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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칠판이 될 때

  • 작성일 2024-06-01
  • 조회수 489

   세상이 칠판이 될 때  


박형준


   비 오는 밤에 

   고가도로 난간에 기대어

   차들이 남기는 불빛을 바라본다

   도로의 빗물에 반사되는 모습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나는 차들이 달리며 빗물에  

   휘갈겨 쓴 불빛들을 읽으려고 하지만

   도로에 흐르는 빗물은

   빠른 속도로 불빛들을 싣고

   고가도로 아래로 쏟아진다


   빗물받이 홈통 주변에

   흙더미가 가득하고 

   간신히 피어난 풀꽃 하나가 

   그 아래로 휩쓸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티고 또 버틴다


   나는 비 내리는 고가도로에 올라서서

   가장 낮은 자리에 버려진 칠판을 떠올린다

   번져서 하나도 읽지 못하더라도

   빗물에 쓰여진 글자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차들이 남긴 불빛들과 함께

   저 아래 빗물받이 홈통으로 떨어질지라도 

   꿋꿋하게 버티는 풀꽃의 결의를 생각한다


   고가도로 밑

   물이 불어나는 강물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가는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강물에 팔딱이며 쓰고 있을 글자들을

   마음 어딘가에 품고서 

   나는 비 내리는 고가도로(생략해주세요) 난간에 기대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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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7-01
생강

생강 손미 나는 생강처럼 지내 두 마리 물고기가 등이 붙은 모습으로 등을 더듬어 보면 생강처럼 웅크린 아이가 자고 있어 나는 여기서 나갈 수 없다 어둠 속에서 음마 음마 물고기처럼 아이는 울고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지려고 파닥거리지 나는 침대 끝에 몸을 말고 누워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아이를 등에 붙이고 침대 끝에 매달려 외계에 있는 동료를 불렀다 시는 써? 동료가 물어서 차단했다 나는 검은 방에 누워 빛은 모두 어디로 빠져나갈까 생각하다가 내 흰 피를 마시고 커지는 검은 방에서 깜깜한 곳에서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땅속에서 불룩해지는 생강처럼 매워지는 등에서 점점 자라는 생강처럼 한 곳에 오래 있으면 갇히고 말아

  • 관리자
  • 2024-07-01

늪 김태경 저 연꽃들 연못 위에 핀 형형색색의 손짓이거든 지키려고 탈출을 멈춰 서던 중이었다 정제된 춤 동선이 어그러지면 안 되지 까만 별은 검은 빗방울 속에서도 빛나야 해 투명해진 작은 말이 파란 문을 되뇌는 동안 소리 없는 외침에 이끌린 건 꽃이 있어서 유일한 길목일 거야 담 밖 아닌 담 안에서 수면을 지나가면 연못 안에 공터가 있다 벽 없는 그곳에서 당신이 웅크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혼자 있었나요 눈웃음에 가려진 침묵의 푸른 눈물 스침은 베고 찌르듯 밝아서 눈부시고 말의 몸이 푸르게 변해 떨어진 비에 아프거나 당신의 눈물샘부터 투명해져 사라지거나··· 연못에 빨려 들어가도 흔적 없거든 출구였거든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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