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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신

  • 작성일 2014-01-30
  • 조회수 989

음악의 신

 

  작곡가들은 죽으면 음악의 신이 마련한 오찬에 모인다고 한다. 자신이 평생에 작곡한 곡들을 품에 안고, 황금으로 된 문을 지나서 음악도시에 입성한다. 그러면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음악의 신이 몸소 작곡가를 맞는다. 음악도시를 한 바퀴 돌며 아름다운 장소를 둘러보고, 연회장으로 안내된다. 작곡가들은 저마다 흰 천이 덮인 테이블에 길게 앉아서 악보 필사법이나 이제는 오래되어 사용되지 않는 선율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음악의 신은 특별히 빵과 고기와 술이 떨어지지 않게 주의한다.

  도서관에서는 태초의 사람이 불렀다는 노래와, 가장 처음 쓰여졌다는 곡이 비치되어있고, 빛이 들어오는 홀을 거닐자면 소극장에서 흘러나오는 연주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작곡가들은 자신의 초상화가 벽에 걸려있는 것을 구경하려고 걸음을 멈춘다. (베토벤은 자신의 초상화가 너무나 심술궂게 그려졌다고 생각한다.)

  오찬에 모인 작곡가들은 즐겁게 술잔을 기울이며 웃는다. 그 곳에서는 귀에 보청기를 댄 채 다른 작곡가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는 베토벤을 볼 수 있다. 그 옆에 앉아있는 마치 젊은 청년처럼 보이는 작곡가는 모차르트다. 그는 너무 어린 나이에 죽어서 이곳에 왔기 때문이다. 이 젊은 천재는 잠시도 입을 다물지 않는다. 바그너는 맞은편에 앉아있다. 죽어서도 여전히 작곡을 하고 있는데, 속기사보다 빠르게 잉크와 펜을 놀리며 곡을 써 내려간다. 바그너의 옆에는 드뷔시가, 자신이 아직도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앉아있다. 드뷔시는 술잔을 기울여 보고 음미하고는 만족스럽게 의자에 몸을 파묻는다.

  "축배를!" 음악의 신이 일어서서 외쳤다. "위대한 작곡가들과 찬미가들과 연주자들을 위해서 건배를!"

  작곡가들은 음악의 신을 따라서 점잖게 술잔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단번에 들이켰다.

  차이콥스키가 만찬실에 걸어 들어와 드뷔시 앞에 앉았다. 그가 빵을 씹으며 말했다. "여기는 참 멋진 곳이야. 드뷔시, 어제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야지. 나는 자네의 수려한 곡들이 참 좋아. 하지만 그 이상한 화성법은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어. 그건 음표에 대한 모독이야."

  "무슨 소리!" 드뷔시가 대꾸했다. "자네는 작곡가가 되어서 이 아름다운 온음계를 이해하지 못하다니. 난 규칙에 얽매이는 음악이 제일 싫어. 자유로운 이 음색을 들어봐. 누구 연주자를 불러줘!"

  하지만 바로크 음악이 풍미했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은 이 대화에 관심이 없었다. 그 중에는 음악의 신이 각별히 사랑한 바흐도 있었다. 바흐와 헨델은 대위법을 두고 진지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두 거장은 비록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생전에 서로를 만난 적이 없다. 바흐는 독일에서 평생을 살았고, 헨델은 일찍이 고장을 떠나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떠돌다 영국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바흐가 헨델보다 조금 일찍 죽었고, 그래서 이곳에도 헨델보다 일찍 왔다. 헨델은 바흐의 평균율을 보고는 거의 눈이 튀어나올 뻔 했었고 (왜냐하면 12개 키를 모두 사용해서 작곡한 48개의 전주곡과 푸가는 너무나 완벽했기 때문에), 바흐 역시 헨델의 메시아를 듣고는 한동안 사색에 잠겨(그가 비로소 적수를 만났기 때문에) 앉아있었다. 모차르트는 두 거장의 틈에 어떻게든 끼어들어 한 마디라도 해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특별히 바흐의 왼쪽에 앉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작곡가는 멘델슨이었다. 멘델슨은 바흐가 죽고 나서 백 년 쯤 지나서 이곳에 온 라이프치니의 작곡가인데, 그가 살아있던 시절에 바흐의 음악에 깊이 감명을 받고, 바흐가 남긴 악보를 모조리 찾아내어 세상에 널리 알린 인물이기도 하다. 멘델슨은 바흐를 만나고는 기쁘고 놀란 마음에 그만 심장마비를 일으켜서 (비록 그는 한번 죽었기 때문에 또 죽을 수 없었지만) 음악의 신이 무척 걱정을 했었다고 한다.

  "당신의 메시아는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높은 성당 안에서 그 소리가 울려 퍼질 때의 느낌을 이루 말 할 수가 없어요." 바흐가 겸손하게 말했다.

  여생이 힘들었던 음악가들은 배려심 넘치는 음악의 신에 거듭 감동했다. 모차르트는 장작 살 돈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게 무엇보다 기뻤다. 그는 종종 음악의 신을 위해서 짧은 소곡과 소나타를 만들었고, 자신이 직접 하프시코드로 연주했다.

  베토벤의 음악에 대한 지독한 열정은 그의 죽음도 막지 못하는 것 같았다. 베토벤은 다른 작곡가를 잡아먹을 기세로 토론을 했고, 심지어는 음악의 신과도 열띤 논쟁을 벌였다. 다른 작곡가들 같으면 잔뜩 움츠러들었을 질문에도 베토벤은 씩씩하게 대답하곤 했다. 베토벤을 감당할 수 없는 작곡가들은 그가 악보를 한아름 품에 안고서, 대화 상대를 찾아 걸어 들어오면,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을 쳤다.

  베토벤과 모차르트는 허물없이 지내며 종종 즉흥연주 경합을 벌였다. 베토벤은 재미로 가끔 악보를 거꾸로 놓고 치는 기교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면 슈타이벨트는 못내 약이 올라서 소매를 마구 비틀었다. 제멋대로인 바그너도 베토벤 앞에서만큼은 애를 먹었다. 베토벤은 바그너가 고집을 부릴 때마다 "이런, 내 보청기가 또 말썽이군, 뭐라고? 더 크게 말해봐!" 하고 소리지르곤 했다.

  물론 이곳에는 작곡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다. 로시니는 뚱뚱한 몸을 끌고 연주회보다는 부엌을 더 들락날락거렸고, 사분음표와 셋잇단음표에 관한 토론에 끼어들기보다는, 생선 구이와 파슬리 요리법을 두고 요리사들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로시니의 요리책은 다른 작곡가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음악의 신은 로시니에게 맛있는 음식을 권하며 괜찮은 곡을 하나 쓸 생각 없느냐고 회유하곤 했다. 그러면 로시니는 음식만 받고 오선지는 거절했다.

  반면, 미쳐버린 작곡가 슈만의 정신질환은 이곳에 온 후로도 별반 나아지지 않아서 작곡 활동을 하기보다는 주로 별채에서 조용히 지냈다. 음악의 신은 그를 위로하기 위해서 브람스와 함께 종종 슈만을 방문했다.

  말러의 도래 또한 음악의 도시에서 한 획을 그었다.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말러의 곡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지만, 듣는 사람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작곡가들은 말러의 존재를 무척 신기하게 여겼다. 말러는 자신이 직접 <대지의 노래>를 음악의 신 앞에서 지휘했고, 특별히 소박한 곡들을 좋아하는 작곡가들을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었다.

  바그너는 말러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저 친구는 정말로 열정적이군. 나만큼은 아니지만 말이야."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작곡가들도 속속들이 오기 시작했다. 고뇌의 쇼스타코비치는 처음에는 자신이 음악의 도시에 왔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고, 음악의 신이 사회주의의 망령은 아닐까 여기며 처음에는 무던히 그의 낯을 피했다. 다른 러시아 음악가들을 만나고는 무척 안도했지만, 여전히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작곡도 조심스럽게 하곤 했다. 그를 위해서 음악의 신은 특별히 악보를 숨길 수 있는 특수 책상을 선물했고, 쇼스타코비치는 일주일이나 면밀히 책상의 안전성을 시험한 끝에야 곡을 쓰기 시작했다. 쇼스타코비치가 걱정에서 벗어나는 건 조금 후의 일이다.

  음악의 신은 특별히 프로코피에프스키의 <피터와 늑대>를 좋아했다. 음악의 신이 <피터와 늑대>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프로코피에프스키가 왔을 때, 연주자들은 일주일 내내 <피터와 늑대>를 켜야 했었다. 나중에는 지휘자도 연주자들도 그 곡을 거의 외워버려서 악보 없이 공연을 할 수 있을 지경이 이르렀다. 심지어는 해설자도 자신의 대본을 모조리 외워버렸다. 늑대와의 줄다리기 장면이 나올 때면, 그는 실감나게 투명 밧줄을 잡아당기는 연기를 선보여서 모든 작곡가들로부터 최고의 해설자라는 평을 들었다.

 

  이른 아침, 대 연주회장에서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주할 준비로 아주 바빴다. 음악의 신이 직접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듣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연주 시간은 저녁 7시로 잡혀있었다. 오케스트라는 마지막 리허설로 정신이 없었다. 관현악단은 죽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로 구성되어있었다. 대부분 머리가 희끗희끗하지만 손가락 힘 만큼은 여전한 늙은 연주자들이었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죽었지만, 한때 그 위상과 능력을 여실히 떨친 조지 솔티 경이 지휘를 맡았다.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그 옆에 서서 거의 한 소절 한 소절 끝날 때마다 끼어들어서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지휘자가 두 명인 셈이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쩔쩔맸다. 보다 못한 조지 솔티 경이 지휘봉을 내려놓고 한 마디 했다.

  "존경하는 스트라빈스키 선생님, 지휘자는 접니다."

  그러자 스트라빈스키가 펄쩍 뛰었다. "맙소사, 누가 들으면 자네가 노망이 들었다고 하겠네. 그게 대체 무슨 헛소리람. 그리고 방금 380마디는 그렇게 연주하는 게 아니라니까."

  대 연주회장에서 조금 떨어진 소극장에서는 또 다른 무리의 음악가들이 연주에 여념이 없었다. 로스트로코비치가 시범 연주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나이 많은 할아버지는 굵은 손으로 첼로 지판을 짚었다. 활이 줄을 그었고, 나무악기는 부드러운 음색을 만들었다. 쥬클린 듀플레가 턱을 괴고 앉아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이작 펄만이 어서 여기 오면 좋을 텐데 말이야." 로스트로코비치가 말했다. "하지만 펄만 그 친구는 아직 정정한 것 같더군. 한번 파사칼리아를 같이 해 보고 싶거든."

  보통 사람들의 손에는 쇳덩이고 나무토막에 불과한 악기들이 연주자들의 손아귀에서는 영혼을 울리는 도구로 변하는데, 이 소리의 전문가들은 관객들의 심장을 쥐었다 놓았다 한다. 목관주자들과 금관주자들의 인내심 넘치는 호흡법에 사람들이 쓰러진다. 첼리스트가 연주 도중 한쪽 눈을 찡긋 하기라도 하면 관객들은 심장을 부둥켜 않고 사망하는 것이었다. 음색은 곱고, 듣는 사람들은 황홀경에 빠진다. 관객들은, 두 다리로 꼿꼿하게 서서 노래하는 남자 베이스의 우렁찬 소리를 들으며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지휘자는 눈썹 휘날리게 오케스트라를 전두지휘하며 뒤통수로 쏟아지는 감탄의 눈빛을 마음껏 감상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단연 스트라디바리우스였다. 그는 연주회장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에 나무집 한 채를 얻어 혼자 살았지만, 그의 집은 언제나 음악가들로 붐볐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나무악기 깎는 것을 보려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모여들었다.

 

  해가 땅에 낮게 깔리고 날이 선선해 질 무렵에, 음악의 신이 몸소 음악회당에 내려왔다. 그가 가슴을 피고 어깨를 곧추세우고 걸을 때면, 음악가들은 한없이 경외감에 차서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음악의 아버지라 칭송 받는 바흐조차도 음악의 신 앞에서는 보잘것없었다. 세상에 많은 작곡가들이 있고, 더러는 천재도 있지만, 그 사람들이 가진 소견은 음악의 신이 가진 것들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음악의 신은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감상했다. 그리고 한 악장, 한 악장이 끝날 때마다 지그시 손을 마주잡고 관현악단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리고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연주가 끝나자 음악의 신은, 여기가 참으로 좋았다, 그 부분은 조금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고 짧은 감상을 입 밖에 내었다. 그러면 모든 작곡가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이었다. 조지 솔티경은 그 자리에서 수첩을 꺼내 받아 적으며 열렬히 그렇군 그렇지 하고 말했다.   한때 위대한 작곡가라고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라도, 음악의 신이 한 마디 하기라도 하면, 자신은 비천하기 짝이 없고 감히 우러러 볼 수 없는 경지를 탐하였구나, 하고 자책을 하는 것이었다.   많은 작곡가들이 음악의 신을 만나고 놀라 자빠졌다. 더 많은 작곡가들은 그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가 어떻게 배음을 설계했는지, 그 위에 어떤 원리로 진동과 소리를 쌓아서 음악을 만들었는지 듣고 있노라면 작곡가들은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음악의 신은 아침 일찍 일어나 짧은 소곡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를테면 드뷔시의 <골리워그의 케이크 워크>나 킬트 모이저의 <레드 리드미꼬>같은 곡을 즐겨 듣는다. 그래서 음악가들은 아침부터 연주 준비로 분주하다. 가볍게 점심을 먹고는 본격적으로 음악 감상을 시작한다. 대개 월요일과 수요일은 오페라, 화요일과 목요일은 합창을, 그리고 금요일에는 오케스트라를 듣는다. 그리고 하루가 저물어갈 때쯤에는 다시 잔잔하고 조용한 음악으로 돌아온다. 음악의 신을 위해서 저녁에는 포레의 <파반느>와 같은 잔잔한 곡이 연주된다. 음악의 신은 완벽주의자임에 틀림없었지만, 매우 도량이 넓어서 언제나 조금씩 음이 틀리고 박자가 흔들리는 연주라도 기뻐하며 들었다. 그는 소리와 박자와 곡조가 부리는 마술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내고도, 질리는 기색 없이 아이처럼 그것을 듣고 또 들었다.

  정말 짧은 곡은 수 분 이면 끝난다. 반면 긴 곡은 모든 연주자들의 팔을 무겁게 하고 사흘 치 어깨 결림을 선사한다. 음악의 신이 들었던 가장 긴 곡은 단연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였다. 그는 바다 같은 인내심으로 일주일에 걸쳐 <니벨룽의 반지>를 모두 들었다. 바그너의 이 악극을 연주하고 모든 연주자들이 쓰러졌는데, 그 불쌍한 연주자들을 위해서 음악의 신은 특별히 진중한 상을 내렸고, 바그너는 너무나 감동을 해서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평화로운 음악당에 지독하기 짝이 없는 난봉꾼이 떨어졌으니, 그날 부로 음악의 신은 아주 골치 아픈 문제를 직면하게 된다. 작곡가들은 이 불미스런 사건을 두고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마다 얕은 소견과 이해로 이 문제를 이해해보려 애썼지만, 수고에도 불구하고 작곡가들은 많은 것을 얻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무도 존 케이지가 누구인지 몰랐다. 더 많은 현대음악가들은 여전히 정정히 살아있었기 때문에, 존 케이지는 음악의 신이 마련한 오찬에 처음으로 초대 받은 현대음악가가 되었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끝나자 좌중은 침묵에 잠겼다. 하지만 감동해서 그런 것은 아니 었고, 파격적인 생각에 감탄해서 그런 것 또한 아니었다. ("혼란스럽군." 모차르트가 짤막하게 말했다.) 작곡가들은 대부분이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지만, 이번만큼은 상황을 이해하는데 적잖이 애를 먹었다. 가장 똑똑한 작곡가도 이것을 이해하는데 최소 5분이 넘게 걸렸다. 존 케이지는 박수갈채가 터져 나오기를 기다렸다.

  "자네는 연주를 시작하지 않을 것인가?" 마침내 음악의 신이 물었다.

  "제 연주는 방금 끝났습니다." 존 케이지가 대답했다.

  "하지만 자네는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았네." 음악의 신이 당황하며 말했다.

  "침묵. 그것이 바로 제 연주입니다, 신이시여."

  그러자 음악의 신 옆에 앉아 있던 작곡가 한 사람이 화를 내며 불쑥 끼어들었다. "하지만 침묵은 음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자 다른 현대음악가가 일어서서 대답했다.

  "아니오. 침묵 또한 음악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침묵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현대음악가는 어색하게 피아노 옆에 서 있는 존 케이지를 대신해서, 장장 세 시간에 걸쳐 철학적으로 음악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이 어떻게 대변될 수 있는지를 연설하기 시작했다. 물론, 관중석에 앉아있는 작곡가들은 단 한마디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진짜 음악은 진취적이며, 현학적이고, 때로는 달콤하고, 강렬하면서도 자신의 과오를 돌아보게 만들고, 사람들을 거짓 진리에서 끌어내는 힘이 있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람?" 한 작곡가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이들을 현실세계로 인도하며, 사람들에게 진정한 안식을 준다고 했다.

  하지만 옛 작곡가들이 보기에 이 새로운 음악에는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있었다. 단순히 조성이 없고, 박자가 없고, 기교와 아름다움이 없다는 것 이상의 큰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역사를 통틀어 가장 난해하다고 평가 받은 곡들도 저들의 음악 앞에 세워놓으니, 참으로 듣기가 좋을 정도였다. 그것들은 '진취적인 현대'라는 이름의 껍질을 뒤집어 쓴 소음이었고, 아무것도 아니었다. 음악이 필수도 갖추어야 할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음악의 신은 배제된 그것이 자기자신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배음과 박자와 조성과 심령이 배제된 것들을 감히 음악이라 칭하는 시대가.

  "침묵도, 소음도 우연도 음악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음악가는 말을 이었다. "그 어떤 것이라도 음악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연성이야말로 최고의 음악이지요. 이 세상이 원래 우연의 산물인 것 모르셨습니까? 이제 고리타분한 옛날 음악들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음악은 더 이상 오만한 지식인들의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얼마나 넓습니까. 음악이 꼭 아름다워야 합니까? 파괴적인 것도 음악이 될 수 있습니다. 화성법과 대위법을 모르면 작곡가가 될 수 없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신의 생각이 편협하다는 것입니다. 어찌 그렇게 화음과 박자와 조성만을 따지십니까? 나는 감히 말하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 힘들게 음악 역사와 이론을 공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음악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과,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는 마음가짐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의 끄트머리를 산 음악가들이 오찬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은 대개가 친절하고 열정이 많았지만 음악적인 소견은 무척 얇았고, 이론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거장들에 비하면 한참 떨어졌다.

  어떤 작곡가는 듣기에 해괴하고 고통스러운 온갖 시끄러운 소리를 조합해서 연주회를 열었다. 음악의 신은 (분명히) 인내심이 많은 신임에 분명했지만, 이 연주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고 음악의 신이 말을 꺼내면, 음악가는 화를 내며 대꾸했다.

  "신이시여, 당신의 생각은 정말 좁습니다!" 그가 말했다. "당신은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를 사랑한다면 우리가 어떠한 곡을 작곡하시던 전부 좋아하셔야지요."

  그러면 음악의 신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칭 음악이라 하나 실상은 파괴의 산물인 그 이상한 것들을 하루에 네다섯 시간씩 듣자니 음악의 신은 속이 곤궁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것만큼은 음악의 신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음악의 신의 본질은 음악에서 나오고 음악으로 규정된다. 자신이 한때 직접 규정한 소리와 법칙들을 부정한다면 그는 더 이상 음악의 신이 아니었다. 음악의 신은 근심했고, 자신이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음악이 아닌 것을 철썩 같이 음악이라 믿는 음악가들을 불쌍히 여겼지만, 그러한 음악의 신의 태도는 어째서인지 사람들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이윽고 사람들은 완전히 변절해버렸다. 그들은 음악의 신이 자신들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음악의 신이 언제나 옛 시대의 작곡과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탐탁잖게 여겼다. 음악의 도시는 하나뿐이었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어떤 작곡가들은 음악의 신 편에 섰고, 어떤 작곡가들은 그 반대편에 섰다. 한번은 음악의 신을 무척 사랑하는 한 작곡가가 변절한 음악가들과 대판 싸우기도 했다.

  음악의 신이 처음에 직접 고안한 배음과 소리에는 우연이라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 전통적인 시각은 새로운 시대에는 더 이상 부합하지 않았다. 어떤 작곡가들은 잉크로 종이 위에 아무 음표나 휘갈겼으며, 발로도 피아노를 구르고 주먹으로 건반을 마구 팼다. 슈베르트와 쇼팽은 비명을 질렀고, 근대 음악에 비교적 가깝다는 리스트조차 아연실색했다. ("팔꿈치와 주먹은 저렇게 쓰는 게 아닌데!" 리스트가 비명을 질렀다.) 쉔베르그는 처음에는 어느 편에 서야 할지 고민하는 듯 보였지만 이내 고전파 음악가에게 가세했다. 연주에 미쳐서 정신이 반쯤 나간 작곡가들도 현대음악가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슈만은 이렇게 말했다. "오, 이런 맙소사."

  하루는 연주회당에서 큰 소동이 벌여졌다. 이국에서 왔다는 한 연주자가 도끼로 피아노를 부수었기 때문이다. 그는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 입고 무대에 걸어 들어와서는, 연주는 하지 않고 대뜸 도끼로 피아노를 박살냈다. "멋진 연주다!" 한 음악가가 소리질렀다. 이국의 연주자는 열렬히 허리 숙여 인사하며 미소 지었다. 그러자 이것을 좋게 여긴 음악가들과 그렇지 않은 음악가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진 것이었다. 유럽의 유명한 피아노 제작자는 그 연주자의 멱살을 잡았고, 나이 어린 음악가들은 저마다 몽둥이를 하나씩 쥐어 들고 싸움에 임했다. 옛 작곡가들은 사정없이 두들겨 맞고는 음악당 밖으로 쫓겨났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 작곡가들은 옛날의 관습에 얽매여서 진보하는 시대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음악의 신은 죽었다!" 한 음악가가 부서진 피아노를 밟고 올라서서 소리쳤다. "이곳을 빼앗아 버리자! 혁명이다!"

  이 혁명은 음악의 신을 매우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가 이곳의 음악가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에 찬 음악가들의 고함소리도 그의 본질을 바꾸진 못했다. 음악의 신은, 음표에 분노와 불쾌함을 섞어서 만든 그것들을 결코 즐겨 듣지 않았다. 그는 매우 슬퍼했고, 주말이 되어도 늦은 아침을 먹고 오페라를 들으러 가지 않았다.

  어느 음악가는 <귀머거리 음악의 신>이라는 곳을 작곡했다. 이 곡은 다른 음악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음악가들은 신이 나서 호른을 불고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한 음악이다. 드디어 무엇이 진리인지 우리의 눈이 밝아져 알게 되었으니, 세상은 참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한 작곡가가 이 곡을 평가하며 말했다. 사람들은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며 음악의 신에게 주먹질을 해댔다.

  그것을 보고 마침내 음악의 신이 말했다. "너희 좋을 대로 하거라."

  이미 많은 사람들은 음악의 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관심이 없었다. 음악의 신은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등을 돌리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했다. 그 음성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땅이 마구 흔들리고 시계추가 비틀렸다. 이 마지막 말은 비수처럼 모든 음악가들의 가슴을 찔렀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노래를 부르다가 문득 너무나 놀라서 술잔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음악의 신의 마지막 말을 알아들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보니 음악의 신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더 많은 사람들은 방금 있었던 지진을 느꼈냐고 서로 신기해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고하니, 언젠가 이 땅을 되찾으러 내가 다시 올 것이다."

  그 날을 기점으로 음악의 신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리고 음악의 신을 따라서 많은 작곡가들 역시 모습을 감추었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지자 음악의 도시는 마치 한 밤중의 환락가 같은 곳으로 전락했다. 나무악기는 부서지고, 악보는 사라지고, 음악당은 버려졌다. 파괴를 위한 파괴가 자행되었지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 음악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오라토리오 라던가, 오페라가 아니었다. 새로운 시대, 실용성, 타협 따위가 바로 이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 사람들을 음악가라고 불러야 할 이유가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들도 한때는 음악의 신에게 초대받은 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정말로 저 좋을 대로 행하기 시작했다. 음란한 곡조를 뽑고, 귀가 망가지도록 험한 음악을 들었다.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빼앗은 땅이 본래 어떤 곳이었는지를 잊어버렸다. 진실은 이내 몇 가지 사실들이 빠지고 뒤틀린 옛날이야기로 변모했다. 음악의 신의 말을 알아들은 사람들이 몇몇 있기는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 소문이 있지. 하지만 그것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람? 이 땅에 음악의 신 같은 게 없는데 말이야!"

  시간이 더 흐르면서 노래를 부를 줄 모르는 음악가들도 이곳에 왔고, 음악의 신을 쫓아낸 음악가들에게 합세했다. 발성법을 연습하거나 음악 역사를 공부하기에 이 연주자들은 너무나 바빴고 게을렀다. 그래서 연주자들은 심각하게 노래를 못 불렀다. 어떤 작곡가들은 온음계가 무엇인지 몰랐고, 7분의 8 박자를 읽을 줄도 몰랐다. 음악가들은 철저하게 무음악을 추구했다.

  한때는 죽은 작곡가들을 위해서 매일 저녁 마련되는 오찬도, 음악의 신이 없어지니 사라져 버렸다. 해질녘을 고운 바이올린 소리로 마무리하는 일상도 사라졌다. 어린이 합창단이 (이 아이들은 대개 알 수 없는 이유로 일찍 죽은 아이들이었는데, 음악의 신이 특별히 데려왔다.) 씩씩하게 부르는 노래 소리도 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한 현대음악가는 말했다. "이 모든 것은 사회의 탓이다. 사회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

  "음악은 원래가 비참한 것이다. 음악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하지만 진실로 처음에는 음악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았다. 정말로 처음에 음악은 듣기에 괴롭지도 않았다. 파괴적이지도 않았다. 처음에 음악은 누군가를 기리기 위해서 작곡되고 연주되었다. 태초에 음악을 창시했던 단 한 사람의 위대함을 영예롭게 하기 위해서 작곡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고, 옛 관습들은 지루한 것이니 잊혀져 버렸다. 간혹 젊은 음악인이 이곳에 올 때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세계를 보고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눈이 어두워지고 심장이 굳어버린 작곡가들에게는 이 세계가 놀랄 것이 없었다.

  젊은 음악가가 이곳에 온 것은 해질녘이었다. 손에는 둘둘 만 악보를 들고 있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너무 놀라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듣기로 이 곳은 음악의 신이 우리를 위해 친히 예비하신 곳이라도 하던데요." 젊은 음악가가 말했다.

  "음악의 신 같은 것은 세상에 없다. 이 멍청한 녀석아." 어떤 사람이 말했다.

  그리고 젊은 음악가가 옛날 악보들을 찾아서 음악가들한테 보여주며, "이런 음악도 있군요." 하고 말하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무시당하는 것이었다.

  "언제적 악보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냐. 그런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는 연주를 사람들이 들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냐? 옛날 작곡가들이 얼마나 멍청한지 알고서나 말해라!"

  젊은 음악가는 그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달리 자문을 구할 데가 없었다. 젊은 음악가의 주위에는 술 취한 사람들 뿐이었고, 그들은 아는 것이 없었다. 음악이 무엇인지도 모를 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여기에는 무언가 더 있을 거야.' 젊은 음악가는 생각했다.

  젊은 음악가가 생각한 것처럼, 음악의 신이 자취를 감추었지만 그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음악의 신은 자신이 처음 음악가들을 모으고, 악보를 필사하고, 건물을 세웠던 그 땅을 넘겨주었을 뿐이었다. 음악의 신은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또 다른 음악 도시를 세웠다. 그리고 음악이 아닌 것들을 음악이라 부르는 그 오래된 도시를, 자신을 배척한 음악가들이 차지한 도시를 '미련하다'라는 뜻에서 '우둔'라고 이름 지었다.

  우둔은 비참하기 짝이 없는 도시로 변했다. 작곡가들은 싸구려 술로 배를 채우고 악보는 찢어발겼다. 매일 저녁 열리는 연주회장에서는 누가 더 파격적인 연주를 보여줄 수 있는지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작곡가들은 이를테면 사람을 산채로 굽거나 갈아버리는 장면을 음악으로 그렸고, 더러는 기괴하고 잔인한 곡조를 뽑아냈다. 젊은 음악가는 시끌벅적하고, 지저분한 복도에서 걸어 나왔다. 벽에 걸린 멋진 그림들은 훼손되어 있었고, 칠도 다 벗겨져 있었다. 젊은 음악가는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그림 하나를 바닥에서 집어 들었다. 그림 안에는 탁자 위에 수려한 솜씨로 그려진 악보와 나무악기가 그려져 있었다. 책 몇 권, 그리고 목이 긴 악기 하나를 들고 있는 집시의 그림이었다. 연주회장에서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싸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음악가들이 7 미터나 되는 멋진 파이프 오르간을 벽에서 끌어내리고 있었다. 바람이 드나드는 기다란 관은 벽에서 떨어져 나와 두 쪽으로 부서졌다. 젊은 음악가는 문득 슬퍼졌다. 저 장엄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이제 더 들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무척 가슴이 아팠다. 이제 우둔에는 그 어디에도 음악의 신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우둔의 음악가들은 음악의 신을 싫어했고, 그 무엇보다 음악을 증오했다. 우둔의 음악가들은 승리했다. 우둔은 온전히 그 사람들의 것이었다. 하지만 음악가들은 비참했고, 어제를 불평하고 오늘을 탓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음악의 신은 자리를 떠났지만, 그의 부재가 사람들에게 해방과 기쁨을 주지는 못했다.

  젊은 음악가는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벽돌 깔린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젊은 음악가의 손에는 아까 찾아낸 오래된 악보가 들려있었다. 젊은 음악가 또한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이것은 젊은 음악가가 바란 세상이 아니었다. 그는 곡이 쓰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에 만연한 뒤틀리고 망가진 음악이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의 심장을 뛰게 하고 듣는 이의 눈시울을 적실 수 있는 그런 곡이 쓰고 싶었다. 망가진 시계탑에 아침 해가 걸렸다. 우둔은 밤에는 시끄럽고 낮에도 시끄러워서 젊은 음악가는 세상이 조금 밝아졌고, 지금은 밤이 아니라 스산한 아침인 것을 깨닫고는 경이에 차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무너진 돌담과 쇠문, 그리고 우둔 밖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이 보였다. 젊은 음악가의 심장 한 귀퉁이에 문득 뜨거운 술이 부어진 것 같았다. '그래, 좁은 길이군.' 그는 쾌활하게 웃으며 우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