 건 날은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간 날이었다. 흰 셔츠, 회색 재킷, 체크무늬 스커트에 남색 타이. 한국에서는 평범축에도 못 들지만 여기서는 동부의 부유한 기숙 사립학교 학생 차림. 한국에서 도망 온 문제아가 아니라 뉴욕 근교 사립학교 학생처럼 목에 한껏 힘을 주고 복도를 걸을 때였다.   
“너 페이스 북 있니?”
그 애의 얼굴을 알고 있긴 했다. 이름도 알고 있었다. 수업을 같이 듣는 게 있으므로. 그러나 꼭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황새가 뱁새를 따라 가려고 비지땀을 흘리던 때 뒤에서 다가온 그 애가 어디서 흘렸는지도 모르는 내 필통을 건네주며 씩 웃었다. 얼마 후 그 애의 이름이 마틴이란 걸 알았다. 서양 애들 이름은 정말 외우기 힘들지만, 외우는 건 고사하고 발음도 제대로 못하지만, 그 애의 이름은 금방 귀에 착 감겼다. 흑인 민권 운동가 킹 목사의 이름이 마틴이므로.
난 싸이는 해도 페이스 북은 없는 사람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하는 게, 우리사이 좋은 사이, 싸이니깐. 대화는 싱겁게 끝났다. 대화랄 것도 없었다. 내가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것으로 종료되었으니깐.
그 날 이후 그 애가 “How are you?”라고 인사를 건네는 사이가 되었지만 내 대답은 언제나 “Fine.” 아무리 엎어져 코가 깨진 날에도 질문, 하 아 유에 대한 유일한 정답은 파인뿐. 그 애와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아는 사람과 친구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사이 난 우리들의 카페 ‘쭉빵’을 들락날락거리며 화장술을 익혀 아무리 바빠도 눈 화장은 꼭 하고 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 애가 신경이 쓰이긴 했다.
그 애는 모범생이었다. 수업시간엔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나한테도 적극적이었다. 다만 눈에 띄지 않게. 그 애랑 내가 같이 듣는 과목은 다름 아닌 사회. 고조선이나 삼국시대는 알아도 미국 초대 대통령이 조지 워싱턴이었다는 것조차 모른 사람이 바로 나였다. 유구한 5천년 우리 역사에 비해 그 십 분의 일도 안 된다는 게 불행 중 다행.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에서 숙제와 씨름하고 있으면 그 애가 슬며시 다가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시나브로 우리가 아는 사이에서 친구 사이로 저울추가 조금씩 옮겨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곳의 넘쳐나는 자유가.
문수정 인생에 넘치는 자유가 두려울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만 열여섯 살이면 운전면허증을 딸 수 있어 차로 함께 등교하는 커플은 너무도 미국적인 데이트여서 신선했다. 남자애와 여자애가 학교 복도를 손을 잡고 걷는 것도 낯설지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강의실 앞에서 진하게 키스를 하는 커플을 보았을 때는 왠지 모를 불편함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 옆으로 교장선생이 지나가도 그 애들은 아랑곳하질 않고 볼일을 보고 있었다. 학교는 놀이공원의 고스트투어였다. 강도가 점점 세져가는 충격이 복병처럼 난데없이 튀어 나오는. 
학교 복도에서 임신한 흑인 여자애를 보았다. 처음엔 내 눈을 의심하느라 뱃살이 심하게 찐 줄 알았다. 한 손엔 무거운 교과서를 들고 볼록 나온 배를 밀며 보무도 당당히 강의실로 사라지는 그 애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 애 말고도 세 명의 여자애를 더 보았다. 흑인 애 한 명, 히스패닉 두 명. 어린 엄마로 백인이나 아시아인은 발견하질 못했다. 내가 아무리 자타가 공인하는 문제아였다 하더라도 여기서는 세 발의 피에 불과했다.   
뭐, 그렇다고 내가 남자를 사귀어보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지금도 내 싸이에는 일촌하자는 남자들이 줄을 섰다. 난 차기도 채이기도 여러 번 한 사람이다. 내가 차는 이유는 주로 키가 작다든가, 얼굴이 너무 크다든가, 스타일이 너무 촌스럽다 등인데 한 번은 남자애가 제 친구들한테 내가 가슴이 커서 좋아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변태자식이라고 당장에 그만 둔 적이 있다. 식인종이 나의 남자 선호도가 너무 외모 중심적이라고 속마음을 살피라고 어른다운 설교를 늘어놓을 때면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키 작고 통통한 유전자를 물려준 식인종과 현 여사에게 비난의 화살을 고스란히 되돌려 준다.
뭐, 사실 진실게임 같은 걸 한다면 내가 남자를 제대로 사귀었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공원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손을 잡고 걸어본 적은 없으므로. 눈에 콩깍지가 끼기는커녕 비쭉 튀어져 나온 코털이 징그럽기만 했으니깐. 무엇보다 내 첫 키스의 상대는 영화배우 강동원만큼 감동을 선사하는 아이여야 했다.      
덜컥 겁이 났다. 내가 누구랑 당장 손을 잡고, 드라이브를 즐기고, 내 로망인 첫 키스를 할 것도 아닌데 공포가 밀려들었다. 학교 도서관에 남아 숙제를 했던 나는 이제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갔다. 수업 시간에 그 애를 만나면 그저 어색한 미소만 띠었다.  
그렇게 부딪치지 않으려고 에돌아 다녔건만 운명의 장난인지 장난의 운명인지 마틴을 외나무다리에서 재회하고 말았다. 사회 시간 발표 숙제. 그 애와 내가 한 조가 되었다. 60년대 후반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던 미국 젊은이들의 저항문화에 대해 배우고 있을 때였다.
그 애가 내 전화번호를 물었고 우린 서로의 번호를 교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 애와의 문자 왕래. 우린 자바 하우스에서 만나 카페 모카를 훌쩍이며 얼굴을 맞대고 60년대 히피 문화를 연구했다.
우리의 과제는 히피 청년들이 시위에서 즐겨 부르던 노래 찾기. 식인종은 내 이야길 듣자마자 단박에, 우리 승리하리라, 란 노래를 내 앞에서 불러댔지만 마틴은 그 전쟁 반대 시위의 열렬한 참가자였던 할아버지의 애창곡이라며 다른 노래를 불렀다. 에드윈 스타(Edwin Starr)의 전쟁(war). 전쟁이 좋은 게 뭐 있어? 전혀 없지! 란 후렴구가 반복되는 노래. 지금도 미국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는 뉴스를 볼 때면 할아버지를 비롯한 온 가족이 티브이 앞에서 춤을 추며 부른다는 강력한 반전 메시지 송. 
그 애는 날 블랙 아이드 수라고 불렀다. 중서부 프레리에 가장 흔한 꽃, 블랙 아이드 수잔. 그 애가 날 차로 집에 데려다주던 날, 길 옆 한 무더기 꽃들을 보고 그가 물었다. 
“저 꽃을 한국어론 뭐라고 해?”
“노랑 데이지.”
“넌 딱 저 꽃이야. 노란 얼굴에 검은 눈을 가진…… 앞으로 난 널 블랙 아이드 수라고 부르겠어.”
“누구 맘대로?”
환하게 웃는 그 애의 하얀 이가 부서지는 가을 햇살에 찬란하게 빛났다.  
도서관에서 숙제를 하고 버스로 집에 가던 길을 이제 그 애가 차로 데려다주었다. 차에선 블랙 아이드 피스나 에미넴 노래를 듣다 그 애가 한국 가수 노래를 듣고 싶다고 해서 보아나 체리필터의 노래를 같이 듣기도 했다.
어느 날 그 애에게 손을 흔들고 집으로 들어왔을 때 현 여사가 현관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니? 저 애?”
“친구.”
“설마 저 애랑 사귀는 건 아니지?”
“…….”
“왜 대답이 없어? 그럼 저 흑인 애랑 사귀기라도 한단 소리니? 설마 그 소문이 사실인 건 아니지? 그치? 수정아?”
“도대체 무슨 소문이 났다는 거야?”
내 어깨를 잡고 흔드는 현 여사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소리쳤다. 
“네가 흑인 애랑 사귄다고. 너, 이 바닥이 얼마나 좁은 곳인지 알지?”
“한국 사람들 지겨워, 진짜. 남이 뭘 하든 무슨 상관이야? 지들이나 잘하라고 그래!”
현 여사는 그렇다 치고 식인종도 내가 마틴과 사귀는 건 찬성하지 않았다. 몇 개월 후면 우린 돌아가야 하는데 여기서 친구를 깊게 사귀면 네 마음의 상처가 너무 클 거라며. 평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을 흉내 내며 ‘카르 페 디엠’ 을 외치는 사람이 내일 일을 걱정하다니…… 글쟁이답게 그럴 듯하게 말을 포장했지만 진짜 이유는 뻔했다. 슈퍼 울트라 가식덩어리, 식인종.
나의 마틴은 블랙보이다. 그 애를 알고 나서 블랙이란 컬러를 다시 보게 되었다. 흑인이라고 쉽게 내뱉는 그 말 속에 얼마나 다양한 색깔들이 숨어 있는지. 내 친구 마틴 브라운은   오바마 대통령보다는 진하고 비욘세 남편 제이지보다는 옅은 구리빛깔의 피부를 지녔다. 그 애의 검은 눈망울은 환하게 웃고 있을 때조차도 슬픔이 가득해 보였다.
호숫가를 거닐다 그 애가 처음 내 손을 잡았을 때 물수제비를 뜬 것처럼 번져가던 희열의 잔물결. 이 키 작고 통통한 내가 너무도 사랑스럽다며 한시도 눈을 떼질 않는 그 애의 순수한 열정. 언제나 어디서든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와 주는 멋진 흑기사. 처음 그 애가 내게 다가올 때 잘 익은 번 같은 피부 색깔이 날 주춤하게 했다면 이제 그 두려움이 나의 힘이 되어 주었다. 용기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그 애의 진지함이 시나브로 날 용감하게 만들었다. 난 블랙이든 화이트든, 옐로우든 브라운이든 색깔 따윈 상관없었다.      
하지만 내 친구 블랙 보이는 초대받지 못하는 손님이었다. 누구도 환영하지 않았지만 내 성질을 아는지라 슬금슬금 눈치만 봤다. 그래봤자 몇 달이라고 자신들을 안심시키는 눈치였다. 다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함인지 식탁에서의 대화는 미국 고등학생들의 지나친 성적 방종이 그 주제일 때가 많았다.      
미 중서부 겨울은 잔인했다. 이 매서운 추위를 더욱 잔인하게 만드는 건 진정한 겨울방학이 없다는 거였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끼고 보름 남짓한 휴가가 그 전부다. 이 잔인한 겨울에 식인종에게도 무시무시한 일이 생겼다. 고기 씹는 맛으로 사는 식인종에게 이가 탈이 난 것. 하지만 우리가 든 의료보험은 치과는 적용조차 되지 않는 비상용.
마틴에게 이 근심을 털어놓았더니 나의 늠름한 흑기사답게 이 문제도 쉽게 해결해 주었다. 마틴의 아버지, 제임스 브라운 씨의 직업은 치과대학 교수. 저렴하면서도 우수한 치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치과대학 학생들의 실습 대상으로 아픈 이를 바치는 것이라는 정보를 나로부터 입수하고 식인종은 시린 이를 안고 치대로 향했다. 아들의 간곡한 부탁인지라 제임스는 식인종을 위해 할 수 있는 온갖 물질적 심정적 편의를 다 봐 주었고 치료가 끝나자 둘은 커피까지 함께 나누었다고 한다. 이 날 이후 식인종이 블랙보이를 새롭게 보기 시작한 것은 두말 하면 잔소리. 그 동안은 흑인이 대통령인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잊기라고 했단 말인가?
백설기처럼 층층이 눈이 쌓였던 날, 그 애가 모는 차를 타고 코러빌 호수로 갔다. 눈이 시린 파란 겨울 하늘 위로 날개를 활짝 편 매가 날았다. 매는 아이오와 주의 공식 새. 이곳에선 모든 게 하크 아이로 시작한다. 하크 아이 정신, 하크 아이 모자, 하크 아이 셔츠, 하크 아이 서점…….
“하크 아이(hawk-eye)!”
그 애의 손길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고개를 돌렸을 때 그 애가 내 찬 이마에 입을 맞췄다. 내 붉은 볼에도…… 그리고 내 입술 위에 그 애의 입술이 닿았다. 따뜻했다. 솜이불처럼. 달콤했다. 모카 초콜릿 케이크처럼.
찬바람이 부는 거리를 손을 잡고 걷고, 얼어붙은 호숫가에서 입을 맞추고, 발갛게 얼은 내 귀에 그 애가 사랑의 밀어를 속삭여주고…… 세상 가장 추운 곳에서 보낸 내 생애 가장 따뜻한 겨울이었다.  
봄이 되자 그 애도 나도 중력을 잃은 듯 갈피를 못 잡고 둥둥 떠다녔다. 뭔가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정작 둘 사이엔 어색한 침묵만이 이어지곤 했다. 그 애도 나도 초조해진 것이다. 떠날 날이 째깍째깍 가까이 다가올수록. 가벼운 허그로 헤어지던 우리가 오랫동안 끌어안고도 서로를 놓아주질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영영. 온 세상의 시계를 모조리 멈추게 하고 싶던 그 간절한 연인이었던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가.
천장이 높은 붉은 나무 헛간과 옥수수 밭과 포프라 나무와 보랏빛, 황금빛 초원의 야생화, 그리고 프레리의 여왕, 블랙 아이드 수잔이 아스라이 뒤로 뒤로 사라져간다. 공항 이정표가 어느 새 나타난다. 눈에 이슬이 맺힌다. 
내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자 엄마가 내 등을 가만가만 쓸어준다. 눈물이 폭포처럼 떨어진다. 
“수정아, 우리 나중에 여기 꼭 다시 오자.”
엄마의 목소리도 흔들린다. 
내 눈만이 아니라 온 가족의 눈시울이 붉다. 이제 정말 떠나는 것이다. 영영. 그 애와 내가 그랬듯. 
눈만 젖은 게 아니라 아무렇게나 눈물을 훔쳐댄 보랏빛 탑도 젖어 있다. 그날 밤도 이 옷은 젖었다. 슬픔으로. 고통스럽게 헤어지던 연습을 하던 한 여름 밤, 긴 키스를 나누고 그 애와 잡은 손을 놓으려는데 그 애의 얼굴이 내 가슴으로 향했다. 난 순간 너무 당황하여 그만 그를 밀쳐버리고 말았다. 슬픈 건지 화난 건지 알 수 없는 그 검은 눈망울로 날 한참을 바라보더니 그 애가 등을 보이고 돌아섰다. 내게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며칠 후 그 애로부터 긴 이메일을 받았다.
 
나의 사랑, 수,
널 처음 본 순간 난 너에게 빠져들었어. 수줍게 웃는 모습이 참 예뻤어. 너의 미소, 너의 용기, 너의 열정…… 난 너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널 알아가는 건 내게 새로운 또 한 세상이 열리는 날들이었지. 나와 다른 너의 문화와 예절을 배우고 존중하려고 노력했었다. 특히 남녀관계에서. 널 실망시켰다면 진심으로 사과할게. 앞으로는 널 실망시키지 않도록 지금보다 백배는 더 노력할게.    
널 이곳에 보내준 어느 위대한 이의 섭리에 고개 숙여 감사드리고 싶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었던 짧았지만 긴 세월에도 감사드리고 싶다. 너와 함께 했던 지난 일 년, 참 행복했어. 
널 사랑했어. 내 온 마음을 다해서. 그리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널 사랑할 거야. 그 어떤 것도 우릴 갈라놓지는 못할 거야. 나의 사랑 블랙 아이드 수, 환한 얼굴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학교는 이미 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벌써부터 짐을 싸고 있었다. 난 답장을 쓰지 않았다. 아니, 답장을 쓸 기력이 없었다. 밥도 못 먹고 눈물로 지샌 날들이었다. 사과를 받아들여야 할지 어쩔지 고민하는 동안 집의 인터넷이 끊겼다. 그리고 내 휴대전화마저 해지되었다.  
공항 안으로 들어서자 난 두리번거리며 공중전화부터 찾는다. 오직 지금 생각나는 건 그 애뿐이다. 오직 지금 보고 싶은 건 그 애 얼굴뿐이다. 목소리라도 지금 듣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영영 듣지 못할 것 같다. 넓지도 않은 공항에서 공중전화는 쉽게 눈에 띄질 않는다. 공중전화가 있기는 할까?
두리번거리는 내게 저 멀리 한 사람이 걸어온다. 인디안 블루 셔츠에 진 바지를 입은 키가 훌쩍 크고 호리호리한 사람이. 내 눈을 의심한다. 그리고 난 달린다. 그 애가 날 끌어안고 입을 맞춘다. 세상이 빙빙 돈다. 내 주위로 레일 위에 장착된 카메라가 돌아가는 듯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애와 나만이 이 섬의 거주자다.
“수,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나도.”
“우린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그 애가 나를 가만히 끌어안고 고개 숙여 이마에 입을 맞춘다. 이대로 시간이 멈출 수 있다면. 아니 이틀만이라도 되돌릴 수 있다면. 
그 애가 내게 작별 선물을 건넨다. 블랙 아이드 수잔 앞에서 손을 잡고 있는 그 애와 나의 사진이 나무 액자의 한쪽에 들어있다. 그리고 다른 한 쪽엔 그 애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담겨있다.
“수, 어디서든 내 생각만 해야 해.”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사진틀엔 내 사진이 들어 있다며.
멀찍이서 날 기다리고 있던 식인종이 시계를 가리키는 시늉을 한다. 떠나야 할 시간이다. 마틴과 우리 가족이 허그로 작별인사를 한다. 엄마는 쑥스러워하면서도 마틴의 어개를 툭툭 쳐 주고 범식이랑은 하이파이브까지 한다. 어느 새 내 눈은 촉촉이 젖어 있다. 주먹으로 눈물을 훔친다.
그 애를 뒤에 남겨놓고 게이트를 향해 걸어가던 난 가방마저 팽개치고 마틴에게 달려간다. 꼭 끌어안은 우리 둘은 눈물로 젖어있다.    
“수, 사랑해.”
“마틴…… 사랑해.”
문수정 생애 최초로 남자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했다.
식인종이 다가와 내 등을 가만히 토닥거린다. 식인종에게 이끌려 게이트를 통과한다.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나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나보다. 식인종이 경쾌하게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묻지 않아도 식인종의 이번 칼럼은 환하다. 자신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천부인권설을 신봉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미국 땅에서 얼마간 살아보니 자신은 흑인에 대한 편견이 있던 인종 차별주의자였노라는 참회록이 될 것임을.    
비행기가 드디어 날개를 펴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저 아래 아이오와가 초원의 푸른  숨을 내 쉬고 있다. 안녕, 아이오와, 안녕, 내 사랑, 블랙 보이…… 다시 만날 때까지……. 

작품 후기


우리안의 편견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머리와 가슴사이가 얼마나 먼 거리인지도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작가 생활 20년 만에 처음 써보는 소년과 소녀의 사랑이야기였습니다. 나는 과연 이 아이들의 사랑에 가슴으로 박수를 칠 수 있는 어른인가 하는 고민을 글 쓰는 내내 했습니다.    
서로의 다양함이 어우러져 결 고운 화음이 울려 퍼지는 세상이길, 모든 인간이 그 존재자체로 빛이 나고 아름다울 수 있는 세상이길 꿈꿔봅니다.

작가소개

김연(소설가)

남도 땅 광주에서 나고 자랐다. 1982년, 청운의 꿈을 안고 연세대학교 영문과에 들어가 13년 만에 졸업장 하나 간신히 건졌다. 1990년, 부모님 이름을 조합한 차주옥이란 필명으로 장편노동소설 『함께 가자 우리』를 발표하며 소설가란 게 되었다. 1997년, 『나도 한 때는 자작나무를 탔다』로 한겨레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그 여름날의 치자와 오디』 여행서 『딸과 함께 유럽을 걷다』 청소년 소설 『나의 얼토당토않은 엄마』 등을 썼다. 
지금은 미국 아이오와시티에 머물며 수행정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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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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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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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테마소설 성취와 좌절_제4회 단 한 번의 기회 이명랑 자식을 바꿀 수 있을까? 나라면…… 절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아빠, 엄마라면? 나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본다. 운동장을 둥글게 에워싼 광장식 계단을 꽉 메운 사람들. 대부분 오늘 테스트에 임하는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다. 열심히 자녀들을 응원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나는 아빠, 엄마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 차가운 은빛으로 빛나는 안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빠다. 아빠 옆으로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도 앉아 계신다. 컥, 숨이 막힌다. 우리 가족이 앉아 있는 곳을 확인하자마자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혀온다. 흰 현수막 위에 금빛으로 화려하게 새겨진 글자들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VIP. 금빛으로 빛나는 VIP라는 글자들 옆으로 봉황 두 마리가 이제 곧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듯이 날개를 펼치고 있다. 그 활짝 편 날개 옆에 우리 가족은 앉아 있다. 비좁은 자리에 앉아 서로 어깨를 부대끼며 자식들을 응원하다 말고 어른들은 가끔씩 VIP석을 곁눈질한다.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하지만 이따금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훔쳐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야 VIP석에 앉을 수 있는 거야? 아들아! 봤지? 네 눈에도 저기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너만이라도 제발 저 자리에 앉아다오! 사람들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표들과 느낌표들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하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옆에서 아빠, 엄마보다 더 태연하게 발밑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바로 내 가족이다. 어른이 되면 나도 저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앞으로도 나는 우리 가족의 일원일 수 있을까? “자! 전원 출발선 앞으로!” 사회자가 붉은 깃발을 번쩍 들어올린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수많은 아이들이 출발선 앞으로 달려간다. 나도 질세라 뛰어간다. 시작이 절반이다, 라고 아빠는 늘 말한다. 맞는 말이다. 시작에서부터 뒤처지면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나는 내 앞을 가로막고 달리는 아이들 두, 세 명을 어깨로 밀치며 앞으로 뛰어간다. 누군가 내가 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 어깨를 밀치고는 빠르게 내 앞을 스치고 달려 나간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키가 큰 녀석이다. 누가 너 따위에게 질 줄 알고! 나는 어금니를 악문다. 간신히 내 어깨를 치고 달려간 녀석보다 한 발 앞서 출발선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 정중앙이다. “모두 집중! 첫 번째 미션이다! 참가 인원은 모두 100명, 카트는 50개! 먼저 뛰어가 카트를 잡는 사람만이 장을 볼 수 있다!” 순식간에 사회자의 설명이 끝났다. 사회자는 번쩍 들어 올렸던 붉은 깃발을 밑으로 내리고 출발선 앞에 서 있는 아

  • 웹관리자
  • 201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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