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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는 방식으로

  • 작성일 2020-07-01
  • 조회수 2,068

[문학더하기(+)]

2010 다시-읽기 Re-View
- 《문장웹진》에서 실시한 2010년대 문학 설문 결과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우리가 ‘다시’ 읽어봐야 할 작품에 대한 리뷰



사랑을 하는 방식으로

- 김성중, 『이슬라』(현대문학, 2018)



김정빈




지구상의 포유류들은 모두 일생 동안 심장이 뛰는 횟수가 비슷하다고 한다. 몸집이 작은 동물은 수명이 짧지만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심장이 더 빨리 뛰고, 큰 동물은 심장이 느리게 뛰지만 수명이 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해서 심장이 빨리 뛸 때마다, 죽음을 향해 가까워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 비약을 믿으며 누군가 나를 죽여주길 기다렸던 날이 있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기꺼이 나의 모든 존재를 상대에게 내던지는 순간이며 곧 이전의 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하게 사랑은 서툴 수밖에 없는 것이며 함부로 말해도 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에게 정체 모를 것이며 거대한 개념이었던 죽음과 연결해 말하곤 했다. 그런 나에게 죽음이 사라진 세상을 그려낸 소설 『이슬라』가 소년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로 읽힌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어느 날 이 세상에 죽음이 사라진다. 노인은 죽지 않고 배 속의 아이는 만삭인 엄마의 몸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다. 노화도 성장도 없어 아무도 나이를 먹지 않는다. 『이슬라』는 죽음이 사라진 세상, 다시 죽음이 도래하기까지 백 년이라는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죽음이 사라졌으니 세상은 온통 생(生)으로 가득 차야 마땅할 테다. 아무도 죽지 않으니 생명력이 마구 폭발할 법하다. 누군가는 멀리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두려움을 잊어 폭포 위에서 다이빙을 하거나 또 누군가는 그동안 미뤄 왔던 도전을 펼칠 것만 같다. 그러나 『이슬라』가 그려내는 세상은 정반대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자해하거나 타인을 고문하고, 목을 매달아 시체처럼 누워 실현되지 않는 죽음을 온몸으로 흉내 낸다. 죽음이 사라진 세상이 이토록 죽은 모습이라면 삶과 죽음의 의미가 전복된 것이 아닌가.
의미란 본래 부정을 통해 성립한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간단히 말하면 ‘살아 있지 않은 상태’이다. 그렇다면 ‘살아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당연히 ‘죽지 않았다’는 뜻이다. 삶을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죽음을 부정하는 것이다. 양극단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기준점이 버티고 있어야 각각의 모호한 의미가 생성된다. 그러나 죽음이 사라진 세상에서는 삶이 죽음의 의미까지 품게 된다. 『이슬라』는 이처럼 양립 불가능한 두 의미의 구분을 삭제하여 모호하고 기이한 상황을 연속적으로 그려낸다.
임종 직전, 죽음을 받아들였지만 죽지 않았던 노인은 자신이 신이라는 망상에 빠지고, 아들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 한다. 온갖 방법으로 수천 번 아버지를 죽였지만 번번이 실패한 아들은 점점 미쳐 마을의 수호 선인장을 잘라 그 즙을 노인에게 먹인다. 그 선인장에는 먼 옛날 사경을 헤매던 왕자가 선인장을 잘라 즙을 마시고 기적처럼 오아시스를 찾아 살아남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사람을 살렸던 신성한 선인장이 죽음을 선사하는 독으로 변모한 것은 생과 사의 의미가 뒤집혔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의미 전복은 선인장이 자라는 지역의 이름 ‘물고기 섬’에서도 볼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 바다였지만 지금은 사막이 된 물고기 모양의 지형을 여전히 ‘섬’이라 부른다. 산호초 대신 선인장을 품었지만 여전히 섬이라 불리는 그곳은 바다와 사막의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다.
삶과 죽음이라는 단어의 의미 정립이 불가능한 혼란 속에서 문제를 정면 돌파 하려던 자도 있었다. ‘클라우스’라는 이는 책에 미쳐 있었는데, 수만 권의 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해석할 사전을 집필하려 했다. 죽음이 사라진 세상을 겪어 본 적이 없는, 죽은 자들이 쓴 책이지만 “책을 상상하고 읽고 쓰는 동안에는 자기가 유한한 존재라는 걸 잊고”(92쪽) 쓰기 때문에 책에서 지혜를 구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클라우스는 책에 자기 자신을 너무 내던진 나머지 “책이 없으면 아예 머리를 쓸 수 없는 상태”(100쪽)로 변했고, “나중에는 책을 보면서도 전혀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100쪽) 영원한 삶은 삶이 아니게 되듯이, 과열된 열정 또한 열정이 아니게 된 것이다.
종말과 같은 세상에서 삶의 의미를 규정할 수 있었던 이는 오직 이슬라뿐이었다. 죽음을 낳는 여신이었던 이슬라가 출산을 멈췄을 때 세상에 죽음이 사라졌다. 백 년 후 세상에 죽음이 다시 도래하고, 생이 분명해진 것 또한 이슬라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슬라가 한 소년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죽음이 사라진 날, 열다섯이었던 소년 ‘나’는 물고기 섬에 있었다. 죽지 않는 할아버지와, 그런 할아버지를 죽이려 선인장을 자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처벌이라는 이름으로 마음껏 고문하는 마을 사람들에 둘러싸인 소년은 고향으로부터 도망쳤다. “줄곧 추방된 느낌이었다”(54쪽)는 그는, 홀로 절망을 걷다 사막 한복판에서 정신을 잃는다. 절망의 정점에서 그를 구한 것은 검은 안대를 한 소녀 아야였다. 아야를 만난 이후 ‘나’의 삶은 완연히 뒤바뀌었다.


“물 위에 편안히 떠 있는 아야에게 수달 같다고 말했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가 너무나 쨍하고 생생하여 내게 벌어진 모든 일들이 전부 거짓말 같았다.”(55쪽)


‘나’는 아야와 함께 산책을 하거나 도마뱀을 구워 먹으며 수영했다. 하루하루가 그저 무탈히 지나갔다. 아야의 천막에는 달력이 없었고, ‘나’는 그 시간이 영원 같다고 느꼈다. 사랑에 빠진 순간은 그렇게 무탈하고 영원할 것만 같다. 그러나 “오직 유한한 인간만이 무한에 대해 상상할 수 있”(128쪽)듯이 사랑이 끝나지 않기를 바랄 때, 사랑은 끝나 가고 있다.
사랑이 죽음과 같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사랑이란 영원한 것이라 여겼다. 영원히 함께하는 것만이 사랑이라고, 그래서 열일곱에 첫사랑을 했던 사람은 첫사랑을 다시 마주할 때마다 열일곱 살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랑타령을 좋아했다.
사랑 힙합도 아니고 사랑 EDM도 아니고 사랑은 타령이다. 타령이 음을 길게 길게 늘여서 떠는 것처럼, 사랑은 순간을 길게 늘여 곱씹고 곱씹게 만든다. 사랑에 빠지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던 일이나 밤새 통화했던 일이 순간으로 남아 자꾸 떠오른다. 사랑에 빠진 그 순간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출렁인다. 이상하게 상투적인 표현들이 마음에 와 닿아서, 타령을 전수하듯 상투적인 말들을 상용구로 고착시키는 데 일조하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타령은 중독적이지도, 정신이 쏙 빠질 만큼 자극적이지도 않다. 비슷한 패턴이 계속 반복되는 타령은 금방 지루해진다. 절절히 와 닿던 상용구는 언젠가 낡은 말이 된다. 영원할 것만 같이 느껴지던 순간들도 영원이라는 말을 향해 출발하기도 전에 권태로워진다.
사랑에 빠진 ‘나’와 아야도 백 년이라는 시간 속에 권태로움을 이겨내지 못했다.


“아야는 자주 내 기척을 살폈다. 내 눈빛이 흐려지면 주의를 끌기 위해 이상한 소리를 내거나 괴상한 표정을 지었고 그러면 나는 웃어야 했다. 별로 재밌지 않는 농담에도 웃는 사람처럼. (…) 그녀는 나를 사랑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의 나약함, 유한성, 그로 인한 슬픔과 이기심, 무엇보다 죽음을 소망하는 그 지점을 사랑했던 것 같다. 인간이 신을 숭배하듯 신 또한 인간에게 감탄할 수 있다는 것은 신비한 일이다.”(116~117쪽)


‘나’는 끝나지 않는 삶에 권태로움을 느끼고 허무주의에 빠져 있었다. 염세적으로 변했으며 자연히 아야와의 관계도 소홀해졌다. 아야는 여전히 ‘나’를 사랑했다. 그러나 ‘나’를 사랑했기에 옛 기억을 계속 떠올리게 되었다. 죽음을 낳는 여신으로서의 기억을 전소시키고 인간처럼 살아왔던 아야. 아야는 인간을 이해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모든 생명이 늙지 않았지만 아야의 머리카락만은 자랐고 “백 년째 사춘기”(132쪽)인 ‘나’는 아야가 떠날 것 같다는 불안감에 아야를 ‘이슬라’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이슬라라는 이름은 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아야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었으니, ‘나’는 아야가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이기를 바라며 그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이름을 지어 준 것은 사실 아야를 보는 ‘나’의 시선이 바뀌었음을 뜻한다. 아야가 이방인이 된다면 ‘나’에게도 속하지 못할 텐데, 그 지점을 간과하고 이슬라라는 이름을 부르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변하기 시작한다.
열다섯 소녀에 불과한 아야가 “좋아하는 남자 아이와 좀 더 같이 있고 싶다”(130쪽)는 소망을 품는 순간, 아야는 이별을 직감했을 테다. 아야는 인간의 눈과 이슬라의 눈 양쪽을 통해 세상을 볼 줄 알았다. 지금껏 검은 안대로 이슬라의 눈을 가리고 살아왔지만, 애써 외면했던 진실을 응시하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아야는 스스로 환우(換羽)의 과정을 거쳐 이슬라의 권능을 되찾고 검은 안대를 벗었다. “수십 년간 열다섯 살짜리 부부”(139쪽)로 살아왔던 두 사람의 시간은 그렇게 끝난다.


어떤 간절함은 너무 깊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처 보이지 않는 별빛처럼. 우주는 넓고 별은 무한할 만큼 많으니 하늘은 온통 별빛으로 가득 차야 한다. 그런데 왜 밤하늘은 깜깜할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답변은 적색편이 때문이라는 답이다. 우주는 점차 확장하고 있어서 멀리 있는 별일수록 지구와 더 빨리 멀어진다. 때문에 먼 별에서 출발한 빛은 파장이 늘어져 지구에 도착할 때 이미 가시광선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별빛은 몇 백만 년이 걸려 나에게 도착했어도, 오는 길에 늘어져서 내가 볼 수 없는 것이다. 나를 만나기 위해 오래 달려온 존재가 있는데 그 간절함이 너무 커서 정작 나는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삶이 곧 죽음을 통해 의미를 구성하듯이 사랑은 권태와, 연애는 이별과 한 몸이다. 사랑에 빠진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출렁여도 이를 곱씹기 위해 늘릴수록 파도는 잔잔해지고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온다. 이슬라는 죽음을 낳는 여신으로서 죽음을 통해 생이 규정됨을 이해했다. 그렇기에 사랑이 사랑으로 남기 위해선 언젠가 끝나야 함을 알았다. 이슬라는 먼 훗날 ‘나’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건넬 인사, “사랑해”(140쪽)라는 말을 지키기 위해 떠난 것이다.


서툴러서 무참했던 첫 연애를 겪으면 사랑은 슬플 수밖에 없는 것이 된다. 사랑은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랬는데 왜 애절하게 느껴질까. 어쩌면 사랑은 전부 거짓이고 진실을 건진 순간 내 세상은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속아 넘어가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마음을 먹으면, 사랑의 부정을 인정하면, 비로소 사랑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럼 누군가는 언제 또 자빠질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 번 파도를 탈 것이다.
죽음이 사라진 세상, 사막은 카누를 태우는 바다가 되고 순간은 영원이 되는 이상한 세상 속에서 삶은 단지 ‘안-죽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삶의 의미는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이슬라』는 그 답변으로 사랑을 들이민다. 환희와 절망, 설렘과 권태, 낭만과 현실이 뒤섞인 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사랑이기에, 이별의 슬픔을 각오하고 기꺼이 사랑하듯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이별을 감내하듯이, 저마다 사랑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삶을 살아가면 된다고.















김정빈

작가소개 / 김정빈

202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문장웹진 2020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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