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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

  • 작성자 온을
  • 작성일 2014-03-09
  • 조회수 790

진눈깨비다.

터미널로 향하는 차에서 나는 창문에 부딪혔다 녹아드는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이 트지 않은데다가 눈까지 내려서 하늘은 여즉 어두웠다. 아빠가 운전하면서 옷을 너무 얇게 입었다는 둥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았다. 아빠 목소리가 작게 들리다 사그라졌다.

엄마와 아빠가 따로 사신 건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부터였다. 나는 엄마가 함께 살아서 가끔 주말에 아빠가 나를 보러 오시거나 내가 버스를 타고 아빠가 계신 숙소로 가야했다. 나는 주말이 오는 게 싫었다. 아빠가 미운 건 아니었지만 아빠와 함께 있으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그 상황이 싫었다. 너무 오랫동안 아빠와 떨어져 지낸 탓이다. 이내 차가 멈추었다. 창밖엔 아까보다 더 많은 진눈깨비가 갈피를 못 잡고 날리고 있었다. 언뜻 겨울비처럼 보이기도 했다.

대합실 한 가운데 석유난로가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 짐을 사이에 두고 아빠와 나는 아무 말도 없었다. 버스 좌석 표를 만지작대거나 언제 버스가 올까 창밖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아빠 역시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떠나가고 배웅하러 나온 사람들이 다정하게 아쉬운 마음을 전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로에 몸을 쬐이면서도 우리 사이는 찬기가 맴돌았다. 추위에 몸이 흠칫 떨렸다. 정말 옷을 너무 얇게 입고 온 탓인지도 모른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었을까. 스피커에서 오산행 버스가 도착했다는 방송이 들렸다. 나는 재빨리 일어섰다.

버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덜덜 떨리는 몸을 움츠리고, 빠르게 걸어갔다. 아빠가 뒤에서 더딘 걸음으로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내 짐을 짊어 매고 오는 아빠는 오늘따라 작아보였다. 아빠 어깨 위로 진눈깨비가 내려앉아 옷이 조금 젖었다. 어릴 적 아빠 등에 업혔을 때는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큰 줄만 알았다. 나는 은근슬쩍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맞춰 발걸음을 늦췄다.

내가 여전히 추워하자 아빠는 입고 계시던 옷을 내게 내밀었다. 내가 추위를 잘 타는 것처럼, 아빠도 추위를 무척 잘 타셨다. 그렇지만 나는 괜찮다, 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내가 가만히 서있자 아빠가 팔을 넣어주며 지퍼까지 꼭꼭 채워주셨다. 아빠는 시원하다며, 안 추운 척 했지만 어깨를 움츠리는 아빠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여전히, 아빠 옷은 커서 소매가 헐렁했다. 아빠에게 나는 그저 작고, 여린 딸이었을까. 어렸을 때도 아빠는 늘 내가 추워하면 주저 않고 큰 옷을 걸쳐주셨다. 커다란 옷을 입은 나를 보면서 귀엽다는 듯 웃음을 짓곤 하셨다. 아빠는 그래서 매년 겨울 나 대신 감기에 걸린 것이었다.

나를 버스에 앉히고서도 아빠는 버스를 내려가실 줄 몰랐다. 용돈은 넉넉하냐?, 집에 가면 연락해라, 하시며 말을 거셨다. 나는 아빠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창가만 바라보며 성의 없이 네, 네 대답할 뿐이었다. 곧 출발하겠다는 기사아저씨의 말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내 짐을 내 옆자리에 두고서 바지 뒷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겉옷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선 버스를 터덜터덜 내려가셨다. 아빠의 옷을 돌려줄 틈도 없이 버스 문은 빠르게 닫혔다.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데 창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커튼을 걷어보니 아빠였다. 여전히 진눈깨비가 찬바람과 함께 불어오는데 아빠는 춥지도 않은지 손을 흔들며 입을 뻥긋거렸다. 아빠의 목소리가 창문 때문에 들리지 못하고 입김이 되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 거렸더니 아빠는 창문에 입김을 불더니 글자를 썼다.

‘잘 가’라는 글자가 창문에 비쳐서 거꾸로 보였다. 글자는 창문에 붙은 진눈깨비처럼 빠르게 녹았다. 나는 웃으며 나를 배웅하는 아빠의 얼굴을 그때 똑바로 바라보았다. 버스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빠의 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버스가 점차 멀리 가버리는 데도 아빠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서계셨다. 어쩌면 버스가 아예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계셨을 지도 모른다. 아빠는 내가 곁에 있음에도, 없음에도 그 자리에 계속 서서 내가 가는 길을 지켜보고 계셨을까. 아무리 모진 겨울바람이 불고 비처럼 축축한 진눈깨비가 내려도.

이젠 작아져버린 아빠의 어깨가 너무도 추워보여서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정말 나쁜 딸이었다. 아빠에게 잘 가시라는 말 한 마디 하지 못했다. 얇은 옷을 입고서 진눈깨비를 혼자 맞으며 이제 아빠는 쓸쓸히 길을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혼자서, 가족도 없이 아빠는 타지에서 진눈깨비를 맞으며 살아오셨으리라.

아빠 옷은 정말 따뜻했다. 오랜만에 아빠 냄새를 맡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만져지는 것이 있었다.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이 꼬깃꼬깃하게 접혀져 있었다. 덜컹이는 고속버스 안에서 나는 아빠 옷을 부여잡고 소리 없이 울었다. 그 와중에도 진눈깨비가 소리 없이 차창에 부딪혔다 녹았다. 나는 창문에 입김을 불어 아빠가 쓰신 글자를 더듬었다. 잘 가, 잘 가. 아빠의 글씨가 나타났다가 녹고, 다시 창문에 붙었다가 사라졌다. 창문에 부딪힐 걸 알면서도 수없이 속삭이던 아빠의 말소리처럼 내리는,

진눈깨비다.

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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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가슴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라는 존재와 진눈깨비가 묘하게 연결되어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아버지와의 사이는 흔히 어색함으로 함축하지만, 그 속의 사랑은 진국인 것 같습니다. 그 내용이 담담하고 솔직하게 잘 그려졌습니다.

    • 2014-03-09 20:30:2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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