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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다를 뿐이야 " (1)

  • 작성일 2005-09-30
  • 조회수 724


-첫번째 이야기-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땅에 살고 있는 그들의 인권을 다루는 것만으로는 다른 문화를 이해하려는 온전한 노력으로 보기는 어렵다. 방글라데시 말로 ‘친구’라는 뜻의 <반 두비>에서 디아나는 이렇게 역설한다.

"내가 바라는 거는요. 내가 한국말 배우고, 한국 역사랑 예절 공부하는 것처럼 우리 반 애들도 방글라데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주는 거예요." ... ...

 

 

경제적 후진이 문화적 후진은 아니다

 

유럽행 비행기를 타고 밑을 내려다보면 지구라는 별이 얼마나 넓은지, 생존의 조건이 얼마나 다른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보기만 해도 누런 모래바람이 살갗에 느껴질 정도로 메마르기 짝이 없는 고비 사막을 지나고 비행기 창에도 서리가 낄 정도로 꽁꽁 얼어붙은 시베리아 동토 위를 한참 날다가 이윽고 눈 아래 검은 색이 돈다 싶게 촉촉한 초록으로 펼쳐지면 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목도하는 느낌이다. 풍요로운 환경이 부러운 동시에, 척박한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역사를 이어온 사람들에 대해 숙연한 감동이 인다. 기실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천혜의 조건을 누리기만 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핍박한 조건에서도 자신의 삶을 일구어 나가는 데서 올 성싶다. 철로 자갈 틈으로 옹색하게 피어오르면서도 생명의 몫을 다하고 있는 민들레를 보며 문득 생명의 경건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세계 경제를 단일 경제 체제로 급속히 재편해 나가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흐름 속에서 모든 가치 판단이 자본과 경쟁의 논리에 귀속되고 있는 지금, 경제적 후진은 개인이 되었건 국가가 되었건 열등한 것으로 폄하되기 일쑤다. 문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같은 아시아에 속하면서도 문화에 있어서는 문화적 제국주의를 일컬을 수 있을 정도로 서구문화 지향 일변도를 보여 왔다. 이러한 서구 편향은 경제적인 약자와 비주류에 속하는 아시아 문화에 대한 무관심과 폄하로 이어졌다. 그간의 문학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특히 동남아권의 문학작품은 신문학의 역사가 우리보다 훨씬 긴데도 거의 소개되어 있지 않다. 민족적 수난의 역사, 민족적 정서, 사회의 제반 환경, 강대국과의 문화적 갈등 양상 등 우리나라와 공유하는 바가 많을 터인데도 그들의 문학에 대해서는 관심도 아는 바도 거의 없다.

 

타문화에 대한 관심은 결국 자신의 문화에 대한 관심과도 통한다. 우열이 아닌 다양성의 관점에서 서로의 존재 방식을 인정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 진정 더불어 사는 삶이 실현될 것임은 당연하다. 영상 매체의 발달로 세계 오지 곳곳을 카메라의 눈을 통해 찾아가 볼 수 있는 요즘이지만 그것이 신기하고 낯선 것에 대한 이국적인 관심을 넘어서 과연 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달 초 EBS 주최로 국제다큐멘터리 축제(EIDF, http://www.eidf.org)가 열렸다. 2004년도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로 두 번째의 축제인데, 작년의 ‘변혁의 아시아’란 주제에 이어 올해도 ‘생명과 평화의 아시아’를 주제로 아시아에 대한 이해를 넓히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이런 노력이 청소년문학에서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번에는 특히 이 영화제의 ‘아시아 5개국 특별전’의 주빈이자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고향인 동남아에 관련된 문학을 함께 찾아보고 싶었다.

 

 

동화 『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와  외국인노동자의 인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문제를 다룬 책들이었다. 그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다섯 편의 동화집 『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창비 2004)는 비록 초등학생용 동화로 분류되어 있지만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도 읽고 생각해볼 만한 책이다.

 

방글라데시 소녀 디아나가 민영과 우정을 키우며 한국에 정을 붙여가는 이야기 「반 두비」(김중미),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한국인의 이중적인 태도를 이해할 수 없는 몽골 소년 빌궁의 이야기 「아주 특별한 하루」(박관희), 불법으로 취업해 하루하루를 불안하고 외롭게 보내는 베트남 소년 티안의 가족 이야기 「혼자 먹는 밥」(박상률), 베트남인 엄마를 둔 수연의 이야기 「마, 마미, 엄마」(안미란),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한 고모를 통해 인도네시아에서 온 블루시아를 이해하게 되는 준호의 이야기 「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이상락), 이렇게 다섯 편이 실려 있는데, 인권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소수자로서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억압과 무시, 차별과 편견이라는 공통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놀리고, 손으로 밥을 먹는다고 미개인이라고 하고, 몽골에서 왔다면 다 초원에서 말달리다 온 것으로 생각하고, 걸핏하면 너희 나라로 가라고 윽박지르고, 때리고, 임금을 떼먹고, 불법체류자로 잡아간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현실 고발에 그치거나 가진 자로서 베풀어야 한다는 시혜자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는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이른바 긍정적인 인물들이다. 디아나의 친구 민영, 티안의 현아, 서독에 간호사로 갔던 고모의 역할이 그것이다. 민영은 이혼 가정의 아이로서 같은 소수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인물이다. 티안을 튀김이라는 별명이 아닌 이름으로 꼬박꼬박 불러주는 현아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원양어선 선원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다른 문화의 사람들에 대해 열려 있는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서독 이모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인도네시아의 노동자들의 처지에 설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차원이고 사회정책적, 노동구조적인 차원의 문제는 끝내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는다. 따라서 어머니까지 불법 체류 문제로 잡혀간 티안의 눈앞에는 끝없는 ‘어둠’만 남아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것은 어느 개인이 아닌 다 함께 풀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기준에 따라서는 누구나가 소수자

 

 

우리 사회 내 소수자로서 동남아출신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문제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 사회를 반성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 여성학자 정희진이 말하듯 소수자의 인권문제는 “‘겨우’ 10%에 해당하는 ‘소수자’를 ‘보호’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이라는 경계는 비장애인 중심주의의 결과이며, 동성애자 역시 그러하다. 이들의 존재는 실재가 아니라 발명된 것이다. 즉, 규명되고 변화해야 할 것은, ‘전체 사회’이지 ‘그들’이 아니다. 소수자가 겪는 차별과 고통은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말해줄 뿐이다. 소수와 ‘주류’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준이 무엇인가에 따라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는 것”(한겨레신문, 2005년 3월 25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 소수자의 문제는 그와 관련된 당사자의 인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해당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이다. 소수자의 인권이 존중될수록 그 사회는 개인의 다양한 행복 추구권을 인정한다는 뜻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이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함께 하는 것은 문학의 한 역할이기도 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땅에 살고 있는 그들의 인권을 다루는 것만으로는 다른 문화를 이해하려는 온전한 노력으로 보기는 어렵다. 방글라데시 말로 ‘친구’라는 뜻의 <반 두비>에서 디아나는 이렇게 역설한다.

 

"내가 바라는 거는요. 내가 한국말 배우고, 한국 역사랑 예절 공부하는 것처럼 우리 반 애들도 방글라데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주는 거예요"

 

다른 것은 그냥 다를 뿐이다.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성을 다양성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은 대화와 소통의 전제이다. 그 역할을 아동청소년문학에서 기대해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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