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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 이야기

  • 작성일 2008-09-30
  • 조회수 605





글 /이상권


  1교시가 갈무리되자 오연이는 휴대폰부터 끄집어낸다. 단축키 1번에다 힘을 주자 ‘찔레댁’이라는 글자가 화면으로 꾸물거린다. 어머니의 애창곡 ‘열정’이라는 노래가 쏟아져 나온다. 오연이는 한참 그 노래를 읊조린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오연이는 어머니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하고는 문자를 치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를 찔레댁이라고 부른다. 어머니는 그 댁호를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여기저기 아는 이들에게 찔레댁이 당신의 닉네임이라고 호들갑스럽게 알렸다. 찔레댁, 처음에는 결코 좋은 이미지로 움튼 말이 아니었다. 찔레댁, 사람들은 얼굴이 유독 하얀 새색시를 보면서 흙내만 맡아도 멀미를 할 것이라고 손가락질하고는, 찔레꽃처럼 고운 사람이 어찌 험한 농사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비웃음이 버무려진 뒷공론의 매듭이었다. 찔레댁, 지금이야 겉보기와는 달리 속내가 찔레가시처럼 야무진 구석을 비유하면서 오히려 추켜올리는 인사치레가 되었지만. 찔레댁, 찔레댁! 죽은 자벌레만 보아도 눈망울을 글썽거리는 어머니. 그런 사람이 뜻밖에도 평생 땅냄새 맡고 살아온 사람들조차 겁내는 독사를 보아도 비명의 고삐 한 번 풀지 않았고, 곰팡이한테 시달리면서 깡깡 말라진 메주덩어리가 항아리 속에서 짜디짠 간장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듯이, 온몸으로 삭혀내듯이, 온몸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듯이, 결국은 간장하고 한 몸이 되어버리듯이, 어머니는 그렇게 땅과 한 몸이 되어버렸다. 어머니는 유독 풀을 좋아했다. 항상 식물도감을 끼고 다니면서 펼쳐 보고, 때로는 깔고 앉고, 때로는 풀밭에 누워서 베고, 때로는 성깔부리는 뱀을 혼내주는 무기로 쓰고, 때로는 마을 사람들한테 귀동냥한 풀이름을 기록하는 공책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런 어머니 마음을 북돋아주었고, 인터넷 세상까지 자유롭게 소통하는 어머니를 신세대라고 부러워하였다. 오연이는 어머니의 손을 잡으면 뭔가 찡하는 울림이 감지되었다. 어머니 몸속으로는 항상 종소리 같은 울림이 흐르고 있었다. 오연이는 그런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아버지는 우시장에 잘 가셨냐고 문자를 보낸다.



 “예에, 각 교실에 알립니다. 지금 밖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고, 송화가루가 많이 날아다니므로 각 교실에 열려 있는 유리창은 모두 닫아주기 바랍니다. 송화가루를 많이 들이마시게 되면, 호흡기가 약한 학생들은 천식이나 각종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 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운동장 활동을 삼가고.......”

 가수 백지영의 목소리를 닮은 보건선생님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교실 안으로 흘러나온다. 몇몇 아이들이 창가로 모여든다.  바람이 학교 건너편 숲을 건드릴 때마다, 숲은 뿌연 송화구름을 뿜어 올린다. 엄청난 꽃가루사태다. 오연이는 휴대폰을 꼭 그러쥔 채 바깥을 보다가 화들짝 놀란다. 뒤에서 오연이 등을 툭 친 승재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송화가루는 약으로 쓰는 거 아니냐?”

 그냥 고개만 끄덕이는 오연이의 눈빛은 어찌 보면 잠이 덜 깬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눈만 뜨고 있을 뿐 정신은 다른 곳에다 두고 온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 몸에 해롭지 않은 게 뭐가 있냐? 여기는 시골인데도 물을 맘대로 마시나, 숨을 맘놓고 쉴 수 있나. 우리 엄마는 날아다니는 새도 쳐다보지 마라고 한다. 조류독감인가 뭔가 때문에....... 조류독감이 공기로 전파대. 그러면 큰일 아냐? 이러다가는 날마다 방독면 차고 사는 거 아냐? 공부만 하기에도 해골이 아픈데, 뭐 이렇게 조심해야 할 것이 많냐!”

 “그러게.” 하고 입안에서 몇 번이나 굴리다가 내뱉는 오연이의 한 마디에는, 요즘 그의 뇌리에서 바글거리고 있는 모든 고민이 응축되어 있다. 오연이는 눈을 심하게 껌벅이면서 승재를 보다가 고개를 돌린다. 승재도 그런 오연이를 곁눈질하고는 창가에다 턱을 괸다.

 “너도 담탱이하고 면담했지?”

 하도 목소리가 낮아서 누구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린지 헷갈리고, 하도 둘의 침묵이 길어서 더더욱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다.

 승재는 한참 뒤에 입을 열었는데, 확실하게 임자를 알 수 있을 정도로 큰 목소리다.

 “나한테는 외고가라고 하더라.”

 “너는 가능하지.”

 “나는 외고 싫어. 운이 좋아서 붙을지 모르지만....... 외고 가서 뒷줄에서 놀 바에는.......”

 오연이도 담임선생님한테 외고를 생각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작년까지만 하여도 오연이는 학년 전체 1등 깃발을 놓친 적이 없었다. 승재는 오연이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오연이는 승재를 늘 한수 아래로 내려다보았으나, 지난겨울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명문대 출신이라는 우수한 무기로 중무장하고서 숱한 입시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과외선생님으로부터 집중적인 조련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승재는 공부의 맛을 알았고, 불과 몇 달 만에 오연이를 밀어내버렸다. 허탈했다. 오연이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달아가면서, 외고라는 말만 들어도 주눅이 들어버렸다.

 “나는 F고등학교 쪽으로 굳혔어. F고는 비평준화 학교라 괜찮대. 그런 학교에 가서 빡세게 하는 게 더 낫대. F고는 작년 서울대 다섯 명 갔대. 전교 10등 안에만 들면 연고대 이상을 보장한대. 담탱이는 외고 아니면 R고 가라고 하더라만.......”

 F고는 여기서 1시간이나 버스품을 팔아야 할 정도로 멀 뿐만 아니라 행정구역상으로도 다른 지역이다. 담임선생님은 그런 단점에다 방점을 찍으면서, 외고 아니면 읍내 R고에 가서 내신을 올린 다음, 수시 노리는 낫다고 했다면서 승재는 은근히 핏대를 세운다. R고에 가면 내신 1등급은 보장받을지 모르나, 작년 입시판을 보면 헛웃음만 나온다고. 서울 중상위권 대학에는 한 명도 밀어 넣지 못했고, 고작해야 수도권에 개똥처럼 널려있는 그저 그런 대학에다 싸구려 물건 팔듯이 집어넣었을 뿐. 제법 이름세 있는 지방의 국립대학에다 이름 올린 서너 명이 자랑스럽다고 현수막을 걸었으나, 속내를 보면 장래성이 없어서 존폐의 위기에 몰린 인기 없는 학과일 뿐.

 “그래서 R고는 꽝이야. 과외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앞으로 수시는 더욱 어렵대. 예체능계 아니면....... 예체능계도 예고가 거의 다 쓸어버린대. 결국 공부밖에 없다고. 빡세게 하는 학교에 가서 성적 올리는 것밖에. 본고사도 부활된다니까.......”

 2교시를 알리는 음악소리가 아니었더라면, 승재의 입에서는 이 나라의 교육현실을 비판하는 말들이 주렁주렁 덩굴져 나왔을 것이다.



 오연이는 자리에 앉자마자 눈을 감는다. 외고를 가야 할지, F고를 가야 할지, R고를 가야 할지. 치열하게 각 학교의 장단점을 발라내던 열정도 요사이 많이 식어내렸다. 국회의원 선거가 뒷갈망되자마자 기습적으로 발표된 미국산 소고기 전면 개방이라는 뉴스 한 방에 부모님의 삶은 격추당할 위기에 빠져 있다. 아버지는 부쩍 말수가 줄어들었다. 반대로 어머니는 틈만 나면 오연이한테 문자를 보내고, 집에 가면 혼자 있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그만큼 어머니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오연이는 진동 모드로 설정해 놓은 휴대폰을 손아귀에다 꼭 쥐고는, 어머니의 하얀 얼굴을 애써 떠올린다.


 


 2교시가 시작된 지도 한참이 되었으나 과학 선생님이 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은근히 선생님이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웅성웅성 떠들어댄다. 사실 요새 학교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한 해 동안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하는 행사 중에서 가장 큰 체육대회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고, 2학년들은 수학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고, 3학년들은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시작된 진학상담이 마음을 무겁게 한 탓도 있을 것이고, 학생들 중 절반은 부모님이 소를 키우다보니 미국산 소고기수입 발표로 역시 신경이 날서 있는 탓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이러저러한 광우병괴담에 치여서 이래저래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반장이 나가려다가 주춤거리고 제자리로 돌아오자, 또각또각 슬리퍼 끌면서 누군가 걸어온다. 서른 중반을 돌지만 워낙 동안이라 남학생들에게 인기 짱인 역사 선생님이 들어오자 더욱 소란해진다. 선생님은 그런 소란스러움을 애써 진압하려 들지 않고 기다렸다가, 과학 선생님이 급성맹장염으로 병원에 실려다갔다고 하면서 자습을 하라고 눈을 섬벅거린다. 아이들은 과학 선생님에 대한 걱정보다, 한 시간 지겨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짧게 환호성을 지른다.

 오연이가 휴대폰을 끄집어내려고 할 찰나 역사 선생님이 다가온다.

 “김오연, 교장선생님이 부르신다. 교장실로 가봐라.”

 오연이는 약간 불안한 눈빛으로, 교장선생님이 왜 자신을 부르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선생님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돌아선다. 오연이는 교실을 나오면서도, 도대체 교장선생님이 왜 자신을 부르는지 그저 멍할 따름이다.

  교장실을 노크하고 들어가자, 하도 깡말라서 미라샘이라고 부르는 교장선생님이 “어서 오너라.” 하고 자상한 미소를 흘린다. 그 옆에는 볼살이 터지도록 얼굴색이 좋은 R고 교장선생님이 앉아 있다. R고 교장선생님은 제법 유명한 시인이다.

 두 분 다 이 지역출신이다. 두 분 다 인생의 말년을 모교에서 교장선생님으로 보내고 있다. 두 분 다 기독교를 믿어야 이 나라가 선진국이 된다고 믿는다. 두 분 다 술과 담배가 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확신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연이네 교장선생님은 30대 초반에 아내를 여위고 혼자 살았고, R고 교장선생님은 세 번이나 이혼을 거듭하였으며 지금도 20살 연하의 고운 여자랑 살고 있다는 점. 아무튼 두 사람은 영어 예찬론자인 이명박 대통령을 세상의 흐름을 가장 잘 짚어내는 위대한 지도자라고 추켜세웠다. 두 분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이, 지난 졸업식장에서 영어로 훈시를 하여 식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귀를 당황하게 하였다. 졸업장은 물론 상장까지도 영어와 한글로 동시에 표기하였다. 유감스럽게도 R고는 졸업장에 표기된 영어표기법이 잘못되어서 졸업생들의 항의를 받는 수모를 당했고, 부랴부랴 졸업장을 회수하여 새로 리콜해주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그때부터 R고는 ‘리콜고’가 되고야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평판이 좋지 않았는데, 초유의 리콜사태는 빨집게를 보고 A자도 모르는 농부들조차,

 “영어 선생들이 얼마나 실력이 없으면 고런 것을 틀렸을까잉. 다들 대학을 개구녕으로 갔다가 개구녕으로 나온 것이제. 고런 디를 으추코 보낸당가. 외국서 온 개새끼들을 잡아다가 아이들 교육을 시켜도 그보다는 나을 것여.”

 그렇게 비아냥거렸고, 들고양이들 사이에서는 R고가 머지않아 문 닫으면 우리 차지가 될 거라고 야옹야옹 속닥거렸다.

 오연이는 자꾸만 눈웃음을 치면서 쳐다보는 R고 교장선생님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교장선생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연이는 담임선생님하고 면담했지? 그래,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만....... 외고는 니가 싫다고 했다면서? F를 생각하고 있니?”

 오연이는 멍한 표정이다. 교장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자신이 외고를 싫다고 담임선생님한테 언질 준 적도 없었다.

 “아니요, 아직......”

 오연이가 더듬거리자, 교장선생님이 의자를 한번 삐그덕거리더니 헛기침을 해댄다.

 “그래, 충분히,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결정해라. 오늘 교장선생님이 너를 부른 것은, 여기 R고 교장선생님도 계시다만....... R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라고 해서. R고가 이번에 명문대학을 나온 젊은 선생님들을 세 분이나 새로 모셨고, 특히 오연이처럼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서, 명문대반을 꾸릴 생각이란다. 장학금 혜택도 많고.......”

 이제야 R고 교장선생님이 오신 이유를 알겠다. 오연이는 씁쓸하게 터지는 웃음을 억지로 삼킨다. 지난주까지만 하여도 선생님들은 외고의 장점을 조목조목 동그라미치면서 노골적으로 권유하였는데, 불과 며칠 만에 한 아이의 장래를 위한다는 생각들이 이렇게 바뀔 수 있는지. 최근 2년간 외고 합격자가 나오지 않아서 교장선생님은 발악발악 악을 쓰듯이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것도 아는데. 알 수가 없다. 옆에 있던 R고 교장선생님이 장학금 부분을 강조하면서 끼어든다. 소 이야기도 끄집어낸다. 부모님이 소를 많이 키우시는 걸로 아는데, 앞으로 어렵지 않겠냐고? 그러니 R고에 와서 장학금도 받고, 명문대에도 가고, 꿩 먹고 알 먹고 아니냐고.



 입에 맞지 않은 허브차를 억지로 마시면 뒤끝이 영 찝찝한데, 교장실을 나온 오연이는 꼭 그런 기분이다. 오연이는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로 입을 헹구어낸 다음 휴대전화를 끄집어낸다. 역시 도착한 메시지는 없다.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다. 아침에 식구들이 밥을 먹을 때도 분위기가 무거웠다. 어머니는 좀 더 상황을 보아가면서 팔아도 되지 않냐고 하였고, 아버지는 오늘따라 수저질을 서툴게 하면서 팔지 않으면 빚을 진다고 힘겨운 눈빛을 지었다. 아버지의 입가에서는, 당신의 살이 되고 숨소리가 될 밥 알갱이가 자꾸만 비져 나왔다. 오연이는 그런 아버지를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사촌 동생 보연이도 젓가락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화단에 있는 모과나무에서 작은 새들이 새살거리면서 놀고 있다. 오연이는 새들을 부러운 눈길로 보다가, 휴대폰을 열어서 어머니한테 문자를 보낸다. 우시장에 간 아버지가 걱정된다는 말을 망설인 끝에 넣어서 보냈는데, 아버지라는 말을 곱씹을 때마다 가슴이 떨린다. 아버지라는 글자가 오늘만큼 커 보이고, 오늘만큼 무겁게 느껴지고, 오늘만큼 아리게 가슴을 찌른 적도 없다.



 3교시 영어시간에도 오연이는 집중이 되지 않는다. 결국 오연이는 영어 선생님에게 두 번이나 지적을 당했고, 영어 선생님은 중간고사를 들먹이면서 내일 면담을 좀 하자고 화난 눈초리를 휘두른다. 그렇게 엉겅퀴가시만큼 따가운 지청구를 들었어도 정신이 모아지지 않고, 해바라기보다 더 웃음이 넘치던 부모님의 얼굴이 어두운 음각판화로 떠오른다. 오연이는 자꾸만 고개를 흔들고, 자꾸만 눈을 부비다가, 자꾸만 선생님의 눈그물에 걸려든다. 아랫배도 슬슬 아파온다. 오연이는 영어시간이 끝나자마자 선생님보다 먼저 교실을 튀어나간다. 화장실에 가서 변을 보고 나오자 승재가 기다리고 있다. 오연이가 교장실에서 들었던 말꾸러미를 풀어놓자, 승재는 교장선생님을 한껏 비웃으면서 절대 그들의 들러리가 되지 라고 손가락을 뚝뚝 꺾는다.  R고가 존폐의 위기에 몰리자, R고 교장선생님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거라고. 호주머니에서 온몸을 짜릿하게 자극해오는 휴대폰 진동음 느껴지자, 오연이는 승재한테 양해를 구하고 계단을 내려간다.

 -오연아, 잘 지내니? 갑자니 니 생각났어. 부모님도 잘 계시니? 미국소 수입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겠다. 우리 엄마 아빠도 이야기하시더라. 니네 집 타격이 크겠다고......

 오연이가 연분홍 봉숭아물을 손톱에다 들여주고 싶을 정도로 속앓이했던 여자친구 수인이. 요즘 들어 마음이 심란해질 때마다 부쩍 떠오른 그녀. 그녀와의 달콤한 기억을 지우려고 하면 할수록, 그녀의 영상은 여리고 섬세한 오연이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얼굴, 그 목소리, 그 웃음소리, 꽉 잡아준 그 손가락. 그런 친구인데도 맥이 빠진다. 오연이는 수인이한테 답장을 쓰면서도, 왜 이렇게 어머니한테서 연락이 오지 않는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고시랑거린다.

 오연이는 간단하게 잘 있냐고 답장을 보낸다. 조금도 속내를 보여주고 싶지 않다. 수인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사람이 되었다. 수인이는 눈매가 서글서글하고, 또래에 비해서 깊은 정이 있었다.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적극적이고, 오연이한테 먼저 러브짱을 보냈다. 수인이는 그렇게 오연이 마음속 깊숙한 곳으로 나풀나풀 들어왔다. 그러나 서울로 간 뒤로는, 그냥 평범한 초등학교 친구로 전락해버렸다. 오연이가 좀 더 가까워지려고 속내를 드러내면, 수인이는 냉정하게 집어내면서 초등학교 친구로 남자고 빨간 줄을 그었다. 오연이는 그런 수인이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속엣말을 한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했으리라.

 -하여간 골때린다. 2MB은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야. 우리나라가 조공하면서 살았던 시대에도 이런 조약은 없었대.

 그만 보내왔으면 좋겠는데, 또 수인이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오연이는 별로 할 말도 없다.

 -어쨌든 우리나라 국민들이 뽑았잖아.

 오연이는 뭐라고 대거리할까 고민하다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는다. 수인이 메시지는 점점 빠르게 날아온다.

 -그러니까, 국민을 섬겨야지.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을 왜 하냐구? 야, 니네는 5월 17일날 수업거부하지 않냐? 니네야 말로 직접 당사자들이니까, 전교생이 수업거부 해야 하는 거 아냐? 촛불시위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거 아냐?

 오연이는 더욱 할 말이 없다. 촛불시위니 수업거부니 하는 것도 다 먼 나라 이야기다. 이곳 분위기는 그야말로 침통함, 그 자체다. 그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안개가 농촌을 뒤덮고 있다. 뭔가 반항이라도 하면, 싹 쓸어버리겠다고 무시무시한 서슬이 도사린 안개. 들에서 돌아오는 농민들의 뒷모습에서는, 얻은 것보다는 잃어버린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쓸쓸함이 흘러내리고 있다. 한숨가락에 맞춰 힘겹게 담배타령을 하는 그들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줄을 놓아버리는 극단의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뿐이다. 농민의 자식들도 대도시 학생들이 주도하는 촛불시위니 뭐니 하는 인터넷 동영상을 부럽게 바라다볼 뿐. 왜, 멍청하게 가만히 있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촛불시위조차도, 사치로 보인다면 뭐라고 할까. 오연이는 답답함을 느끼면서 손을 놀린다.

 -니 말이 맞아. 우리도 여러 가지 생각중이야.

 -서울은 난리야. 대통령이 중고딩들하고 싸운다는 말이 있어. 그만큼 우리를 두려워한다는 거지. 날마다 선생들이 겁주고, 엄포 놓고....... 그래도 다 촛불시위에 나가. 17일에는 서울시 선생들이 총동원된대. 역사적으로 이런 일은 없었대. 나는 경찰청 홈피에 들어가서 항의도 했어. 미친놈들, 지네들은 미국소 안 먹을 거 아냐? 그렇게도 질 좋고 싼 고기라면, 지네들부터 먹어야지.......

 수인이가 보낸 글자가 툭툭 살아나서 오연이 귓속으로 돌진해온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이미 웃음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얼굴이 희미한 동영상으로 떠오른다. 아버지는 술까지 마셨다. 몇 년 전에 큰돈을 빌려간 작은아버지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을 때도, 아버지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웃음을 한 점도 구경할 수 없다.



 오연이는 교실로 돌아가면서, 새삼 소를 떠올린다. 아버지한테 소는 단순히 돈벌이 동물이 아니다. 소가 있음으로 해서 아버지는 삶의 가치를 내세울 수 있었고, 소가 있음으로 해서 장애도 묻혀버렸으며, 소가 있음으로 해서 마을을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못지않게 당당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늦게 흙맛 알았다. 할아버지는 장애인인 아들한테 낫 한 번 가까이 가도록 묵인하질 않았다. 아들의 입에서 말귀가 트일 즈음부터 있는 돈 없는 퍼다가 책을 사 날리면서 공부만이 살길이라고, 다른 생각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귀에다 못질을 쾅쾅쾅 해버렸다.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뜻을 헤아려 학교에서 받아온 상장으로 방을 도배하였다. 할아버지는 법관을 갈망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대학 4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법관의 꿈을 버렸고, 대신 장애인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시민단체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어머니를 만났고, 서른한 살 때에 무작정 고향으로 내려왔다. 아무도 아버지를 반기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병신이 육갑한다고 비아냥거렸다. 아버지는 부모님이 물려준 땅으로 소를 샀다. 아버지는 그렇게 소와 함께 흙에다 발을 묻기 시작하였고, 이제는 소하고 동족이라는 농담을 들을 정도로 한우 전문가가 되어있다. 가끔씩 아버지는 어머니를 번쩍 안아서 암소의 등에다 무등을 태워주기도 하였다. 어머니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안정감 있게 타고는 소털에다 볼을 부비면서 좋아하였다. 그런 부모님이 더 이상 소를 키울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부글거리자, 오연이는 이 모든 것들이 꿈이기만을 바다.



 오연이는 점심밥을 소처럼 씹어 삼키면서도 아무런 맛을 느끼지 못한다. 결국 오연이는 밥을 다 비우지 못하고 일어선다. 여전히 어머니의 답장은 없다. 아버지한테도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역시 아버지도 답장이 없다.

 오연이는 도서관으로 가면서 먼 친척뻘 되는 이장아재의 휴대폰 번호를 기억해 내려고 애를 쓴다. 010-3302까지는 숫자를 찾아냈으나 그 다음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워낙 어머니하고 소통이 잘 되기 때문에 이장아재의 전화번호를 저장해 두지도 않았다.

  오연이는 열람실을 나오다가 인봉이하고 마주친다. 운동에 대한 소질만 있다면, 아니 부모님이 아들의 뒷바라지를 해줄 만한 여력만 된다면, 농구나 배구 같은 운동선수로 북돋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키가 크고 가슴이 딱 벌어진 인봉, 그렇지 않아도 오연이를 찾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둘은 도서관 창가로 가서 앉는다. 1학년인 인봉이가 오연이 선배 같다. 얼굴은 감실감실, 눈매는 부리부리, 코는 벌름벌름. 오연이네 아랫마을에 사는 인봉이네도 소를 많이 키운다. 인봉이 꿈은 농촌에다 2층짜리 멋진 통나무집을 짓고, 도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농부가 되는 것이다. 인봉이는 책만 펼치면 눈멀미를 한다면서, 소를 키워서 멋있게 살겠다고 아예 드러내놓고 떠벌고. 그의 아버지도 허허허 웃으면서,

 “지금이야 농촌에서 살면 장가가기도 힘들지만, 느그들 시대에는 달라질 것이다.”

 하고 어린 아들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인봉이는 오늘따라  크게 한숨을 내뱉는다.

 “형네도 오늘 소 팔았다면서?”

 “어떻게 아냐?”

 “아빠하고 통화했어. 우리도 오늘 네 마리 팔았어.”

 “그럼, 우리 아빠도 봤대?”

 오연이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면서 인봉이를 본다. 인봉이는 그런 오연이하고 한 번 눈빛을 마주친 다음 힘없이 고개를 돌린다.

 “응,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저번 장보다 50만원 떨어졌대. 형네 아버지는 오전에 일찍 팔고 가셨다는데. 우시장에 오시자마자 바로 파셨대.”

 “그래에.......”

  오연이는 눈을 감고 다시 생각에 잠긴다. 일찍 소를 팔고 집에 가셨다면, 왜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일까.

 “형은 공부라도 잘하니까. 나는 요새 잠도 안 와. 미국소 들어오면 다 꽝이잖아?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축산농가도 돈 있는 사람만....... 1~2프로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다 죽는대. 게다가 우리는 빚도 많아서....... 형네는 빚이 없어서 괜찮을 거라고 하던.......”

 그 말을 들은 오연이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내면서 인봉이 어깨를 툭 쳐본다.

 “안 그래. 우리도 심각해. 우리 부모님은....... 소 없이는 못 살아. 너도 알잖아. 몸도 그렇고....... 나도 요새 잠 안 와. 공부도 안 되고....... 저번에는 아빠 차가....... 수리비가 백만 원도 넘게 나왔다고 하더라. 그저께는 한숨도 못 잤어. 영광서 자살한 사람 소식 듣고, 아빠가 뒤란에서 혼자 술 드시는데.......”

 “엉, 나만 그러는 게 아니구나. 형, 나도 요새 너무 불안해.”

 “다 그래. 부모님이 소 키우는 친구들은 다.......”

 오연이는 거기까지 말을 하고는 억지로 침을 꼴깍 삼킨 다음, 인봉이 손을 잡아준다.

 “그래도 괜찮을 거야. 뭔가 대책이 나오겠지.......”



 도서관을 나온 오연이는 운동장으로 나가서, 송화가루가 날아다니는 운동장을 천천히 걸어간다. 자꾸만 불길한 헛생각이 덧나서 잠시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열흘 전에는 오연이도 잘 아는 소중계업자인 박씨가 찾아와서, 팔려고 하는 송아지 세 마리를 이리저리 짚어보았다. 박씨는 평소보다 난처한 표정을 지었고, 자꾸만 아버지의 눈을 피하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박씨의 입에서 구체적인 돈 액수가 나오는 순간, 아버지는 약간 뒤틀어진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고, 고것은, 너, 너무......” 하고 더듬거리면서 비틀거렸다. 아버지는 당황하거나 흥분하면 온몸을 가만 두지 못한다. 눈썹도 심하게 껌벅이고, 다리를 떨고, 말도 떨리고....... 마치 불개미집을 밟고 있는 것처럼, 온몸에 거머리떼가 달라붙은 것처럼, 흔들흔들, 꼼지락꼼지락 아버지는 고개를 흔들어버렸고, 박씨는 찬물만 한 사발 벌컥벌컥 들이 다음 마당을 걸어 나갔다. 그날 아버지는 차를 몰고 읍내에 나가서 술에 고주망태가 되었고, 집에 오다가 도로 아래쪽에 있는 논에다 차를 처박았다. 3미터 아래로 추락했으나 어디 다친 데는 없었다. 사람들은 어린 새끼랑 벙어리 마누라를 두고 저승으로 도망치려고 한 아버지를 옥황상제가 호되게 꾸짖어서 돌려보낸 모양이라고 입방아를 찧었다. 그때부터 오연이는 아버지의 표정을 훔쳐보는 버릇이 생겼다.



 오연이는 휴대폰을 끄집어내서 단축키 3번을 누른다. 화면에 ‘우리집’이라는 글자가 다. 신호음이 연달아 가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논바닥에 처박힌 아버지의 차가 떠오른다. 오연이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대면서 수돗가로 가서 찬물로 얼굴을 박박 씻어댄다.

다시 단축키 1번을 누른다. 역시 받지 않는다. 단축키 2번을 연달아 누른다. 아버지도 받지 않는다. 정말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비상사태다. 당장 집으로 달려가고 싶다. 아버지야 휴대전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집에다 놓고 다니기도 한다지만, 어머니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는 휴대폰을 오연이보다 더 잘 다룬다. 한때 오연이는 휴대폰이 어머니를 위해서 생겨났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민들레들이 홀씨풍선을 들고 아장아장 마당으로 걸음마하던 작년 오월 초. 어머니의 마흔 번째 생일일 날 아침. 어머니의 휴대폰으로 축하한다는 문자메시지가 이십 여 통 쏟아졌다. 가족들, 친척들, 친구들. 어머니는 비를 한껏 머금은 채 꽃봉오리를 여는 표정으로 그 많은 사람들에게 댓거리하고는, ‘나에게 문자메시지는 빛이다. 나에게 문자메시지는 햇볕이다. 나에게 문자메시지는 공기다, 물이다. 나는 바람처럼 말하고, 햇처럼 보고, 공기처럼 물처럼 소리를 마시고 듣는다. 행복하다’고 수화로 식구들에게 재잘거렸다. 청주 병원에 계시는 외할머니도 배냇벙어리인 딸하고 교감하기 위해 일부러 문자메시지를 배웠다면서, 무시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버들강아지 볼살을 찌우던 봄바람이 살랑거리던 지난 2월. 보고 싶다는 외할머니의 문자메시지를 받은 어머니는, 식구들을 데리고 문병을 갔다. 외가식구들 다 모여 있었다. 외할머니는 그들 앞에서 까만 휴대폰을 끄집어낸 다음, 이것 때문에 살맛난다고, 이것 때문에 큰 시름 놓았다고 했다. 당신의 뱃속에서 언어를 잃어버리고 세상으로 나온 딸 때문에, 배냇병신이라는 원망을 당신 가슴에다 문신처럼 새기고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세월. 다른 새끼들보다 더 애지중지하여 키워낸 딸이 배냇벙어리라는 원죄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여자라고 생긴 것들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농촌 총각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했을 때. 더구나 상대자가 뇌성마비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당신 손으로 딸과 함께 목숨을 끊고 싶었다. 그런 딸이 생각보다 잘 살아주었고, 어느 한 귀퉁이 부족함 없는 자식도 쑥 뽑아내주었고, 휴대폰이라는 문명의 열매가 딸의 아픔을 대신해 주는 것 같아, 이제는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눈빛에서 찰랑거렸다. 외할머니는 어머니의 문자메시지를 보면, 딸의 목소리가 눈에 보인다고 웃었다. 햇볕을 즐겁게 마중하면서 단 숨을 내뱉는 풀잎 같은 색. 만져질 듯 꿈틀거림, 바람 같은 속삭임이 있다면서. 오연이도 외할머니처럼 어머니가 보낸 메시지를 보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순간순간 몸으로 들어오는 온갖 느낌들을 글로 살려낸다. 한번은 오연이가 학창시절에 작가지망생이 아니었냐고 맥짚어보자, 대답을 수줍어하는 눈빛으로 대신했다. 어머니한테 휴대폰은 습작노트만큼이나, 일기장만큼이나 중요했다. 휴대폰은 어머니에게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주었다. 보통 오연이가 메시지를 보내면 몇 십 초 안에 답이 오는데, 오늘 종일토록 답이 없다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단단하게 채워놓았던 마음속의 빗장이 풀리고, 자꾸만 뭔가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오연이는 심각하게 구겨진 얼굴살을 손바닥으로 다림질하면서 교실로 들어선다. 칠판 앞에서 아이들이 웅성거린다. 오연이는 다시 나갈까 하다가 그냥 책상 위에 걸터앉는다. 혼자 있어봤자 자꾸만 헛생각만 덧나고, 10분만 뭉개면 5교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칠면조 성대사를 잘하는 달식이가 칠판으로 나간다. 칠판에는 오이체하고 비슷한 글씨체로 <오늘 햄 먹은 사람 다 광우병 걸려 디졌다>라고 적혀 있다. 달식이는 그 뒤에다 화살표를 긋고는, <이 말 쓴 사람은 광돈병 걸려 디진다>라고 댓글을 붙인다. 그러면서 ‘광돈병’이라는 단어 밑에다 밑줄을 두 번이나 긋는다. 여기저기서 야유와 짧은 박수가 터진다. 자칭 춤짱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은혜가 나선다.

 →오늘 햄 먹은 사람 다 광우병 걸려 디졌다→이 말 쓴 사람은 광돈병 걸려 디진다→이 말 쓴 사람 광인병 걸려 디진다

 오연이는 그만 피식 웃고야 만다. 요즘 들어 아이들은 광우병에 대한 댓글놀이를 다양하게 즐기고 있다. 어제는 광우병하면 연상되는 낱말대기 시합이 여기저기서 벌어졌고, 그제는 광우병 괴담 이어가기 시합도 벌어졌다. 오늘은 핵심이 뭔지, 누가 먼저 이런 놀이를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도 재밌다는 표정으로 환호를 지른다.

 달식이가 다시 나선다.

 →이 말 쓴 사람 광인병 걸려 디진다→근거 없이 말한 사람 온몸에 소털 나서 디진다

  은혜가 나서려고 할 때, 여학생들 중에서 가장 피구를 잘 해서 ‘피구에이스’라는 별명이 붙은 서연이가 나간다.

 →근거 없이 말한 사람 온몸에 소털 나서 디진다→돼지한테 죽은 소 갈아서 주면, 돼지가 음매에 하면서 디진다→ 그 돼지 먹으면 사람 몸에 돼지털 나서 디진다

 그야말로 웃음바다가 되고야 말았고, 또 누군가 나가려고 할 때 5교시를 알리는 음악소리가 울려퍼진다.



 오연이는 국어 선생님에게 집중하려고, 눈알맹이에다 힘을 주고, 저번 중간고사 때 틀린 시험문제를 다시금 곱씹었고, 저번 중간고사 때 나온 시를 읊조려보기도 하고, 선생님이 한 말을 공책에다 적어보기도 하였다. 그래도 불길한 생각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아니 집중하려고 자신을 다그치면 다그칠수록, 더욱 강력해진 불길한 생각들이 세포분열을 하면서 온몸을 옭아 묶는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배가 아프다. 오연이는 아랫배를 문지르다가 사총동생 보연이를 떠올린다. 시간을 보니까 얼추 보연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오연이 슬그머니 단축키 3번을 누르다가 휴대폰을 책상 속으로 밀어 넣는다. 국어 선생님이 자꾸만 이쪽으로 눈길을 보내고 있다. 보연이는 작은 아버지 아들이다. 3년 전부터 한식구로 살았으니까, 보연이가 다섯 살 때이다. 유난히도 소쩍새의 울림이 크게 파장되던 초여름 밤이었다. 한참동안 개가 그악스러운 목소리를 질러대자 아버지가 생기침을 하면서 밖으로 나갔고, 곧이어 흐느끼는 듯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느므의 새끼! 이느므의 새끼!” 노란 유치원 가방을 어깨에 맨 채 고개를 푹 떨구고 있는 보연이의 등 뒤에는, 그 아이가 짊어지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워 보이는 만삭의 달이 얹혀 있었다. 아버지는 보연이를 끌어안고는, 그 어린것에게 하는 말인지, 그 어린것을 놓고 달아나버린 작은아버지에게 하는 것인지, “이느므의 새끼”라는 탄식을 끝없이 토해냈다. 보연이는 눈물이 가득 찬 눈알을 굴리면서도 끝내 울음 한줄 풀어놓지 않았고, 아빠가 큰엄마 큰아빠 말씀 잘 듣고 있으라고 했다고, 내년에 와서 데려가겠다고 했다고 또박또박 말했다. 오연이는 작은아빠네 집 사정을 잘 모른다. 다만 한때 작은아빠네가 서울에서 제법 잘살았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집안이 망했다는 것. 보연이 4살 때 이혼했다는 것. 아버지의 도움으로 크게 식당을 하였으나 역시 망했다는 것. 오연이는 그 정도만 알고 있다. 그 뒤로 뻐꾸기가 몇 번이나 봄을 몰고 왔으나 작은아버지 소식은 없었다.



 오연이는 5교시가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가서 설사를 주르륵주르륵 쏟아낸다. 그리고 나서야 단축키 3번을 누른다. 신호음은 급하게 가고 있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보연이 이 자식은 어디서 뭐하는 거야? 또 어디 앉아서 지나가는 차만 바라보고 있는 거 아냐? 무소차만 찾고 있겠지. 하여간......’

 오연이는 괜히 짜증을 내면서, 만약 눈앞에 있었더라면 한대 쥐어박았을지도 모른다. 교실에 와서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승재가 와서 얼굴색이 안 좋다고 작은 눈을 크게 뜬다. 오연이는 그의 시선을 피하면서 아버지가 우시장에 갔는데, 저번에 아버지가 큰 사고를 내서 걱정이 되는데, 아무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말꼬리를 흐린다. 오연이네 사정을 잘 아는 승재도 불안한 표정을 짓는다.

 “벌써 소를 팔았나봐. 우리 아랫마을에 사는 인봉이 알지? 인봉이가 자기 아빠랑 통화했다면서 알려줬어. 근데 아빠도 전화를 안 받고, 엄마도....... 집에도.......”

 “야, 별 일이야 있겠냐?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오연이는 그런 승재한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 밖으로 나간다. 아랫배가 다시 쓰리다.



 어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소, 소, 어이소. 광우병, 미국소, 2MB 부시, 부시족, 2MB......작은아버지, 보연이, 보연이.......갑자기 보연이가 “형아!” 하고 어디선가 뛰어나올 것만 같다. 오연이는 저도 모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급습해오는 선생님의 눈길을 받고는 움칠 몸을 바로 잡는다. 그래도 보연이는 지워지지 않는다. 어른 같은 아이. 제 몸속에다 묵은 어른 하나를 키우고 있는 아이. 제 몸속에다, 언제, 어느 때 부려먹으려고 어른을 키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보연이는 큰엄마 큰아빠한테 늘 존댓말을 하였다. 오연이는 그런 보연이의 눈빛이, 그런 보연이의 되바라진 입술이 못마땅했다. 그가 철저하게 격식을 따지면서 자기 부모의 영역만큼은 절대로 침범할 수 없다고 배수의 진을 치고는, 큰아버지 큰엄마가 아무리 정을 주어도, 자기가 그어놓은 선 이상은 절대로 넘지 않는 독한 놈. 그가 자꾸만 떠오르자 온몸이 차가워지면서 으스스 떨린다.



 오연이는 6교시를 시작한 지 10분 만에 오만상을 찡그리며 일어난다. 선생님이 놀라면서 다가왔다. 오연이는 오른손으로 아랫배를, 왼손으로는 머리를 문지른다. 아이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광우병 걸린 거 아니냐는 농담으로 지루함을 땜질한다. 몇몇은 웃음깍지를 터트리고, 몇몇은 시름에 찬 눈빛을 던진다. 승재가 와서 부축해준다. 오연이는 혼자서 보건실까지 갈 수 있었지만 승재를 뿌리치지 않는다.



 수혈받듯이 승재의 숨소리를 받던 오연이는, 지금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친구가 형이었으면, 아니 어이소처럼 듬직한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눈을 감는다. 어이소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어이소를 처음 샀을 때의 설레임을 두고두고 읊조렸다. 오직 당신만을 믿고 외양간으로 들어온 철든 암소 한 마리와 어린 송아지 세 마리. 그들이 따라오는 소리만으로도, 이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지, 아암. 너무너무 오지고 기뻤다고. 그러다가 당신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는 암소를 보고는, 내가 저것들을 키울 수 있을까 하고 겁이 나서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허허허. 아버지는 소한테 진심으로 대했고,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자궁 속에서 여섯 배나 새끼를 풀어낸 암소는 그런 아버지의 순수함을 받아들였고, 그 특유의 눈빛으로, 그 특유의 숨소리로, 그 특유의 걸음걸이로 아버지의 여백을 채워주었다. 아버지는 그 암소를 “어이!” 하고 반 공대하는데, 동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그 암소를 “어이소!”라고 불렀지, 껄껄껄. 오연이는 마음속으로 어이소 같은 그 누군가를 불러보려고, 그 절대자 같은 그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지금 옆에 있는 승재가 자신의 경쟁자가 아니라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나무 같다.



 선생님들 중에서 가장 노래를 잘 부른다고 소문이 나 있는 보건선생님이, 어디가 아프냐고 오연이의 얼굴 구석구석을 찔러본다. 오연이가 더듬거리자 감을 잡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너무 예민한 게 탈이라고 어깨를 툭 친다. 오연이는 보건선생님이 주는 약을 긴급 지원군으로 투입한다. 지원군은 뱃속으로 침투하자 배앓이를 진압하였으나 격렬하게 저항하는 머리앓이는 좀처럼 진압하지 못한다. 너무 머리가 아파서 누워 있을 수가 없다. 마음이 넝마가 된 것처럼 어지럽다. 보건선생님도 당황하면서 병원에 가는 게 낫다는 판정을 내린다. 조퇴를 하고 교무실을 나올 때까지만 하여도,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올 때까지만 하여도, 이런 상태로 집까지 갈 자신이 없었다. 신기하게도 막상 학교를 나오자, 무시무시한 광우병 괴담들이 으르렁거리고 있는 학교를 탈출하자마자, 새끼곰이 어설프게 헤집어놓은 불개집처럼 바글바글 끓던 머리앓이도 말끔해진다.




 흙탕물로 얼룩진 버스 유리창으로, 푸르디푸른 들이 눈에 시리게 차온다. 인심이 후한 봄햇살이 헤프게 쏟아지자,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흙이란 흙들이 제 가슴을 풀어헤치며 파란 싹을 세상으로 내보낸다. 그렇게 풍요로워진 들 위로 가리 서너 마리가 묵상하고 있다. 버스에서 내린 오연이는 자기도 모르는 신화를 몸에다 품고 있음직하게 허리 굵은 당산나무 옆을 지나친다. 집 앞으로 흐르는 봇도랑 시멘트 다리에 누군가 빨처럼 축 늘어진 채 앉아있다. 보연이다. 올해 초등학교 문턱을 넘었으니, 단맛 풍기는 과자나 쫓아다니면서 저를 낳아준 어미의 따사로운 눈빛과 응석을 주고받으면서 새물새물 애교부릴 나이지만, 녀석의 눈빛은 이미 그런 경계를 벗어나 있다. 여기에서 죽치고 있었으니 아무리 집으로 전화를 해도 소용없었겠지. 오연이는 한 마디 따끔하게 쏘아부치려다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군 보연이를 보자 그런 마음이 뒷걸음치고야 만다.

 “여기서 혼자 뭐하냐? 심심하면 형 컴퓨터 하지.”

 보연이는 그맘때 아이들이라면 사족을 쓰지 못하는 컴퓨터한테도 마음을 주지 않는 별난 놈. 오직 강아지하고만 볼을 부비면서, 종알종알 자기들끼리만 아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놀다가도, 마을 회관 앞으로 ‘무소’ 같은 차만 오면 벌떡 일어나서 눈알이 빠져나가도록 바라다보면서 망부석 같은 표정을 짓는다. 동네 사람들은 그런 보연이를 보고는, 인당수에 빠져죽은 심청이를 기다리는 심봉사 같은 표정이니, 과거보러 떠난 이몽룡을 기다리는 춘향이 같은 눈빛이니 빗대면서 혀를 차댔다.

 오연이는, 또 무소 봤니, 하고 터져나오는 말을 꼭 삼킨다. 보연이한테 무소는 아빠하고 다름없는 존재다. 한밤중에 자신을 데리고 와서, “큰아빠 큰엄마 말씀 잘 듣고 있어라.” 하고 떨궈주고는 달아나버린 차.

 오연이가 보연이 손을 잡아준다. 보연이 눈빛에는 하고 싶은 말이 넘쳐흐른다. 형, 우리 아빠는 왜 안 와? 형, 우리 아빠는 언제 와? 나 몰래 큰아빠랑 전화한 적 있어? 사람들이 우리 아빠 죽었을지도 모른대. 형, 아니지? 사람들이 우리 아빠는 외국 가셨대? 사실이야? 사람들이 우리 아빠가 나 버렸대. 거짓말이지? 그 숱한 말들을, 보연이가 묵묵히 가슴에다 삭힌다.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발발이와 똥개의 잡종인 발똥이가 뒤란에서 뛰어오더니, 오연이한테는 몇 번 꼬리를 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곧장 보연이한테 가서 뛰어오르고, 혀로 핥아대고, 짖어대고, 부벼대고, 야단이다. 보연이는 그런 발똥이의 응석을 능숙하게 받아준다. 오연이는 일부러 크게 헛기침을 하면서 마당 왼쪽에 있는 감나무를 바라다본다. 아무도 없다. 숱하게 바람과 겨루다가 옹이가 진 가지에다 하얀 비닐 하나를 차고 있을 뿐. 집안에도, 뒤란에도, 화장실에도 없다. 숨이 막힌다. 답답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어머니는 품일을 갈 때에도 항상 자신의 존재를 문자메시지로 남겨놓았는데, 이렇게 아무런 암시도 하지 않고 증발해버린 적이 없었는데. 자꾸만 불길한 생각이 솟아올라 이제는 더 이상 가슴 속에다 아둘 곳도 없다. 오연이는 뒤란에서 걸어 나오다가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는 아버지하고 마주친다. 아버지가 “어!” 하더니 눈길을 돌린다. 언제든지 체념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 눈. 오연이는 그 눈빛이 싫다. 오연이는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묻는 아버지를, 아직 사냥에 익숙하지 못해서 늘 배고픈 어린 고양이 같은 눈빛으로 쏘아본다.

 “엄마는요?”

 “으으, 어마는 가셨다. 애할므니이 이독, 이독하시단다아. 니모가 와서.......”

 아버지 손에는 까만 비닐봉투가 두개 들려 있다. 그중 하나에서는 달그락달그락 농약병들이 부대끼고, 또 다른 비닐에서는 사이다 같은 음료수 병들이 달그락거린다. 오연이는 그런 아버지를 불안하게 노려본다. 외할머니가 위독해서 이모가 엄마를 모시고 갔다는 말은 귓속으로 스며들지도 못했고, 까만 비닐봉지에 든 농약병만 눈에 들어온다. 오연이는 어머니가 왜 휴대폰을 받지 않냐고  따지듯이 다그친다, 아버지는 힘없이 대거리한다.

 “으낙, 게,겡황이 없으니이......아빠도, 바암에 가야 써. 애할므니가 펜차느시다고 해서 소도 헐값에 넹게불고 왔다만........”

 아버지는 마루에 앉자마자 보연이를 부르더니, 농약병이 든 비닐봉지 앞으로 기울어진 또 다른 비닐봉투를 잡아당겨서 사이다 한 병을 뽑아낸다. 보연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수다. 보연이는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온갖 음료수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직 사이다만 쪽쪽 빨아대는 놈. 보연이가 사이다를 받으면서 항상 저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해맑은 웃음이 보이는데, 오연이는 뭔가 섬뜩한 느낌에 놀라며 진저리친다. 아버지가 농약병이 든 비닐을 끌어당긴다. 오연이는 자기도 모르게

 “아빠아아!”

 지금껏 숱한 음식물을 받아낸 창자들이 다 튀어나올 정도로, 지금껏 살아온 모든 힘을 모아서 소리친다. 아버지가 깜짝 놀라면서 뒤돌아본다. 보연이도 입을 크게 벌리고 오연이를 쳐다보면서 사이다병을 가슴으로 끌어당긴다. 오연이는 한달음에 마루까지 뛰어올라 보연이가 끌어안은 사이다병을 낚아챈다. 사이다병은 잠시 새가 되어 공중을 날아가다가, 이 세상의 그 어떤 절대자들은 물론 이 세상의 그 어떤 유일신들도 거역하지 못한 중력의 순리를 받아들이면서 추락하여, “팍!” 하는 작은 폭발음을 내면서 산산 몸이 깨져나간다. 그 짧은 순간 마당의 시간은 숨을 멈추고, 마당가에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작은 풀들도, 아버지와 보연이도 한동안 숨을 쉬지 못한다. 오연이는 몸을 부들부들 떨어댄다.

 “아빠, 이러시면 안 요, 아빠아!”

 오연이가 마루 밑에 있는 농약병이 든 비닐 쪽으로 손을 뻗자, 왼 볼을 경직되게 일그러트리면서 멍하니 앉아 있던 아버지가 발로 농약병을 감싸면서,

 “너너너너너......외외외, 이러냐아?”

 거의 숨넘어가는 소리로 더듬거린다. 오연이는 힘으로 아버지가 발로 감싼 농약병이 든 비닐을 끄집어내려다가, 오른발 끝에다 온힘을 모아서 휘두르는 아버지의 발길에 채여 뒤로 엉방아를 찧는다. 그제야 아버지는 아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감을 잡았고, 그러면서 어린 아들의 마음이 너무 안러워졌지만, 이내 눈빛이 강해진다. 아버지는 마루에 있는 마른 걸레를 들고, 풀밭에서 자기 독만 믿고 머리를 빳빳하게 들고 있는 독사를 내리치듯이 휘두른다.

 “요요요노으므므 자시익 미쳤나!”

 오연이도 지지 않고 아버지를 노려보면서 벌떡 일어난다.

 “아빠, 엄마 어딨어요! 엄마, 어딨냐고요!”

 “저저저저, 저, 노므으 자서억이....”

 아버지 몸이 부르르 떨린다. 그 흔들림은 점점 심해지면서 머리랑 팔을 몸통에서 떨어트릴 것만 같다. 아버지는 앞쪽으로 팔을 뻗어 오연이 팔을 낚아챈다. 그 힘이 얼마나 강력하던지 오연이는 앞으로 끌려오면서 아버지하고 부딪힌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뒤로 발라당 넘어진다. 씩씩거리면서 일어나는 오연이의 눈이 붉다. 아버지는 뭐라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지르면서,

 “요노므으으 자석이이잉......”

 하면서 마루 밑에서 뒹구는 신발을 잡히는 대로 내던진다.

 “아빠가 요, 요러타고......너 한나 므므므므, 믓 이길 줄 알고.......잽히기, 잽히기이만 해봐. 이느므으 자석이......아빠를, 아빠를, 아빠를!”

 아버지는 다시 벌떡 일어났고, 오연이는 엄마가 어딨냐고 다시금 소리를 지르면서 마당으로 내달린다. 아버지가 비틀비틀 쫓아간다. 오연이는 축사로 달아난다.



 어이소가 큰 눈을 굴리며 오연이를 쳐다본다. 아버지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소. 그 소가 “음매에!” 하고 마당에서 떠도는 숱한 메아리들은 단숨에 제압해버린다. 오연이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소가 인간에게 사육당하는 동물이 아니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할머니나 혹은 영적인 힘을 가진 절대자 같은 느낌으로 몸을 떤다. 오연이는 간절한 눈빛으로 올려다본다. 어이소는 그런 오연이 마음을 알았는지 연거푸 소리를 지른다. 아버지가 축사 문에서 소리치자, 오연이는 자기도 모르게 어이소의 고삐를 풀어준다. 어이소는 푸후후 숨을 내뱉고는, 몸을 돌리면서 다시금 땅이 흔들릴 정도로 소리를 치더니, “와아아!” 하고 달래는 아버지 옆을 바람처럼 지나친다. 동요한 다른 소들도 여기저기서 소리치고, 고삐를 끊으려고 몸부림친다.

 “저저저노므으 자석이 미쳤.......”



 아버지는 얼른 축사문을 닫고는, 어이소를 달래려고 부르는데, 평상시라면 아버지의 눈빛만 보아도 그 뜻을 알고는 순응하던 소가, 평상시라면 아버지의 한 마디만 들어도 귀를 쫑긋 세우면서 뜨거운 김이 서려 있는 혀로 손을 핥아주던 소가, 마치 아버지한테 따지듯이 모둠질하면서 마당을 돌고 있다. 어이소는 서너 바퀴 모둠질하더니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열려진 대문 사이를 빠져나간다. 오연이네 집으로 걸어오던 누군가 “소가 튀었다!” 하고 소리 질렀고, 똥발이가 맹렬하게 짖어대면서 달려 나가고, 아버지가 뛰어나간다. 오연이도 따라가고, 보연이도 뭐라고 소리 지른다. 푸르름이 눈시린 들이 한눈에 잡힌다. 어이소는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고봉으로 불룩하게 솟아오른 뒷산으로 돌진해간다. 들에서 뛰어온 힘 좋은 마파람조차 잠시 쉬어갈 정도로 물매가 사나운 산자락을 어이소는 거침없이 뛰어오른다. 그런 어이소하고 아버지의 간격이 놀랍게도 점점 좁혀진다. 왼다리가 안쪽 3시 방향으로 휘어져서 직립보행의 즐거움을 마음껏 맛보지 못하는 아버지가, 초등학교 5학년 운동회날 아버지하고 함께 달리기 할 때도 등수라는 것을 애초부터 포기하고 느릿느릿 두꺼비걸음했던 아버지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인간이 아니다. 뇌성마비 장애를 앓고 있는 인간이 아니다. 오연이는 세차게 아버지를 부르면서 달려간다. 오연이 입에서 뛰쳐나온 메아리는 “음매에! 음매에!” 하고 울려퍼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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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이상권


소설가

전남 함평 출생

1994년 <창작과 비평>에 소설을 발표하며 작가생활 시작

지은 책으로는 청소년소설 <14살의 자전거>,<애벌레를 위하여>,<난 할 거다> 동시집 <숲의 소리>, 동화 <싸움소>,<하늘로 날아간 집오리>,<멧돼지가 기른 감나무> 등이 있다.

현재 아내와 중학생이 된 딸과 함께 토끼와 닭을 키우며, 풀과 나무를 가꾸며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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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후기>


 

"이번 촛불시위는 뉴스보는 것조차 싫어하는 우리 딸에게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주었다. 하지만 왠지 나무처럼 땅에다 발을 묻고 있지 못한 것 같았다. 광우병이라는 무시무시한 병에 대한 저항도 중요하지만, 소라는 동물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했으면 했다. 소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이미 식량이 무기화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는 이 마당에 농촌에서 소라는 동물은 어떤 존재인지, 미국산 소가 휩쓸게 되면 우리의 농촌이 어떻게 될 지, 그런 것들이 나는 더 크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우리 딸은 거기까지는 생각하려고 들지 않았다. 오직 광우병, 광우병......그렇다면, 광우병만 없다면, 우리나라 농촌이 망하든 말든 미국산 소를 마구마구 먹어도 된다는 말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기를 바랬다. 5월에 고향을 방문했는데, 농민들은 이번 미군산소고기 수입으로 농촌이 완전히 해체될 것이라고 체념하고 있었다. 농촌이 없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까?  과연 희망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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