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 작성일 202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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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전영관
아버지는 청양 출신 삼류 투수였다
쓰리볼 카운트에서 직구로 강판을 면했다
지명타자는 종신직이더라도
허탈함은 피할 수 없었다
한 번 더 던졌는데 볼이었다
볼넷이 된 아버지는
1남 4녀라는 성적을 만회하느라
손가락 물집이 그치지 않았다
스트라이크는 아들
볼은 딸이라는
가부장적 편견도 만담(漫談)이 되었다
투수는 자신이 던진 공을 자식처럼 여겨야 한다는
스포츠 정신도 포함되었다
던진 투수보다
받아낸 포수가 죄인이 되는 시절이었다
빈곤, 실직 같은 백네임 붙인 강타자들이
아버지를 괴롭혔다
선수는 관중이 자신만 보는 것 같아서
자신을 잃고
그들은 자신의 맥주와 치킨을
즐길 뿐이다
홈런볼을 받으면 행운이 온다고 하지만
호되게 맞아 멀리 날려간 공인 것이다
개중 불행한 주인공을 받은 셈인데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현자는 선수에게 돌려준다
불행은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것 같아도
그럴 만한 곳에 찾아오는 불청객이었다
수비수 전체를 관장해야 하는 어머니
슬픈 포수, 어머니와 처음 만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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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비문증 신혜정 눈, 코, 입을 지우고 얼굴을 떠올립니다 막대기를 넘어뜨리지 않기 위해 주변을 없애는 모래놀이 바다를 하얗게 떠 놓은 달 국자 한가운데가 텅 비었습니다 빈 곳을 그리기 위해 가장자리를 떠올립니다 그것은 일테면 사건의 지평선 배경을 그리면 부재가 완성되는 복숭아가 있던 정물 달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일 시간을 하얗게 떠올려보는 것입니다
- 관리자
- 2024-11-01
편지 - 에필로그 신혜정 서쪽으로만 뜨는 해가 있습니다 서쪽으로 져서 서쪽으로만 뜨는 당신의 반대 방향으로만 눕고 반대 방향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이 지고 뜬눈으로 당신이 떠오르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였습니다 사이드미러의 붉은 신호등처럼 지나치는 의미 없는 시그널들을 놓지 못하였습니다 그림자가 해 쪽으로 조금 기울었고 나는 눈이 조금 멀었습니다 경계가 사라진 곳에서 다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제 꼬리를 물고 뱅글뱅글 도는 개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 관리자
- 2024-11-01
불쑥 맹재범 냉장고 깊숙이 마음이 있다면 남은 반찬을 다 먹고 나서야 꺼낼 수 있을까 오늘은 그냥 봄쑥을 캐러 간다 문밖에 오래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척하는 계절이 봄쑥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너무 좋으면 울어버리는 버릇이 있고 내가 사랑한 것들은 울음 앞에서 돌아서는 버릇이 있다 냉장고 안에는 먹다 남은 것들로 가득하지만 가끔 봄처럼 금방 녹아버리는 4월의 눈처럼 더 깊숙이 넣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잘 버무려서 쪄낸 쑥 한 줌을 접시에 담아두고 너에겐 돌아섰다가 다시 돌아오는 버릇이 있었지 혼자서는 다 먹지도 못할 저녁을 차리며 냉장고를 열면 완전히 익어버린 마음 하나가 쑤욱 고개를 내밀 때가 있다
- 관리자
- 2024-11-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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