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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비극과 완성되지 않은 애도

  • 작성일 2020-08-01
  • 조회수 2,030

[문학더하기(+)]

2010 다시-읽기 Re-View
- 《문장웹진》에서 실시한 2010년대 문학 설문 결과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우리가 ‘다시’ 읽어봐야 할 작품에 대한 리뷰



전쟁의 비극과 완성되지 않은 애도

- 김이정, 『유령의 시간』(실천문학사, 2015)



심영의




2020년은 한국전쟁 발발 70년이 되는 해다. 한국전쟁의 결과 고착화된 남북분단은 우선적으로 물리적 공간의 구획이면서 그것은 정치적 분단을 넘어선 이념과 사람, 기억의 분단을 가져왔다.
전쟁의 상흔과 인간의 실존적 비극을 다루고 있는 김이정 소설 『유령의 시간』은 작가(그리고 작고한 그의 부친)의 자전적 소설이면서 이 땅 어디에도 존재하지 못했던 유령으로서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다. 작가에게 아버지(그 자신도 그렇게 여기거니와)는 식민지배와 한국전쟁과 유신독재가 만들어낸 유령이자 비체(abject-주체도 객체도 될 수 없는 존재)다.
작가는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물 묻은 저녁 세상에 낮게 엎드려」가 당선된 이후 장편소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1997), 『물속의 사막』(2001), 소설집으로 『도둑게』(2006), 『그 남자의 방』(2010) 등을 펴냈다. 장편 『유령의 시간』(2015)은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펴냈는데, 2016년 제24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등단작인 「물 묻은 저녁 세상에 낮게 엎드려」는 한국전쟁 때 사상범으로 월북했던 아버지로 인해 고통 받는 가족을, 소설집 『도둑게』에 수록된 단편 「근속」과 「개미의 집」, 그리고 「오디오」 등은 아버지가 없는 집안의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과 갈등을 그렸다. 『그 남자의 방』의 표제작에서도 작가는 실종된 아버지가 기거하던 방을 지켜보면서 아버지를 하나의 실존적 존재로 이해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러하니 작가는 등단작을 비롯한 대부분의 그의 소설에서 아버지의 부재(不在) 라는 비상한 상황을 그리고 있고, 이는 실제 그의 아버지가 맞이한 한국전쟁으로 인한 가족의 상실과 부재, 그로 인한 지워지지 않는 상흔(trauma)과 완성되지 않은 애도와 연결되어 있음을 짐작케 한다. 다만 작가는 한국전쟁에 대해 아버지의 모습을 통한 유추적 해석, 곧 아버지의 고통을 바라보는 딸의 해석적 시각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소설을 통해 분단의 상처를 문학의 영역에서 치유하는 방식을 의미화 하는 대신 역사적 상흔의 치유 (불)가능성에 초점이 놓여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의 결말은 여전히 휴전 중인, 따라서 긴장과 화해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남북한의 정치적 상황에서 어떠한 낙관적 전망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가 생전 한순간도 잊지 못하던 그의 처와 아이들의 행방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며, 평양에 가서도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이정 소설은 전쟁이라는 폭력을 사건화하기보다는 폭력 이후의 상처를 사건화 한다. 그 사건이란 다름 아닌 가족의 상실과 죽음 그리고 애도의 (불)가능성에 관한 것인데, 그것의 목록들은 다음과 같다.
소설 『유령의 시간』에서 작가의 아버지로 짐작되는 인물 ‘이섭’은 일제강점기의 조국에서 많은 지식인 청년들이 그러했듯이 사회주의 활동가였다. 그러나 해방은 모두의 바람과 달리 이념의 각축장이 되고 나라는 분단과 전쟁으로 내달린다. 그는 전쟁 시기, 수배되어 도피 중에 자기 대신 감옥에 갇혀 소식이 끊긴 부인과 갓난아이, 형님에게 맡겨 놓았다가 끝내 잃어버린 두 아들을 평생 잊지 못한다.
이섭에게 있어 지용, 지호, 지은, 아내 진 등, 가족의 상실과 부재는 그가 숨을 거둘 때까지 감당하기 힘겨운 고통과 죄의식의 기원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그의 거의 유일한 관심 혹은 절망은 월경(越境)의 불가능성에 놓여 있다. 그것은 한국전쟁을 경험한 개인(들)에게 억압으로 작용한 일종의 자기보존 본능이라 할 수 있다.
아내 진이 자신을 대신하여 갓난아이와 함께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이섭이 수배자의 몸이 되어 피해 다닌 지 한 달째 되던 때였다. 백일이 다 되어 가는 막내아이는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채 이름만 지은이라 부르고 있었다. 이섭은 인민군이 진주하자 서울의 경찰서를 모두 헤매며 아내와 갓난아이의 행방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퇴각하는 군인들이 구치소나 감옥 안의 사람들을 몰살하고 떠났다는 소문만이 흉흉한 채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이섭은 총알이 난무하는 전장을 기어 38선 이북으로 넘어갔다. 자기 이념의 고향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폭격으로 부서진 평양 거리는 피비린내만 진동하는 폐허였고, 더구나 가진 것 없는 자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겠다던 이념은 어느새 빛이 바래 권력자들은 치열한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상주의자 이섭은 그곳에서 가족보다 더 소중한 것을 끝내 찾지 못하자 목숨을 걸고 다시 남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월남 후 부모님을 찾아가서 들은 이야기는 청천벽력과 다름없었다. 역시 사회주의자였던 형님이 자신의 가족과 이섭의 아이들 둘까지 모두 데리고 북으로 갔다는 것이었다. 운명의 길은 어긋나고 만다. 뿐만 아니라 이섭은 박명이 가시지 않은 골목길에 조심스런 발길을 내딛으며 숨을 곳을 찾아가던 날, 형 영섭을 찾으러 온 형사들에게 무자비한 발길질을 당한 끝에 체포되고, 그 자리에서 쓰러진 그의 어머니는 그 길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섭의 장인과 장모의 경우는 어떠한가. 맏딸 ‘진’이 경찰들에게 잡혀간 걸 늦게야 안 장인은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평생을 죄인처럼 살다가 맏딸과 외손주들의 소식을 듣지 못한 채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장인은 전쟁이 끝나자 감옥에 들어가 있는 이섭을 대신해 전국의 경찰서와 고아원을 뒤지며 아이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혹여 아이들이 언제라도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버리지 못한 채 대문 색조차 바꾸지 않고 굳건히 집을 지키고 있었다.
다만 그는 어떻게 하든 옛 연줄이 닿은 사람들을 총동원해 이섭의 일자리를 구해 주는 것을 자신의 존재이유로 삼으려는 사람 같았다. 제주도의 조랑말 목장으로, 충청도의 새우양식장으로, 이섭이 낯선 길을 떠난 것은 모두 장인 덕분이었다. 장인의 친구가 목장과 새우양식장의 소유주였던 것이다. 사상범 이섭은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연좌제와 사회안전법의 그물에 갇혀 그는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아빠보다 열일곱 살이나 어린 아내(소설의 서술자인 ‘김지형’의 친모) ‘박미자’는 또 어떠한가. 나이 차이도 두 살밖에 나지 않는 남자와 그녀는 열아홉 살에 결혼을 했다. 남자는 얼굴도 보지 못하고 결혼한 그녀를 더할 수 없이 아꼈다. 여섯 살 때 죽은 생모 대신 계모 밑에서 외롭게 자란 ‘미자’의 이야기를 들을 땐 같이 눈물을 흘리며 품에 안아 주기도 했다. 그녀는 그때까지 겪었던 외로움과 고생을 한꺼번에 보상이라도 받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결혼 후 석 달 만에 6·25가 터졌다. 전선이 가까워졌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피난길에 올랐다. 피난 가기 전날 밤, 남편은 경찰인 그의 형이 갖다 놓은 탄피들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만져 보던 중 그것이 폭발해서 그 자리에서 폭사한다. 그러나 상황은 그 밤 안으로 피난을 가야 했다. 미자는 꼭 하룻밤만 자고 나면 남편이 살아날 것만 같아서 애원했지만, 시부모는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아직 체온이 식지 않은 남편을 흙에 묻고 정신없이 마을을 벗어나 산길을 걷고 또 걸어서 피난을 떠났다.
미자는 그런 시부모가 원망스러웠다. 전쟁이 끝나자 시부모는 아프지만 미자의 등을 떼밀었다. 아들도 없는 며느리를 붙잡고 있은들 뭐 하겠냐고, 새 인생 살라면서. 미자는 다시 친정으로 갔지만 계모가 미자가 와 있는 걸 못마땅해 했다. 갈 곳이 없어진 미자는 결국 친지의 소개로 이섭의 재취자리로 들어간다. 갈 곳이 없었으니까.
5년간 감옥에 있다 풀려난 이섭은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햇빛을 못 봐 누렇게 뜬 얼굴은 신장염으로 퉁퉁 부었고 온몸은 멍투성이였다. 빨갱이라고 간수들의 묵인 하에 구타가 수시로 행해진 탓에 몸에는 멍 자국이 지워질 새가 없었다. 게다가 잃어버린 아내와 아이들 생각에 넋을 놓고 지내던 이섭은 그러나 역시 전쟁 중에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 아버지를 돌봐야 했다. 보다 못한 숙부가 낯선 여자를 데려왔다. 미자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새로운 인연을 맺는다.
어느덧 이섭은 잃어버린 세 아이들보다 하나가 더 많은 네 명의 아이들을 새로 얻은 아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이섭은 새로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자신 안에서 행여 생겨날지도 모를 이 산술적 계산을 경계했다. 아니 잃어버린 아이들이 행여 잊힐까 봐, 그 아이들의 이목구비와 목소리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올리곤 했다. 첫 결혼에서 정이 유난했던 신혼의 남편을 전쟁 중에 잃은 미자는 이섭의 마음쯤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한없이 너그러웠다.
또 다른 한 사람, 소설의 서술자 ‘지형’이 어렸을 때, 아버지의 양식장 일을 도와주던 영석 엄마 ‘서순희’가 있다. 어느 날 베트남의 한 마을로 투입되어 어린아이까지 무차별 학살을 해야 했던 영석의 아버지는 작전이 끝난 후 정신이 잘못 끼워진 나무토막처럼 틀어지기 시작했고 귀국 후 병원에 갇혀 지내다 결국 죽고 만다. 영석의 아버지 같은 한국군 병사의 대부분은 가난하고 굶주렸던 농촌 출신이었다. 이들은 우리와 유사하게 식민지 잔재, 군사독재, 분단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베트남 민중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러 떠난 것이었다.
그들은 아주 순식간에 괴물에 가까운 전쟁 기계가 되어 과잉의 폭력들을 행사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미국 등 외세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국가를 만들어 살려는 수많은 베트남 민중의 염원을 폭력적으로 파쇄시키는 한편 그들의 목숨을 처참하게 빼앗는 악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영석의 아버지가 귀국해서 겪고 있는 정신질환, 그리고 끝내 온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죽어간 것은 그와 가족들의 개인적 비극이면서도 근대국가의 폭력적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한, 주체도 객체도 될 수 없는 존재, 아예 존재 자체가 지워진 비체(abject)의 운명을 은유한다.
‘지형’이네는 새우양식장을 더 이상 운영하지 못하고 서울로 이사를 왔다. 가구회사 영업사원 일을 하는 아버지의 가방에는 러시아문학전집이나 여성대백과사전 따위의 카탈로그도 들어 있었다. 가구 영업과 책 외판 두 가지 일을 하는 아버지를 보며 지형은 자신과 가족들이 늙고 여윈 노새의 어깨에 올라탄 코끼리라도 된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저 마른 어깨는 언제까지 이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지형은 안방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코골이 소리를 들으며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서울은 누구에게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중3이 된 지형은 언젠가부터 산 위에 있는 ‘시민아파트’라는 집이 부끄러워지고 있는 걸 느꼈다. 낡은 아파트 벽 군데군데에 균열이 나고 있었다. 그러나 균열은 엉뚱한 곳에서 갑자기 일어났는데 동생 ‘지우’가 죽어버린 것이다. 차마 죽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폭격으로 죽은 남자가 하룻밤 자고 나면 다시 깨어날 것 같았다고 예전의 엄마가 그랬듯이 ‘지우’도 모르는 일이잖은가. 엄마와 아빠는 단숨에 열 살씩 나이를 더 먹은 사람들 같았다. 물기가 다 빠져나가 살갗이 늘어진 아버지는 508호의 용주 할아버지처럼 갑자기 늙어 보였다. 지우의 죽음은 이섭의 생 전부를 흔들었다. 베레나 카스트(Verena Kast)의 통찰이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그의 죽음에서 자기의 죽음을 본다. 왜 아니겠는가.
그런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이섭은 갑자기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되지 못한 나라에서 30년을, 해방 후에는 북에 가족을 두고 이산가족으로 30년을 산 그는 해방 30주년을 맞는 광복절 아침,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 지 한 달 남짓,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공포와 억압의 손아귀를 떨쳐버리지 못한 채 돌연 뇌출혈로 쓰러져 죽음을 맞이한다.
그 공포와 억압의 원인은 1972년에 제정된 사회안전법이었다. 유신체제 반대와 베트남 전쟁의 종결로 위기에 몰리던 박정희 체제는 연이은 긴급조치 선포와 사회안전법 등의 제정을 통해 소위 사상범들에 대한 거의 무제한의 감시와 처벌이 가능하도록 했고, 이섭은 꼼짝없이 그 올가미에 걸린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이섭의 낡은 책상에는 스물두 장 셋째 줄까지 쓴 미완의, 그 스스로 《유령의 시간》으로 이름 붙인 자서전이 남아 있었다. 지형은 아버지가 남긴 미완의 자서전을 보며 언젠가 자신이 완성하리라 몰래 다짐한다.
아버지가 죽고 30년 가까이 되던 어느 날, ‘김지형’은 그들이(아버지의 두 아들이) 북에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남북작가대회의 일원으로 방북 길에 오른다. 고려호텔에서 마주 보이는 아파트에 3년 전까지 거주했다니 누구라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고려호텔에서 마주 보이는 아파트는 한두 채가 아니다. 호텔 밖으로는, 개인적으로는 나갈 수도 없다. 그가 선생으로 있다는 대동강변의 대학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어쩌면 순진한 바람이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한 사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이들이다. 그렇다면 한 사내란 누구인가? 물론 그는 ‘지형’의 아빠 ‘김이섭’이다.
평양 방문 마지막 날. 지형은 문득 여기 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온 생애 화인 같은 상처를 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형은 거대한 유령도시 같은 인민문화궁전과 혁명기념탑, 보통강 강변을 지나면서 끊임없이 묻고 있었다. 적어도 한 사내가 인생을 걸고 이루고 싶었던 꿈의 한 조각이라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지나치게 웅장한 동상과 높은 탑, 붉은 구호들 속에선 아버지의 꿈이 보이지 않았다. 지형은 아버지가 생전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들, 지용 오라버니에게 남기는 편지를 남긴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갔습니다.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기뻤을까요? 아버지는 평생 당신들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러니까 김이정의 소설 『유령의 시간』은 한국전쟁을 이데올로기적 양상에서가 아니라 생명과 죽음과 폭력, 가족의 상실과 그로 인한 상흔을 이야기하고 있는, 슬픔을 견디는 방식으로의 글쓰기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다른 의미로 보면 작가 자신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대체로 혈육의 죽음과 자신의 생을 분리하지 못하는 한 진정한 애도는 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소설가 김이정은 아버지를 대신한 글쓰기를 통해 그 상실의 슬픔들을 견뎌내고, 충분하게는 아니지만(어떻게 충분하겠는가), 마침내 자신의 상처와 화해하고 있음을 본다. ?
















심영의

작가소개 / 심영의

소설가 겸 평론가.
전남대학교 국문과에서 《5·18민중항쟁 소설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5·18과 기억 그리고 소설』(2009), 『작가의 내면, 작품의 틈새』(2013), 『텍스트의 안과 밖』(2014), 『5·18과 문학적 파편들』(2016), 『소설에 대하여』(2018), 『한국문학과 그 주체』(2018) 등이 있다.
2014년에 아르코 창작기금을 받아 장편소설 『사랑의 흔적』(2015)을 펴냈고, 2019년에는 서울문화재단 예술가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문학평론집 『소설적 상상력과 젠더(Gender)정치학』(2020)을 펴냈다.


《문장웹진 202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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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어른들의 벤다이어그램

어른들의 벤다이어그램 이소 1. 스무 살을 훌쩍 넘어 성인이 되어도 자신을 어른으로 여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뉴스를 보면 언제나 피해자의 억울함에 몰입하고, 많은 경우 나를 포함하지 않은 채 ‘어른들’에게 분노를 터트리는 사람. 2014년 4월 16일, 이 날 나는 처음으로 어른의 자리에서 사건을 경험했다. 아이의 자리가 아닌 해운회사의 직원이나 공무원이나 인솔 교사의 자리에 서 있었다. 항해사나 해경보다 교사인 나를 떠올리기가 더 쉬웠다. 누구나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동원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기억이 있으니까. 나는 전문가를 깊이 신뢰하는 사람이었으므로, 내가 그 배에 탔다면 안내 방송을 충실히 따르며 어른들과 시스템을 믿으라고 아이들을 다독였으리라는 걸 알았다. 누가 보아도 나는 완벽히 어른이었다. 굳이 괴로웠다는 말을 덧붙일 필요도 없이 그때는 모두가 괴로웠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다음해 문학을 전공하러 대학원에 들어갔다. 누군가 공부라는 게 어떤 실천이 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무런 답변도 떠올릴 수 없다. 나부터가 그런 희망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전처럼 살 수 없을 뿐이었다. 나는 어른이었고,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수습될 수 있는 사고가 아니라 소화할 수 없는 사건이었으며, 내게는 더 정확한 언어가 필요했다. 딱 거기까지 생각할 수 있었다. 2. 지금도 교사인 나를 상상해 본다. 항해사나 해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교사라는 직업과 위치가 내게 어른이란 무엇인지 사고실험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다른 직업과 달리 미성년인 학생들을 상대하는 교사는 흔히 이중적인 이미지로 재현된다. 전교조와 교총을 교대로 인터뷰하는 기사의 관례처럼, 전통을 수호하는 보수적인 교사와 변화를 추동하는 진보적인 교사가 대립하는 양상으로 그려지는 건 흔한 일이다. 제도가 부여한 의무와 규범을 학생들에게 어디까지 얼마만큼 요구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한 명의 교사를 그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지만, 이 경우에도 그의 심리적 갈등은 그의 교육방식에 딴지를 걸 더 완고한 교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면 전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결코 전위적인 존재에 도달할 순 없지만, 마땅히 후위의 역할은 초과해야 하는 사람. 그러나 생각해 보면 교사만 그럴 리는 없다. 모든 직업은 사회가 요구하는 허용범위 안에서 가까스로 변주를 시도하고, 모든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며 유사한 딜레마에 빠진다. 교사는 자신의 의무를 익히 아는 어른의 상징이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점점 학생보다 교사에게 더 쉽게 이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문제는 오래되고 흔한 방식의 재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재현이 더는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데 있을 것이다. 어차피 시대가 변한 줄 모르는 늙은 교사들은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없다. 보수적인 교사와 진보적인 교사의 대립은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가 갈등을 통해 사회를 혁신하는 재생산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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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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