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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데미안'을 통해서 본 성장의 의미

  • 작성일 2005-06-08
  • 조회수 2,694







 


헤세의『데미안』은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낯선 이름으로 처음 발표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독자들에게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맞먹는 파문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라는 멋진 말로 더욱 널리 알려진 이 성장소설은 싱클레어라는 소년이 대략 열 살에서 스무 살까지 이르며 겪는 내적 방황과 고통 그리고 그것을 통한 성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지요.

 

                                      빛과 어둠, 두 개의 세계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순진무구하게 자란 소년 싱클레어는 세상을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로 나누어 인식합니다. 싱클레어가 파악하는 빛의 세계란 ‘가정’이자 곧 ‘질서의 세계’로서 “의무와 책임, 양심의 가책과 고해, 관용과 선의, 사랑과 존경, 성경 말씀과 지혜”가 가득한, 약간은 따분하지만 평화로운 낙원입니다. 여기에서도 물론 잘못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죄악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실수로서 회개와 용서를 통해 언제든지 다시 밝음의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 허용되는, 즉 ‘낙원추방 이전의 세계’이지요.

 

 반면에 어둠의 세계란 ‘가정 밖’의 세계이자 하녀와 술주정꾼들의 세상, 곧 혼돈의 세계로서 “귀신, 추문, 끔찍하고 알 수 없는 사건, 도살장, 감옥소, 술주정꾼, 싸우는 여자, 출산하는 염소, 쓰러진 말, 강도, 살인, 자살자들의 세계”입니다. 그곳은 다시 빛의 세계로 돌아 올 수 없는 ‘낙원추방 이후의 세계’로서 여기에는 죄책감과 절망뿐이지요. 하지만 동시에 뭔가 설레고 피끓게 하며 유혹하는 마성의 힘이 있는 세계이기도 합니다.

 

 싱클레어가 파악하는 이 두 세계를 헤세는 『데미안』 이후의 작품인 『싯달타』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는 더이상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라고 부르지 않고 각각 “이성의 세계”와 “감성의 세계”로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이 두 세계 사이에서 서성이며 방황하는 것은 비단 싱클레어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겠지요.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이성과 감성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싱클레어도 “내 문제가 모든 사람의 문제이며, 모든 삶과 사색의 문제”라고 고백합니다.

 

 이야기는 싱클레어가 ‘어둠의 세계’에 속하는 프란츠 크로머라는 소년에게 단지 기죽기 싫은 마음에서 “사과를 훔친 적이 있다.”라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그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면서 시작합니다. 이것은 싱클레어에게는 성서에서 뱀의 유혹에 의해 저지른 최초의 ‘원죄사건’(原罪事件)에 해당하는 일이지요. 그래서 그는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빛의 세계에서만 사는 아버지보다 낫다는 기쁨과 희열도 싹트지요. 돈을 요구하는 크로머에게 시달리던 싱클레어는 하는 수 없이 저금통에서 돈을 훔치게 되고, 죽음과 같은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지만 다시 옛날로 돌아가지는 못합니다. 이때 데미안을 만납니다.

 

 데미안은 낙원을 잃어버리고 고통 속에 있던 싱클레어에게 “어른처럼 낯설고 성숙하며”, “너무나도 우월하고 냉정하고”, “의지에 가득찬” 상급생입니다. 그는 육체적으로 강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하여 - 적어도 싱클레어에게는 - 결점이 전혀 없는 완벽한 인간으로 보입니다. 데미안은  크레머로부터 싱클레어를 해방시켜주고 그의 ‘인도자’가 되지요. ‘어둠의 세계’에서 나온 뱀을 쫓아준 거지요. 그리고 세상을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로 나누어 어느 한 쪽만을 인정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가르칩니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데미안이 졸업을 하자,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헤어지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고통스러운 내적 방황의 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요. 그는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술집에서 떠들며 영웅 행세도 하고, 독설가로 행동하며, 방탕한 생활로 빚을 지고 학교에서 퇴학을 당할 위기에까지 놓입니다. 이제 그는 완전히 ‘어둠의 세계’에 속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공원에서 아름답고 청순하며 “현명한 소년의 얼굴을 한” 소녀 베아트리체를 만나 그녀를 숭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시 ‘빛의 세계’에 대한 갈망을 느끼고 기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어둠의 세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간절한 욕망을 갖게 된 거지요.

 

 이즈음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보낸 메시지가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삭스다.”입니다. 아브락삭스는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를 함께 소유하고 지배하는 신이지요. 이 메시지를 통해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반쪽만의 세계에 속해 있으면서 다른 반쪽에 대한 동경과 함께 죄의식에 시달려야 하는 편협한 세계를 깨고, 빛과 어둠, 이성과 감성이 함께 공존하는 충만한 세계로 나아갈 것을 다시 한번 요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싱클레어는 꿈을 꾸는데, 이 꿈을 통해 아브락삭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꿈속에서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데, 나중에 보니 그가 안긴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지요. 데미안과도 비슷하고 베아트리체와도 비슷합니다. 이것이 아브락삭스의 모습인데, 훗날에야 싱클레어는 그것이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임을 알게 되지요. 꿈속에서 그녀와 나눈 포옹은 “깊은 행복감이면서도 죽음의 공포, 무서운 가책과 끔찍한 죄가 섞인 것”이었습니다.

이 꿈을 통해 싱클레어는 아브락삭스의 본질을 깨닫는데, 그것은 빛과 어둠, 동물적 본능과 정신적 숭배가 뒤섞인 것으로서 “쾌락과 공포, 남자와 여자가 뒤섞인 것이며, 성스러운 것과 추한 것이 서로 얽히고, 깊은 죄악이 여린 순진무구에 의해 전율하는 것”이지요.

 

                                     성장의 진정한 의미                                  

 

 우리는 여기에서 헤세가 ‘완전한 인간’ 또는 ‘성숙한 인간’으로 설정한 에바 부인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그래야만 헤세가 『데미안』에서 말하는 ‘성장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학상으로 보면, 헤세가 창조한 에바 부인은 다분히 모성적이며 동시에 부성적인 존재이지요. 모성적인 것이란 감성적인 것, 곧 따뜻함이고, 음식이며, 만족과 쾌락, 자유와 안전이고, 부성적인 것이란 이성적인 것, 곧 지식이고 법률이며 질서와 책임, 훈련과 모험입니다. 따라서 『데미안』의 ‘에바 부인’, 곧 정신분석학에서 ‘성숙한 인간’은 그가 자신의 어머니도 되고 동시에 아버지도 되어야 한다는 것, 즉 감성과 이성, 본능과 정신, 쾌락과 고통, 자유와 책임 그리고 안전과 모험을 동시에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을 의미하지요.

 

 독일 출신의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은 그의 저서『사랑의 기술』에서 “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밖에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해방되어, 그들의 모습들을 자신의 내면에 간직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우리의 내면 안에 들어와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부성적 양심”(父性的良心), 어머니의 모습을 “모성적 양심”(母性的良心)이라고 불렀습니다.
 
 부성적 양심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네가 잘못하면 너는 네 잘못의 결과를 피할 수 없고, 내 마음에 들고 싶으면 너는 너의 생활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모성적 양심은 “어떠한 악행이나 범죄에도 너에 대한 나의 사랑, 너의 삶과 행복에 대한 나의 소망을 빼앗지 못한다.”고 말하지요. 다시 말해 부성적 양심은 “…… 때문에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모성적 양심은 “……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자신에게 말하지요.

 

 따라서 우리는 부성적 양심을 통해 복종, 성실성, 절제, 인내, 책임 등을 배우고, 모성적 양심을 통해서 자위, 자존심, 자유 등을 배웁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에 모성적 양심을 간직하고 자신의 이성과 판단에 부성적 양심을 간직함으로써, 서로 균형을 이룰 때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모성적 양심에 의해 내적으로 비참해지지 않을 수 있고, 자신을 종용하거나 꾸짖는 부성적 양심에 의해 외적으로 강해질 수 있는 거지요. 그 결과 자유롭지만 책임을 질 줄 알고, 복종하지만 비굴하지 않고, 성실하지만 노예가 아닌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성장의 진정한 의미’이지요.

 

       “용감히, 그리고 두려워 말고 새로운 이끌음에 몸을 맡겨라.”

 

 정신분석학적으로 ‘성숙한 인간’이란 에바 부인처럼 자기 내면 안에서 대립하는 두 세계가 조화를 이룬 인간입니다. 이러한 인간만이 ‘자신의 안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알아내고 그 껍질을 벗겨서 진정한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가는 일’ 곧 ‘자기실현’을 이루어낼 수 있는 거지요.

 하지만 이 일은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뱀이 허물을 벗고 성장하듯” 몇 번이고 주어진 자기를 부수고 죽을 것 같은 절망과 고통을 견디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싱클레어도 그러한 절망과 고통을 통해 비로소 자기실현을 완성해냈던 거지요.
 
 헤세는 그렇다고 이러한 성장과 자기실현을 두려워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분들에게 당부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위로합니다. “신이 우리에게 절망을 보내는 것은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이다.”

 

아울러 다음과 같은 시도 남겼습니다.
          
                    모든 꽃들이 시들듯이
             청춘이 세월 속에 무릎을 꿇듯이
             인생의 모든 단계는 지혜를 꽃피우지만
             지혜도 덕망도 잠시일 뿐
             영원하지 않다.
             그러하니, 생의 외침을 들을 때마다
             마음은 이별을 준비하고 새 출발하라.
             용감히, 그리고 두려워 말고 새로운 이끌음에 몸을 맡겨라.
             새로운 시작에는 언제나 마술적 힘이
             우리를 감싸, 사는 것을 도와주리니
 

                                      

                              <단계>, 『유리구슬의 유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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