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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책임의 매력을 느끼는 사람, 드라마 PD

  • 작성일 2008-02-12
  • 조회수 1,058



가끔은 조간신문을 펼쳐들고서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작지 않은 고요를 맞이할 때가 있다. 새벽까지 펼쳤던 두툼한 책 속의 이야기보다도 훨씬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신문에서 한 장 도려낼 때이다.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둘러보면 가위로 도려낼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우리의 삶 속에는 많다. 새벽까지 읽었던 두꺼운 책을 쓴 어제의 작가는 이러한 삶의 파동을 감지한 후에 펜을 들었을 것이다. 새벽 공기를 한껏 들여 마신 눅눅한 신문지 속 활자들의 아우성이 식탁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을 붙잡아 식탁 위로 끌어올린다.

나는 어제의 이야기와 오늘의 이야기 ‘모두’를 그리워한다. 그래서 오늘의 방송 프로그램까지 다 훑는다. 오늘은 무엇을 볼까? 어떤 이야기를 들어볼까? 지글지글 끓었던 된장국이 식고 뜨듯한 한 숟가락 밥알의 온기가 식어버린다. 얼마 전부터 밥풀처럼 끈적끈적한 전원 드라마 <산너머 남촌에는>을 찾아낸 것은 행복이다. 한 숟가락의 밥이 내 입으로 들어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생각하면서, 나는 소처럼 부드러운 등을 가진 농부들의 뒷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소 눈망울을 닮아가는 한 연출자(kbs 신창석 pd. 아래 왼쪽 얼굴사진)의 맑은 감성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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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지금, 우리시대의 전원 드라마란 무엇인가요? 더불어서 지금 방영되고 있는 <산너머 남촌에는>이라는 ‘전원 드라마’는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나요?


  = 요즘은 농촌을 생각하는 마음이 옛날 같지 않아요. 우리 농촌에 대해 정말 무관심하죠. 마치 농민에 대해 무관심한 것처럼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농민이나 어민이 어떻게 살든 아니면 죽든 관심이 없어요. ‘전원 드라마’란 장르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제 느낌은 좀 달라요.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아름답다는 것이죠. 그들 나름의 존재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에요. 이처럼 우리 전원 드라마도 계속 존재해야 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요. 또 KBS라는 공영방송국은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들 소수자를 위한 방송을 해야 할 의무가 있기도 하고요.

지금 우리 삶은 너무 빨리빨리 흘러가고 있어요. 게다가 도시적 감수성에만 익숙해져가는 상황이고요.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의 전원 드라마는 잠시 걷던 걸음을 멈추고 우리의 옆과 뒤를 바라보게 하는 그런 장르의 드라마가 아닌가 싶어요. 우리 드라마 <산너머 남촌에는>을 보신 분들이 옛 동창 얼굴을 떠올리고 옛 친구에게 전화 한통 할 수 있는 마음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또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 우리들 부모님께 전화 한통 할 수 있는 마음의 동요도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이런 마음의 자세로 지금의 전원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지요. 아직도 옛날 농촌의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 많잖아요. 그들의 마음에 있는 ‘착함과 맑음’을 한껏 불러내주고 싶고 싶은 것이 지금의 드라마고요.

 

 

 선생님께서 연출하고 계시는 <산너머 남촌에는>이라는 드라마는 이전의 전원 드라마와 비교할 때 어떤 점들이 다르다고 볼 수 있을까요?

 

= <전원일기>는 대략 20여 년 전에 만들어진 드라마죠. 그리고 그 정서는 80년대의 훈훈한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요. 그 당시 농촌의 모습은 대가족을 이룬 구성원들이 전통적인 가부장적 삶 속에서 살아가죠. 그런데 지금은 농촌의 모습이 많이 변했어요. 실제로 농촌 인구 구성 비례도 많이 바뀌었어요. 앞으로 10~15년 후에는 농촌인구 중 외국인 비율이 10퍼센트 가까이 된다는 얘기가 있어요. 지금 우리의 농촌에는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아인들이 와서 일하고 있어요. 농촌 청년들이 외국인 신부들을 맞아 살고 있거든요. 대략 세 쌍 중에 한 쌍은 베트남, 재중한국인, 일본인을 만나 국제결혼을 하는 것 같아요. 일부 종교단체를 통해서 오는 경우도 있고요. 아무튼 경우에 따라서는 필리핀, 태국, 중국 사람들을 신부로 맞는 경우도 있고요. 필리핀인의 경우는 영어교사로도 많이 오는 것 같네요. 이런 등등의 사연으로 해서 외국인은 이미 우리 농촌에 많아요. 이런 농촌의 변화를 담아내기 위해 우리 드라마 <산너머 남촌에는> 실제로 베트남인인 ‘하이엔’을 드라마에 출연시키고 있어요.

또 예전에는 ‘이농(離農)’의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반대로 농사를 짓겠다고 ‘귀농(歸農)’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분들 중에는 나름으로 의식 있는 분들이 많아요. 이들은 도시에 살면서 끝없이 경쟁해야 하는 삶에 진절머리를 친 이들이기도 하지요. 또 도시의 삶에서 밀려났다는 나름의 상처를 가진 이들이기도 하죠. 또 자신의 새로운 뜻을 펼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농촌을 찾는 경우도 있어요. 어차피 한평생을 사는 일인데, 그렇게 빨리빨리 살 필요가 있는가 자문하고 느림의 삶을 위해서 농촌을 찾은 경우죠. 또 거창한 것은 아니더라도 결국은 생명중시, 생명존중의 사상을 갖고 농촌의 삶을 택한 경우도 있죠. 도시는 대체적으로 생명을 소비하는 공간이잖아요. 누군가의 피땀 어린 노동력을 무작위로 소비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이와 같은 도시를 떠나서 저농약, 무농약의 농산물을 길러낸다든지, 특용작물을 키운다든지 하는 일을 위해 농촌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지요. 우리 드라마는 이와 같은 변화된 농촌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 드라마는 이들 모두가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삶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지요. 이것이 이전의 전원 드라마와 다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 일단은 대본 아이템이겠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아이템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돼요. 그리고 현장에서 연출할 때도 농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이 발견되면 과감히 없애죠. 일테면 실제 농촌에 가보면 들에 농민들이 그렇게 많이 나와 있지 않아요. 벼농사를 짓는 모습에도 사람이 많지 않아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이것이 지금 농촌의 현실이에요. 제가 몇 년 전에 뉴질랜드엘 갔을 때 보니까 밖에 나와 있는 농민이 아무도 없더라고요. 목장을 지나다 보니까 사람이 아닌 개들이 소를 몰고 가요. 그곳 역시 사람이 많지 않더군요. 그런데 이제 우리의 농촌 풍경이 그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어요. 농사도 이젠 다 기계화 짓다보니 사람이 점점 줄어든 것이죠. 농약살포도 기계로 하고요.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정겨운 풍경이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제 농촌에는 그런 그림이 없어요. 리얼리티를 위해 다른 실제의 그림을 찾을 수밖에 없죠.

 

 

 

(사진 위는 현재 연출중인 드라마 '산너머 남촌에는' 녹화 장면중 하나)  

하나의 장르로 전원 드라마 지속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 적어도 공영방송인 KBS에서는 이러한 드라마가 지속 가능도록 노력해야겠죠. 또 FTA가 타결돼도 하루아침에 농촌 자체가 없어지는 상황은 아니잖아요. 혹시 모르겠네요. 아주 먼 훗날 농촌 자체가 아예 없어지고 마는 상황이 닥쳐올지요. 최근에는 농사짓는 환경의 변화(친환경)로 인해 일부의 곡물 값이 올라가는 현상도 있잖아요. 최소한 우리의 먹거리를 위한 농사는 지어야겠죠. 언제 어느 시기에 환경의 역습으로 인한 큰 재앙이 닥칠 모르는데 우리의 농사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의 먹거리를 무턱대고 미국산, 호주산, 중국산에만 의존할 수는 없잖아요. 농사라고 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이상은 끝까지 갈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런 측면에서 우리의 전원 드라마도 많이 축소된 상태지만 그래도 계속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전원 드라마는 소수의 감성을 대변하는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잃어버린, 또 잃어버리고 있는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켜준다는 소중한 의미가 있거든요. 도시생활자 중 30~40대의 거지반은 농촌에 대한 어린 시절의 향수가 있어요. 이들은 외국에 나가 피자만 먹던 이가 한순간에 자신의 몸 속 유전자에 숨어있던 된장을 먹고 싶은 마음, 혹은 김치를 먹고 싶은 마음을 발견하고 뿌리칠 수 없듯이, 우리의 드라마를 보고 자신의 고향을 보는 듯 편안함을 느낀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연출할 때도 자연 속 전원 풍경을 많이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걸 보는 도시인들이 정서적으로 보다 더 안정된 마음이 되길 바라지요.

 

 

 FTA는 우리 농민들에게는 위협이며 위기일 수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농촌 드라마의 연출자로서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요?

 

= 커다란 대세는 거스를 수 없지 않을까 싶어요. 힘든 문제죠. 하지만 FTA와 같은 문제로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수요가 창출될 거라는 점만은 주위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농약을 안 친 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죠. 무농약 쌀값은 두 배정도 비싼데 그런 쌀을 사 먹는 도시인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계란도 유정란의 경우는 세 배 정도 비싸잖아요. 그럼에도 이와 같은 계란을 우리 아이들에게 사 먹일 수 있다는 것이죠.

지금은 먹거리의 위기이자 환경의 위기예요. 이것은 쉽게 해결이 안 돼요. 점점 거세게 불거지는 현안 문제들이에요. 실제로 현대의 병들은 먹거리로부터 시작한 병들이 많아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농업 쪽으로는 위기이지만, 이 같은 ‘새로운 먹거리의 창출과 같은 타개책들’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질 좋은 농산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선회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것이야말로 전체적으로는 농업이 위축된 상황이지만 그나마 그 농업의 수익을 증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농업의 위기를 FTA를 반대하는 시위로만 해결할 수 없죠. 우리의 농업은 이미 소수자가 되었어요. 정부는 80~90퍼센트 사람의 이익을 위해 10~20퍼센트 사람의 이익을 죽인 것이죠. 거꾸로 말하면 10~20퍼센트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80~90퍼센트 사람이 희생하지 않을 거란 얘기죠. 그래서 어쩔 수가 없지만. 다만 이번을 기회로 새로운 사람들, 이를테면 영농후계자들이 정책을 선회해서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냈으면 좋겠어요. 살아나야죠. 또 정부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농업기반에 해당하는 쌀과 같은 먹거리는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해요. 이 외에도 정부는 다양한 특용작물을 재배하는 이들에게도 가이드라인을 잘 제시해줘야 한다 봐요.

 

 
전원 드라마의 역할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 우리나라 전체 인구로 볼 때 70~80퍼센트 정도가 도시인들이 아닌가 싶네요. 전원 드라마는 이들에게 생수를 제공한다는 느낌일까요. 또 요즘은 공기도 사 마시는 그런 시대잖아요. 오염된 도시인들에게 오대산 공기, 지리산 공기를 제공하는 것처럼 그들에게 맑고 신선한 물과 공기를 제공하는 일일 거예요. 지금은 심상(心象) 자체가 너무 악스러워진 거 같아요. 이런 분위기엔 그동안 방영되었던 수많은 드라마도 일조한 경향이 했죠. ‘불륜’이 성행하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 남을 짓밟고 올라가는 이기주의의 같은 안 좋은 영향들이 드라마 내용처럼 우리의 삶에 번졌죠. 우리 드라마에는 이런 악스러움이 없어요. 자연스런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소박한 이야기를 담고 있죠. 우리 드라마를 아껴주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드라마를 보는 동안은 마음이 정화된다고들 표현하요. 이와 같이 청정제 역할도 하는 것이 전원 드라마라가 아닌가 싶어요.

  

 프로듀서(producer)라는 직업에 관한 질문인데요, 구체적으로 프로듀서, 즉 피디(PD)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 프로듀서에도 여러 분야가 있지요. 일테면 시사, 교양, 쇼, 드라마 피디 등등이 있죠. 그중에서 제가 하는 드라마 피디의 일에 대해서 얘기를 하죠. 드라마 프로듀서(Drama Producer)는 말 그대로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이에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사람이죠. 물론 전혀 없는 것으로부터 창조하는 것은 아니고요. 많은 스텝, 연기자, 작가, 동료 피디들하고의 협업을 통해서 공동체적으로 만드는 것이죠. 그 과정을 조율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배에 비유를 하자면 선장 역할을 맡은 것이고, 오케스트라에 있어서는 지휘자죠. 축구와 야구에 비유하자면 팀의 감독이지요. 드라마 피디는 드라마의 기획에서부터 작가의 선정, 출연 배우의 선정, 무대 세트장을 어떻게 만든다든지 하는 것들의 구상, 또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촬영할까 하는 것까지도 생각하죠. 또 편집의 결정과 음향에 사용되는 음악, 자막까지도 고민하죠. 아무튼 드라마에 참여하는 모든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조정과 조율을 하면서도 프로듀서 자신만의 색깔을 드라마에 입히는 사람이죠.

 

  
 영화감독과는 어떻게 다르다고 볼 수 있는지요?

 

= 영화감독이 좀 더 장인적이라고 보면 될 듯싶네요. 영화의 경우는 대략 90분짜리 작품을 하나 만든다고 할 때, 보통 기획하고 캐스팅하고 자본 끌어들이고 하는 시간 등을 합쳐서 보통 2~3년씩 걸리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영화 비슷한 단막도 석 달이면 하나 만들어내죠. 실제로 ‘수목 드라마’나 ‘월화 드라마’를 보면 한 주 분량이 70분짜리 2회를 합쳐서 140분이죠. 어떤 때는 1회 80분짜리를 만들 때도 있어요. 영화보다 분량이 많죠. 이런 작업을 일 년 동안 하면 영화 50여 편 분량이죠. 그러니까 영화는 하나의 질 높은,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고, 드라마는 영화의 50~100배에 달하는 대량생산품을 만드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분야도 많이 달라요. 영화는 완성도에 신경을 더 많이 쓰지요. 우리는 그보다는 대중과 호흡하면서 장기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더 강한 편이죠. 물론 드라마의 경우도 영화보다 더 완성도 높게 만들려고 하는 것들이 있어요. <태왕사신기>의 경우가 그렇죠.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드라마죠.

영화감독들에게 드라마 감독 하라면 잘 못해요. 무지막지한 양을 한꺼번에 소화하기 힘들다는 거예요. 미국이나 일본 감독들은 우리를 보고 깜짝 놀라요. 어떻게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퀄리티(Quality) 높은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물어요. 어떻게 자기네들보다 서너 배 빨리 만들 수 있는지 궁금해 해요.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보면 핸드볼 경기 나오잖아요. 우리 실업팀 대여섯 개뿐이잖아요. 그런데 네덜란드 실업팀은 수천 개거든요. 그런데도 우리가 이길 뻔하잖아요? 따져보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죠. 그런데 우리는 한다는 것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대단해요. 특히 손재주가 뛰어나요. 또 순발력이 있고요.

그래서 드라마도 이런 엄청난 양을 퀄리티 있게 소화해내는 같아요. 영화감독은 다르겠죠. 최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죠. 하지만 드라마 쪽은 주어진 여건 하에서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죠. 예를 든다면 100점, 120점의 작품이 아니라 80점 이상의 작품을 다량으로 장기간 만든다는 것이죠. 즉, 생산의 능력이 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죠. 영화감독한테 드라마 하라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찍어내는지 힘들어서 못한다고 해요. 또 드라마 피디한테 영화 감독하라면 또 답답해서 못해요. 나 같으면 하루에 열 개를 찍어내는데 하나 공들여 찍다보니까 버텨내지 못해요. 그런데도 영화에서는 그 미세한 10~20퍼센트의 차이가 커다란 화면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드러내죠. 드라마 피디는 그 커다란 화면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죠. 그래서 드라마 피디를 하다 영화하신 분들이 그렇게 커다란 성공은 못한 같아요.

 

 

 프로듀서(producer)에 대한 인기는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향후, 선생님처럼 프로듀서가 되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 요즘은 프로듀서(producer) 시험을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네요. 한때는 피디 시험이 너무 어려워서 ‘고시’ 수준이었던 적이 있었죠. 일단은 합격을 해야겠죠. 그런데 꼭 방송국이 아니더라도 영상매체들이 많이 늘어났으니까 케이블부터 시작해서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은 많아졌어요. 일단 저는 피디에 대한 꿈을 가진 이라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한 20년 계획, 10년 계획, 1년 계획, 3개월 계획, 일주일 계획, 하루 계획과 같은 식으로 계획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나는 피디가 되고 싶다’, ‘나는 유명한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 했으면, 그리고 위와 같은 세분화한 계획이 짜졌으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들이 구체적으로 나와요. 그것을 하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내가 왜 피디가 되고 싶은가 하는 질문을 나에게 던질 필요가 있어요. 피디는 멋지게 보여서, 멋진 탤런트하고 같이 있고 싶어서, 돈 많이 벌어서, 폼 나는 일 같아서 등은 막연한 생각이라는 것이죠. 어찌 보면 유명한 피디가 된다는 것은 작가로 등단하고 유명한 소설가 되는 일처럼 힘든 일일 수 있어요.

피디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열정이 필요해요.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계획을 짜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죠. 예전에 하버드 재학생을 대상으로 이런 조사를 한 적이 있다고 해요. ‘당신은 학교를 졸업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물었대요. 장기적으로 자기 플랜을 갖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하고는 미래에서 큰 차이가 있었대요. 20년이 지나서 그들의 수입을 확인한 결과, 10배의 차이가 났대요. 그만큼 자신의 꿈을 구체적으로 갖고 있던 이하고 그렇지 않은 이하고는 큰 차이가 있죠. 꿈을 갖고 있는 이는 그 꿈을 실천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노력을 했던 것이죠. 하버드 학생들이라면 그래도 다들 머리가 좋았겠죠. 피디가 되고 싶은 이들도 마찬가지죠. 왜 피디가 되려고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리고 진정으로 피디가 되고자 한다면 그 방법은 찾아질 거예요. 요즘은 그러한 방법들이 인터넷에 세세하게 잘 나와 있어요. 그것을 잘 살펴보면 돼요. 그 다음으로 영상에 대한 감각을 키운다든지, 예술에 대한 이론을 공부한다든지 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꿈을 위해서 또 연극영화과를 간다든지, 신문방송학과를 간다든지 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우리청소년들은 자신의 먼 장래의 계획들을 지금 세분화해서 짜보는 것이 보다 중요하죠.

 

 

 앞으로 꼭 한 번 해보고 싶 작품은 무엇인가요?

 

= 저는 그동안 사극, 시대극, 촌놈이 나오는 드라마 등을 주로 했어요. 세련된 작품은 아직 못해 봤어요. 특히 남녀의 멜로가 진한 작품은 못했어요. 그렇다고 멜로를 하고 싶다는 것은 아니고, 한다면 맑고 순수한 작품을 하고 싶어요. 여기서의 맑고 순수한 느낌이라면 <가을동화>의 느낌일 수도 있겠죠. 또 <황금사과>에서 연기한 아역들의 그런 순수겠죠. 그리고 사극을 한다면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대형사극을 해보고 싶어요. 정통사극 말이에, 세미사극 말고요. 그런 본보기는 <주몽>도 있고 <대조영>과 같은 사극도 있죠.

 

 

<신창석 pd가 연출했던 사극 명성황후 홈페이지> 


왜 사극이죠?

 

= 저는 처음부터 사극을 하고 싶었어요. 또 제가 사회학과를 나온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될 듯싶네요. 사회학과 출신들은 이상한 고집 같은 게 있는데 그 고집이 좀 센 편이에요. 이를테면 사회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그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들이죠. 입신양명도 중요하지만 그와 같은 작품으로 이 사회에 무언가를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요. 어찌 보면 자본주의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이 아닌가 싶기도 하죠. 저는 좀 더 우리 사회의 공동체를 생각하고 그 힘을 영차 영차 해서 한 데로 모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하고 싶네요. 민족혼을 깨우고 우리들 모두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사극이요.

 

 

 선생님은 그동안은 <누가 백만장자와 결혼하는가>(2000), <명성황후>(2002), <무인시대>(2003), <황금사과>(2005)와 같은 작품을 해오셨는데 이들 작품을 통해서, 시청자들에게 어떤 이야기 하고 싶으셨는지요?

 

= 저는 주로 게시판을 통해서 시청자들과 교감하고 있지요. 또 찜질방 같은 데서도 우연히 우리 작품의 반응을 살피곤 해요. 제가 만든 드라마를 좋아해주시면 더 좋죠. 그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은 중요한 같아요.

<명성황후>의 경우는 정말 좋은 작품이었죠. 구한말의 비극적인 역사를 조명했죠. 그 역사에 대해서 사실 우리가 싫어하는 국면이 있잖아요. 비극적으로 살해당한 국모였지만 결국은 그도 나라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던 이로서, 그는 우리의 어머니였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지요. 우리가 ‘싫어하고’ ‘좋아하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서 우리의 국모였다는 것이죠. 우리의 뿌리는 거기서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무인시대>는 반면교사(反面敎師)를 만들고 싶었어요. 우리의 무인들이 계속 집권하면서 나라가 도탄에 빠지잖아요. 반면 그 과정에서 문화가 융성해진 측면이 없지 않았지요. 과거 전두환, 노태우 정부라든지 하는 것도 어느 측면에서는 ‘무인’의 이야기와 닮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 이 시대의 문제들을 역사의 무대로 치환해서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나름 있었죠.

<황금사과> 같은 경우는 잊혀져가는 아버지 상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순간 아버지의 힘이 없어져 버렸더라고요. 그 드라마를 통해서는 아버지를 이야기하고 또 잊혀져가는 고향의 향수 등을 보여주고 싶었지요.

 

 

 공영방송의 드라마 피디로서 시청률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죠.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죠. 우리는 방송 다음날 꼭 성적표를 확인하는 심정으로 시청률을 체크해요. 사실 시청률은 우리 공영방송을 옭죄는 느낌이 있어요. 공영방송이라면 여기서 좀 더 자유로워야 하는데, 그게 좀 안타깝죠.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가 다 좋은 드라마는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우리가 공영방송 니아들을 위한 방송만을 따로 만드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시청률이 좀 낮아도 사람들이 보고 진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 수 있어야겠죠.

일본의 NHK가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네요. NHK는 전 국민이 보는 것도 있지만 일본을 이끌어나갈 10퍼센트의 사람들이 보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며, 그 사람들에게 정책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준다는 것이 경영목적 중에 있다고 합니다. KBS도 이런 부분이 있어야 하거든요. 어떤 프로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이와 같은 방송은 있어야 하거든요. 상업방송과 싸울 수는 없잖아요. 상업방송은 천박하게 나갈 수도 있잖아요. 케이블방송은 더욱 심한 상황이고요. 온 이상한 것 다 보여주잖습니까? 공영방송은 그런 쪽하고 싸울 수는 없다는 것이죠. 우리가 좀 더 품격을 지키면서도 질 높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여건이 잘 마련되어 있지 않은 같아서 좀 안타까워요.

 

 

 특히 농촌 드라마 피디로서 지금 제작하는 드라마와 관련하여 시청률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고 있는지요?

 

= 우린 고정 시청자가 있으니까, 지금 분위기로는 초연하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시청률을 더 올리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한다면 그것은 결국 드라마의 갈등구조를 더 세게 한다는 얘길 거예요. 그렇게 하면 농촌을 소재로 하는 전원 드라마의 본류를 벗어나는 감이 있지요. 그렇다고 갈등구조를 낮추거나 아 없앤다면 시청자 입장에서는 재미가 없을 수도 있죠. 그러다 보면 시청률이 떨어질 것이고요. 이게 어려운 문제예요. 말하자면 자기 분수를 지키면서도 시청자들에게 드라마를 보게 만드는 것, 그 경계선을 지켜나가는 게 저로서는 어렵죠.

 

 

 선생님이 좋게 평가하고 있는 연기자란 어떤 연기자인가?

 

= 연기자는 옛날로 치자면 광대잖아요. 남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매스미디어가 워낙 발달해서 연기자나 스타들 하나하나의 행동들이 대중들에게 너무나 많은 영향을 끼치죠. 미국의 패리스 힐튼 같은 경우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면서 좋아하잖아요. 욕을 하면서도 그녀의 사생활을 쫓아다니잖아요. 이처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들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특히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연기자는 이미 공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받은 많은 사랑을 그들에게 돌려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김혜자 씨나 이영애 씨 같은 배우는 참 좋은 연기자란 느낌이 들어요. 남들에게 봉사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죠. 이런 의미에선 비 같은 이도 좋은 이들이죠. 대중 스타들은 자기가 받은 사랑이 시청자나 팬들에 의존한다는 것을 깨닫고, 또 그 사랑의 무거움을 깨달아야 해요. 받은 사랑만큼 돌려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돼야 해요. 그래서 행동도 좀 조신하게 하고요. 또 봉사하기 위해서 실천하는 사람들이 나는 최상의 연기자라고 생각해요. 물론 연기도 잘하면 더 좋겠죠. 이것은 부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남들에게 받은 것을 되돌려줄 수 있는 부자가 되어야 해요. 미국의 경우만 해도 손꼽히는 재산가들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잖아요. 받은 사랑을 실제로 되돌려 주잖아요. 헌데 우리의 이름 있는 기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아직도 천민자본주의가 횡하는 분위기죠. 대중스타도 마찬가지예요.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려는 그런 진정한 마음을 가진 배우가 제일 좋은 배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직업으로서 피디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 앞에서 잠시 얘기했듯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쁨이죠. <우생순>에 나오는 핸드볼 감독 있잖아요. 그 감독이 느끼는 것처럼 우리들 피디들도 그와 같은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죠. 창조의 매력이기도 하고 무한책임의 매력이기도 하죠. 그 만큼 스트레스도 많이 받죠.

 

 

 왜 선생님은 드라마 피디가 되려고 했는지요?

 

= 어려서부터 영상매체를 좋아했어요. 만화에서부터 영화까지 다 좋아했어요. 이소룡 영화 같은 것들도 좋아했고요.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와 같은 시절이 저에게도 있었어요. 3류 극장을 전전하며 영화를 보던 시절이 쌓이고 쌓여서 여기까지 온 같아요. 영화를 보는데 어느 순간 저 스크린 뒤에 누가 숨어있다는 것을 안 것이죠. 20대 후반쯤이었을 거예요. 저걸 만든 사람이 따로 있구나 했죠. 그렇다면 나도 저이처럼 눈물과 감동을 주는 감독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래서 피디가 된 같아요.

 

 

 피디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되는 직업인가?

 

= 처음에는 조감독 시절을 거치죠. 조감독은 피디를 보좌하면서 행정업무부터 시작해서 모든 일을 배우죠. 야외 촬영을 나가면 때에 따라서는 차도 막아야 하고 사람도 통제해야 하죠. 또 스케줄 관리부터 편집과정의 일도 거치면서 어느 순간에는 드라마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감독이 되죠. 감독이라는 자리는 어찌 보면 사람을 다루는 직업이기도 해요. 감독이 사람을 이끄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대화로써 이끄는 방법도 있고, 또 ‘나를 따르라’ 목소리를 높여서 이끄는 이도 있지요. 또 구체적으로 사람들 앞에 군림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건 각자 스타일에 따라 다르겠지요.

하지만 어떻게 되 감독이 되는 과정은 사람들을 이끄는 일, 즉 리더십을 배우는 과정이 더 중요해요. 영상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피디는 먼저 사람을 이끄는 직업이라는 점을 알아야 해요. 때문에 먼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알아야 해요. 사람을 설득하고 여러 곳에 흩어진 힘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힘을 배워야 해요. 또 그런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감독이 직접 카메라로 찍지는 않거든요. 감독이 직접 조명을 비추진 않아요. 또 감독이 미술세트장을 만들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런 감각은 기본이라는 것이죠. 이 세트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것들은 많은 영상매체를 접한다든지, 상상한다든지 해서 배우고 익히면 되고요.

 

 

 피디로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산너머 남촌에는>의 경우에서는 어떤 점이 어려운가요?

 

= 전체가 다 어렵죠. 기획하고 촬영하는 일들 모두가 어렵죠. 그보다는 전원 드라마를 아는 사람들이 좀 더 많이 사랑해줬으면 하는데, 아직 폭발적이지 않다는 것이죠. 그런 부분에 있어서 감정을 조율하는 것이 좀 힘들죠. 갈등구조를 좀 더 넣어야 하는지 고민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해버리면 지금처럼 해오던 해맑은 작품이 안 죠. 이런 부분들이 힘들죠.

 

 

 선생님의 경우 연출의 힘, 창작의 힘은 어디서 뿜어져 나오는지요?

 

= 모든 것은 내부의 고통에서 나오는 같아요. 일단은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려 하고 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 작품도 보죠. 또 길 가다 사람들 관찰도 하고요. 감각과 감성이 생생해지려고 노력하죠. 그리고 우리 같은 연출자들은 두 보, 세 보 앞서가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한 반 보 정도만 앞서면 된다고 해요. 한 보 앞서도 안 되고, 또 반 보 뒤져서도 안 죠. 그래서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이런 창작의 힘 같은 것들은 많은 고민에서도 나오기도 하지만, 제 경우는 또 많이 비우려고도 해요. 일할 때 너무 힘들어서, 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부러 마냥 게을러지려고도 해요. 어떨 때는 책방에 들러 읽고 싶은 책을 사기도 하고요. 또 만화책도 실컷 보기도 하고요. 무작정 여행을 떠나기도 하죠. 이런 점은 시인이나 소설가들과 비슷하지 않나 싶네요.

 

 

 선생님은 어느 분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지요?

 

= 저 같은 경우는 조감독을 하면서 제 위의 선배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죠. <왕과 나>, <용의 눈물>을 연출한 김재형 피디의 조감독도 했었지요. 이 분은 73살로 현재 최고령 연출자죠. 또 <겨울연가>, <가을동화>를 연출한 윤석호 선배의 조감독으로도 있었고요. 또 단막극으로 많은 국제상을 수상한 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김홍종 선배를 비롯해서 <젊은이의 양지>를 연출한 전산 선배, 또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박수동 선배 등과 함께 조감독 일을 했지요.

조감독은 감독을 닮든지 극복하든지 둘 중 하나예요. 선배와 같은 길을 가든지 반발을 해서 그 반대의 길을 가든지. 저는 지금까지 조감독으로 만난 선배들을 다 존경해요. 그 분들의 모습이 제 속에 고루 녹아있는 같아요. 예를 들면 전원 드라마를 하셨던 박수동 선배로부터는 무위자연(無爲自然)한 모습이랄까 하는 것들을 배운 같아요. 또 김재형 선배로부터는 힘 있는 사극 연출을 배운 같고요. 윤석호 선배로부터는 서정성과 아름다운 화면 등에 대해서 배운 같아요. 제 경우는 한 분의 영향보다는 여러 선배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 같아요.

 

 

 
피디도 당연히 슬럼프를
겠지요. 그러한 고비가 언제 오는지요? 슬럼프를 어떤 방식으로 극복하는지 궁금합니다.

 

= <무인시대>를 150회가 넘게 했었어요. 일 년 반 정도를 했지요. 또 중간에 시청률이 잠시 안 좋을 때도 있었는데 그때가 고비였죠. 힘들기도 했고요. 처음에는 좋았다가 나중에 안 좋은 상황이 있잖아요. 또 그럴 때는 내분이 일어날 수도 있지요. 작가와 그렇다든지, 일하던 사람들끼리라든지, 피디들끼리라든지 그런 문제가 있을 수 있잖아요. 사람과 갈등이 올 때, 그런 때 힘들죠. 작품이 힘들더라도 잘 봉합하고 나아가면 그것도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을 수 있는데, 시청률도 안 좋고 사람까지 다 잃고 하면 그게 제일 안 좋은 것이죠. 간단하게 얘기하면 1위를 하던 프로야구단이 갑자기 다른 팀들한테 깨져서 나중에는 꼴찌팀이 되었다고 해보세요. 내부적으로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구단주도 난리고 선수들끼리도 감독이 무능하다고 질타하고 그러잖아요. 또 감독은 선수를 나무라기도 하고요. 그런데 내부적으로 힘이 탄탄한 경우는 이 모든 걸 이겨낸다는 것이죠. 저는 사람이 희망인 같아요. 지나고 보니까 그러한 갈등을 이겨내게 하는 것도 사람이더라고요.

 

 

 최근 재미있게 본 작품은 무엇인가요?

 

= 영화 <우생순>을 재밌게 봤어요. 통속적인 얘기지만 또 진부한 영상 같지만 그 속에 있는 삶의 진정성이랄까 하는 것들이 감동적이었어요. 실화에서 나온 힘이지만 영화를 연출한 임순례 감독이 잘 엮어낸 같아요. 잔재주와 사탕발림을 안 하고 사람에게 진정으로 확 다가오게 하는, 가슴을 치는 묵직한 영상미랄까 하는 게 있어요.

 

 

 지금까지 선생님께서 연출한 작품 중 인상에 남아 있는 한 장면은 무엇인지요? 소개를 좀 해주시지요.

 

= 모든 드라마가 다 남아있죠. 그 중에서 하나를 꼽기는 힘들고요. <명성황후>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당할 때 그녀(배우 최명길)가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고 하면서 장렬하게 죽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감동적이었죠. 연출하는 저도 눈물을 흘렸죠. 그리고 <무인시대>에서는 경대승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황금사>에서는 아역들의 해맑은 눈물들이 기억에 남아 있네요. 여러 장면들이 있는데 꼽기가 힘드네요.

 

 

 좋은 피디란 어떤 피디라고 생각하는지요?

 

= 단순히 시청률이 좋은 작품을 만든 피디가 좋은 피디는 아니겠죠. 그런데 지금은 시청률이 좋은 작품을 만든 피디가 좋은 피디인 것처럼 치부되는 세상이라서 좀 아쉽죠. 예를 들면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만이 생존할 수 있는 작가는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시인은 어떻겠어요. 시집이 백만 부씩 팔리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시청률 좋은 작품을 만든 피디가 좋은 피디일 가능성은 높지만, 꼭 좋은 피디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시청률이 좀 낮은 작품을 했더라도 단막극이라든지 소수만을 위한 장르를 했을 때, 영차 영차 하는 호응을 좀 해줘야 하는데 공영방송 KBS 말고는 그런 분위기가 좀체 없어요. 다른 데는 다 상업적 논리로 돌아갔지요. 그래서 KBS 내에서만이라도 소수를 위한 드라마를 만드는 풍토들이 더 많이 남아 있었으면 해요. 전원 드라마를 한다든지 , 단막이라든지요. 시청률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풍토 말이죠. 이런 환경이라면 좋은 피디가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사진 위는 산너머 남촌에는 지방 촬영장>
 


<산너머 남촌에는>을 예로 들어서 드라마의 제작과정, 그 흐름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주십시오.

 

= 예산에서 야외 촬영을 이틀 하고요. 또 수원에서 세트 촬영(집 안 이야기)을 해요. 그리고 야외촬영 한 것과 세트촬영 한 것으로 편집을 해요. 그리고 음악, 음향, 자막 같은 것을 넣는 믹싱작업을 해요. 그리고 방송을 보내죠. 이 작업을 반복해요. 물론 새로운 대본을 계속해서 만들어내야죠.

 

 

 우리 청소년들에게, 혹은 선생님 댁의 자녀분들에게 평소 당부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 자기 꿈을 설정하고 그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노력하라는 말을 하고 싶네요. 그런데 그 꿈이 안 이뤄질 수도 있잖아요. 가정형편상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있을 수도 있고, 또 경쟁자체가 치열하기도 하고요. 10퍼센트 미만의 부자들에게 부가 집중된 현 상태에선 빈곤층이 많잖아요. 이런 분위기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래요. 그래서 신자유주의의 위기라고까지 말하잖아요. 저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또 실패한 사람들을 향해 보다 따뜻한 시선을 가졌으면 좋겠고요. 또 ‘부’라는 것을 영원히 갖고 있기보다는 하늘이 잠시 그에게 맡겨놓은 것이라는 것도 알았으면 싶어요. 죽을 때 다 갖고 가는 것은 아니잖아요. 죽기 직전에 내가 내 인생을 위해서 무얼 했는가, 내가 추구한 것이 무엇이었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는가 되물을 때, 후회 없도록 잘 살아야겠지요. 평소 이와 같은 물음을 자신에게 자주 던지라는 말을 하죠.

 

 

 여타의 드라마가 선정적으로 흘러간다는 비판이 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 KBS 입장에서는 수신료 문제가 잘 해결이 돼서, 광고를 파는 데만 열중하는 그런 방송 이 아니라 공영방송으로서 해맑은 작품, 감동을 줄 수 있는 드라마를 많이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국민의 감정이 보다 순화되는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3류 대중잡지 같은 드라마 말고요. 가슴을 울리는 작품, 보다 실험적인 작품을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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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석 PD는?

 

KBS 공채 18기 입사

KBS-TV 제작본부 드라마 팀 프로듀서

 

*연출 작품*

<누가 백만장자와 결혼하는가>(2000)

<명성황후>(2002)

<무인시대>(2003)

<황금사과>(2005)

<산너머 남촌에는> (2007~현재)

 

 

● 인터뷰 후기

 

"모든 창작은 내부의 고통에서 나온다는 말을 들었다. 그가 화제로 삼았던 영화 <우생순>을 보고 나서도 그 말을 잊지 못했다. 인터뷰 때문에 많은 스텝들에게 미안하고 미안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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