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6> "탈경계시대, 하지만 우리 마음 속 국경은... ..."

  • 작성일 2009-04-13
  • 조회수 819






 

장벽이 해체된 현대, We are the World의 현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경계의 구분이 희미한 세상입니다. 현대적인 환경과 경험은 지역과 인종, 계층과 국적, 종교와 이데올로기가 지니고 있는 모든 장벽을 무너뜨려 버립니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성이란 모든 인류를 통합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물론, 전지구적 자본화라는 별로 달갑지 않은 흐름 때문에 이 통합의 속도가 한층 빨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신자유주의와 별개로 이미 현대는 경계와 장벽의 해체를 자신의 운명으로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장벽의 해체란, ‘지구촌’이라는 말처럼, 세계가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주식시장에 변동이 생기면 다음날 어김없이 한국의 주식시장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지구 반대편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직간접적으로 내가 살고 있는 곳까지 파급효과가 생기는 것처럼 말이지요. 올해 한국의 경제위기가 해외펀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의 일상에서 이 해체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은 많습니다. 1989년부터 실행된 해외여행자유화 조치로 인해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외국을 가깝게 경험하지요. 우리는 아침에 서울에서 회의하고, 점심 때 일본에서 밥 먹고, 저녁에 중국에서 친구를 만나는 게 불가능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어디 여행뿐인가요. 외국인과의 결혼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하고 있고, 외국인과의 결혼에 대한 생각 역시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취업은 또 어떤가요? 이미 중국이나 아시아 국가들에는 한국의 기업이 많이 진출하고 있고,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두바이나 호주 같은 이국의 기업에 취직하기를 희망합니다. We are the World”(사진 오른쪽은 1985년 세계적인 팝가수들이 모여 아프리카 난민 구호를 위해 만든 노래 앨범 <We are the World> 표지)라는 고색창연한 노랫말은 이제 현실입니다.

  이 장벽의 해체가 불러온 새로운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많습니다. 소설에 외국인노동자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작가들은 해외여행을 소재로 한 소설들을 연거푸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대개 문화의 충돌과 타자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중요하다고 내세우는 가치들의 절대성을 상대화하는 작업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모든 장벽이 무너진 것일까요? 국가라는 근대적 분할선, 그것의 상징인 국경은 희미해진 것일까요? 나는 물리적인 ‘국경’은 땅 위에 그어진, 지도 위에 굵게 표시된 선이지만, 실제의 국경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 안에서 여전히 ‘국경’이라는 장치는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무의식에 가깝습니다.

 

 가장 넘기 어려운 국경은 우리의 마음속에


 

   <사진 위는 북한과 중국의 경계를 가로 질러 흐르는 두만강과 주변 풍경 모습> 

 

여기, 국경에 대해 질문하는 소설들이 있습니다. 전성태(사진 왼쪽)「국경을 넘는 일」(《문학사상》 2004 7월호)과 「강을 건너는 사람들」(《문학수첩》2005년 겨울호)이 그것들입니다. 전성태의 소설들은 이념의 해체 이후 지구 전체가 자본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특히 국경선 너머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다룬 수작들입니다. 사실, ‘국경’에 대한 의식은 한 국가 안에서는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두 국가 사이의 국경선을 넘는 순간에만 ‘국경’의 의미는 되살아나지요. 「국경을 넘는 일」은 다()국적의 여행자들과 함께 태국과 캄보디아를 여행하는 한국인 박의 ‘국경’에 대한 무의식을 드러내는 한편, 일본여성과의 사랑 앞에서 어떻게 다시 ‘국경’이 되살아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소설에는 ‘국경’과 관련되는 두 개의 사건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사건은 ‘국경’이라는 물리적 장치와 관련이 있고, 두 번째 사건에서 ‘국경’은 심리적인 장벽으로 등장합니다. 첫 번째 사건. 주인공 박은 지금 여행 중입니다. 그는 캄보디아와 태국의 국경선에서 도착합니다. 서로 다른 국적의 인간들에게 ‘국경’이란 상이한 방식으로 표상됩니다. 일본인들에게 그것은 바다를 건넌다는 것을 의미하고, 분단국가인 한국의 경우 육로를 이용해서 국경을 넘어간다는 것은 월북행위이거나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위 사진 오른쪽은 전성태 작품집 <국경을 넘는일> 표지)

주인공 박은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국경’의 의미를 캄보디아와 태국의 접경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단한 육로여행”이라고 불리는 이 국경 넘기에 뜻밖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주인공 박이 국경 다리에 박혀 있는 탄흔들에 공포감을 느껴 호루라기의 환청을 듣고 태국 쪽으로 무작정 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호루라기 환청은 아마 국경에 대한 한국인의 무의식일 겁니다. “우리에게 국경을 넘는 일은 죽음을 의미하지요. 아마 제 무의식 속에 그런 국경에 대한 공포가 잠재돼 있었던 모양이에요.” 이 무의식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유일한 사람은 동독 출신의 유학생 얀입니다. 그렇지만 박은 다음 순간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게 진실일까 의문이었고, 이 이국의 여자 앞에서 자신을 어떤 식으로든 포장하고 싶다는 욕망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국경선에 대한 공포감 이후 일본인 나오꼬와 한국인 박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그런 와중에도 박은 타국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다는 야릇한 욕망을 느낍니다. 그 욕망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바로 “자신이 한국인이고 그들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다.”처럼 스스로를 국가와 동일시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국경선 바깥에서 외국인은 곧 외국과 동일하게 인식된다는 것을. 외국에 나가면 한국인 모두가 국가 대표가 된다는 말이 농담은 아닌 듯합니다. 우리 역시 외국인을 대할 때 그를 한 개인으로 대면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국적으로 이해하니까요. 그것이 바로 “개인과 국가가 모호해지면서 혼재하는 경험”입니다. 이것은 비단 박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독일인 얀도 박에게서 “한반도의 분단”만을 읽고, 일본인 구로다 역시 자신이 “일본의 대표선수가 된 느낌”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니 박이 일본인 구로다에게 “저를 통해 한국 젊은이들의 이미지를 보지 말았으면 합니다. 아까는 아주 돌발적이고 사적인 일이었습니다.”라고 말해봐야 그것이 그대로 통용될 리는 없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사랑’과 함께 시작됩니다. 사랑이라고 하면 좀 거창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 박과 일본인 나오꼬는 이국에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런 이국에서의 호감이란 “여행지의 낯선 외국인이야말로 얼마나 숨기 좋은 대상”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한국인 박에게 일본인 나오꼬는 “상상해보지 못한 낯선 존재”입니다. 모든 장벽이 무너지는 시대에도 그건 ‘정서적’으로는 쉽게 돌파되기 어려운 장벽입니다. 그래서 박은 그녀와 사랑을 나눈 다음 국경을 뛰어넘었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그는 뭔가를 뛰어넘은 느낌이었다. 외부의 어떤 세계가 아니라 자신의 내부를 뛰어넘은 것 같았다.” 그가 뛰어넘었다고 생각한 것, 그것은 ‘국경’과 ‘국적’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국경’을 잣대로 사람을 대면하고 있다는 자신의 내면을 다시 확인하는 것 이상이 아닙니다. 박은 그것을 깨닫고 “알고 보니 제자리인 자신을 발견하는 기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물리적인 국경선은 패스포트를 손에 쥐고 넘을 수 있지만, 한 외국인에게서 그의 국적을 보려는 우리들의 무의식은 쉽게 넘을 수 없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가장 넘기 어려운 국경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나오꼬와의 마지막 작별 때 박은 그녀를 향해 한국말로 이렇게 소리칩니다. “너는 그냥 어린 계집아이일 뿐이야.”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선 그것은 국적이 아닌 ‘계집아이’라는 개별성으로 그녀를 호명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이 말은 분명히 ‘한국말’로 발화되었습니다. 그녀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이방의 언어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통해서 국경을 넘는 일은 실패한 셈이지요. 실패한 박의 앞에는 “또 다시 건너야 할 이국의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가난과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경 건너기

 

  「강을 건너는 사람들」에서 ‘국경’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 이 작품의 인물들은 북한에서 중국으로 밀입국을 하는 탈북자들입니다. 비자가 없는 상황에서 불법으로 ‘강’을 건너는 일은 그들에게 생명을 건 일과 같습니다. 소설에는 여섯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강을 건너려는 다섯 명과 그들을 강 건너편에 데려다줄 여자 사공이 그들입니다. 청년, 안경잡이 사내와 그의 아내, 그리고 다섯 살 난 그들의 아이, 친지를 만나기 위해 몰래 강을 건너온 교포사내 이렇게 다섯 명이 지금 야음을 틈타 강(국경)을 건너려 합니다.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들은 실상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신들을 강 건너로 데려다줄 사공을 기다리는 일 외에는. 소설은 한편으로 북한의 열악한 식량사정을 통해서 최소한의 인간적인 상황마저 불가능한 상태에 처해 있는 사람들의 궁핍한 삶을 그리고, 또 한편으로 국경을 넘어야 하는 밀입국자들의 막연한 공포감을 극대화합니다. 강 근처의 외딴 가옥에서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강을 건너갈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그들은 낡은 가옥의 “액자를 떼어낸 자리”만 보고도 몸을 움츠립니다. “미곡과 잡곡의 배급량을 기록한 글씨도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그곳의 누구도 그 수치를 현실감 있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의 경제봉쇄 이후 그 수치는 유명무실해졌던 것이다. 하루 오백 그램이던 배급량은 날이 갈수록 줄어 지난해 가을부터는 이백 그램으로 줄었고, 겨울을 나는 석 달 동안에는 밀가루 한 홉 받아본 적이 없었다. 외국에서 구호식량이 들어온다는 소문만 몇 달째 떠돌고 있었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북한을 떠난다고 말하진 않지만, 미국의 경제봉쇄 이후로 악화된 식량사정은 또한 그들이 이 땅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임을 암시합니다. 전쟁 이후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 아이들의 씨가 마를 지경이라는 것, 그리고 나빠진 건강 사정 때문에 여자들이 달거리를 안 한다는 것 등은 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궁핍이 어느 정도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강을 건너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길잡이의 몫입니다.

  소설은 대규모의 탈북이 결국 미국의 경제봉쇄로 인한 식량 사정 때문임을 강조하고, 북한 사람들이 그 궁핍을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가를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전달합니다. 그 단적인 예로 죽은 아이들의 시체가 사라지는 장면을 들 수 있습니다. 궁핍은 노인과 여자,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칩니다. 안경잡이 부부의 아이가 그렇듯이 말입니다. 이웃끼리 아이들의 시체를 바꿔 먹는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안경잡이 사내와 청년은 땔감을 구하러 나갔다가 파헤쳐진 아이의 무덤을 목격합니다. 물론, 이 작품에서 화자의 시선은 강, 즉 국경을 건너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국경을 건너야만 하는 원인(궁핍)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도강의 책임자인 사공의 아이 역시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는 것은 결국 궁핍이 모든 사람들의 문제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그렇다면 이 궁핍이 강을 건넌다고 해결될 문제일까요? 강을 건너자마자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그들이 가난과 궁핍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강을 건너온 사람들 앞에 놓인 길 없는 길

 

 

 정도상의(아래 사진 왼쪽)  「소소, 눈사람이 되다」(《창작과비평》2006년 봄호 )는 강을 건너온 불법체류자들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정도상 소설의 배경은 중국이고, 주인공 충심은 탈북자입니다.

 

  “사람답게, 나이에 어울리게 살고 싶었다. 좋은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저녁을 먹고, 예쁜 옷을 입고, 곱게 화장하고, 동무들과 밤마실을 다니며 수다 떨고 남의 흉도 보면서, 어린시절부터 꿈꾸었던 것들을 위해 열심히 살며, 무엇보다도 신분증 없이 떠돌지 않으며, 아무리 늦어도 돌아갈 집이 있는 삶을 충심은 간절히 소망했다. 그러나 충심의 그 작은 소망은 모조리 금기에 속했다.

 

  충심은, 삼 년 전, 속아서 강을 건넜다가 인신매매단에게 끌려가 강제결혼을 했습니다. 조선족 남편을 만나서 그럭저럭 살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남편의 폭력을 참을 수 없어 급기야 그곳을 빠져나오게 되고, 마침내 한성안마에서 안마사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꿈꾸는 삶이 강을 건너온 사람들에게는 성취될 수 없는 금기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반드시 한국행을 고집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강을 건넜으나 고향을 등질 생각도, 북한을 배신할 생각도 그에게는 없는 것 같습니다. 반면 또 한사람의 탈북여성인 연분 이모는 한국행을 고집합니다. 그녀는 한국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몽골로 가야 하고, 몽골의 국경을 넘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충심에게 그 돈을 빌려줄 것을 요청하고, 이모에게 돈을 빌려주기 위해 충심은 김화동에게 빌려간 돈을 갚을 것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그는 돈을 갚는 대신 공안을 끌어들입니다. 김화동과 최옥희는 충심이 처음 한성안마에 왔을 때 그녀를 진심으로 대해준 사람들이었지만, 자본주의적인 삶을 선택한 그들은 차용한 돈을 돌려주는 것보다는 불법체류자라는 충심의 신분을 이용해서 채무로부터 벗어나는 게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라는 걸 알 만큼 속물적인 인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탈북여성들을 안마사로 고용해 착취할 것이고, 그렇게 얻은 부를 배경으로 더 큰 부를 쌓을 것입니다.

  “어디로든 가야만 했다. 길은 여러 갈래로 뻗어 있었지만 충심의 길은……없었다.” 그렇습니다. 강을 건너온 사람들 앞에 길은 무수히 많지만, 정작 그들이 갈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도강자들에게 안전하고 안락한 공간은, 그리하여 뚜렷하게 보이는 길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합니다. 그녀는 중국지도를 보고 “손가락 하나 정도의 짧은 거리”에 떨어져 있는 서울을 봅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중국에서 서울까지의 여정이, 물리적인 거리와는 상관없이, “지옥여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중국에서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공안에게 쫓기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소설은 끝내 이 선택지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삼양적역으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소리는 그녀가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날 것임을 암시합니다. 그녀는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삶 자체가 불안정한 여행인 이 탈북여성이 도착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왜 그녀는 이 모든 비극적 상황을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것일까요? 허락 없이, 국경을 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경계의 구분이 희미한 현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적인 지위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경계는 점점 더 가혹하고 견고한 것이 되고 있습니다. 국경을 넘는 일, 그것은 길 없는 길일뿐입니다.

 

---------------------------------------------------

<본문에 언급된 작품 작가>

 

1. 전성태

소설가
1969년 전남 고흥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4년 『실천문학』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소설집으로『매향(埋香)』 『국경을 넘는 일』, 장편소설 『여자 이발사』등이 있음


2. 정도상

소설가
1960년 경남 함양 출생
전북대 독문과와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87년 단편 「십오방 이야기」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으로 『친구는 멀리 갔어도』 『아메리카 드림』『시간의 상처』 『실상사』 『모란시장 여자』,장편소설로 『그대여 다시 만날 때까지』『그리고 내일이 있다』『날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열애』,『길 없는 산』『푸른 방』 『누망』 등이 있음
2003년 단재상(문학부문) 수상.

 


추천 콘텐츠

나는 광대다

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5회 나는 광대다 장정희 땡~ 산조 가락이 자진모리의 클라이맥스 지점을 향해 막 솟구쳐 오르던 순간이었다. 힘차게 튀어 올랐던 태섭의 손가락이 땡, 소리와 함께 대금 위에서 조용히 잦아들었다. 숨죽일 듯한 적막이 찾아왔다. 적막은 짧았지만 숨결은 뜨거웠다. 태섭은 입술에 대고 있던 대금을 내려놓고 심사관들을 향해 앉은 채로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방석 옆에 놓여 있던 정악대금을 함께 챙겨든 후 뒷걸음질 치듯 천천히 수험실을 빠져나왔다. 문을 열자 진행요원이 문틈에 귀를 대고 있다가 화들짝 뒤로 물러났다. 다음 순번의 수험생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들어갔다. 태섭은 대기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창백한 얼굴들을 힐끗거리며 복도로 나왔다. 복도는 바닥에 주저앉아 삑삑삑 불어대고 있는 대기자들의 연주 소리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자 벌겋게 달아올라 있던 태섭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듯 바람이 달려들었다. 태섭은 곧바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목 언저리가 뻐근했다. 대금 연주자들에게 목 디스크는 숙명이라지 않는가. 태섭이 고개를 좌우로 젖히자 뼈마디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태섭은 담배를 힘껏 빨아들였다. 비로소 딱딱하게 굳어있던 입술의 감각이 살아남을 느꼈다. 태섭은 습관처럼 입술의 아랫부분을 문질렀다. 취구가 닿는 아랫입술 언저리는 피딱지가 떨어질 날이 없어 거무스름하게 변색되어 버렸다. 누구든 그 부위에 거무죽죽한 흔적을 갖고 있다면 그는 대금 연주자일 것이다. 태섭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끝났어! 해가 기울면서 날은 더욱 쌀쌀해졌지만 아직 눈이 내릴 기색은 없었다. 이제 겨울은 곧 시작될 것이다. 수시 모집은 대학 입시의 첫머리일 뿐 영광과 회한의 경계를 가를 때까지 입시생들의 겨울은 계속될 것이다. 태섭은 가방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꺼냈다. 전원을 켜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문자와 콜이 쏟아졌다. ‘물론 시험은 잘 봤겠지? 네가 떨어지면 붙을 놈 누가 있냐?’ ‘빨랑 내려오기나 해. 얼굴 잊어버리겠다.’ ‘오늘 수시 봤던 놈들까지 다 올 거야.’ ‘끝나면 곧장 전화해. 안 하면 죽어!’ 태섭은 휴대폰을 그대로 가방에 던져 넣고는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걷기조차 힘이 들었다.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동안, 남녀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태섭의 곁을 스쳐갔다. 이곳은 2년 전 캠퍼스 투어로 와 본 이후 두 번째다. 캠퍼스 투어는 태섭의 열망에 더욱 불을 지펴 놓았다. 와 봐야 새로울 것도 없다는 듯 나른한 표정으로 걷고 있는 대학생들이 부러웠다. 목표물을 손안에 얻은 사람만의 여유랄까. 나도 저들처럼 심상한 표정으로 이 캠퍼스를 활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연이어 두 번이나 전화가 왔다. 엄마다. 일이 손에 잡히지

  • 웹관리자
  • 2012-10-27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청소년 테마소설 세상 속으로 _ 제4회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 이성아 소녀는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물방울이 맺힌 소녀의 머리카락에서는 샴푸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고, 고양이도 막 목욕을 마친 듯 털이 보송보송했다. 보송보송한 털의 유혹이 너무나 강렬해 나도 모르게 쓰다듬을 뻔했다. 소녀는 나와 또래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의 사람들처럼 어색했다. 아파트 하수구 관이 막혔는데, 지금은 밤중이라 공사를 할 수 없으니 아침에 공사할 때까지 물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지구 반대편의 언어라도 되는 듯 나를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소녀는 나보다는 고양이와 더 잘 통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는 영물이야. 공연히 곁을 주면 나중에 해꼬지나 당한다니까.” 아줌마가 내게 하던 말이다. 고양이는 소녀의 품에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고양이에게조차 수모를 당한 듯 명치끝이 짜르르 아려왔다. 나에게도 고양이가 있었다. 높은 담을 사뿐히 뛰어올라 얼음사니처럼 우아하게 걸어 다니던 고양이에게 나는 다미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두었다가 다미에게 주면 아줌마는 소리를 꽥 질렀다. “고양이 밥 주지 말란께. 야가 뭔 똥고집이래.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까이.” 식당 알바는 힘들었다. 처음엔 청소하고 설거지나 하면 된다고 하더니 술손님들이 많으면 서빙에서부터 고기 잘라 주는 일까지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었다. 취한 남자들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아래위를 훑어보거나 손이며 엉덩이를 쓰다듬으려고 할 땐 온 몸의 솜털이 다 곤두서고 구역질이 나오려고 했다.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것 같은 아줌마의 목청이었다. 내 평생 목소리가 그렇게 큰 사람은 처음이었다. 고작 17년밖에 안 산 내가 평생이란 말을 쓰긴 좀 그렇지만, 아마 평생을 곱절로 살아도 그렇게 목청이 큰 사람은 만날 것 같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러댔다. 간혹 뭔가 날아가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깨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양은냄비나 플라스틱 바가지, 물통이나 양푼, 철판 뒤집개나 슬리퍼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살얼음판 위를 걸어 다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일했다. 수돗물을 세게 틀면 안 되고, 설거지할 때 개수대 밖으로 물이 튀면 미끄러지므로 안 되고, 식탁은 젖은 행주로 닦은 다음 반드시 마른 행주로 닦아야 하고, 기름 묻은 그릇은 오래 두면 안 되고, 안 되는 것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걸을 때 엉덩이를 흔들어도, 무표정해도, 큰 소리로 웃어도 아줌마는 고함을 질렀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화낼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많이 나온 전기세와 갑자기 오른 임대료, 갑자기 쏟아지는 비, 햇빛이 들이치는 창, 똥 마려운 것처럼 끙끙거리는 개새끼, 시끄러운 오토바이소리, 그리고 뭘 해도 마음에 안 드는 생선 구잇집 아줌마. 소정은 아줌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 웹관리자
  • 2012-10-16
단 한 번의 기회

청소년 테마소설 성취와 좌절_제4회 단 한 번의 기회 이명랑 자식을 바꿀 수 있을까? 나라면…… 절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아빠, 엄마라면? 나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본다. 운동장을 둥글게 에워싼 광장식 계단을 꽉 메운 사람들. 대부분 오늘 테스트에 임하는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다. 열심히 자녀들을 응원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나는 아빠, 엄마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 차가운 은빛으로 빛나는 안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빠다. 아빠 옆으로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도 앉아 계신다. 컥, 숨이 막힌다. 우리 가족이 앉아 있는 곳을 확인하자마자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혀온다. 흰 현수막 위에 금빛으로 화려하게 새겨진 글자들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VIP. 금빛으로 빛나는 VIP라는 글자들 옆으로 봉황 두 마리가 이제 곧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듯이 날개를 펼치고 있다. 그 활짝 편 날개 옆에 우리 가족은 앉아 있다. 비좁은 자리에 앉아 서로 어깨를 부대끼며 자식들을 응원하다 말고 어른들은 가끔씩 VIP석을 곁눈질한다.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하지만 이따금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훔쳐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야 VIP석에 앉을 수 있는 거야? 아들아! 봤지? 네 눈에도 저기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너만이라도 제발 저 자리에 앉아다오! 사람들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표들과 느낌표들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하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옆에서 아빠, 엄마보다 더 태연하게 발밑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바로 내 가족이다. 어른이 되면 나도 저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앞으로도 나는 우리 가족의 일원일 수 있을까? “자! 전원 출발선 앞으로!” 사회자가 붉은 깃발을 번쩍 들어올린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수많은 아이들이 출발선 앞으로 달려간다. 나도 질세라 뛰어간다. 시작이 절반이다, 라고 아빠는 늘 말한다. 맞는 말이다. 시작에서부터 뒤처지면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나는 내 앞을 가로막고 달리는 아이들 두, 세 명을 어깨로 밀치며 앞으로 뛰어간다. 누군가 내가 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 어깨를 밀치고는 빠르게 내 앞을 스치고 달려 나간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키가 큰 녀석이다. 누가 너 따위에게 질 줄 알고! 나는 어금니를 악문다. 간신히 내 어깨를 치고 달려간 녀석보다 한 발 앞서 출발선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 정중앙이다. “모두 집중! 첫 번째 미션이다! 참가 인원은 모두 100명, 카트는 50개! 먼저 뛰어가 카트를 잡는 사람만이 장을 볼 수 있다!” 순식간에 사회자의 설명이 끝났다. 사회자는 번쩍 들어 올렸던 붉은 깃발을 밑으로 내리고 출발선 앞에 서 있는 아

  • 웹관리자
  • 2012-10-02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