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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그냥 다를 뿐이야" (2)

  • 작성일 2005-10-14
  • 조회수 484


 

"인간존재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경험하는 것은 문학의 즐거움"

 

 

"미디어가 아무리 발달하고 다양해졌다 하더라도 문학은 특정 역사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에 접하기에 가장 좋은 매체다. 그들은 우리와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 우리 각각이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한 것처럼. 그 다양한 스펙트럼을 접할 때 우리 역시 더욱 풍요로워질 것은 당연한데, 왜 이제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게 된 사람들을 키워 낸 터전과 그곳 사람들 이야기는 이토록 접하기 어려운지... ... "

 

 

 

우리를 보는 서구의 눈, 아시아를 보는 우리의 눈

 

 

문학의 서구 편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우리가 속한 아시아를 돌아보면, 여기서도 정치적 ‧ 경제적 힘의 역학관계가 성립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중국과 일본, 인도의 문학을 제외하면 아시아 지역의 문학은 거의 소개되어 있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다. 아동청소년문학은 더욱 그렇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대개 옛이야기들이 소개되는 데 그치고 있다. 옛이야기는 민족 고유의 정서가 담긴 대단히 좋은 읽을거리에 틀림없지만, 지금을 사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내지는 못한다. 서구, 특히 미국의 각종 아동청소년문학 수상작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소개되는 것과 크게 대조된다. 혹시 그럼으로써 우리는 은연중에 서구의 눈으로 보고 서구인처럼 생각할 것을 조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물론 아시아 여러 국가의 아동청소년문학은 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긴 하다. 하지만 정말 소개할 만한 작품이 없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문득 1996년 영국에서 출간되었으며, 이후 세계적인 아동청소년문학 연구의 기본도서가 된 <아동청소년문학 백과 International Companion Encyclopedia of Children's Literature>(피터 헌트 편, 1996. 사진 오른쪽)에 소개된 한국아동청소년문학이 떠오른다. 그 전문을 읽어보자.

 

 

  한국은 2000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지만, 이 시기의 대부분이 중국제국의 일부였다. 한국은 1910년 일본에 합병되었으며, 따라서 일본문학은 한국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어쨌든, 긴 외국의 점령기간 동안에도 민족주의는 전통적인 민속 문학을 통해 살아 있었다. 방정환은 한국이 필요로 하는 것에 그가 받은 일본식 교육을 접목시켰다. 그는 한국 어린이들이 그들 자신의 언어로 교육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민속 동요와 민요가 인기가 있음을 깨닫고 가장 리드미컬한 일본 노래 가운데 하나에 한글 가사를 붙이기도 했다. 윤석중은 여기에 영향을 입었고, 그의 시와 동요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첫 한국 아동청소년문학을 성립했다.

1945년 이후 국가가 분단되면서, 북한은 러시아식 교육 패턴과 책 형식을 받아들인 반면, 남한은 미국의 영향을 입었다. 1962년 남한에서의 큰 문학적 사건은 10권으로 출간된 <한국아동문학독본>이었다. 여기에는 동요, 동화, 동극, 동시, 그리고 단편 소년소설들을 싣고 있으며, 매력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담고 있다. 1978년 한국 현대아동청소년문학연구소가 서울에 설립되었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 중국과 일본, 인도는 각각 수 페이지에 걸쳐 소개된 반면, 한국은 몽골,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와 함께 극동( the far east)의 하나로 소개되어 있고, 그것도 가장 적은 지면이 할애되어 있다. 전문을 굳이 여기서 소개한 이유는 저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에 안타까워하자는 게 아니라(물론 여기에는 우리 자신의 책임도 크다), 일본을 제외한 같은 아시아 국가들의 아동청소년문학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오히려 우리 아동청소년문학에 대한 저들의 지식에 훨씬 못 미치고 있음을 한번 상기해보자는 뜻에서이다. 이른바 전문 연구자들이 그럴진대 일반인들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캐나다의 아동청소년문학가 페리 노들만의 말은 귀 기울여 들을 만하다.

 

 

 모든 민족과 피부색의 어린이들이 모든 민족과 피부색의 작가들이 쓴, 모든 민족과 피부색의 어린이들에 대한 책을 읽는다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개별성을 나타내는 데 인종과 피부색이 아직도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계에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 관한 혹은 그런 사람들이 쓴 책은, 인간이 되는 방식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다가가도록 허용한다. 그런 스펙트럼을 경험하는 것이 문학의 주요 즐거움 중 하나이다. 그것은 포용성을 길러 준다.(<어린이 문학의 즐거움>, 시공주니어, 1권 248쪽)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이라는 관점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다는 아님은 자명하다. 하지만 수요가 없으면 공급은 창출되기 어렵다. 인권 문제를 출발점으로 그 다양한 스펙트럼이 펼쳐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드문 예외 - <그림자 개>에 드러난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애정

 

 

이런 상황에서 1984년부터 2002년 사이에 발표된 신작 11편이 수록되어 있는 현대 인도동화집 <그림자 개>(창비. 사진 오른쪽)는 드문 예외에 속한다.

 

물론 단편집이기에 편자의 관점과 의도가 많이 숨어 있겠고, 또 그 가운데서도 일부를 고른 역자의 눈으로 한 번 더 걸러지긴 했지만, 우리가 익히 보아온 서구의 작품들에서와는 다른 관심을 읽어낼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다. 여기서 가난은 단순히 경제적 가난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 사회의 오랜 병폐로 꼽히는 신분제도 즉 카스트제도라는 유산 속에서의 가난이다.

 

<왜 왜 소녀>에서는 소녀 모이나의 끊임없는 ‘왜’라는 질문이 그러한 사회적 모순들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인한테 쌀을 보내주어 고맙다고 말하라는 엄마에게 모이나는 묻는다.

“왜요? 전 외양간 청소도 하고 주인님을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잖아요? 주인님이 저한테 고마워하나요? 그런데 왜 전 고맙다고 해야 되죠?”

모이나는 인도의 낮은 계급에 속하는 셔보르다. 왜? 라고 묻지 않는 이들은 주어진 가난과 불평등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모이나는 다르다.

“왜 전 물을 길으러 강까지 멀리 걸어가야만 돼요? 왜 우리는 나뭇잎으로 엮은 오두막집에서 살아요? 왜 우리는 하루에 두 번 밥을 먹으면 안 되는 거죠?”
“왜 난 부자들이 먹다 남긴 찌꺼기를 먹어야 되지?[...]”

모이나는 자신의 ‘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마을의 초등학교에 들어간 최초의 여자 아이가 되었고, 열여덟 살이 된 지금은 싸미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가난을 운명처럼 알고 순응하고 있는 모든 셔보르들이 모이나처럼 ‘왜?’냐고 물으며 현실을 개척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따뜻하고 애정어린 시선 자체가 혁명적

 

 

‘천한’ 계급 출신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곳곳에 담겨있다. 그리고 이런 따뜻한 시선은 생생한 캐릭터들로 감동이 증폭된다. 우연히 발견한 금실로 수놓인 멋진 빨간 벨벳 신발 한 짝을 통해 대장이 된 소아마비 소년 조셉의 이야기 <마법의 빨간 금구두>, 단돈 3빠이사를 들고 에이드 축제에 갔다가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참으며 할머니에게 꼭 필요한 집게를 사다 준 하미드의 이야기 <에이드 축제>, 일하는 아줌마의 딸과 친구가 된 <미안해, 단짝 친구야!>가 그것이다. 오랫동안 뿌리 박혀 있는 신분 제도를 생각하면 가난하고 천한 신분의 아이들에 대한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 자체가 혁명적일 수도 있지 않을지.


인도에서는 힌두교가 다수이지만 회교도도 존재한다. 카슈미르 분쟁에서 복합적으로 터졌듯이 종교 갈등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힌두교와 무슬림 인물들의 만남을 다루는 작품들에서는 종교 간의 관용을 바라는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힌두교 소년이 무슬림 아줌마의 도움을 받아 터널을 지나는 무서움을 극복하는 <터널>, 힌두교 소년과 무슬림 신문팔이 소년의 만남을 그린 <신호등이 바뀔 때>가 그것이다.

 

<사진왼쪽-'마법의 빤간 금구두' 삽화>

인도 역시 식민지 경험이 있는 나라다. <나라얀뿌르 사건>은 영국의 식민지 시절 인도의 독립을 위해 애쓰는 가족의 모습을 다룬다. 여기에는 우리가 잘 아는 불복종, 비협력, 비폭력을 골자로 하는 간디의 무저항주의가 독립 운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드러난다. 아무 구호도 함성도 지르지 않은 채 그저 천천히 걷기만 한 학생들의 시위에서 돌아온 대학생 모한은 두려워서 그렇게 돌아섰느냐는 동생 만주와 바부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두렵냐고? 천만에!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미리 계획했던 거야. 우리는 경찰이 정문에서 막을 줄 알고 있었지. 우리가 저항하고 폭력적으로 나오기를 경찰들이 바라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래, 경찰들은 우리를 기습해서 감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바랄 거야. 우리는 그걸 알고 있었지.[...]”

 

<사진 오른쪽-'나라얀뿌르 사건' 삽화>

그밖에 동물을 잡아먹는 식물 이야기 <굶주린 셉또푸스>, 인도의 전통 요리를 소재로 아들의 소망과 재치를 그린 <인도의 달 이야기>처럼 이국적인 이야기와 작은 찌르레기 새끼들과의 만남으로 생명의 소중함에 눈 뜬 짓궂은 개구쟁이 이야기 <고무줄 새총을 가진 소년>처럼 어디서나 만날 수 있을 듯싶은 아이들 이야기도 있다.

 

 

우리와 같지만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

 

 

무릇 인도에 대해선 ‘가난한 나라’와 ‘신비롭고 환상적인 나라’라는 두 가지 모순적인 이미지가 일반적이다. 이 책은 이러한 이미지를 강화시키는가? 아니면 인간 존재의 특수성과 아울러 보편성을 알려 주는가? 만약 전자라면 이 책은 다문화적 관점의 편찬에서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후자라면 우리와 같지만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보다 넓고 풍요롭게 해주는 데 기여할 것이다.


미디어가 아무리 발달하고 다양해졌다 하더라도 문학은 특정 역사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에 접하기에 가장 좋은 매체다. 그들은 우리와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 우리 각각이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한 것처럼. 그 다양한 스펙트럼을 접할 때 우리 역시 더욱 풍요로워질 것은 당연한데, 왜 이제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게 된 사람들을 키워 낸 터전과 그곳 사람들 이야기는 이토록 접하기 어려운지 모르겠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관심과 필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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