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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연애에 관한 안녕이야

  • 작성일 2013-04-01
  • 조회수 751

이것은 연애에 관한 안녕이야

이병국


그런데 잠이 쏟아져, 주워 담을 수 없을 만큼. 어제처럼 같은 길에 누웠어. 사람들의 발에 밟혀도 죽질 않아. 혹은 잊혀질 수 없어.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어 뒤척이는 양은 상처투성이. 오늘도 길 위에 손목의 흔적을 뿌려. 녹아내리는 아스팔트에 몸이 천천히 스며들지. 그거 아냐고 묻는 사람들은 정작 아무것도 모르면서 웃고 있어. 벌어진 입으로 삼켜버린 목소리. 양은 사람들의 뱃속이 두려워. 잊고 잊어 기억하는 엄마의 뱃속은 차가운 나무가 자라, 아무리 먹어도 채울 수 없는 입을 찢고 웃으며 누워.


나는 배가 고프다. 주변을 둘러봐도 잡히는 것이 없다.


어느새 아침이야. 백지의 시간이야. 무엇도 쓰지 않은 백치의 시간. 아직 사람들의 발에 밟히지 않아 벌거벗은 웃음이 흔적으로 사라지고 있어. 보고 싶은데 보지 않으려 돌아가는 군은 망각쟁이. 쓰고 써도 쓰지 않은 종이를 끌어안고 배를 타. 바람에 올라선 침묵을 울려. 돌아가지 않으니 군은 오지 않아. 그냥 여기서 쓰도록 해. 화를 내도 욕하지 않아, 무섭지 않아. 오래전 엄마 젖을 먹던 놈은 여기 없으니 그냥 여기서 싸도록 해.


어디야? 지금 뭐 해? 밥은 먹었어? 할 말도 없으면서 괜히 연락하고 그러지 마. 심심해. 그래서 뭐 어쩌라고? 영화 보러 갈래? 바빠. 뭐 하는데? 그냥 이것저것 하고 있어. 이것저것 뭐? 말해도 넌 몰라. 그래도 그냥 말하면 안 돼? 꼭 다 내가 알아야만 말하는 거야? 싸우려고 전화했어? 그게 아니잖아. 됐어, 그럼 그만 해.


양은 화가 나. 군을 찢어버리고 싶어, 웃으면서. 조금씩 나눠 삼키면 자기 목소리라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화가 나. 화를 내. 그러고 나면 조금 우습지. 우습고 웃으면 되니 화가 나. 그래도 채울 수는 없어. 양이 누워. 하늘이 보이지 않아도 날이 맑은 것쯤은 알고 있지. 구름이 뭉클하게 솟아올라도 자신은 가라앉을 거라는 것도 알아. 결국 군을 위한 무덤은 없는 거야. 그저 자신만 찢어내고 있어.


나는 병에 걸렸다. 그러나 아프지 않고 아무도 말 걸지 않는다.


군은 흔적만 있어. 바람을 타고 흘러드는 곳으로 양의 웃음이 들려. 낮게 솟은 그곳은 돌고 돌아도 딱 그만큼의 크기를 받아들일 뿐. 군은 그늘을 지어 움직이고 있어. (그래야만 사냥을 용이하게 할 수 있으니) 흔적도 없는 것들은 한참을 쉰 시간을 풀어 놓아야 해. (그러니까 웃지도 말고 말도 해서는 안 돼) 군은 천천히 움직이고 방을 돌고 돌아 크기를 받지. 하얀 하늘이 바닥으로 쏟아져.


너는 웃는다. 그것이 자신의 전부인 양, 웃음으로 기억한다.


너무 많이 내린 하늘을 서로 쓸어 담으며, 너희는 어쩔 수 없어. 둘이 사랑하는 사이라는 건 어쩔 수 없는 이야기. (그래도 사람들은 토하지 않아) 그저 사진처럼, 낡은 사진관에 고이 모셔 놓은 오래된 가족사진처럼 누구나 보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사이 같아. 여전히 벌어진 사이야. 벌어진 다리 사이에 놓인 시간이야. 붙잡고 싶어도 잘려 나갈 시간이야. 이제 그들을 만나게 해야 해.


너는 옷을 벗기 시작한다. 그리고 환멸의 길을 걸어간다.


양이 여전히 집 앞에서 기다려. 기다리고 기대하지만 군은 없어.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군은 집에 가려 하지 않아. 언제나 기다리는 건 양이야. 아무나 사랑할 수 없는 양은 문을 바라보고 있어. 오지 않을 군을 기다리며 시간을 삼키고 있어. 먹어버린 틈으로 기어드는 거리를 군이 걸어가. 보이는 집을 돌고 돌아. 천천히 길을 밟아 그림자를 늘이고 있어. 자신에게로 오지 않는 그림자를 먼저 문 앞으로 보내. 이야기는 거기서 잠시 멈춰. 도저히 그들을 만나게 할 수 없어. 미안해.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안녕”밖에 없어.


그럼 이렇게 해보자. 양을 방에 넣고 시작해 보자. 군이 문 앞에 있어. 손잡이에 손을 대면 양을 만날 수 있어. (군이 문을 열까) 이미 문은 없어. 잡은 건 뭉개진 편지. 벽도 사라지고 하얀 하늘만 깔려 있지. 양이 밖으로 나오려고 해. 하늘을 끌어안고 구름을 열면서. 군이 갑자기 아니라고 말해. 아니고 아니고 아니야. 양은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넷이 되니 군이 사라져. 하나가 사라지고 둘이 사라지고 셋이 사라지고. 양과 군은 결국 어긋나기만 하는 거야. 문으로 나가는 양과 문으로 들어가는 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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