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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속 아담한 문화예술공간 경영자

  • 작성일 2006-06-09
  • 조회수 626




 
지하 서점에 들어와서, 한 예술가의 책을 자꾸 만지작거리는 내 행위는 분명, 내 쪽에서 먼저 시작한 짝사랑에 가까울 것이다. (너무 비싼 책은 주머니 사정상 살 수가 없지요.) 그 책을 아무 말 없이 슬쩍 내려놓고 ‘쓸쓸히’ 뒤돌아서는데, 방금 전의 그 책을 누가 또 ‘만지작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것은 나처럼 ‘수작’이 아니었다.
 두툼한 그리고 멋진 한 생애의 삶을 살다간 ‘내 짝사랑’의 인생 스토리는 한 권의 책. 그 책 서문에 앞서서 그의 이야기가 스물 몇 줄의 목록으로 정리되어 있었는데. 그 목록을 방금 전의 한 고객이 몇 줄 읽다가, 내 짝사랑을 양손으로 뭉텅 들더니, 급기야 내 짝사랑의 ‘전기’를 껴안고서 나를 휘익, 지나쳤던 것이다. 

 그는 방금 전의 ‘내 짝사랑’을 계산대 위에 살짝 올려놓는 것 같았는데 천만에, 그것은 ‘살짝’이 아니었다. 쿵. 책은 쿵, 내 짝사랑은 쿵쿵 뭔가에 부딪치는 소리를, ‘질렀다’. 조심해, 비싼 책이야. 계산대 위의 방금 전 내 짝사랑은 검은 바코드에 숨겨놓았던 정보들을 점원과 고객 앞에 줄줄 쏟아놓았다.
 ‘인문분야, 예술서, 화가, 피카소의 생애와 작품.’ 찌르르릭, 계산서가 나오고, 내 짝사랑의 얼굴 생김새가 사각형이라는 거, 입고 있는 옷이 검은색 표지라는 거. 아무튼 내 조금 전 짝사랑은 바스락거리는 이쁜 포장지에 싸여서, 총총 지하계단을 고객과 함께, 팔짱을 끼고 ‘요것 봐라’ 엉덩이를 가볍게 흔들흔들하며, 아주 가볍게 이 지하공간을 떠나서 어딘가로 사라진 것이었다. (내가 먼저 살 걸 그랬나?)
 
 (지하의 문이 열리고 내 짝사랑 ‘피카소’는 그렇게 이 지하서점을 빠져나가고) 문이 열리면서 지상의 공기가 잠시, 이곳 ‘예술가들의 하품이 많은’ 곳으로 유입되었다. 흐음. 그가 올 때가 되었는데. 올 때가 되었는데. 점원은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어느 사이, 내 ‘짝사랑(책)’이 있던 ‘자리’에는 금방 다른 책으로, 다른 예술가의 생애를 기록한 다른 이야기로 ‘그렇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채워졌다. 그리고 곧이어 누군가가 이곳, 지하로 내려오고 있었다. (하체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지하’가 분명하구나) 나는 2, 3초간 침묵하면서 어떤 상체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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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좋은 책이 참 많아요. (잘 모르면서) 

= 꾸벅.


대학로’ 인근의 임대료가 만만찮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요. 그리고 이곳은 지역적으로 볼 때 ‘연극판’이잖아요. 선생님께서는 굳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어야만 하는 어떤 사연이 있었나요? 궁금하네요. 연극판 한가운데에 ‘서점 오픈’이라, 좀 재밌기도 하구요?


=이곳, 대학로가 연극 공연장이 많아 ‘연극판’이기는 하지만 저에게는 이전부터 ‘문화의 거리’로서 제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서점 오픈을 앞두고, 몇 군데 자리를 알아보다가 대학로에 와보니, 이곳에 서점이 없다는 게 정말 이상하더군요. 인터넷서점이나 대형서점에 밀려 소형 서점이나 동네 책방이 없어지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명색이 ‘문화의 거리’ 대학로에 변변한 서점 하나 없다는 게 석연치 않았습니다. 물론 임대료가 ‘비싸’ 서점 운영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은 했지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서점이 없는 곳에서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2005년 초부터 준비해서, 서점을 오픈 한 것은 2005년 10월 1일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책과 음반의 비율을 반반으로 생각하고 문을 열었지만 지금은 책의 비중이 좀 높습니다. 그 이유는 음반의 경우, 손님들의 ‘기호’가 워낙 다양하고 그 구색을 맞추는 것이 참 어렵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음아트는 직원 1명을 두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전에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요. 더불어서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이음아트’라는 곳은 한마디로 어떤 곳인가요?


= 저는 대학에서 ‘문학(문예창작과)’을 공부했습니다. 30대 초반까지 글을 쓰는 데 열중했습니다. 그러다 결혼하면서 보통 사람들처럼 일반 회사에 취직해 열심히 살았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가 공부한 ‘문학’과는 관계없는 쪽으로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때부터 제 업무와는 별도로 틈틈이 책읽기를 시작했구요. 그것이 습관이 되어 항상 ‘신간’을 눈여겨보게 되었고요.(또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를 메모도 하고요) 그러다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때 든 생각이 이제부터는 제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서 살 수는 없을까, 갑자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충동’이 일더군요. 한편,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사실 등을 알게 되면서 ‘이게 아니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생계’에 연연하며 쫓아다닌 시절이 무의미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얼마 전까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 앞으로의 생활과 삶에 대해, 계속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서점(이음아트)’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내가 좋아하고 오래 할 수 있는 일로서 ‘이음아트’를 구상하게 된 것입니다. ‘이음아트’의 ‘이음’은 말 그대로 이어주는 의미로서 ‘이음’입니다. 한자로 썼을 때에는 서로 다른 소리로서의 ‘이음(異音)’을 생각했습니다. 서로 다른 소리를 이어주는 의미로서의 ‘이음’이기도 하고요. 이음아트가 대학로에서 책을 통해 서로 서로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고요. 그래서 ‘이음아트’의 공간을 책으로 또는 음반으로 꽉 채우기 보다는 사람과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장소로 이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탁자와 의자를 놓았구요.


 

지금 하시는 일이 사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나요?


= 정확한 답은 고객들이 해주셔야 할 것 같군요.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찾아오신 손님들이 많이 하신 이야기가, 대학로에 서점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음아트’가 생겨서 참 좋다고, 오래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들을 하셨어요. 처음 이 일을 시작한 저에게는 큰 힘과 격려가 되는 말이었습니다.
 6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진단’을 해 보면 ‘이음아트’는 더 전문화하고 더 다양해져야 생존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의 결심도 그랬지만 ‘오래, 길게’ 하기 위해서는 ‘이음아트’만의 특색을 계속 만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작년에, 서점을 준비하면서 일본을 잠깐 다녀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일성당’이라는 중고서적 서점을 보고 꽤 놀랐습니다. 개점한 지 100년이 지난 그 서점을 둘러보면서 부러운 생각과 함께 저도 제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대학로에서 오랫동안 ‘자력으로’ 운영되는 서점을 만들어보자는 꿈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궁극적으로 실현하고 싶은 꿈이 사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아직 모릅니다. 성공은 저의 노력과 시장의 요구, 고객들의 요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계속 나아갈 뿐입니다.

 



< 이음아트 서가에 있는  도서들을 둘러보고 있는 한상준 대표>


‘이음아트’를 이용하는 분들은 주로 어떤 분들인가요? 이곳은 얼핏 생각하면 연극인들이 무척 많은 곳이기도 한데요. 실제로도 그런가요?

= 고객층이 정말 다양한 편입니다.(금년 3월부터 ‘이음아트 도서회원제’를 도입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이곳이 대학로여서 그런지 아무래도 연극 및 공연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고, 다음으로 일반 직장인 분들, 대학생들이 주고객이죠. 이곳을 찾은 고객들 중에는 문학평론가이시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신 김병익 선생님도 계시고요. 얼마 전에는 연극배우 겸 탤런트이신 권해효 님이 가족과 함께 오셨더랬어요. 또 시인 조병준, 윤희상, 신현림, 소설가 한강, 아나운서 방은주, 연극연출가 김아라, 김재엽, 최창근, 박정석, 연극배우 박상종, 정찬교 님들도 오셨지요. 이밖에도 대학로를 찾는 교수님과 방송인들도 많아요.

 

이곳에 모인 예술서나 음반들은 꽤 까다로운 선택을 통해서 이곳에 모인 것들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떤 절차를 통해서 이곳에 들어오게 되나요.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신간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게 현실이잖아요.



= 일단 도서정보는 주로 신문의 주말판 ‘북리뷰’ 등을 참고하고요. 그밖에 인터넷에서 소개하는 자료 등을 참고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입 도서 선정은 제가 직접 하고요. ‘이음아트’는 연극, 영화, 사진, 문학, 및 인문도서, 과학에세이 등 ‘이음아트’가 취급할 수 있는 도서를 총 망라하고 있는데, 안타까운 것은 ‘공간 제약’으로 신간도서의 순환주기가 짧다는 것입니다. ‘이음아트’의 경우는 가능하면 ‘알찬 책들’을 계속 보유하려고 하는데, 계속 쏟아지는 신간으로 입고된 지 6개월 동안 ‘움직이지’ 않으면 새로운 신간과 교체해야 되는 상황이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책을 계속 보유하고 싶은 제 욕심과, 새로 나오는 좋은 책을 계속 입고해야 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공간 제한으로 ‘여유 있게’ 마련한 탁자를 치우고 책으로 채워가야 할 것인지 냉정한 마음으로 따져봐야 할 시점입니다. 이밖에도 ‘양서’라 할지라도 유동성이 없을 땐, 다른 책과 자리바꿈을 해줘야 할 것인지 고민이 많습니다. 도서관처럼 자료보관의 역할을 ‘이음아트’가 일부 담당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아무래도 운영의 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음아트’ 내에서도 베스트셀러가 있을 듯싶네요. 주로 어떤 책과 음반들이 사랑을 받고 있나요? 


=일단 입고된 책의 내용이 예술, 인문서 위주라서 그런지 서점내 특별한 베스트셀러는 없는 실정입니다. 책의 판매도 분야별로 골고루 분포되어 있고, 찾아주시는 고객 분들도 다양하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가끔 ‘이음아트’에서도 시중의 베스트셀러 책을 찾는 분들이 있습니다. 다만 팔리는 수량이 다른 책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판매량에서는 ‘미세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유명 시인, 소설가의 책은 ‘그나마’ 꾸준히 판매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대학로 인근에는, ‘예술’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이나 예술 관련 전공 학생들이 많아서 그런지 예술 일반에 관한 책들도 꾸준히 판매되고 있습니다. 『아티스트웨이』나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라는 책들은 비교적 판매량이 높은 책들입니다.


‘대학로 문화’에 대해서 남다른 생각이 있을 듯싶은데요? 선생님은 이곳에서 매일 매일 이곳의 문화를 보고 느끼고 있잖아요? 어떤가요.


=대학로가 일반인들에게는 ‘문화의 거리’로서, ‘꿈과 낭만’을 간직한 곳으로, 또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들입니다. ‘문화의 거리’라는 위상에 걸맞게 공연장이 몰려 있고 게다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있다는 점 등이 그렇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붐비는 거리로서 어떤 ‘낭만’이 깃들어 있는 것도 일면 사실이고요. 아무튼 이러한 면들은 모두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점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긍정에 반해 대학로에 지금은 ‘먹고, 마시는 곳’만 있다고 불평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솔직히 무엇이 먼저 해소되어야 제대로 된 것인지는 장시간 따져봐야겠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문화’란 소통하고 변화하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재 보여주고 있는 대학로의 모습은 ‘긍정이든 부정이든 간에’ 그것이 바로 현재 우리의 모습이고 ‘자화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음아트’ 운영을 통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무엇인가요?


=제가 좋아하는 것과 남들이 좋아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로 느껴집니다. 제가 운영하는 서점의 적정 규모가 얼마이면 적당하고 또 만족할 수 있을 것인지를 판단하는 일이 제가 느끼는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서점 운영 경험의 미숙함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을 축적하면서 답을 찾아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익이 창출되지 않으면 운영할 수 없는 자본의 속성과 한계가 서점 운영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이 힘든 부분이고 어찌 보면 이러한 문제는 저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겪고 있는 냉혹한 현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를 가도 변할 수 없는 속성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깨달음을 또 얻었다고 생각하면 재밌기도 하구요.

 

또 반대로 보람이 있었던 일들은 무엇인가요?


=서점을 찾는 손님들께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때는 보람을 느낍니다. 왜 대학로에 서점이 없었을까요. 도서 판매로는 운영이 쉽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겁 없이 무모한 도전을 한 낭만주의자일까요. 주위에서 저를 알고 걱정해주시는 분들의 우려는 거의 한결같습니다. 서점은 쉽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한결같이 응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현재의 ‘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인문, 예술(사진, 미술, 음악)’ 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지금과 같은 일을 잘 할 수 없을 듯싶은데요. 언제부터 이렇게 다양한 예술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셨는지요?


=‘문학’을 공부하고 그 방면의 ‘관심’을 놓지 않았던 것이 현재 서점을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덧붙여 20대 후반부터 ‘사진의 매력’에 빠져, 독학하며 공부한 것도 도움이 되었지요. 제가 좋아서 쫓아다니며 체험한 일련의 ‘열정’이 결국 이곳에 이르게 한 것 같습니다. 문학 수업을 할 때(최인훈 선생님께 배웠는데), 선생님께서는 ‘이러 이러한 책들을’ 읽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와 돌이켜보면 결국 진짜 공부는 혼자 하는 독서에서 대부분 이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읽으라고 권하셨던 책의 목록이 제 ‘독서 지도의 밑그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 읽으라고 추천했던 책 중에 다윈의『종의 기원』이 있었는데, (요즘은 과학에세이가 비교적 쉽게 서술되었지만) 당시로서는 20대 초반의 학생인 제가 다 이해하고 소화하기에는 다소 버거운 내용이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문학만이’ 아닌 다양한 책읽기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있어, 오늘의 제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선생님처럼 장래에 이렇듯 근사한 공간에서, 책과 음악을 벗하며 살고 싶은 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실제로 일본의 경우는 최고 명문대를 나와서 책 컨설턴트로, 문화전령사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요.

=앞으로, 직업을 선택해야 할 학생들이라면 또 사회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이라면 자기 꿈과 열정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성취해 나갈 수 있다는 꿈을 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저 자신도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강조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그때 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입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우리 세대는 또 앞으로의 세대는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또 직업을 선택할 때는 ‘경제적인 혹은 수익성이 많은’ 부분도 봐야 하겠지만 더불어서, 일에 대한 성취감과 개인의 만족도가 높은 일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인문 예술서’라서 그런가요. 어떤 책들은 만만찮은 가격이던데요. 돈을 많이 버는지 궁금하네요. 


=수입도서인 사진집이나 디자인 관련 도서는 가격이 비싼 편에 속합니다. 또 국내도서라도 이 분야의 책들은 고가에 속합니다. 이런 ‘비싼 책’을 많이 팔면 부자가 될 듯 싶어보이나요. (웃음)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고 자리를 잡아가는 시간입니다. 솔직히 지금도 투자를 계속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아직은 수익 부분을 말씀드릴 단계가 아니지요. 다만 주위 분들의 말씀을 참고하자면 지금보다는 좀 더 빠른 시간 안에 ‘안정적인’ 수입구조를 이뤄나가게 될 것 같습니다.
 


‘이음아트’를 찾아주시는 분들께 혹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가요?


=책과 음악, 토론, 전시 공간으로서 지금보다 더 따뜻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이어주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긴 시간이 흘렀네요.

=저 위에는 벌써 어둠이 왔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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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후기>

 

 책과 음악으로 가득 찬 공간. 아니 수많은 예술가의 ‘정신’으로 가득 찬 공간. 그들 예술가들에게 말을 거는 방법은? 혹시 침묵.

 

 


<한상준 대표 프로필>

1962년 경기도 장호원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으며,
서울 중앙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20여 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으며,
2005년 10월부터 대학로에서 인문예술 전문서적을 파는
‘이음아트’를 운영하고 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eumart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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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16
단 한 번의 기회

청소년 테마소설 성취와 좌절_제4회 단 한 번의 기회 이명랑 자식을 바꿀 수 있을까? 나라면…… 절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아빠, 엄마라면? 나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본다. 운동장을 둥글게 에워싼 광장식 계단을 꽉 메운 사람들. 대부분 오늘 테스트에 임하는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다. 열심히 자녀들을 응원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나는 아빠, 엄마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 차가운 은빛으로 빛나는 안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빠다. 아빠 옆으로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도 앉아 계신다. 컥, 숨이 막힌다. 우리 가족이 앉아 있는 곳을 확인하자마자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혀온다. 흰 현수막 위에 금빛으로 화려하게 새겨진 글자들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VIP. 금빛으로 빛나는 VIP라는 글자들 옆으로 봉황 두 마리가 이제 곧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듯이 날개를 펼치고 있다. 그 활짝 편 날개 옆에 우리 가족은 앉아 있다. 비좁은 자리에 앉아 서로 어깨를 부대끼며 자식들을 응원하다 말고 어른들은 가끔씩 VIP석을 곁눈질한다.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하지만 이따금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훔쳐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야 VIP석에 앉을 수 있는 거야? 아들아! 봤지? 네 눈에도 저기 VIP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너만이라도 제발 저 자리에 앉아다오! 사람들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표들과 느낌표들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하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옆에서 아빠, 엄마보다 더 태연하게 발밑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바로 내 가족이다. 어른이 되면 나도 저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앞으로도 나는 우리 가족의 일원일 수 있을까? “자! 전원 출발선 앞으로!” 사회자가 붉은 깃발을 번쩍 들어올린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수많은 아이들이 출발선 앞으로 달려간다. 나도 질세라 뛰어간다. 시작이 절반이다, 라고 아빠는 늘 말한다. 맞는 말이다. 시작에서부터 뒤처지면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나는 내 앞을 가로막고 달리는 아이들 두, 세 명을 어깨로 밀치며 앞으로 뛰어간다. 누군가 내가 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 어깨를 밀치고는 빠르게 내 앞을 스치고 달려 나간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키가 큰 녀석이다. 누가 너 따위에게 질 줄 알고! 나는 어금니를 악문다. 간신히 내 어깨를 치고 달려간 녀석보다 한 발 앞서 출발선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 정중앙이다. “모두 집중! 첫 번째 미션이다! 참가 인원은 모두 100명, 카트는 50개! 먼저 뛰어가 카트를 잡는 사람만이 장을 볼 수 있다!” 순식간에 사회자의 설명이 끝났다. 사회자는 번쩍 들어 올렸던 붉은 깃발을 밑으로 내리고 출발선 앞에 서 있는 아

  • 웹관리자
  • 201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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