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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칠판이 될 때

  • 작성일 2024-06-01
  • 조회수 732

   세상이 칠판이 될 때  


박형준


   비 오는 밤에 

   고가도로 난간에 기대어

   차들이 남기는 불빛을 바라본다

   도로의 빗물에 반사되는 모습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나는 차들이 달리며 빗물에  

   휘갈겨 쓴 불빛들을 읽으려고 하지만

   도로에 흐르는 빗물은

   빠른 속도로 불빛들을 싣고

   고가도로 아래로 쏟아진다


   빗물받이 홈통 주변에

   흙더미가 가득하고 

   간신히 피어난 풀꽃 하나가 

   그 아래로 휩쓸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티고 또 버틴다


   나는 비 내리는 고가도로에 올라서서

   가장 낮은 자리에 버려진 칠판을 떠올린다

   번져서 하나도 읽지 못하더라도

   빗물에 쓰여진 글자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차들이 남긴 불빛들과 함께

   저 아래 빗물받이 홈통으로 떨어질지라도 

   꿋꿋하게 버티는 풀꽃의 결의를 생각한다


   고가도로 밑

   물이 불어나는 강물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가는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강물에 팔딱이며 쓰고 있을 글자들을

   마음 어딘가에 품고서 

   나는 비 내리는 고가도로(생략해주세요) 난간에 기대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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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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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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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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